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59화 (59/159)

59화

다음날 아침. 신문을 펼쳐든 그는 깜짝 놀랐다. 신문 1면에 어제 안기부에 가서 진술한 것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安企部, 韓國 大學生 共産聯盟 檢擧(안기부. 한국 대학생 공산연맹 검거)용기 있는 市民의 제보로 安企部. 韓大共 本部 급습國家安全企劃部는 어제 저녁. 暴力으로 共産革命을 기도한 한국대학생 공산연맹 본부를 급습해 수배중인 총무 배상수(23), 회장 오동철(25), 월북을 기도한 부회장 신수직(22)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이에는 시민의 제보가 결정적이었고, 어제 담배를 사러 나간 신수직을 목격한 슈퍼 주인의 신고, 안기부 직원의 추격을 따돌리는 것을 목격한 회사원의 신고가 결정적이었음이 드러났다.

현재 또 다른 학생운동의 축인 한총련의 대규모 폭력시위가 예상되는 가운데 경찰과 검찰, 안기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욱이 이번에 체포된 배상수는 지난 4월, 경인지역 대학생 연합데모를 주도했습니다. 그 당시 일부 과격 학생분자들이 쇠파이프를 휘둘러 전경 두 명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과 안기부의 수사대상.......

"이야. 경찰까지 살해했어? 미국같으면 난리날텐디."

신문을 같이 지켜보던 관리회계팀 부장이 말했다.

"그러네. 이 놈이야. 내가 어제 안기부가서 목격자 진술한게. 바로 이 배상수라는 놈을 내가 신고했지. 투철한 시민정신을 가지고 신고를 한 거라고."

"그러면 현상금 받겠네."

술이라도 한 잔 사라는 듯 어깨를 툭 치자 박기범 부장은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시민이 제보를 할 때는 돈을 바라는게 아니라 이 나라와 사회의 안정을 생각하는 시민정신에서 우러나오는거야. 돈을 바라면 올바른 시민이 아니지."

"그래도 돈 받잖아."

"아마. 그 슈퍼 주인하고 노나 갖겠지."

신문을 덮은 뒤, 관리회계 부장이 말했다.

"이런 공산주의가 무너진게 언젠데 아직도 이런 세력을 추종하는 놈들이. 그것도 대학생인거야?"

"세상엔 별일이 다 있는거야. 리차드 기어와 신디 크로포드의 이혼처럼 늘 충격적이고 알 수 없는거라고."

이 말에 관리회계 부장은 눈꺼풀을 씰룩거렸다.

"그런거야?"

"그렇지. 말이 그렇지. 공산혁명 일어나봐. 자네나 나는 다 죽어. 지하철로 출퇴근할 때 음악 듣는데, 난 팝송만 듣거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은 누구 노래 들어? 로드 스튜어트? 마돈나? 아니면?"

박기범 부장은 대답했다.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멍청한 놈들은 BMW를 타도 미국차 탄다고 할거야. 멍청하니 그런 생각에 물들지."

혀를 차면서 박 부장은 다시 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한달 뒤, 법원은 한국대학생공산연맹 총무 배상수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게 된다. 뚜렷한 혐의점도 없고, 법에 크게 저촉되지 않았기에 내려진 선고였다. 그리고 10월.

"박 부장."

황 전무가 임원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박기범 부장의 책상에 들렀다.

"전무님."

의자에서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대답을 했다.

"앉어. 사장님이 잠깐 보자고 하시던데. 일단 가 봐."

"알겠습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박 부장은 곧바로 사장실로 향했다. 사장실로 들어가기 전, 사장실 앞에 위치한 비서실에 먼저 들렀다.

"들어가도 되지?"

"네."

비서 한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세 번 두드린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르셨....습니까?"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몇 달 전 안기부에 불려가게 된 계기를 만든 학생하나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박 부장. 이리 와. 앉어."

창 밖을 내다보던 오 사장은 소파에 앉았다.

"너도 앉고."

책상 옆에 서 있던 학생을 앉으라고 손짓을 한 후 박기범 부장을 쳐다보았다.

"박 부장. 이 친구 누군지는 알아?"

"알다마다요. 제가 안기부에 신고해서 체포된 사람이잖아요."

이 말에 오남현 사장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을 했다.

"무죄선고를 받았어. 무죄를. 뭐 내가 잘 아는 사람의 아들이야. 나하고도 안면이 있는 녀석이지."

"그렇군요."

다소 심드렁하게 말을 한 박기범 부장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몸을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오남현 사장은 골똘하게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이 친구도 무죄인데 어디 취업이 되겠어? 내가 아까 인사부장한테 말도 해놨고, 그래서 자금팀 사원으로 일을 시켰으면 해서."

박기범 부장은 이 말을 듣자마자 머리가 아팠다는 듯 오른손으로 이마를 감싸쥐었다.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면 자금, 회계. 이런 경영지원업무를 해야 하니까. 그리고 공부시키기에도 좋아. 자네가 잘 좀 교육시켜주었으면 하는데."

이 말에 박기범 부장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싫습니다."

"사장의 명령인데요?"

"그건 안됩니다. 정식 공채나 수시 채용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아요. 게다가 지금 자금팀은 사람이 꽉 차있거든요. 들어와도 시킬 일이 없어요."

다소 미덥지 못한 듯 오남현 사장은 소파에 몸을 깊이 파묻고 박기범 부장을 쳐다보았다.

"고작 그거야?"

"이건 중요한 문제죠. 절차가 있는데요. 무등그룹은 이제 재계10위를 넘보는 회사인데 이런 식으로는 힘들어요. 게다가 자금팀 책임자인 제 의견도 안 물으시면...."

목소리가 강하게 나가다가 다소 낮아졌다. 이 틈을 노려 오남현 사장이 말했다.

"왜? 범죄자라서? 안기부에게 찍힌 친구라서?"

"공산주의자잖아요. 공산주의자와 회사 일을 같이 해요? 회사 돈 훔쳐다가 정부전복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 회사 입장이 어떻게 되는지."

크게 한번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린 오남현 사장은 박기범 부장의 무릎을 탁 쳤다.

"이 친구야. 수시채용이라고 생각하고 교육시켜. 자네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6개월 뒤에 다른 부서로 보낼거야. 월급도 지금은 아르바이트생 정도로만 줄 거고. 6개월 지난 다음부터 대졸공채사원처럼 줄테니 비용도 걱정하지는 말고."

아직도 답이 없자 오남현 사장이 다시 말했다.

"봐. 공산주의자를 철저한 자본주의자로 개조시키는 것도 자금부장의 의무야. 어쨌든 자금팀에 공산주의자가 들어왔다고. 그걸 개조시켜봐. 이것도 자네의 성과평가야."

"사표내라는 말씀이시군요."

"헛소리 하지 말고. 내일부터 교육시켜."

사장은 차갑게 말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기범 부장은 아직도 불쾌하다는 듯, 입맛이 쓰다는 듯 맞은편에 앉아있는 배상수에게 말했다.

"출근시간은 아침 8시야. 근데 넌 신입이니까 7시 반까지 나와. 시킬 일이 아주 아주 많으니까."

"여기 박 부장은 우리회사의 유능한 인재야. 그러니 시키는 일만 잘 소화해도 성공한 거나 다름없어."

오남현 사장의 말이 끝나자 박기범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사장님. 들어가겠습니다."

사장실을 나가자 오남현 사장은 배상수를 쳐다보면서 투덜댔다.

"저 친구는 다 좋은데 포커페이스가 아니지. 근데 어쩌다가 저 친구에게 미움을 샀던 거야?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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