64화
류 과장을 돌려보낸 후 그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10월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서울의 모습은 그가 이 건물에 처음 입사했던 1980년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지금에 비하면 그 때의 건물들은 작은 장난감정도였다.
1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풋내나는 신입사원이었던 박기범은 이제 차기 중역을 내다보는 부장으로 승진해있었다. 42살의 부장. 이례적으로 빠른 승진이었다. 그의 17년간의 직장생활은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살아있는 한 면이었다.
보름 후인 10월 24일.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면서 그는 배달된 신문을 펼쳤다. 회사에서는 경제신문을 보지만 집에서는 일간지를 보았다. 1면은 이제 곧 다가올 대선에 대한 뉴스였다.
[金 대통령-대선후보 연쇄회담]
오늘 김대중총재와 조찬...정국 변화여부 주목하지만 1면 맨 오른쪽에 정리된 뉴스라인 칼럼에는 홍콩 금융시장 대혼란이라는 기사가 짤막하게 쓰여져 있었다. 급히 해당 기사를 펼쳐보았다.
[복합不況-홍콩 10년만의 ‘금융공황’]
주가 나흘간 25%폭락
금리 어제 37%로 급등
아시아의 금융센터 홍콩이 금융혼란에 빠졌다. 주권회귀 이후 등락을 거듭해오던 주식값이 이번 주 들어 나흘간 무려 25%나 폭락했으며 금리가 치솟고 있다.
박기범 부장은 급한 마음으로 신문기사를 읽어내려갔다. 아시아의 금융메카인 홍콩이 흔들린다는 것은 세계경제가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금리 수치는 더 충격적이었다. 말이 그렇지 금리가 37%라면 이 말은 위험자산이 아닌 단순한 금리투자만으로도 37%의 수익을 얻는다는 말이었다.
100만원을 이 37%이율에 적용하면 1년뒤면 원금이 137만원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즉 아주 높은 이율이라는 것이다.
만일 A라는 사람이 단돈 100만원을 연 37%이율로 10년만 굴리게 되면 그 사람의 자산은 무려 2329만원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신문을 한 장 넘겨 경제면을 보자 예상대로 홍콩의 증시폭락에 대한 기사가 또 있었다.
[동남아 외환위기 일. 홍콩으로 확산]
[올 무역적자 100억 달러 머물 듯]
이 연결된 기사를 읽으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홍콩의 충격으로 인해 세계의 투자자들이 아시아에서 일제히 자금을 인출해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들은 홍콩 사태를 아시아 탈출의 기회로 여길거야. 그리고 외국 은행들은 만기가 돌아올 우리나라의 외채에 대해 만기연장을 거부하면 유동성을 확보할텐데. 달러차관은 달러로 갚아야 하니 결국 외환보유고에서 차감될텐데. 현재의 달러외채규모를 외환보유고로 갚을 수 있나?’
잠시 생각을 한 박기범 부장은 아내가 차린 식사를 먹지도 않고 곧바로 아파트 문을 나섰다.
“여보. 식사도 안하고 그냥 가?”
“오늘 급한 일이 생겼어.”
그렇게 말을 던지고 아파트를 뛰쳐나간 박기범 부장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걸음을 옮기지 않고 아파트 입구에 멈춰선 택시에 올라탔다.
“무등그룹본사로 갑시다.”
택시 안에서 그는 기사에게 마침 흘러나오는 라디오 뉴스의 볼륨을 키워달라고 했다. 볼륨이 더 커진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 첫소식입니다. 경제뉴스로 진행을 해야 하는데요. 최근 기아사태, 한보사태 등으로 국가경제가 흔들리는데다가 홍콩발 증시폭락으로 아시아 경제 전체가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습니다.”
경제뉴스를 들으면서 한숨을 크게 쉰 박기범 부장은 달러를 계속 매집해온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백미러로 흘끗 쳐다본 택시 기사가 입을 열었다.
“손님은 무등그룹 직원이신가 봐요?”
“네. 자금팀 부장인데. 지금 달러확보 때문에 회사가 난리도 아닙니다. 다른 기업들도 미친 듯이 뛰는 상황이라서.”
시트에 몸을 파묻고 말하자 기사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경제가 어려워진다더니 그게 맞기는 맞군요.”
"이런 때 달러의 위력을 느낀다니까요. 미국이 무역적자가 많아서 쓰러지네 어쩌네 해도 조금만 위기가 느껴지면 전세계의 모든 돈이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니."
차가 정문에 도착하자 내린 그는 급히 본사 경영지원실로 올라갔다. 도착하자마자 모니터를 켠 그는 환율데이터를 눈여겨 보았다. 예상대로였다.
아직 외환시장이 개장하지도 않았지만 이미 홍콩에서 거래되는 원달러 NDF가격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바로 이틀전. 22일만 해도 기아자동차의 법정관리문제가 해소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코스피가 무려 6.08%나 올라 82년 6월 29일의 5.39%를 넘어서는 최고치 상승을 기록하며 600포인트를 넘어섰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만에 이 모든 것은 물거품으로 돌아갈 심산이 컸다.
'이런때 공매도 때리면 갑부될거야.'
“류 과장. 달러매입 금액을 늘려야겠어.”
콧노래를 부르며 활기찬 얼굴로 출근한 류 과장이 인사를 하려고 하지 다짜고짜 던진 첫마디였다.
“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제 홍콩증시가 폭락했어. 아마 해외투자자들은 아시아에서 본격적으로 돈을 빼가기 시작할거야. 특히 우리나라. 평소 10억원씩 사던 달러. 오늘은 50억 산다.”
“너무 큰 금액입니다.”
“아니야. 외환시장 개장하면 바로 사. 이거 봐. 홍콩 NDF가격이 이게 미쳤지... 심상치 않아.”
박 부장의 자리로 달려온 류 과장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군요. 평소 원화에 대한 NDF레인지 폭이 정해져있는데 이건 호가부터가...”
“무조건 산다. 이제부터 모든 기업들이 달러확보를 위해 미친 듯이 매진할거야. 정부는 어떻게는 막으려고 할거고. 봐.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라는 걸 어떻게든 치적으로 남기고 싶은 YS정권이 어떤 미친짓을 할지 알아? 아. 류 과장. 미안한데,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 현황을 좀 파악해주게. 그리고 현재 외채규모도.”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류 과장에게 말했다.
“그럼 부탁해. 그 외환보유고 현황은 밑에 강석천 계장 시키라고.”
“예”
박기범 부장은 류 과장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바로 부사장실로 향했다. 황 부사장 역시 부사장실에 놓인 텔레비전을 통해 홍콩의 사태를 관찰하고 있었다.
“부사장님.”
“자넨가? 이거 봤어?”
그가 박 부장에게 보여준 것은 영문판 도쿄 경제신문이었다. 헤드라인은 고딕체의 영어로 큼지막하게 그것도 빨간색 잉크로 적혀있었다.
[PANIC IN HONG KONG]
============================ 작품 후기 ============================
NDF(Non Delivery Forward :역외선물환. 금융규제를 피해 홍콩등에 형성된 시장으로 앞으로 환율을 예측해 선물을 사고 파는 파생금융상품. 이 당시 전세계의 모든 돈이 안전한 미국으로 이탈했고, 동남아에서는 외국투자자들이 대거 자금인출.
달러가 귀해지니 부르는게 값이고, NDF시장도 앞으로 달러가 더 귀해질 것이라 판단 미리 사두려는 투기세력까지 가세하면서 값이 엄청 뜀. 이 당시 1달러당 600원대에서 1000원대로 수직상승. 1인당 국민소득이 반토막이 나게 됩니다.
특히나 세계 3대 금융시장은 뉴욕-도쿄-런던. 4대 금융시장은 뉴욕-도쿄-런던-홍콩. 5대 금융시장은 뉴욕-도쿄-런던-홍콩-프랑크푸르트. 게다가 홍콩은 일종의 바로미터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이곳의 변화추이는 매우 중요함.
동남아 금융위기가 일본에까지 확산된 것은 동남아는 일본의 텃밭이었고 일본의 금융기관들이 막대한 돈을 빌려주었는데 다 떼이게 생기자 동남아에게 빌려준 돈은 전부 부실채권이 되고 일본의 은행들이 적립해놓은 대손충당금으로도 커버가 안되어서 줄줄이 도산위기에 몰림.
이를 막기 위해 한국에 빌려준 돈을 급히 회수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종금사나 단자회사는 일본에서 저금리로 빌린 돈을 동남아에 고금리로 빌려주면서 동남아에서 떼이고, 일본에서 갚으라는 요구가 들어와서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부도. 당시 국내 대형시중은행까지 줄줄이 쓰러지게 되고, 결국 정부가 나서서 구제금융을 투입하게 됩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부실채권을 당시 대장성이 전부 떠앉으면서 일본의 장기침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