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세월은 흘러 1989년 11월. 지난 1985년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100억엔 차입을 성사시킨 공로로 86년에 과장으로 승진한 박기범 과장. 이제 그는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다.
과장 승진을 한 후, 우연한 기회에 맞선을 보게 된 것이다. 그 때가 1986년 11월. 그 때 여중 교사인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다.
아내의 나이는 1957년생으로 맞선을 볼 당시에도 29살이나 되었다. 사실 아내가 더 적극적이었다. 맞선을 본 그날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았는데 그 영화가 바로 미키 루크, 킴 베이싱어 주연의 '나인 하프 위크'였다. 이후 급속히 관계가 발전하면서 결혼에 골인을 하게 되었다.
이제 곧 태어날 자녀를 생각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은 그는 다시 서류에 시선을 돌렸다. 88올림픽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내 드디어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끈 대한민국의 힘을 느끼기라도 하듯 짧은 감회에 잠겼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10분 뒤에는 회의가 시작될 참이었다. 짧게 한숨을 쉬며 회의에 사용할 자료들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그래. 다들 모였구만."
오남현 사장은 여전히 굵고 정정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내가 지시했던 해외진출. 특히 일본 진출 건은 어떤가?"
이 말에 기획실 차현섭 부장이 입을 열었다.
"거기는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입니다. 지난 1968년. 서독을 제치고 2위 경제로 급부상한 이래 줄곳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미국수출도 하듯, 일본에도 수출을 본격적으로 해야 합니다. 현재 일본은 여러 상사나 오퍼상을 통해 간접수출을 하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죠."
"물론이야. 뿐만 아니라 중공업, 중화학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일본에 가서 뭔가 해야하지 않겠나?"
오 사장은 시선을 돌려 자금팀 박기범 과장을 쳐다보았다.
"박 과장. 자금 쪽 생각은 어때?"
"부장님께 먼저 여쭤보시는게... 뭐 제 생각은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 말에 오 사장은 눈썹을 씰룩거렸다.
"저는 자금에서 본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박기범 과장은 안경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올해. 1989년 기준으로 일본의 1인당 GDP는 무려 2만 4천달러. 세계 3위입니다. 스위스와 룩셈부르크 다음이지요. 미국이 이제 겨우 2만 달러니까요. 헌데 아시다시피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지 않았나요?"
"그렇지. 그게 뭐 어때서?"
오 사장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지금 들어간다면 섬유사업과 관련해서 토지를 구매하거나 오피스 빌딩을 빌리거나 해야 할텐데. 지금은 고점이라고 봅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지금 일본의 GDP가 대략 2조 8천억 달러 정도 됩니다. 그런데 미국의 GDP는 5조 달러. 그런데 도쿄 주식시장이 지난 1987년 뉴욕을 제치고 세계최대주식시장이 되었습니다. 이게 말이 되지 않죠."
이 말에 차 부장이 말을 했다.
"그건 맞습니다. 일본이 지금 이대로 나간다면 10년 이내에 미국을 제친다고 하지만 제조업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16%로 미국의 25%에 미치지 못하고 있죠."
"그렇다면 아직 일본이 미국을 따라가기는 멀었고, 지금 일본의 자산시장이 많이 부풀어있다는 거 아니야?"
잠시 생각에 잠긴 오 사장은 입을 다시 열었다.
"좋아. 그러고 보니 팔공그룹도 막대한 돈을 들여 일본으로 진출하려고 한다는 정보가 있어. 그리고 우리 경제도 반석에 올라간 지금. 선진국에 투자해서 탈제조업으로 가려는 눈치를 정부에서도 보내는 눈치야. 특히 개발공사가."
"벌써요? 너무 빠른데요? 거긴 2만 4천 달러. 우리는 이제 3천이니 8분의 1밖에 안됩니다."
박 과장의 말에 오 사장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기획실은 쇼를 하게. 일본에 진출하려는 것처럼. 우리가 전사의 사운을 걸고 일본진출을 하는 것처럼 꾸며. 박 과장도 잘 도와주고. 이른바 폴스 플래그야."
회의가 끝난 후, 박기범 과장은 기획실 차 부장에게 말을 걸었다.
"부장님. 사장님이 말씀하신 폴스 플래그요. 잘하면 팔공그룹을 완전히 물먹일 수 있겠네요."
"사장님의 원하시는게 그거지."
차 부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네가 바빠지겠어? 우리 도우랴. 자금 일도 하랴."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어요?"
걸어가면서 박기범 과장은 주머니에서 자동차 열쇠를 꺼내 열쇠고리를 손가락에 끼우고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차는 타고 오지도 않으면서 열쇠는 왜 가지고 다녀?"
그 모습을 본 차 부장이 퉁명스레 말했다.
"그럴 수 밖에요. 지하철로 출퇴근하니까요. 아마 저는 계속 지하철로 출퇴근 할 것 같아요."
"내 말이 그 말이야. 열쇠 가지고 다니면 차는 주차장에 있고?"
"우리집 사모님이 끌고 다녀요. 열쇠를 두 개 만들었거든요. 학교에 평교사가 차가지고 다니는 거 서울도 드문가봐요. 지방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선생월급이야 어차피 뻔하고 전국 어디나 다 같지만요."
"그래도 아내 직업은 좋지. 내 대학동창녀석도 사대나와서 선생하는데 부부교사야. 뭐 둘 다 서울사대 출신이라 문제집쓰고 하니 나보다 돈 더벌더라."
복도를 걸어가던 차 부장은 기획실로 향하면서 박기범 과장의 어깨를 한번 툭 쳤다.
"들어가세요."
인사를 하고 자금팀으로 발걸음을 옮긴 박 과장은 또 처리해야 할 서류뭉치에다 도장을 열심히 찍기 시작했다.
그 시각. 종로구에 위치한 개발공사 15층 총재실. 신임 총재로 임명된 최천식 전 은행감독원 국장은 기쁜 표정으로 최고급 수입산 가죽소파에 몸을 지그시 기댔다.
정권에게 늘 잘보였고, 관료로서의 힘도 가지고 있던 터에 총재까지 무난하게 올라간 것이다.
"어. 좋구나."
그는 총재라는 직함은 물론 개발공사 총재에게 주어지는 특혜도 좋았다. 그랜저 3000cc가 관용차였기 때문이다. 개발공사는 지난 1987년 설립된 국책은행으로 산업은행과 더불어서 기업들에 대한 융자 및 신용보증을 하는 기관이었다.
산업은행이 비대해지기 때문에 조직의 효율성을 위해서 따로 분사해서 만든 조직이지만 결국 정권의 자금줄 노릇을 하는 곳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무려 2조원의 자금을 만지작거리는 거대 조직으로 발돋움 했다.
최천식 총재는 서류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가 본 서류는 팔공그룹이 일본으로 진출하기 위해 세운 계획서였다.
"일본 진출이라."
얼마전 TV에서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났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당 260엔 수준의 엔화는 155엔대로 급등했지만 일본경제는 환율에 의한 타격을 전혀 받지 않고 오히려 호황을 이어갔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을 해서 미국인들의 기준으로 토끼장이라고 비웃는 도쿄의 40평대 중산층 거주 주택의 가격이 무려 백만 달러까지 치솟는 기이한 현상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반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30평대 주택 역시 미화로 50만 달러를 넘어가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세계최고수준의 생활수준을 영외라고 있었다.
무역흑자규모만 88년 기준으로 무려 9백억 달러. 그야말로 전세계의 돈을 모조리 긁어모으고 있었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무등그룹과 팔공그룹이 일본엘 간다?"
1987년 민주화를 이룩한 상태에서 과거와 같은 관치금융은 어느 정도 조정이 필요했다. 기업들도 이제는 정부와 관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적으로 차입, 공장신축등을 하게 된다.
"옛날이 좋았지. 어딜 사농공상의 밑바닥에 있는 상인들이 어딜 감히 우리 허가를 받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한심하다는 듯 그는 입맛을 다시면서 담배를 꺼내물었다. 그럼에도 팔공그룹은 늘 최천식 총재에게 자문을 구하고 연말에는 선물을 주었다. 88년 12월에는 홍콩의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1주일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팔공그룹이 돈을 대 주었다.
그리고 총재의 부인이 골프장에 갈 때 타고 다닐 수 있도록 그랜저 3.0을 사준데다가 골프장 회원권도 선물로 주었다. 그러니 최천식 총재는 팔공그룹은 예뻐할 수 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직선제 : 87년 민주화로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그 전까지는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뽑지 못했더랬죠, 나인 하프 위크는 그 유명한 킴 베이싱어, 미키 루크의 영화입니다. 한번 보세요. 19세 이상 관람가이지만 한국개발공사 : 소설 속에 나오는 실제로는 존재한 적도 없었던 공기업입니다.
실제 90년 초에는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해 40평 짜리 주택가격이 미화로 백만달러에 육박했지요. 실제로 세계 각국의 주택넓이를 비교한 자료를 보니 일본은 우리 생각과 다르게 아주 넓습니다.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주택의 평균 넓이가 무려 132제곱미터. 40평입니다. 평균이요. 우리는 아직 20평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