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50화 (50/159)

50화

그래서 금액은 투자은행이 넉넉하게 제시한다면 얼마든지 판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러 재무제표를 보아하니 3천만 달러 정도면 적당한 금액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듣는 회사인데?"

"그렇습니다. 주로 양말, 스타킹, 뭐 그런 섬유를 파는데 나름 고가의 제품을 판답니다. 사실 저희 스타킹보다도 더 좋아서 고가로 팔리지요."

"좋습니다. 말릴 이유는 없죠. 결국 해외의 유망한 기업들 사들여 판매망을 뚫는다는 것일테니."

"여전히 런던이나 파리의 고가품 시장에서는 무등그룹의 스타킹이 각광받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 취리히 앤 머크의 제품은 슈퍼모델들도 애용한다고 합니다."

"슈퍼모델들도?"

의아해하면서 유찬세 국장이 되물었다.

"네. 국장님. 팝 좋아하시죠?"

박기범 차장의 말에 유찬세 국장은 얼굴을 찡그렸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요?"

"아닙니다. 전 빌리 조엘을 정말 좋아해서요. 그 사람의 아내가 미국 최고의 슈퍼모델인 크리스티 브링클리거든요. 그런 모델들은 우리회사 제품을 외면하죠. 런웨이에서 우리 제품을 쓴다면, 아마 우리는 세계최고의 섬유기업이 될겁니다. 그런 기반을 스위스에서 마련하고자 함이죠."

"그래. 좋아요. 좋아. 그런 정신이 필요한 거외다."

흡족하게 미소를 지어보인 유찬세 국장은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이런 사항은 허락을 하죠. 나중에 그 기업의 본사건물을 사진이라고 보았으면 하는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Merk 섬유의 회장인 Dietrich라는 이름은 이 서류를 만들던 담당직원의 이름이었고 Tennille은 하필 그가 듣던 음악이 저 유명한 미국의 부부듀엣 그룹인 Captain & Tennille의 'Love will keep us together'를 듣고 있던 터라 이 여가수인 토니 테닐의 이름을 그대로 적은 것이었다.

이를 전해 듣고는 박기범 차장은 김현섭 차장에게 말했다.

"이걸 만든 디트리히라는 친구도 빌보드 1위만 듣나봅니다. 그 노래. 75년도 빌보드 1위곡이었죠. 그 유명한 닐 세카다가 써준 곡이죠."

정부는 의외로 무등그룹의 이 제안에 대해 승낙을 했는데 인수대금도 3000만 달러 수준이고, 무등그룹의 기존 섬유산업의 연장이라는 점이 정부입장에서는 한우물을 파는 기업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재경원 유찬세 국장은 현재 한국에 묶여있는 돈 1500만 달러를 한신은행을 통해 스위스 OBS에 보내는 방안에 대해 승인을 했으며 뉴욕 외환은행 지점에 묶여있는 1500만 달러에 대한 지급정지 조치도 모두 해제했다.

이 조치가 이루어지자마자 무등그룹의 스위스 OBS계좌에 3천만 달러가 입금되었고, 이 돈은 즉각적으로 코카콜라, 필립모리스,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을 구매하는데 사용되었다.

친절하게도 OBS는 한국의 고객을 위해 서류상으로 무등그룹이 스위스의 Zurich & Merk 섬유회사를 인수했다는 증명과 함께, 본사건물, 공장에 대한 사진도 보내왔다.

물론 이 모든 사진은 물론 조작된 것이었다. 섬유공장사진은 인근 인쇄소의 사진이었고 창고에 가득 쌓인 섬유박스는 그냥 아무 물류창고에서 찍은 것으로 그냥 섬유가 쌓였다고 말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박스를 다 개봉하지 않는 한 알 길이 없었다.

본사의 현판이 걸린 사진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OBS L.A지부에서 만든 것으로 할리우드의 기술력을 이용해 제작된 사진이었다.

무엇보다 그 어느 나라 정부도 이를 직접 확인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OBS는 스위스가 자랑하는 세계적 규모의 투자은행이기 때문에 믿었다.

이들 투자은행은 얼마든지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할 용의가 있었다.

무등그룹은 이에 대해 총 7만 달러를 지불했는데, 이 돈은 한신은행과 OBS의 전산수수료 1만 달러, 페이퍼 컴퍼니 작성 수수료 3만 달러, 사진 및 증거서류 작성 수수료 3만 달러였다.

이 모든 것이 완료된 1994년 7월부터 무등그룹은 스위스의 OBS를 통해 해외투자에 관여했는데, 3천만 달러를 투자해 사들인 이 주식투자를 통해서, 무등그룹은 조세피난처에 대한 개념을 알게됨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이를 활용해나가게 된다.

한신은행으로부터 주식보유내역에 대한 자료를 받은 무등그룹은 이제 스위스에서 인수한 Zurich & Merk Textile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부의 규제를 피해 당당히 해외투자를 할 수 있었다.

박기범 차장은 이후, 스위스의 OBS 계좌에 미래 주식투자 예비자금으로 매달 2~3백만 달러씩 스위스 현지공장 재투자 명목으로 이체시키게 된다.

이는 또한 향후 무등그룹에게 뜻하지 않은 행운을 안겨다주게 된다.

============================ 작품 후기 ============================

빌리 조엘 (1949~) : 미국의 팝 아티스트. 아내가 당대 최고의 슈퍼모델인 크리스티 브링클리(1954~)임. 빌보드 1위를 여러차례 휩쓴 아티스트.

Captain & Tennille : 미국의 부부 혼성 듀오 그룹.

토니 테닐 (1942~) : 미국 가수. 앞서 말한 캡틴 앤 테닐의 보컬을 맡음. 남편은 주로 작곡 및 악기연주.

스위스 비밀계좌 : 스위스는 원래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곳임. 그런 이유로 주로 유럽과 미국의 기업들이 세금회피를 위해 많이 사용함. 그러나 2차 대전 당시 유태인들에게서 압수한 돈을 스위스은행들이 세탁을 해서 그 돈으로 석유와 무기를 사다가 공급해줌. 스위스는 중립국이므로 무역에 제한이 없고 이 점을 이용해 석유 등의 중요 품목을 사다줌.

이것이 나중에 문제가 되자(80년대~90년대) 미국과 유럽정부의 압력에 의해 스위스은행의 비밀계좌가 열리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많은 기업들은 이후 홍콩과 마카오, 싱가포르, 버뮤다, 버진 아일랜드등의 조세피난처로 자금을 이동함.

원래 역사적으로도 홍콩과 싱가포르 역시 조세피난처로 유명했음. 이유는 항만회사, 해운회사들은 수출대금등을 받자마자 국내로 항상 보낼 수 없었음. 그래서 일시적으로 자금유출입이 용이한 홍콩과 싱가포르에 묶어놓고 받은 수출대금으로 수입대금결제를 위해 사용함(이른바 퉁치기)기업들이 고의적으로 세금회피를 위해 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기업의 업무 자체가 수출과 수입이 같이 이루어지는 회사들(조선회사, 해운회사, 국제운송, 등등등)은 부득불 조세피난처를 활용하게 됨.

필자가 한때 근무했던 회사(가구제조회사)의 경우는 이를 활용할 필요가 없음. 주로 원자재 수입이 많기는 하지만 그 규모가 적고, 목재나 합판, 파티클보드의 경우는 국내조달이 100% 가능함. 파티클보드나 목재합판제조사가 수입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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