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40화 (40/159)

40화

“아버지. 괜찮으세요?”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본 박기범 차장은 눈물부터 흘렸다.

“이놈아. 애비 안 죽었어. 사내놈이 찔찔 거리기는. 그래가지고 차장하겠어?”

정정한 듯 큰 소리로 아들에게 말한 그는 옆에 있는 다른 환자들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이 놈이 내 둘째요. 서울에서 무등그룹 차장으로 근무하지. 나한테 연탄집게로 두들겨 맞고 서울대 갔어요. 원래 두들기면 공부하게 되어있어. 큰 애는 학교 선생. 둘째는 무등그룹 차장이요. 막내도 회사댕기고.”

“어이구. 자식농사 잘 지으셨군요.”

옆의 침대에 앉은 다른 환자가 부럽다는 눈으로 말했다. 병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막내가 들어왔다.

“늦었어요. 아버지. 괜찮으신거죠.”

“아니 대체 어떻게 전화를 했기에 다들 내려온거냐? 호박따다가 지붕에서 떨어진걸 가지고. 대수냐? 아. 기범아. 올라갈 때 애호박 하나 가져가라. 아주 크다. 호박죽 끓여먹어라.”

박기범 차장은 이제 초등학교를 들어간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시름 놓았다.

“네가 많이 놀랐겠구나. 할아버지 다치신 것 때문에.”

이미 밤 8시를 넘긴 시각. 최대한 빨리 완도로 간다고 해도 시간에 맞추기는 어려웠다. 같이 간 일행들도 아무리 늦어도 내일오후 3시 열차는 타야 하니 영범이와 같이 올라가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아버지 안위는 확인했으니 내일 오후차로 올라가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아. 형. 나 차가지고 왔어. 우리 회사 과장님 차 빌렸거든. 같이 올라가요.”

“알았어.”

일단 큰 형네 집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그냥 가기 미안해서 목포 시내에 있는 대형 마트에서 약간의 선물과 큰형 내외와 같이 먹을 술과 안주거리를 샀다.

“오랜만에 같이 먹죠. 형. 요즘 학교는 어때요?”

30평짜리 아파트의 거실에서 큰형. 형수, 박기범 자신, 동생과 같이 술을 마셨다.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을 사주었다.

“형. 학교 어때요?”

“뭐 그렇지. 보충수업이 많다보니 이런 일도 있다.”

“형이 고생이 많아. 여기서 부모님 모시는거 쉽지 않은데. 뭐 형수님이 대단하세요. 솔직히 시부모님 모시는 것도 쉬운건 아닌데.”

박기범 차장이 말하자 형수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많이 모자란 며느리에요.”

“저희야 해드리는게 없는걸요.”

박기범 차장은 그렇게 말했다. 병원비는 자신이 내기로 하고 일단 가져온 20만원이 든 봉투를 꺼냈다.

“형. 좀 보태요. 병원비에. 나중에 영수증 나오면 저 주세요. 제가 처리할게요. 왜냐면 난 차장이라서 차장급은 부모님 간병비가 회사에서 지원이 돼요. 그래서 공짜로 치료가 가능해요. 천만원 한도 내에서는 다 지원되니까.”

“어 그래? 그거 좋은 제도구나. 알았어. 보낼게.”

맥주를 한잔 마신 형이 말했다.

"너도 드디어 사람구실 하는구나. 언제였지? 너 대학가기 전에. 그러니까 70년인가? 한때 너 팝에 미쳐서 용돈 탄걸로 레코드 사모으다가 아버지한테 걸려서 뒤지게 맞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사모으니?"

"사도요 들을 시간이 없어요. 그 때 레코드 사면 뭐해요? 집에 스테레오가 없었는데. 그냥 그거 사서 간직하는게 좋았죠. 그 때 용돈 모은걸로 산 첫 앨범. 나 아직도 기억해. 70년 6월에 산 건데. 그 때 내가 중 2때니까."

안주로 놓인 과일을 집어 먹으면서 말했다.

"두 장 샀어요. 하나는 비틀즈의 '렛 잇 비.' 그게 70년 4월달에 빌보드 1위였거든요. 그거하고 내가 고민한게 잭슨 파이브 있잖아요. 마이클 잭슨이 어릴때, 지 형들하고 같이 나온. ABC를 살까? 아니면 네덜란드 그룹인 쇼킹 블루의 비너스를 살까 고민하다가 쇼킹 블루 음반을 샀죠. 그 때도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힘들었어요."

"쇼킹 블루?"

형수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있어요. 네덜란드 락 밴드로 마리스카 베레스를 중심으로 한 밴드요. 그 당시 전미 빌보드 1위, 서독 빌보드 1위, 일본 오리콘 2위, 하여간 다 쓸었죠."

"여보. 애가 겉보기에는 일벌레처럼 보여도 하여간 팝 엄청 좋아했어."

"그 때 아버지한테 빗자루로 얻어맞고 음반 실컷 사려면 내가 서울대를 가야되겠다 그리 생각해서 진짜 공부 엄청했어요. 아버지가 그랬거든요. 서울대만 가면 스테레오 사주겠다고. 미친듯 공부했죠. 내가 그 때 수학의 정석을 다 외웠어."

"맞어. 그것도 실력으로 봤지? 어려운 걸로."

"형수님. 내가 그 때 다 외웠다니까요. 나중에는 정석 몇쪽에 무슨문제까지 다 외웠거요. 사진을 찍듯이 책 그 자체를 다 머릿속에 기억을 해 두었죠."

"대단한데요?"

"그러니까 제가 서울대 간거 아닙니까? 서울대 경영학과 74학번. 아버지는 안타까워 하셨죠. 법대 왜 안 지원했냐고. 내가 공부하기 싫어서 경영대 간거에요. 원래 법대 가면 또 공부해야 해. 사법고시 때문에. 근데 경영대는 그냥 술먹고 노는게 일이에요. 그래도 취직은 잘 되잖어."

신이 난듯 그가 말했다. 물론 그는 학교 다닐때 공부는 조금 했다. 시험기간때만.

"지금도 레코드 가게가서 음반을 봐요. 가끔은 사는데. 들을 시간이 별로 없네요. 가끔 듣고 있으면 마누라가 핀잔 줘요. 알아 듣냐고. 아. 내가 명색이 서울대야."

"그놈의 서울대. 아주 이거 서울대 안나온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어요?"

맥주를 마시며 형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요. 사회나오면 다 그게 그거에요. 그래봐야 저 회사원 밖에 더 됐어요? 어디가면 전 그냥 회사원에 불과하지만 형수님은 학교 선생님이니까. 대한민국서 아버지가 멸치 어장 물려주지 않은 이상 그게 그거죠."

"참. 형이 나 공부 가르친다고 할때 그냥 정석을 하나 던져주고는 딱 한마디 했어요. 외워. 그게 끝이야."

동생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말했다.

"영어는 내가 그 때 성문 종합 다 외웠어. 나 전부 다 외웠어요. 그래서 외우라고 한거야. 내가 외워서 서울대 가고. 너도 결국 서울대 갔잖냐. 형은 못갔지만."

"그래. 형은 사대를 갔지. 좋냐"

큰 형은 한번 천연덕스럽게 맞받아쳤다.

"나도 학교 선생이나 할걸. 맨날 상사한테 혼나고 회사원도 할 짓은 못돼요. 특히 나 같은 자금부서는 머리가 맨날 아프죠."

"그나저나 잘 곳이 변변찮아서요."

"형수님. 괜찮아요. 거실서 자면 돼요. 학교 다닐때는 술먹고 길바닥에 쓰러져 자다가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있는데 뭐. 술이 웬수지. 술이."

============================ 작품 후기 ============================

비틀스(The Beatles) : 1964년~1970년까지 활동한 영국의 밴드. 폴 매카트니, 존 레넌, 링고 스타, 조지 해리슨이 주축이 된 밴드. 현재까지 6억 장의 음반을 팔아 7억 5천만장을 판 마이클 잭슨에 이어 2위임. 64년 미국진출 이후 브리티시 인베이젼을 이끈 주역. 비틀즈 모르면 인간이 아님. 외계인임.

쇼킹블루(Shocking Blue) : 1967년에 결성된 네덜란드 락 밴드. 1970년 '비너스'로 미국 빌보드 차트 1위, 일본 오리콘 차트 2위, 서독 빌보드 차트 2위, 프랑스 빌보드 차트 1위, 이태리 빌보드 1위, 벨기에 빌보드 1위를 기록함. 1973년까지 1350만장의 앨범을 파는 등 활동을 하나 74년 해체함. 리드 보컬은 마리스카 베레스.

잭슨 파이브 : 마이클 잭슨이 어릴 적 형제들과 조직한 밴드. 이 때부터 마이클 잭슨의 뛰어난 가창력을 인정받아 이후 성인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솔로앨범을 출시함. 마이클 잭슨 모르면 인간이 아님. 아니. 적어도 우리 은하에 사는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는 다 알 것임. 모르면 안드로메다 은하에 사는 메텔과 철이임.

스테레오 : 요즘은 안쓰는 기계. 과거 80년대 후반까지 LP가 세상을 장악하던 시절, 음반을 듣기 위한 기계로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 중산층의 상징이 CD와 카세트 플레이어가 혼합된 스테레오였음(우리집에 있었음) 주로 독일의 마란츠, 일본의 소니, 우리나라의 인켈 제품이 이 당시 시장을 선도함.

그래서 필자가 어릴적, 일본이나 미국같은 선진국은 컬러 TV, 자동차, CD플레이어가 되는 스테레오가 집집마다 있다고 배웠고 이를 가리켜 3C라고 지칭했었음. 이게 80년대 후반부터 알려진 대한민국의 신종3기임.

레코드 : 요즘은 안쓰는 도구. 과거 음반 녹음하면 레코드에다 함. 시커먼 둥근 판에 녹음을 함. 보통 노래 8곡 들어가면 꽉 참. 1981년 소니와 필립스가 CD를 개발한 이후 급속하게 인기가 쇠퇴하게 되고 지금은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음. 집에 레코드가 있다면 옛날에 그럭저럭 먹고 살았다는 증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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