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32화 (32/159)

32화

이튿날 아침. 서울. 검정색 로얄 프린스 한 대가 은행감독원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린 은행국 국장인 최천식은 거드름을 피우면서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은행감독원 최천식 국장입니다.”

“저 오연세입니다. 국장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 국장. 도쿄는 어떤가?”

느긋한 목소리로 말하는 최천식 국장과 달리 오연세 국장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큰일입니다. 최 국장님의 특별기고를 무시하고 드디어 무등그룹이 일본에서 100억 엔 대출을 성공시켰답니다. 조건은 8.5%에 5년 거치 7년 상환. 전액 엔화로 상환을 했다는 특집 기사가 도쿄 경제신문 1면에 나왔습니다. 1면에요. 지금 바로 팩스로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말을 듣고 최천식 국장이 자기 책상 옆에 있는 팩시밀리를 쳐다보자 몇 초 뒤 위잉하는 기계음이 들리면서 종이가 한 장 출력되었다. 일본어로 쓴 기사를 해석한 최 국장은 깜짝 놀랐다.

[한국의 무등그룹. 100억엔 규모의 엔화대출 성사시켜]

화학섬유 및 나일론 제조업체인 무등그룹은 석유화학섬유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신규투자를 위해 요코하마에 위치한 지역은행인 한신은행에서 100억엔 규모의 대출을 받는데 성공했다.

100억엔은 전액 엔화대출로 8.5%에 5년 거치 7년 상환 조건으로 차입을 성사시켰으며 이로 인해 무등그룹의 대출안을 거절한 시중 은행들은 괜히 거절했다고 말하면서 무등그룹의 도쿄사무소에 연일 전화를 걸어 추가 대출은 자기들 은행에서 받으라고 설득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전세계적으로 자본 자유화 및 미국주도의 자유시장경제체제가 가속화되면서 과거와 달리 정부의 허가를 받는 은행대출 대신, 기업 자율에 의한 대출이 활성화되는데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가하게 되는 계기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경제의 40%를 차지하는 미국의 재무성과 일본 대장성은 내심 반기는 분위기이다.

여기까지 읽고 난 후 최 국장은 팩스용지를 구겨버리더니 찢어버렸다. 그리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망할. 은행감독원 국장 말을 개똥으로 아는구먼. 젠장.”

이 소식은 재무부 청사에도 전해졌다. 출근해서 회의 자료를 준비하던 송영찬은 신문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 친구 성공했구나.’

같은 시각 서울 종로에 위치한 무등그룹 본사도 흥분에 들떠있었다. 100억 엔이라는 큰 돈을 저리로 빌렸으니 그럴만도 했다.

“대단해. 박 대리하고 황 상무님. 그렇게 큰 협상을 끝내다니.”

자금부장이 말했다.

“그럼 언제 돌아온답니까?”

다른 직원이 말했다.

“내년 1월 1일자로 본사 복귀한대. 불쌍한 박 대리. 과장승진은 누락이야.”

자금부장은 박기범 대리가 신입사원이던 시절, 그를 가르쳤던 김승환 부장이었다. 이제는 부장이 된 그는, 박기범 대리가 자금팀의 일원으로서 상당히 뛰어난 역량을 보여왔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승진누락이 안타까웠지만, 너무 빠른 승진이 오히려 관리자로서의 그의 역량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걱정했다.

명색이 과장이라는 직책은 관리자로서 차기 미래의 경영진이 될 직급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의 전반적인 상황을 잘 알아야 하고, 늘 회사의 발전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준비된 임원이 되어야 하는 무거운 직책이다.

물론 과장이라고 해서 1~2년차야 업무를 숙달하고 대리급이 상신한 문서에 대해 결재를 하고 책임을 지는 라인이지만 과장에서 차장으로, 차장에서 부장으로의 승진은 단순한 연차가 아니라 실력이 바탕이 되어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임원으로 올라가는 것은 타 부서와의 관계에 있어도 ‘자금팀 때문에 그 일이 안됐다’라는 말을 듣는 것을 피해야 한다.

즉 임원이 되려면 자기가 속한 부서는 회사의 어느 부서와도 매끄럽게 일을 하거나 뭔가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성과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업무특성상 경영지원실은 전자의 성격이 강했다.

그런면에서 보면 성과는 좋아도 뭔가 기여한게 크게 없는 박기범 대리의 과장승진누락은 전사의 방향에서는 옳다고 보았다.

‘그러고 보면 오남현 사장 월급 많이 받는 이유가 있어.’

김 부장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남현 사장의 결재를 받은 박기범 대리의 기안이었다. 바로 재무투자안이다.

엔화급등세를 예견하고 미리 엔화 선물을 사두거나 엔화를 현물로 확보해 어느 정도 값이 오를 때 팔자는 것이었다. 그 의견이 맞다면 외환은행에 예금된 100억 엔도 아직 원화로 환전하지 않을 계획이다.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나오게 될 G7 재무장관 회담 결과를 보고 나서.

10월 중반이 넘어가자 박기범 대리가 있는 도쿄의 분위기는 어수선해졌다. 이미 엔화가치의 급등은 예견된 사안으로 들렸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 경제를 한손에 휘어잡은 미국은 세계최대의 공업생산력과 자본력으로 각국의 환율을 정했다.

패전국 일본의 경우 1달러당 360엔이라는 환율을 고정으로 유지했다. 이 환율이 적용된 것은 1949년부터 1971년 8월까지였다.

이러한 환율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수입품을 싸게 사들이는 효과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수출업자들에게는 대단한 호재로 작용했다.

게다가 일본의 입장에서는 수입품가격이 비싸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는데, 이미 전쟁 전 세계적인 공업생산능력을 가진 일본은 이를 기반으로 아주 우수한 제품을 전세계 시장에 쏟아냈다.

이미 경제규모나 1인당 생활수준 면에서 일본에게 밀린 영국과 프랑스 등은 60년대 후반부터 자국화폐가치를 경제규모에 걸맞게 높여나갔지만 일본은 71년 8월의 닉슨 쇼크 전까지 1달러당 360엔을 유지해 막대한 이익을 보았다.

그러나 거대한 무역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를 견디지 못한 미국은 마침내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달러의 가치와 금을 연동하던 금본위제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일본은 이날 이후 자유변동환율제로 전환했고 71년 말. 엔화 환율은 1달러당 308엔으로 그 가치가 급등했다. 그 전까지 2천 달러짜리 소형차를 미국에 팔면 72만 엔을 받았지만 이제는 고작 61만 6천엔 밖에 손에 쥘 수 없었다.

동일한 자동차를 수출하고도 기존 대금의 85%만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건 하나의 프리페이스일뿐이었다.

이후 일본경제의 고속성장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엔화의 가치는 올랐고 1980년. 박기범 대리가 무등 그룹에 입사했을 당시 1달러당 250엔 수준으로 엔화가치는 또 폭등한다.

그렇게 엔화가치를 높여 대일무역적자를 저지하려던 미국은 의도한 바와 달리 급증하는 무역적자로 골머리를 앓았다.

박기범 대리가 도쿄 사무소로 온 85년 그 해. 미국의 대일본무역적자는 560억 달러로 사상최고를 기록했고 이에 화가 잔뜩 난 당시 베이커 재무장관은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의 무역적자를 유발시키는 두 나라.

일본과 서독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85년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모인 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의 재무장관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뒤 베이커 미 재무장관은 일본의 대장대신(재무장관의 일본식표현)과 서독의 재무장관을 압박해 달러화약세, 엔화와 서독 마르크의 강세를 유도하는데 성공한다.

이 플라자 합의 이후, 국제 환율시장은 요동쳤고 엔화와 마르크화는 연일 그 가치가 기록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박기범 대리는 아마미 타카코 기자로부터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기안을 작성하였고 오남현 사장의 승인아래, 본사 자금팀은 무려 3억원을 엔화 선물과 현물에 투자한다. 그리고 엔화대출금도 원화환전을 하지 말도록 조치해놓았다.

“현재 환율은 어때?”

오남현 사장이 입을 먼저 열었다. 김 부장은 바로 보고했다.

“엔화 급등세입니다. 국제 환율시장에서도 달러당 200엔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가다간 1달러당 150엔대의 환율이 유지될 텐데요?”

“외환은행에 있는 100억 엔. 환전하지 마. 일주일은 더 기다려. 그리고, 공장 준공은 어떻게 되어가나?”

“지금 기초공사 하고 있습니다. 80억 엔를 전부 사용하려면 시간이 있으니 환차익을 얻을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럼. 그래야지. 박기범 대리가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줬어. 환율동향 잘 살피고. 그나저나 엔화가 강세라면, 우리는 유리한거 아냐? 미국시장에서 일본차가 덜 팔리면 한국차가 인기일거 아냐?”

일리있는 말이었다. 그 말에 김 부장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럼 현대자동차나 기아산업 주식을 사두라고. 지금은 기아가 산업 합리화인지 폐기화조치인지로 해서 승용차를 못만들지만 결국엔 만들거 아냐?”

오남현은 분위기를 잡으려는 듯 무거운 표정으로 김 부장응을 응시했다.

“한 5천만원 정도, 국내 수출주에 투자하라고. 그러면 조금 벌 수 있겠지.”

김 부장에게 지시를 한 후 오남현 사장은 곧 사장실로 돌아갔다. 직원들 앞에서는 근엄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사장실에 혼자 있게 되자 그는 한숨을 내뱉으며 긴장된 표정으로 서성거렸다.

“박기범 대리. 너만 믿는다. 너만 믿어.”

도쿄에 있는 박기범 대리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뭐 해야할 특별한 일도 없었기에 그는 사무소의 자기 자리에 앉아서 고향으로 보낼 편지를 썼다.

아버지께 한 통, 어머니께 한 통, 그리고 큰 형에게 한 통 이었다. 바로 얼마전 고향으로부터 텔렉스가 날아왔다.

목포에서 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큰 형이 큰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제 그는 삼촌이 된 것이다. 비록 아직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두 살 뒤인 형이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집안의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큰아들 출산과 더불어 81년부터 주식투자를 해 지금까지 천만원 가량을 번 큰 형은 그 돈으로 로얄 프린스를 샀다는 소식이었다.

비록 1500cc급 중형차지만(그렇다. 1985년엔 2000cc가 고급차였다.)그래도 괜찮았다. 아직 교육장 정도만 차를 타고다니니까.

고향으로 보낼 편지를 구상하면서 그는 5년간의 직장생활을 돌아보았다. 5년차 대리. 나이는 이제 꼭 서른이었다. 앞으로 최소한 20년을 더 직장생활을 한다고 가정한다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기만 했다.

어찌보면 지겨운 직장생활일 수도 있지만 그는 5년이나 발을 담근이상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안부편지를 작성하는 동안 본사에서는 텔렉스 한 통이 날아들었다. 황 상무가 조심스레 전송된 텔렉스 용지를 꺼내들자 그 내용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본사 엔화 투자 이익. 총 9천만원말 그대로 였다. 엔화를 투자하여 총 9천만원의 이익을 얻은 것이다. 총 투자원금 3억원. 30%의 이익에 실제 엔화 대출금의 환전을 지연시킴으로서 회사가 얻게 되는 외환차익 또한 수억에 달했다. 박기범 대리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자세한건 투자내역서를 봐야 비로소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자네의 판단 덕에 회사가 9천만 원의 재무투자이익을 봤다는 거지.”

황 상무가 기쁨에 찬 어조로 말했다.

“9천만원이라니. 상당히 큰 돈 아닙니까? 최소한 몇 명 분의 급여충당은 가능하겠군요.”

“그럴테지. 이것 덕분에 자네도 승진가도를 달릴 수 있겠군. 86년이 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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