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60화 (60/159)

60화

이튿날 아침부터 머리를 싸매며 7시 20분까지 사무실에 도착한 박기범 부장은 계속 끙끙거렸다.

"아 저런 빨갱이와 어떻게 일을 하냐고."

의자에 주저앉은 박 부장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약속을 지키는지 아닌지 보았다. 7시 25분. 배상수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내가 7시 30분까지 오라그랬지."

"지금 7시 25분인데요?"

이 말에 박기범 부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그 말은 최소 15분 전까지 미리 오라는거야. 너 올때 직원들 출근 안하대? 8시 출근인데도 영업부는 최소한 7시까지 와서 일하는 경우도 있고 늦어도 7시 30분까지는 온단 말이야. 우리는 8시까지니 늦어도 45분까지는 와야한다고. 회사가 장난이야?"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을 했을 때, 회계팀 부장이 다가오면서 말했다.

"박 부장. 왜 애는 혼내고 그래? 영업부도 마감이거나 할때나 7시에 오지. 자네도 8시 딱 맞춰서 많이 오잖아."

"아니. 부장님. 김빠지게."

회계팀 부장은 배상수의 어깨를 툭 쳤다.

"박 부장이 혼내는건 그만큼 기대를 많이 해서 그렇지. 그리고 아무한테나 혼내지 않아. 관심 끊으면 혼내지도 않아."

회계 부장이 사라지고 난 후, 박기범 부장은 뚱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화가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좋아. 이렇게 회사는 빡빡한 곳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늘 명심해. 몇시까지 오라는 말은 그 시각 15분 전이라는 거야. 그리고 이제 신입사원이니."

박기범 부장은 자금팀 내부를 둘러보았다.

"일단은 책상이 없을거야. 아직 총무팀에서 준비를 못했거든. 그러니 가장 간단한 수금업무부터 배워. 옆에 붙어서 어떻게 하는지. 은행갈 때 따라도 가보고. 알겠지?"

"네. 부장님."

그래도 부장님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좋아.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자고. 일단 우리팀 사람들 소개부터 시켜주지."

8시가 되고 자금팀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박 부장은 직접 소개를 시켜주었다.

"자. 여기 우리회사 수금담당을 맡은 오영은 씨. 같이 일해. 옆에 붙어서 어떻게 일을 하는지 잘 보도록 해. 그리고 영은 씨는 업무 인수인계를 한다고 생각하고 잘 알려주고."

일을 맡긴 후, 박 부장은 서류철과 각종 책을 쌓아둔 커다란 캐니닛으로 향했다. 각종 파일철과 책들을 둘러보다가 손가락 두 개가 완전히 포개어질 정도로 두터운 책을 하나 꺼냈다.

"음. 도날드 트럼프라. 이 정도면."

그 책을 캐비닛 앞에 높인 책상에 올려좋고 다른 책을 찾았다. 이번에는 좀 더 읽기 부드러운 소설이었다.

"요거다."

캐비닛 맨 아래쪽에 놓인 책이었다. 야마사키 도오코의 '불모지대'였다. 기업소설이었기 때문에 권해준 것이다. 책을 몽땅 들고 걸어가 배상수의 앞에 내려놓았다.

"다 읽어. 퇴근할때까지 일 배우고, 틈틈이 읽어. 그리고 집에 가서도 읽으라고. 그리고 독후감도 나중에 써가지고 오고. 다음주까지. 알겠지? 이따가 OJT도 할거고. 아주 바뻐."

자기 책상으로 돌아간 박기범 부장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 다시 업무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물품대 지급건 점검, 자회사 자금현황점검 등 할 것이 아주 많았다. 서류를 꼼꼼하게 읽고 도장을 열심히 찍어 승인을 한 그는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일주일 후, 신입으로 들어온 배상수가 쓴 독후감을 읽어보면서 박기범 부장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서서히 자본주의 사상에 물들어간다고 여겨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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