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44화 (44/159)

44화

“맥주나 한잔 하자고.”

김상국 차장이 말을 던졌다. 고개를 끄덕인 후, 사무실을 나와 근처에 위치한 작은 술집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맥주를 한잔 하면서 김상국 차장이 말했다.

“자네 천재 아니면 미친거야.”

“왜 그런 말을 하는데?”

맥주를 쭉 들이키면서 말했다.

“생각해보라고. 여기서 사업하려면 당연히 여기 법을 따라야 해. 그래서 나도 집에 일을 가져가거든. 우리 집에는 본사로 보내는 텔렉스가 있어. 어쩔 수 없잖아. 집에서 일한다고 뭐라하지는 않으니까.”

“난 집까지 가져가기 싫어. 그리고 집에 가면 일하기가 싫단 말이야.”

“이제 어떻게 할거야?”

맥주를 다시 들이키면서 김상국 차장이 말했다.

“글세. 독일관료에게 어떻게든 매달려 봐야겠지.”

“영업정지는 안돼. 본사차원에서도 난리가 날거야.”

박기범 차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본사에는 보고 했나?”

“보고는 했어.”

박기범 차장은 쓴 것을 들이키듯 맥주를 마셨다.

“아직 안왔어. 그러나 내 마음같아서는 본사에서 크게 걱정하지 않도록 우리 선에서 해결해야해. 우린 차장급 아닌가?”

박기범 차장의 말에 김상국 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우린 말이야. 전세계의 돈을 다 긁어모아야 한다고. 난 말이지. 전세계의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데 우리 무등그룹이 지대한 역할을 맡았으면 좋겠어. 수출전선에서 제품을 팔고 돈을 모으고. 일본이 그렇게 해서 부자나라가 되었잖아.”

맥주를 마시며 박기범 차장은 자신의 소망을 김상국 차장에게 털어놓았다. 그에게는 소망이 있었다. 이 나라를 부유한 국가로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 그리고 그 역할을 담당하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집착일 수 있겠지만 그는 자신이 겪은 가난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도 않았고 오히려 선진국 국민들처럼 물질적 풍요 속에서 호화롭게 살게 해주고 싶었다. 이것은 50년대에 태어난 세대의 의무이기도 했다.

“자네. 중학교 때 기억나나?”

박기범 차장의 말에 김 차장은 무슨 뜻으로 물어보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되물어보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1969년 7월 20일. 난 아직도 기억해.”

맥주를 잔에 더 따르면서 추억을 반추하듯 상념에 잠겼다.

“그 때. 중 2때, 우리 집 앞 파출소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놀랐어. 미국이 달 착륙을 했잖아.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발을 내딛을 때, 문득 생각난 것이 왜 저 나라는 저런 과학 기술력과 돈을 가지고 풍요롭게 살고 우리는 저러지 못할까 였어.”

“그래서 회사원이 된건가? 수출위주의?”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 말에 맥주를 마시며 김상국 차장이 답했다.

“박 차장한테도 그런 센티멘털한 면이 있다니. 지칠줄 모르고 돌진하는 완벽한 독일기계인 자네에게도 그런 면이 있다니.”

“내가? 사람아. 나도 인간이야.”

어느 덧 취기가 오른 듯 박기범 차장은 몸이 천천히 기울어져 있었다. 서울에서처럼 거의 매일 12시간씩 일을 한데다가 술도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지 금방 취하는 듯 했다.

“보라고. 언젠가는 우리나라가 여기 유럽의 국가들, 영국, 프랑스, 독일을 차례로 꺾고 일본마저도 제칠거야. 그리고 그 선봉장에 우리 무등그룹이 있는거지. 거기에 이 박기범 차장이 경영지원실에서 그 전쟁을 진두지휘할거야. 보라고.”

“알았어. 박기범 사령관님. 이 치열한 경제전쟁을 승리로 이끄소서. 할렐루야.”

여기까지 말을 하고 박기범 차장은 테이블 위에 정신을 잃고 그냥 뻗었다. 피로가 누적이 된 터라 바로 잠이 들어버린 듯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김상국 차장은 그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하루 12시간씩. 그것도 주 6일이라니. 기계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버티겠어.”

하루가 지나자 정신이 말끔히 돌아온 그는 또다시 전쟁을 치렀다. 독일관료와의 전쟁이었다. 노동청 사무소를 방문한 박기범 차장은 담당 노동청 관료인 라인하르트 짐머만과 또 말다툼을 했다.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던 김상국 차장은 박기범 차장이 천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언쟁을 일으킴으로서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켜 본사가 대응할 시간을 벌어주자는 것이었다. 그걸 짐머만 노동청 관료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서 그는 자신과 계속 언쟁을 하는 박기범 차장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

“한국이란 나라는 대체 어떤 나라이기에.”

퇴근길 전차안에서 그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그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1960년대 초.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국가가 어느덧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4500만 국민들은 부강해지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라인강의 기적에 못지 않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위대한 민족이라는 점을 알았다.

“재미있는 친구야.”

혼자 중얼거리면서 전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간 그는 식사 후, 서재에 앉아 여러 책들을 찾아보았다. 왜 더 열심히 일하지 못해 안달이 났는지, 세계최장 근무시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지치지 않고 더욱 앞을 내다보며 노력을 경주하는 국가를 보면서 그 선봉장에 서 있는 박기범 차장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또 다른 사무라이인가? 뭐 사무라이는 아니겠지. 노력은 가장하지만 법을 어기는 것은 확실하니.”

그는 정장을 옷걸이에 걸면서 조금은 유연하게 대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박기범 차장은 일찍 들어와(그래도 밤 8시에 들어왔다) 김상국 차장이 권해준 영화를 집에서 보기로 했다.

다행히 영어 자막이 있는 비디오라서 쉽게 볼 수 있었다. 미국영화라면 듣고 해석하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해석하면 다음단어로 넘어가서 늘 답답했지만 영어자막만 있다면 부담이 없었다.

한가지 신기한 점은 미국사람들이 말하는 영어는 잘 모르지만 프랑스나 독일 등 비 영어권 사람들이 말하는 영어는 오히려 알아듣기 쉬웠다.

그래서 그는 비디오방에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찰스 드골을 암살하려는 영국 킬러에 대한 영화를 빌려보았다.

“음. 무등전자의 제품은 아직 독일에 없군.”

그랬다. 무등전자의 TV나 VTR은 국내에서도 외면받았고 곧 전자사업부를 없앨거라는 말이 나오고 있어서 수출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29인치 소니 컬러로 빌려온 영화를 봤다.

솔직히 유럽영화는 프랑스 영화 말고는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영화는 한때 유명했던 캐리 그란트(1904~1986 : 영국 출신의 미국 영화배우. 대표작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있음), 알프레드 히치콕(1901~1980 : 영국출신의 미국 영화감독)등이 2차 대전을 피해 몽땅 미국으로 가 버린 탓에 명맥이 끊겼다.

독일영화 역시 마찬가지 여서 마를렌 디트리히(1901~1992 : 독일출신의 미국영화배우. 1930년대 독일을 대표하던 여배우)를 비롯 수많은 영화인들이 할리우드를 살찌웠다.

로미 슈나이더 역시 50년대에는 고향인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활약했지만 60년대 후반들면서 프랑스에서 활동하지 않았던가?

그나마 유럽영화중에 프랑스 영화는 나았다. 알랑 드롱, 카트린 드뇌브와 같은 대표되는 대스타가 있지 않던가? 그리고 미국배우들도 의외로 많이 등장하고. 그리고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드라마틱한 일도 많아서 영화로 만들어 팔기도 좋은 듯 했다.

"좋은 아침. 아 김 차장. 그 노동부 제소건은 어떻게 되는거야?"

"글세. 뭐 나도 우리 독일직원들을 설득해보지만 이 게르만 인종들이란게 하도 원리원칙에 충실해서 말이야."

"차라리 이태리에 가서 사업하는게 나았어. 같은 반도 국가라 성질도 비슷할테니. 여기 북유럽 사람들은 정이 없어."

그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김상국 차장이 맞장구를 쳤다.

"그건 그래. 뭐 좋게 생각하자고. 그렇게 원리원칙에 충실하니. 벤츠 같은 차를 만드는거 아니야?"

"그래. 뭐 그럴 수 있겠다."

박기범 차장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전표내역을 검토했다. 하지만 뭔가가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거 웬지 불안한데?"

"뭐가?"

"노동법 위반 말이야. 직접 대면했으니 잘 되겠지?"

"걱정 말라고."

김 차장은 위로하는 말을 던졌으나 박기범 차장은 계속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다음날. 한통의 등기우편물이 날아왔다.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을 통해 해석을 부탁한 결과 그것은 노동청의 발금고지서로 무려 8천마르크나 되는 금액을 노동법 위반벌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개자식."

그 말을 들은 박기범 차장은 크게 소리쳤다. 김상국 차장 역시 급히 이 사실을 확인하고 자금팀안으로 들어왔다.

"이래놓고 그 자식도 사내자식이야? 약속을 했으면 지킬 줄 알아야지. 개발새발로 떠들어댄 노동법인지 뭔지 알았다고 했다면 된거지. 이따위 이중 플레이가 어딨어?"

"왜 그래? 독일 노동법 위반이라고 지난번에 말을 했잖아."

"그래도 그렇지. 이게 뭐야. 8천 마르크? 이따위 짓은 해서는 안되는거야. 겨우 주당 50시간 가지고. 다 수당 챙겨주는데도 이런 고지서나 날리다니."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박기범 차장은 더 화가 난 듯 마구 떠들어댔다.

"이게 바로 선진국들이 써먹는다는 비관세장벽 아니야? 우리 같은 후진국들에게 이따위 노동시간이니 뭐니 별 개뼉따구 같은 논리를 내세워 발전을 막으려는 더러운 습성 말이야."

"설마 그렇게 까지야 하겠어?"

김상국 차장이 달래듯이 말했으나 박기범 차장은 전혀 화가 누그러지지 않았다.

"이 독일놈들. 과거 나치시대의 그 인종차별적 습성을 버리지 못하나 보지? 지금이 아직도 나치 시대인줄 아는거야. 게르만, 앵글로 색슨 같은 백인국가만 잘먹고 잘 살고 우리 같은 황인종은 평생 백인의 노예나 하라는 것이 아니고 뭐겠어?"

"솔직히 그것은 아니야. 그러니까 그렇게 까지 과민하게 반응어을 할 필요는 없어. 벌금은 내야지 어쩌겠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화가 나. 어떻게든 설득하고 우리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면 다 들어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하지만 모든 상황은 보고를 해야했기에 본사에 텔렉스로 상세히 적어 보냈다. 그날 밤. 한국시간으로 아침 9시. 전화가 박 차장의 집으로 걸려왔다.

"여보세요."

잠을 자고 있던 터라 잠이 덜깬 목소리였다.

"박 차장. 대체 뭐하는거야? 왜 벌금이 8천 마르크나 나오느냔 말이야. 노동법 위반? 그런 거 막으라고 했잖아. 다음주에 당장 서울로 돌아와. 독일에는 다른 사람 보낼테니까."

오 사장은 신경질을 내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박기범 차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옳았기 때문이다.

"좋겠다."

김상국 차장이 커피를 한잔 건네주면서 말했다.

"불난 집에 휘발유 들이부어?"

박가범 차장이 신경질 적인 어투로 말하자 그는 빙그레 웃었다.

"야. 솔직히 누가 외국에서 일하고 싶어하니? 해외 주재원. 말이야 듣기 좋지. 이것도 고역이야. 말도 안통하고 인종도 다르고. 겨우 돈 몇푼 벌어먹자고 이 고생을 해야 한다니."

"하긴 그렇지."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박기범 차장은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남들이야 좋다고 하지. 돈 조금 더 받으니. 헌데 역시 해외근무는 사람이 할 게 못돼. 마음 편히 서울에 있는게 더 나아."

"알았어. 김 차장. 난 서울에 빨리 가서 오 사장에게 깨질게, 어휴. 박살나겠구만."

"그게 샐러리맨의 애환이지. 잘하면 그냥 당연한거고 못하면 무지하게 깨지고. 그런데 어쩌겠어. 잘하라고 월급주는거지 못하라고 돈 주는게 아니잖아."

박기범 차장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비록 이번 사건으로 크게 문책을 당하게 될 것이지만 기분은 좋았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가족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쁘기도 했다.

비행기 승객을 위해 제공된 무료 신문을 그는 펼쳐들었다. 도쿄경제신문 영어판이었다.

모든 기사내용을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1면에 나와있는 큰 헤드라인 기사를 보았다.

[WTO ERA STARTS IN 1995]

커다랗고 굵은 글씨로 적혀있었다. 기사를 대충 읽어보았다.

-1995년부터 기존의 GATT체제를 대체한 WTO체제로 바뀌게 된다. GATT체제보다 더 각 나라의 문호를 개방하는 것으로 세계화 시대로 접어드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컴퓨터 같은 정보통신의 혁명을 통해 모든 정보와 통신 교류가 활발해지고 실시간으로 모든 정보를 얻는 이른바 정보고속도로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따라서 전세계 누구나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누구나 정보의 평등이 이루어지고 공산권의 붕괴와 맞물려 전세계가 미국 주도의 시장경제 체제 아래에 편입됨으로서 보다 더 활발한 자유무역을 통해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다 잘먹고 잘사는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세계화라.'

그는 생각했다.

'기회가 될지 위협이 될지 모르겠지만 수출위주의 우리에게는 기회일 것이다.'

============================ 작품 후기 ============================

달착륙 :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표면에 착륙함. 닐 암스트롱이 달표면에 내려오면서 '나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의 발걸음(맞나?)'라고 함. 이로 인해 경제, 문화, 과학, 예술 모든 면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 어떤 시스템보다 위대하다는 것이 입증됨.

소련은 공식적으로 우주경쟁에서 미국에게 패배함. 그래서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공산권은 경제, 문화, 도덕, 학문, 과학에서 모두 열등했기 때문에 망하는 일만 남았다고 평가받기 시작함. 1990년에 지구상에서 사회주의는 종말을 고함.

자칼의 날 : The Day of Jackal.영국 소설가인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소설로 1963년. 영국 킬러가 프랑스의 OAS로부터 돈을 받고 프랑스 대통령 찰스 드골을 암살하는 내용을 그렸음. 이를 바탕으로 1997년 브루스 윌리스, 리차드 기어, 시드니 포이티어 주연의 '자칼'이 등장함.

마를렌 디트리히 : 1920년대 1930년대 독일을 비롯 유럽영화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았던 여배우. 1937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

이후 2차 대전 시, 독일어 선전방송을 진행하는 등 미군의 선전활동에 참여함. 미국을 횡단하며 수백만 달러의 '리버티 본드(자유 채권)'을 발행하는데도 기여함.

2차 대전 후, 독일에서 대기근이 발생해 굶어죽는 아사자가 속출하자 식량원조등의 인도적 지원활동도 함.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배우

VTR : Video Tape Recorder요즘은 안쓰는 기계. 영화를 지금은 DVD나 다운받아 보지만 90년대 후반까지도 아니. 2000년대 초반까지도 집에서 비디오를 빌려서 영화를 보았음. 2004년 부터 어지간한 도시의 비디오가게들이 죄다 문을 닫음.

그래서 비디오 한개당 500원에 팔았음. 문제는 사도 VTR기계가 부품이 없어서 보고싶어도 못보는 일이 많음.

세계화 : 1990년대부터 등장한 용어. 전세계가 통신발달로 더 가까워지면서 지구촌이라는 용어까지 나옴. 솔직히 그때나 지금이나 그게 그거지만.

정보고속도로 : 클린턴 행정부 시절 등장한 용어로 컴퓨터와 정보통신을 기반으로 정보가 고속도로를 타고 아주 빠르게 이동한다고 해서 등장한 말. 인터넷의 시대를 알리는 용어가 됨.

특히 컴퓨터 산업이 가장 앞선 미국이 이를 주도하는데, 그래서 95년 야후의 나스닥 상장, 네스케이프(익스플로가 등장하기 전의 인터넷 접속창. 크롬같은거)등이 초창기 미국 IT산업을 이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시기 떼돈을 범. 그래서 빌 게이츠가 1994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최고 갑부 자리를 차지하는 거임.

WTO : 세계무역기구의 약자. 이 시기부터 전세계가 자유무역으로 향하게 됨. 그래서 우리도 자동차, 가전 등 수출을 늘리려면 우리 시장을 개방해야 함. 그래서 이 시기부터 미국이 요구하는대로 농업, 교육, 서비스 분야에 대한 관세장벽, 비관세장벽이 철폐되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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