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1993년 11월 1일. 루프트한자 보잉 747 여객기가 베를린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로비로 나간 박기범 차장은 서울과는 너무 다른 풍경에 주위를 정신없이 쳐다보았다.
‘여기가 베를린이란 말이지? 한 때 그 유명했던 동백림사건의 주 무대가.’
가벼운 마음으로 로비를 빠져나오자 낮익은 얼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사동기인 김상국 차장이었다.
“드디어 왔군. 비행기는 어땠어?”
김 차장의 말에 답했다.
“귀찮았지. 내내 잠만 잤어. 루프트한자를 탔으니 스튜어디스들이 금발의 독일미녀인줄 알았거든. 클라우디아 쉬퍼나 하이디 클룸 같은. 헌데 영 아니더군."
"뭘 기대했는데?"
김상국 차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글세? 뭐 기대가 너무 컸나?"
"로미 슈나이더정도만 해도 감사하지?"
"당연한거 아냐? 절을 하면서 탈거야."
여기까지 말하고 곧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베를린은 어때? 자네 말처럼 동유럽에 잘 안착했어?”
“섬유는 신시장이 열렸어. 동유럽에서 무등그룹의 섬유는 대 인기야. 이곳 베를린에서 거래처들 만나면서 우리 회사의 연필을 홍보했는데 인기가 있어. 무등그룹이 중공업이 약해도 경공업은 유럽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니까.”
철저한 경공업맨인 김상국 차장은 신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금에 약해.”
“뭐가 약해. 겨우 하는데 TT전표 끊고 외환은행 베를린 지사에 수수료 주는거 말고 뭐 있어? 고작해야 사원경비 내보내는거? 나 없어도 잘들 하겠는데?”
김상국 차장이 가져온 자동차에 올라탔다. 베를린 중심부에 위치한 무등그룹 베를린 유럽본부는 이제 야심차게 진출하고자 하는 무등그룹의 야심이 녹아있었다.
“난 유럽하면 섬유가 안 팔릴 줄 알았어. 고급 섬유로 만든 옷 소량만 가지고 있을 줄 알았거든. 미국이야 워낙 집도 넓고 풍요로우니 많이 사들이지만 유럽은 집도 좁고 검소해서 안팔릴 것 같지만 의외로 잘 팔리더라고.”
“그래? 의외네.”
김상국 차장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대답했다.
“그런데 유럽은 집이 작아. 지난번에 런던 가니까 신규건물은 아니지만 옛날에 지은 건축물은 엄청 작더라고. 빅토리아 시대에 만든 고급주택은 주인이 롤스로이스를 타지만 주택면적은 25평밖에 안돼.”
“그렇군.”
“백년 전에 지은거라. 게다가 당시에도 런던은 메트로폴리스였지.”
유럽에서 영업을 뛰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 터라 그 경험을 신나게 떠들어댔다. 베를린 본사 사무실로 들어가자 독일인 직원들도 몇 명 있었고 한국에서 파견나온 직원들이 있었다.
“여기가 자금팀이야. 자네는 이제 환전, 송금관련 업무를 좀 도와주어야겠어.”
유럽본부는 말만 본부라는 표현을 썼을 뿐, 자금쪽 한국인 직원은 박기범 차장이 전부였다. 혼자서 환전, 사원경비처리, 외환업무를 다 처리해야 했다.
“자네는 유럽전역을 돌아다니며 놀러다니고, 나는 이 답답한 빌딩안에서 전표정리나 하라는 거겠지.”
그 말에 김상국 차장이 어깨를 툭 쳤다.
“이 사람아. 내가 놀러다니는 걸로 보이나? 이래서 영업을 해야해. 자네같이 영업을 모르는 친구가 회사의 중요부서에 있으니 영업이 힘든거야. 난 영업하고 기획실가니까 할 게 천지야. 할게 너무 많아.”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지. 난 정리할테니 자네는 프랑스 가서 와인마시며 섬유 팔고 와.”
“섭섭하게. 와인 사올게.”
간단히 대화를 마치고 박기범 차장은 자리를 정리했다. 오늘은 할 일이 없고 짐을 정리해야 했다. 김상국 차장이 알려준 사택은 회사에서 겨우 15분 거리였다. 사택은 근처 아파트를 통째로 빌린 것인데 내부는 상당히 좁았다 15평짜리 방 한칸짜리였다.
============================ 작품 후기 ============================
루프트한자 : 독일 최대 민영항공사보잉 747 : 미국 보잉사의 베스트셀러 여객기 동백림사건 : 동베를린을 1966년에 이렇게 불렀음. 당시 서독 유학생들이 동베를린에 있는 북한대사관으로 간 행위를 공산주의 내통혐의로 보고 당시 중앙정보부가 대대적 수사를 함. 체포과정에서 독일과 프랑스 외교부의 공식항의까지 받고 국교단절위기까지 초래. 이를 주도한 중앙정보부 부장이 그 유명한 남산 돈까스 김형욱임.
클라우디아 쉬퍼(1970~) : 독일출신 수퍼모델. 모르면 인간 아님. 영국 뮤지션인 빈스 본과 결혼함.
하아디 클룸(1973~) : 독일출신 수퍼모델. 프로젝트 런웨이 진행자. 클라우디아 쉬퍼와 더불어 독일을 대표하는 수퍼모델. 독일의 이미지까지 개선시킬 정도임.
로미 슈나이더 (1938~1982) :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랑스 여배우. 57년 '시시'로 오스트리아 최고배우가 되고 이후 프랑스에서 많은 작품활동을 함. 남편이 그 유명한 프랑스의 미남배우 '알랑 드롱'이었음. 미남의 대명사.
사원경비 : 회사직원이 업무상 택시타거나 할때 일단 자기돈 내고 나중에 돌려받는 것. 이를 사원경비로 분류TT (Telegraphic Transfer) : 전신환. 외국환매매거래를 전신으로 요청하는것. 지금은 팩스로 보내지만 관례상 TT라고 함. TT끊는거 은근히 짜증남. 해봐서 앎.
필자는요, 원래 팝 되게 좋아합니다. 특히나 빌보드 1위곡 위주로 좋아합니다. 80년대 우리 주인공이 계급이 낮을 때는 별로 안 넣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직책도 있고 월급도 좀 받으니 여유가 생기니 넣었죠.
전 고등학교때(2002年) 엘비스 사망 25주기 빌보드 1위 모음 테이프를 산 적이 있었죠. 공익시절에는 ABBA테이프도 샀고(2007年 이 때만 해도 카세트 테이프가 그럭저럭 팔렸죠) 비틀즈 해체 30주년 기념 앨범도 샀고(2002年), 프랭크 시나트라가 죽고나서 死後 기념앨범도 샀습니다(1998年) 안타까운건 2013년 현재. 미국빌보드 1위를 차지하는 테일러 스위프트도 우리나라에서는 큰 인기가 없습니다. 과거 비틀스가 전세계 빌보드 1위를 장식하고, 카페에 가면 카펜터스의 노래를 틀어주고 유럽(스웨덴 밴드)의 파이널 카운트다운을 곳곳에서 들어야 할텐데 지금은 글로벌 뮤직이 없고 전부다 로컬뮤직으로 전락해서 안타깝습니다.
어릴적 할아버지 댁에 놀러가면 할머니께서 NHK에 나오는 엔카 같이 따라부르시고 할 정도로 서로 연결되는게 있었는데 지금은 일본따로, 우리나라 따로, 미국따로 놀아서 하나의 철옹성을 각자 쌓는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제가 소설에서 언급한 팝송들은 유튜브에서 들어보셔요. 유튜브가니까 미국 빌보드가 1958년부터 현재까지 빌보드 1위곡, 100위까지 누적 등 여하튼 다 올리고 있답니다.
지금 저 필자는 외국계회사에 다니지만 전에 국내기업에 자금팀에서 근무했기에 그 경험위주로 서술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