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41화 (41/159)

41화

다음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부모님과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병원비 영수증은 일단 저 주세요. 회사에서 다 지급하니까 형님도 병원비 낼 거 없어요. 사원복지제도가 있으니까요."

"오냐. 아들 덕 보는구나. 근데 너 지금도 레코드는 사냐?"

아버지의 질문에 그가 답했다.

"회사원이란게 늘 바쁘니까요. 살 시간이 없어요. 대한민국에서 회사원으로 사는거 쉬운게 아니니까요."

"야 이놈아. 너만 바쁘냐? 너만 바뻐?"

"네. 저만 바쁜 것 같애요."

어린 조카가 병실에 마련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평소 그가 자주 즐겨보던 '선데이 팝송'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저거 보자. 저거. 작은 아빠가 아주 좋아해."

-자. 어떠신가요. 머라이어 캐리의 드림러버. 1993년 9월 11일에 빌보드 1위에 오른 직후 현재까지 5주 연속 빌보드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 놓쳤다."

그가 잠시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계속해서 진행자가 프로를 이끌었다.

-이번에는 역시 클래식 팝 시간입니다. 자 벌써 1981년까지 올라왔습니다. 81년은 금발의 전쟁이라고 저는 말합니다. 금발의 킴 칸스와 역시 금발의 데비 해리가, 아 물론 염색한 금발이죠. 그리고 올리비아 뉴튼 존. 이 세명의 금발머리가 치열한 접전을 벌였거든요. 나이도 비슷해요. 킴 칸스가 45년생. 해방둥이죠. 데비 해리도 45년생. 올리비아 뉴튼 존이 48년 생이니까요. '베트 데이비스 아이스'냐 아니면 '더 타이드 이즈 하이' 와 '랩쳐', '피지컬'이냐 이걸로 81년을 장식했죠.-

"빨리 빨리 진행하라고."

박기범 차장이 애타게 외쳤다.

-이번에 들을 노래는 영국 출신의 쉬나 이스턴의 '모닝 트레인'. 역시 81년 전미 빌보드 1위를 차지한 노래죠. 그리고 애청자 신청곡은 73년 빌보드 1위를 한 토니 올랜도 앤 던의 '타이 어 옐로우 리본 라운드 올드 오크 트리(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입니다. 자 듣도록 하죠. 뮤직 큐-곧 텔레비전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신나는 음악이었다.

-I wake up every morning

I stumble out of bed

Stretchind and yawning

Another day ahead

It seems to last forever

And time goes slowly by

Till babe and me's together

Then it starts to fly

곧 그는 흥에 겨워 조금씩 노래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My baby takes the morning train He works from nine till five and then

He takes another home again

To find me waiting for him

"형. 지난 주에 봤어요? 지난주 시청자 신청곡이 쇼킹 블루의 '비너스'였거든요. 내가 편지에다가 마리스카 베레스 내한공연을 바란다고 썼죠."

"그게 너였냐? 어쩐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갑자기 음악이 끊기고 DJ의 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긴급속보가 들어왔기 때문에 잠시 정규방송을 중단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긴급속보가 들어와서 정규방송을 잠시 중단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오전 10시경, 전북 부안군 위도면에서 여객선이 침몰했습니다. 해경은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만 100여명이 넘을 거라고 발표했는데요, 지금 저희 방송사 뉴스속보로 화면을 전환하겠습니다.- 그리고 1초도 지나지 않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긴급뉴스속보로 화면이 바뀌었다.

“긴급 뉴스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10시경. 전북 부안군 위도면 임수도 부근 해상에서 승객 2백 여명과 승무원 9명을 태우고 위도 파장금항을 떠나 부안군 변산면 격포항으로 가던 군산 서해훼리 소속 서해훼리호가 파도가 강타당하면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50여명이며 백여명이 사망 실종 상태입니다. 다행히 94명이 해경과 어선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이 뉴스가 나오자 다른 환자가 혀를 찼다.

“아이고. 무슨 날벼락이야.”

“....침몰한 서해훼리호에는 서울등지에서 주말을 맞아 놀러온 낚시꾼과 위도 주민들이 주로 타고 있었습니다. 현재 해경은...”

순간 위도로 낚시를 하러 간 일행이 생각났다. 그는 동생에게 말했다.

“너 차 있지. 지금 형이랑 부안군으로 가자.”

“왜 그러니? 무슨 일인데.”

“원래 오늘 회사사람들하고 거래 은행 사람들하고 위도가서 낚시하기로 했어요. 지금 그 사람들 저 배에 탄 것 같아서.”

박기범 차장은 병원에 있을 수가 없었다. 동생은 형을 데리고 급히 병원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에 올라탔다.

“형 어서 가죠.”

병원을 급히 떠난 차가 전북 부안군에 도착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가 사고 여객선이 도착해야 할 항구에 도착하자 수많은 방송사 차량들과 경찰차, 구급차, 그리고 전국각지에서 도착한 희생자의 가족 친지들이 탄 차들이 뒤섞여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어떻게 된 거에요.”

정복을 입은 경관에게 다가가서 묻자 그 역시 적잖이 당황한 듯 했다.

“지금 정확한 사고경위도, 희생자 수도 파악이 안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지금 비상대책본부가 설립되었고 조만간 정보가 나오게 될겁니다.”

현장은 하비규환 그 자체였다. 임시로 건져낸 시신이 쌓인 곳에서 가족이나 친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울부짖으며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 언론사의 취재경쟁, 사건을 취재하면서도 망연자실한 표정의 기자들, 경찰, 구급대원, 교통부, 해운항만청 공무원들.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시신을 건져 놓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박기범 차장은 머릿속이 새하애진 채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이병택 부장, 오인혁 과장의 시신을 목격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공교롭게도 고려은행의 김 지점장의 시신도 있었다. 한마디로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동생이 와서 그를 일으켜 세우지 않았더라면 아마 언제까지 주저앉아있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형 괜찮아.”

“그래. 넌 서울로 가라. 형네 회사사람들, 거래 은행 지점장. 다 죽었어.”

힘없이 돌아서면서 그는 부두 터미널 안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로 다가갔다. 20여분을 기다린 끝이 간산히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가장 먼저 이병택 부장의 집으로 걸었다.

“여보세요.”

이병택 부장의 안주인이 전화를 받았다. 이미 목소리에는 이번 사고를 접하고 걱정이 묻어나왔다.

“사모님. 저 박기범 차장입니다. 부장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울부짖는 안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서야 박기범 차장은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으며 위로의 말을 전한 후, 오인혁 과장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김 지점장의 집에도 전화를 건 뒤, 황 전무의 집으로 마지막 통화를 했다.

“박 차장. 웬 일인가?”

“서해 훼리호 침몰로 이병택 부장. 오인혁 과장 모두 사망했습니다. 제가 확인했습니다.”

“자넨 어떻게?”

“아버님이 다치셔서 고향 내려왔다가 들리게 되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는 황 전무가 말했다.

“알겠네. 목포 지사에 전화해서 수습을 하라고 지시하겠네. 내일 아침차로 나도 내려갈거야. 그러니 자네는 일단 거기에 있도록 하게.”

전화를 끊고 나와서 그는 사고대책반을 찾아가 신원확인중인 공무원들에게 사망한 회사직원들의 신분확인을 해주었다.

“대체 몇 명이 죽었나요?”

“확인된 사망자만 60명이 넘습니다. 아직도 침몰한 배에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조중입니다.”

“해운항만청은 대체 뭘하고 있는거요?”

책망하는 듯한 말투에 담당공무원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해 구조에 전념하겠습니다.”

밖으로 나오면서 그는 바다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바로 몇 달 전이었다. 93년 3월의 마지막 일요일 승객 634명을 채우고 부산으로 향하던 무궁화 열차가 탈선해서 무려 78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난지 겨우 7개월도 안된 시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겨우 3달 전인 7월에는 목포행 아시아나 비행기가 추락해서 60여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육지에서, 하늘에서 난 사고는 바다에서도 일어났다.

“우리 무등그룹. 이제 큰일 나겠구나.”

그렇게 푸념하고 있을 무렵, 큰 형의 프린스가 보였다. 큰 형 역시 뒤쫓아 온것이었다.

“괜찮니? 혹시나 해서 뒤따라 왔는데.”

목포에서 이곳 부안까지 먼 거리를 차로 달려온 것이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굳이 먼 길을 달려온 형에 대한 고마움이 밀려왔다.

“너희 회사 사람들 어떻게 된거냐?”

박기범 차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회사에다 연락했니? 유가족들에게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동생을 일단 차에 태웠다.

“회사에서는 사람들이 온대니?”

“네. 전무님도 그렇도 다들 오신대요.”

동생이 차로 다가왔다.

“형. 저는 서울로 올라갈게요. 이 차도 돌려줘야 하니까요.”

“그렇게 하렴. 뭐 기범이는 일단 나랑 같이 있도록 하자. 너희 회사 사람 오면 나도 그 때 다시 가야겠다. 내일 출근해야하니까.”

동생은 차를 타고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박기범 차장은 자동차 안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몇 시간이 흐르고 그는 차 안에서 낮익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황영식 전무였다.

황 전무는 그의 뉴 그랜저에서 내리면서 내내 슬픈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낀 박기범 차장은 형에게 말했다.

“우리 회사 전무님이 오셨어요. 일단 나가볼게요.”

둘이 같이 차 밖으로 나가서 황 전무를 만났다. 형은 황 전무와 인사를 나누고 다시 차로 돌아갔다.

“일단 사태가 이렇게 되었으니 자네는 여기서 뒷 수습을 하게. 합동영결식이 되었든 뭐든 서울서 다시 하든 좀 힘을 써주게. 총무부서와 같이 해서 장례식장도 잡고. 가족들 위로도 좀 해주고.”

고개를 끄덕인 박기범 차장은 시신을 수습해 서울의 대형장례식장으로 바로 올라왔다. 시신을 태운 구급차 안에서 멍하니 창밖만 내다보던 그는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수많은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많이 힘드시겠어요.”

낮익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아마미 타카코 기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녀는 장례식 복장을 하고 다가왔다. 국화꽃을 놓고 일본식으로 기도를 올리고 나서 박기범 차장과 같이 테이블에 앉았다.

“무등그룹에서 희생자가 두 명이 나왔다는데.”

“그렇습니다. 하마터면 내 장례식도 치를 뻔 한거죠. 다만 그 전날 아버지께서 다리를 다치셔서 고향에 가느라 가지를 못했거든요. 그래서 난 살아났죠.”

“그런 대규모의 항만사고는 아주 보기 드문 현상입니다.”

기자의 눈으로 돌아온 그녀는 사고에 대해서 많은 궁금증을 가진 듯 했다. 그럴 수 있었다.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항만사고로 한번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기 때문이다.

“신문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문제가 너무 많았죠. 정부도 단속 안했고 규정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많이 태운 승객. 무리한 항해. 복합적인 것입니다.”

“자금팀 부장, 과장 희생자라. 회사의 타격이 있겠군요.”

그렇게 말을 하고 있을 때 장례식장 한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쪽으로 향하니 거래은행인 한신은행 모토우라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85년도에 만난지 거의 8년이 지났지만 별로 세월의 풍파를 느낄 수 없는 모토우라 사장은 안면이 있는 국내 은행 담당자들과 악수를 하면서 박기범 차장에게 다가왔다.

“고생이 많지요?”

옆에 통역담당 직원이 바로 해석을 해주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자 모토우라 사장은 박기범 차장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조의금이 든 봉투를 내고 묵념을 올렸다. 그는 황 전무를 만나 위로의 뜻을 전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몇몇 기자들이 다가와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무등그룹의 유능한 인재를 잃었다는게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등그룹과 장기 거래를 이어온 우리 한신은행으로서는 거래기업의 이런 참사에 대해 정말 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한국정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규정을 강화해서 아까운 인재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다소 긴 말을 마친 모토우라 사장은 김포공항으로 가기 위해 벤츠에 몸을 실었다. 장례를 다 끝마치고 수척한 얼굴로 회사에 복귀하자 황 전무가 박기범 차장을 불렀다.

“수고했어. 고생이 많았네.”

의자에서 일어난 황 전무는 박기범 차장에게 말했다.

“조의금이 총 4천만원이라고 했지.”

“네. 4418만원입니다.”

“둘로 나눠서 배분해주고, 아까 사장님도 회사가 퇴직금에 조의금 명목으로 목돈을 줘봐야 세금떼고 뭐하면 남는게 없다고 하셔. 그리고 목돈생겼다고 사기꾼 같은 놈들이 달라붙을테고. 그래서 지금 이병택 부장의 경우 자녀들도 있으니 큰아들이 대학 졸업할때까지 현재 이 부장 월급의 50%를 계속 지급해주기로 했네. 퇴직금도 지급하고.”

“오 과장도 마찬가지겠죠?”

“그렇지. 그게 더 나을거야. 현 급여의 50%를 지원해 주는거.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생기니 어떻게 될지는 몰라. 그래서 매년 5%씩 인상해주는 걸로 사장님이 지시하셨네. 아. 그리고 자네.”

황 전무는 무엇인가 더 말을 하려고 했다.

“마음이 많이 아플텐데. 자네 이 기회에 바람을 좀 쐬지 않겠나? 갑갑한 본사를 떠나서 좀 쉬다오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 말뜻을 잘 모르겠다는 말투로 되묻자 황 전무는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고 말했다.

“올 9월 달에 유럽진출을 위해서 독일 베를린에 지사를 만들었지. 거기로 가게. 베를린 유럽본부에서 자금 및 회계 업무를 담당하게. 뭐 회계야 거기 회계사들 고용해서 하면 되니까 문제될거는 없고 자금일을 담당하게.”

“독일로 가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독일로 가서 선진문물도 배우고, 유럽시장개척도 서포트 해주고 오게. 아. 김상국 차장 알지? 기획실에 있었던.”

입사동기인 김상국 차장에 대해 듣자 기억이 되살아난 박기범 차장이 대답했다.

“네. 경공업본부로 가지 않았습니까? 원래 경공업본부 섬유부서에서 있던 친구지요.”

“그 친구도 베를린 지사로 갔어. 유럽에서 우리 무등그룹의 섬유를 팔려는 것이지. 독일인들은 스테드틀러 같은 이상한 회사의 연필을 쓴다는데 무등그룹이 만든 연필로 유럽의 학생들이 필기하게 만들어야지.”

한번 유럽지사로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집사람이었다. 학교 교사인 아내더러 휴직을 하고 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방학이 아닌 상황에서 갑자기 휴직도 쓰지 못할뿐더러 그런 행정절차에 시간이 걸리니 어떻게 조절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언제부터 가게 되죠?”

“11월달에 가게. 여권완료되면 바로 가. 늦어도 11월 15일엔 베를린에서 일해야지.”

황 전무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다지 오래 걸리지는 않아. 1년만 있다 오게.”

1년 정도면 다녀올만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박기범 차장은 베를린지사로 가기로 결정했다. 지난 1985년에도 도쿄에 다녀와서 승진을 했으니 잘하면 베를린에 다녀와서 또 승진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번 서해훼리호 참사가 자신의 승진의 밑거름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한편으로는 울적해졌다.

============================ 작품 후기 ============================

서해훼리호 침몰사건 :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면에서 주말을 맞아 서울 등지에서 내려온 낚시꾼을 태우고 항해하던 중 침몰 무려 292명의 사망자를 낸 대형사고입니다. 당시 허술한 항만 규정, 구명조끼의 미비 등으로 사고가 더 확대되었고 전형적인 후진국형 인재였습니다.

이 당시 사망자 중에는 경제기획원(현재 기획재정부)의 공정거래위원회 총괄정책국 고위공무원 10명이 포함되어있었고, 중앙정부부처의 고위 관료들도 휴가차, 낚시차 이 배를 탔다가 죽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후 수습은 미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경과 해군은 사고발생 후 한시간 뒤에나 출동하는 등 늑장대응을 했고 오히려 어선들이 더 많이 구조를 하는 등 웃지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죠.

지금 보면 인도니 베트남이니 별 겨지찌끄레기 같은 나라들은 여객선 침몰해서 수백명씩 죽지요. 불과 20년전엔 일본인이나 미국인이 볼땐 우리가 현재 그 위치에 불과했습니다. 20년만에 거지 찌꺼기 같은 나라에서 세계를 주무르는 거대 경제대국이 되었죠.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킴 칸스 (1945~)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할리우드 출신으로 81년 베테 데이비스 아이스로 일약 전미 빌보드 1위를 9주 동안 차지합니다. 연속은 아니고 중간에 한번 타이틀을 뺏겼습니다. 지금은 테네시 주의 내쉬빌에서 음악활동하고 있답니다.

데비 해리 (1945~) : 데보라 해리가 본명이고 줄여서 데비라고 부른다네요. 역시 플로리다 출신의 미국 가수로 74년 블론디를 크리스 스타인(1950~)과 함께 창설합니다. 이후 1979년 'Heart of Glass'로 빌보드 1위를 차지하고 80년 'Call Me'(리차드 기어 주연의 아메리칸 기골로의 OST), 81년 'The Tide is high', 'Rapture'로 전미 빌보드 1위를 기록합니다.

99년에 다시 재결성되어서 김아중이 불렀던 '마리아'의 원곡을 계기로 재부활하지요. 지난 2006년에는 내한공연도 가졌답니다. 잠실에서.

올리비아 뉴튼 존 (1948~) : 영국출신의 가수죠. 존 트라볼타와 1978년 '그리스'에 출연해서 유명세를 탔고 81년 발표한 'Physical'은 10주연속 1위를 차지하는데 80년대를 통틀어 10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곡은 이게 유일합니다. 물론 전체로 따지자면 마이클 잭슨이 80년대를 다 휘어잡았죠.

쉬나 이스턴 (1959~) : 영국가수입니다. 81년 모닝 트레인으로 빌보드 1위를 차지했고, 현재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보니 타일러, 킴 와일드와 더불어 80년대 미국에서 활약한 대표적 여성가수입니다.

머라이어 캐리 (1970~)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워낙 유명해서. 말 안해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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