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35화 (35/159)

35화

"에. 우리 한국개발공사는 팔공그룹과 함께 일본에 진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세계 최고수준의 경제규모로 성장할 것이 눈에 보이는 일본에 투자를 함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을거라고 보았습니다.

요즘 추세가 자본투자위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일본의 우량주식들과 부동산투자로 안정적 배당소득 및 임대료 수입으로 경상수지흑자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88년 이후 국제수지가 다시 적자로 반전했는데 이를 만회하려면 한국개발공사가 주도적으로 이를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자들 앞에서 최천식 개발공사 총재는 당당하게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자들이 곧 손을 들고 질문을 퍼부어댔다.

"현재 일본의 증권시장은 너무 비싸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지금 일본의 1인당 GDP가 2만 4천 달러요. 10년 뒤인 2000년에는 10만 달러가 된다는 말입니다. 즉 현재 도쿄 증권시세가 현재의 두배만 되어도 일본인들이 느끼기에는 절반 수준이다 이런거죠. 즉 아직도 싸다는 겁니다."

이 말에 다른 기자가 또 질문을 던졌다.

"공주 경제신문 기자 장도식입니다. 규모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거의 2조원 수준인데 우리나라의 연 예산 총액이 20조원 안팎인데요. 지나치게 큰 규모가 아닌가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리고 규모가 커야 더 돈을 법니다. 일본의 GDP가 2조 달러 이짝저짝. 10년 뒤에는 10조 달러로 늘게 뻔한데 솔직히 2조원의 투자도 크지는 않죠."

최천식 총재는 기분좋게 말했지만 질문을 던진 그 기자는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89년 11월 현재 한국은행이 보유한 외환보유고가 고작 173억 달러입니다. 2조원이면 달러당 700원이니까 무려 28억 달러나 되는데 너무 크다고 생각지 않나요?"

"장 기자. 우리 개발공사의 실력을 몰라스 그래요? 다음 기자."

말을 일방적으로 끊었을 때 다른 기자가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교신문입니다. 국내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고 외국투자는 무리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봐요. 산업은행이 그 역할을 담당하니 우리는 해외에서 돈을 끌어와야죠. 자세한건 기자여러분들에게 홍보자료를 드릴테니. 오늘은 이만."

최천식 총재는 여기까지 말을 마치고 급히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그는 뒤따라오는 오연세 부총재에게 투덜거렸다.

"거 기자들은 왜 이모양이야? 박수치지는 못할망정 재수없는 소리나 해대고. 그 특히 장도식이? 그 작자는 부르지도 마."

"원래 기자들이 늘 그렇죠. 따지기만 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맨 처음 일본에서 투자를 단행한 것은 증권투자였다. 일본의 여러 증권사들을 통해 본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오호라. 이게 지난 주에 사들인 일본주식의 목록인가?"

서류를 읽어보며 최천식 공사 총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오연세 개발공사 부총재가 대답했다.

"그래. 아주 잘하고 있지. 어디 보자. NTT도코모라. 그리고 신주쿠 부동산 신탁회사라. 신주쿠는 좋은 곳이지 뭐."

리스트를 한 곳에 내려놓고 최천식 총재는 기분좋게 웃었다. 수익률이 벌써 3%. 한달 새 3%의 이익을 얻었다.

"팔공그룹도 요즘 신이 날거야. 거 별것도 아닌 섬유보다 이런 게 더 나은것 아닌가?"

최천식 총재는 이렇게 말하면서 신문하나를 펼쳤다. 도쿄경제신문이었다. 신문의 맨 앞장을 펼쳐보이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보라고. 도쿄경제신문마저 격찬을 했지. 한국의 자본이 일본을 휩쓸다라고 하는 이 제목. 너무 멋져. 우리 한국경제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입증하는거 아닌가?"

그랬다. 신문에는 개발공사와 팔공그룹이 돈을 모아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을 대대적으로 사들이는 것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거기에는 도쿄 신주쿠의 한 오피스 빌딩을 사들이고 이름을 야마노테에서 한국빌딩으로 이름을 바꾸는 장면이 나왔다.

개발공사가 첫 번째로 산 빌딩이었기 때문에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경제의 번영을 상징한다고 여기고 자축한 것이었다. 이 빌딩을 매각한 회사는 아이치 빌딩 관리회사였는데 무려 1080억엔에 개발공사에게 판다.

신문을 덮으며 최 총재는 승리자의 기쁨을 만끽하며 크게 웃었다. 하지만 이러한 웃음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일본증시는 급전직하했다. 일본을 부글부글 끓게 한 부동산 거품이 드디어 폭발한 것이다.

도쿄 카스미카세키에 위치한 대장성은 날로 올라가는 주택가격의 안정과 투기를 방지하기 위한 많은 규제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이 덕분에 도쿄 증시와 부동산 가격이 계속 하락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말이 돼? 일본의 부동산 가격과 주택가격이 왜 이모양이야?"

최천식 총재는 화를 내면서 서류를 집어던졌다. 최근에 사들인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오피스 건물을 75억엔에 사들였는데 최근의 오피스 빌딩 가격 하락으로 70억엔으로 내려갔으며 신문에서도 서서히 일본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는 착잡한 심정으로 신문을 펼쳤다. 신문의 헤드라인부터 암울했다.

-일본경제 비관론 확산

엔화 달러당 155엔 돌파

주가. 채권 시세도 급락

실물 침체될까 우려.

22일 일본의 금융시장이 주가 및 채권시세 폭락과 엔 약세등 이른바 트리플 약세로 일대 혼란에 빠지면서 일본의 금융계와 산업계를 중심으로 일본경제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날 도쿄의 니케이 지수는 3만 포인트 이하로 주저앉았으며 엔화약세기조도 이어지고 있다. 엔화 약세로 인해...

"이거. 이거. 제대로 되어가는거야.?"

한번 화를 내면서 생각에 잠긴 최천식 총재는 다시한번 주사위를 던졌다. 그는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팔공그룹 연결해."

그날 저녁. 서울의 한 고급 요정집. 최천식 총재는 부총재로 있는 오연세와 함께 팔공그룹 박상기 사장과 자리를 마주 앉았다. 1988년 사장으로 취임한 박상기는 2년이상 팔공그룹을 잘 이끌어오고 있었다.

"최근에 일본경제 비관론이 확산되면서 주가가 많이 내려가는데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박 사장이 말했다.

"나도 그것 때문에 고민입니다. 그 쪽은 방법이 없나요?"

"그야."

잔에 따른 술을 한잔 마시며 최천식 총재가 말을 이어나갔다.

"더 투자합시다. 괜찮을거요. 이제 겨우 1조 6천억 기금 조성해서 3천억 투자를 했는데 뭐가 걱정이겠어요. 더 삽시다."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거라고 하는데...."

박상기 사장은 다소 우려스럽다는 듯 머뭇거렸다.

"아. 거. 참 겁도 많구려. 한번 합시다. 그리고 솔직히 당신들은 무슨 걱정이요? 다 공사가 책임지고 하는 일이니."

"그렇긴 한데 우리도 3천억이나 밀어넣었어요. 말이 그렇지. 우리 회사가 보유한 현금총액이 6천억입니다. 그것도 은행에서 단기차입금으로 빌린 게 2천억 수준이지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뭐가 문제요. 잘못된다고 해도 우리 개발공사는 정부로부터 자금일체를 지원받을테니 우리가 대출해주면 되지. 너무 걱정은 말아요."

"말이야 쉽지, 그 돈이 얼마나 큰 돈인데. 정책금리 덕에 10%로 빌리고는 있지만 걱정을 안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여기까지 듣고 있던 오연세 부총재가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우리 공사에서 적극적으로 밀지요."

"뿐만 아니라 여기 이, 오 부총재가 산은 총재로 취임할거요. 조만간 인사이동이 있을텐데 잘만 하면 나 이 최천식이 개발공사 총재, 오연세가 산업은행 총재가 될테니. 자금문제는 걱정 말아요."

최천식 총재는 자신이 있다는 듯 크게 웃으며 말을 했다.

"팔공그룹이 이래서 좋아. 내가 과장이던 시절부터 다 선물도 주고, 명절 떡값도 주니 또 이렇게 돌려주는 것 아니요. 여타 대기업보다도 싸게 이자 빌리고 자금사정이 나빠지면 한국은행에게 전화해서 돈을 찍어서 공급하잖소. 따끈따끈한 새돈 말이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수입산 크리스털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연기를 내뿜으면서 최 총재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반면 박기범 과장은 이 때문에 칭찬을 받고 있었다. 기획실 차부장은 신이 난 듯 박 과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어. 팔공이 아주 손실이 큰 모양이야. 개발공사도 마찬가지고. 이번 기회에 아주 박살을 내버려야 할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개발공사까지 자금을 댄다면 그건 실로 엄청난 것이지 않겠습니까? 2조원의 자금을 주무르는 곳이 개발공사니."

"뭐 지켜 보자고."

이후 국내에서는 일본경제에 대한 많은 세미나가 이어졌다. 일시적인 침체일 것이라는 의견에서부터 이미 노령화로 활력을 잃고 있어서 이제 끝물이라는 의견까지 아주 다양했다.

"빌어먹을. 전문가라는 것들이 어째서 이모양이지?"

최천식 총재는 박상기 사장과 함께 세미나가 열리는 커다란 홀을 빠져나가면서 투덜거렸다.

"글쎄요. 워낙 복잡해서 자칭 전문가라는 것들도 잘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은데."

손에 쥔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젠장. 이 돈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했건만."

마침 세미나에 왔던 박기범 과장과 장현주 부장은 맞은편에서 애기를 나누며 걸어오고 있던 최 총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기 살짝 대머리가 까진 사람이 최천식이야. 아마 자네가 일본에서 돈 빌릴때 기고문 쓰고 내가 차장시절, 자금팀에 전화까지 했던 친구야."

"그렇군요. 개발공사 총재죠?"

"그럼. 그 옆은 박상기 팔공 사장이고. 둘이 뭔가 작당을 하는가 본데, 뭐 요즘 손실이 꽤 클거야."

"그렇겠죠."

짧게 답하자 장 부장이 말했다.

"어차피 우리의 일본진출은 신중해야 해. 따라서 팔공과 개발공사가 어떻게 되는지 보고 가도 늦지 않아. 결국은 수출선 다변화에 불과하잖아."

"그렇죠. 어쨌거나 박살이 났으면 좋겠군요."

여기까지 말을 하면서 자신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최천식 총재의 모습을 고개돌려 바라보았다.

'저 친구였군. 은행감독원 시절 우리를 괴롭힌.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게 될거야.'

"저 친구. 정말 돈을 좋아해. 팔공한테 받은게 얼마야?"

"장 부장님은 잘 아시나 봐요?"

"내가 여기 차장때 입사했는데, 그 전에는 일락 상사에 있었거든. 황 전무님이 오라고 하시더라고. 아무튼 일락 상사 시절, 최천식이가 그 때는 재무부근무할땐데, 특혜융자 얻어주는 댓가로 돈다발은 주었으니까. 78년부터 82년까지 한 5천 정도 주었을거야."

"5천만원이요?"

"뭘 그리 놀라나? 저 사람. 방배동에 150평짜리 시가 6억원짜리 저택에서 살잖아."

시큰둥하게 말하면서 장 부장은 쓴것을 씹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자네나 나나 결국은 월급쟁이야. 애 낳으면 무조건 공부시켜서 관료 만들어. 그래야 자네 노후도 편해. 관료들 월급은 그저 점심값이잖아."

많은 전문가들이 일본경제의 전망에 대해 서로 헷갈리는 분석을 내놓고 있을 무렵, 1990년 6월 깜짝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의 경제기획청은 1990년 1/4분기. 전기 대비 2.5%, 연율로 10%라는 깜짝 성장을 했다는 뉴스를 발표했다.

이는 기존의 비관론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내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내수가 1.2%, 수출이 1.3% 증가하면서 경제가 성장한다는 뉴스는 일본경제에 대해 불안감을 가진 투자자들을 모두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최천식 총재도 마찬가지였다.

"더 투자해. 이 기회에 부동산. 주식 몽땅 사들이자고. 필요하다면 빚까지 내. 우리 개발공사의 신용이라면 일본에서 최대 10억 달러까지 대출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는 한술 더 나가서 팔공그룹에게도 추가로 돈을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팔공그룹 역시 은행에서 3천억원을 추가 대출을 해 일본증시와 부동산 시장에 퍼부었다.

"바로 저 빌딩입니다."

도요타 센추리를 탄 최천식 총재는 차 안에서 빌딩을 하나 보면서 감탄을 했다.

"오호라. 근데 얼만데?"

개발공사에서 파견나온 직원이 답했다.

"490억 엔을 달라고 합니다. 28층 빌딩인데 아주 고급이지요. 저 빌딩은 88년 처음 세워졌을 때 440억 엔이었는데 계속 올랐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조정을 받기 시작했을 때에도 오히려 6억엔이나 올랐을 정도랍니다."

"그래? 당장 사야겠구만. 빌딩 주인 만나서 오늘 당장 사라고."

기분 좋게 최천식 총재는 미소를 띄며 빌딩을 눈여겨보았다.

"다 사들여. 도쿄의 오피스빌딩이 우리 개발공사의 소유가 되면 일본인들은 우리에게 임대료를 바쳐야 할 것이야. 하하하하."

원래 꺼지기 직전의 불꽃이 가장 밝은 법이다. 90년 중반으로 갈 수록 서서히 일본경제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팔공그룹과 개발공사가 손쓸틈도 주지 않고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어찌된 노릇이야. 평균 주식투자 수익률이 마이너스 30%라니. 원금의 30%를 날려버렸어. 부동산은 더 심각해."

그랬다. 1990년 4월. 도쿄 도심의 멋진 신축 오피스 건물을 69억엔에 사들인 팔공그룹은 이후 개발공사와 손잡고 부유층들이 선호하는 호화주택도 부르는대로 사들였다.

하지만 690억엔에 산 시부야의 오피스 빌딩은 가격폭락으로 335억엔으로, 1490억엔을 주고 산 신주쿠의 오피스 빌딩은 840억엔으로 추락했다. 호화주택은 사정이 더 심각했다. 건물 내부 전용면적만 110평짜리 5층 빌라는 세대수가 총 10세대였고 원래 개발공사에게 팔렸을 때 100억엔에 거래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행은 경기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를 계속 올렸다. 무려 6%의 금리는 주식과 부동산에 몰린 시중자금을 은행예금과 정부국채로 되돌아오게 했다. 이 조치는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종말을 고하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의 추락과 일본의 금리가 6%대로 껑충 뛰면서 이러한 호화주택의 거래는 중단되었고 부랴부랴 시장에 내놓았지만 결국 다른 부동산업자가 20억엔에 산다고 해서 그 값에 팔리고야 말았다.

요코하마의 공장부지는 오피스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해서 인기가 가장 좋을 때 5천평의 부지를 무려 95억엔을 주고 샀으나 모든 건설계획이 백지화가 된 지금, 사려는 사람도 하나 없는 무주공산이 되어버렸다.

"뭐야? 오다이바 빌딩신탁회사가 파산을 해? 거기에 우리 개발공사 지분이 30%잖아. 무려 600억 엔이나 쏟아부었는데. 파산을 해? 그래서. 도쿄 증권거래소가 거래를 중단시켰다고?"

이 소식을 전화로 보고받은 오연세 부총재는 들고 있던 수화기를 그대로 떨어뜨렸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블록딜 형식으로 기관투자자들의 지분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일반 개인투자자들 지분마저도 높은 가격에 사들인 이 회사의 파산소식은 충격이었다.

"세상에. 벌써 손실이 이렇게나 커?"

오연세 부총재로부터 보고받은 최 총재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미간을 매만지고는 내용이 적힌 종이를 보지도 않고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모든 상황은 개발공사와 팔공그룹에게 아주 불리하게 돌아갔다.

90년 가을. 주가하락과 부동산 침체는 그야말로 재앙수준으로 개발공사를 몰아갔다. 급히 모든 투자상황에 대한 데이터가 올라왔다.

이 모든 것을 본 최천식 개발공사 총재는 절망적인 눈초리로 서류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개발공사는 2조원을 몽땅 도쿄의 부동산과 주식에 쏟아부었고 평균 수익률은 -72%였다. 지금 당장 회수한다고 해도 고작 5600억원만 남기는 셈이었다.

1조 4400억원이 허망하게 날아간 셈이다.

1990년 초. 2조원을 모두 엔화로 바꾸어 4천억엔의 실탄을 확보한 다음 자랑스럽게 투자했으나 이제 이 돈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세상에. 1조 4천억이 연기처럼. 허허허."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담배를 물었다. 불을 붙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말이 그렇지. 89년도 정부 예산이 고작 20조원에 약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엄청난 돈을 날려버린 셈이었다.

팔공그룹도 사정은 심각했다. 은행에서 융자까지 받아 무리하게 투자한 결과 손실은 85%로 원금의 15%만 남은 셈이었다. 아직까지 국내 은행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이거. 개발공사 최천식 총재에게 전화 넣어봐. 해결책을 찾자고."

박상기 사장은 다급하게 말을 비서에게 던졌다. 개발공사와 팔공그룹이 큰 혼란에 빠져있는 사이. 오남현 사장은 기획실 차 부장과 자금팀 박기범 과장을 불렀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

"압니다. 개발공사랑 팔공그룹이 박살나고 있죠."

박기범 과장의 말에 오 사장은 미소를 가득 지었다.

"잘됐어. 이 기회에 둘 다 박살내자고."

오 사장은 차 부장과 박 과장을 둘 다 번갈아 쳐다보았다.

"일본에서 손실이 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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