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박 대리. 수고했어. 지금 확인했어. 외환은행에서 100억 엔이 입금되었다는군. 황영식 이사님은?”
“저랑 같이 있습니다. 남은 서류작업은 임원급들이 해야해서요. 지금 은행측 임원들과 대화중이십니다.”
황 상무는 기쁜 표정으로 서명해야 하는 은행 서류에 서명을 하고 보완해야 할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오 사장님이 기뻐하셔. 일단 조만간 사장님이 전화를 하실거야. 그리 알게. 다만 석유로 갚아나간다는게. 기획실과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원유에서 의도적으로 휘발유나 디젤을 뽑지 않는한 생각보다 적을거야. 그래도 기본적으로 생산되는 휘발유의 양이 있으니 원리금 상환엔 문제가 없겠군.”
“맞습니다. 공장건설에 최소 4년이 걸리나요?”
“그렇지. 어쨌든 수고했어.”
“알겠습니다. 부장님.”
전화를 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자 황 상무는 다 작성해야 할 서류를 다 작성했는지 기쁜 표정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박기범 대리. 우와. 돈을 빌리다니. 그것도 100억 엔 다. 이자도 8%면 다행이야.”
기쁨에 찬 황 상무와 박 대리는 은행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탔다.
“자 가자고. 술이나 한잔 하세. 노 사장한테도 말을 해야겠어. 그 양반 아주 기뻐할거야.”
차를 몰고 요코하마에서 다시 도쿄로 가는 길은 도로가 퇴근시간과 맞물려 엄청나게 막혔지만 개의치 않았다. 도로가 콱 막혀도 황 상무는 이제 본사에서 이사에서 상무로 승진할 기쁨에, 박기범 대리는 대리급에서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휩싸였다.
도쿄사무소로 돌아가니 이미 팩스 한통이 와 있었다. 오남현 사장의 도장이 찍힌 문서가 그대로 팩스로 도착했다. 내용은 본사복귀명령이었다.
-발신 : 무등그룹 본사 오남현 사장-수신 : 무등그룹 도쿄 사무소
제목 : 본사 귀환지시건
1986년 1월 1일자로 본사 자금팀 근무를 명함.
86년 1월 기준으로 황영식 이사는 상무로, 박기범 대리의 경우 승진연차 조정등으로 추후에 승진예정.
간략히 적힌 팩스를 본 황 상무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진짜 상무님이시군요. 축하드립니다.”
박기범 대리의 말을 듣고 나서 순간 그는 성과를 올리고도 승진을 하지 못한 박 대리를 위로하기로 했다.
“이번에 누락이라니. 안됐군. 고생은 자네가 다 했는데.”
“아닙니다. 추후 승진예정이라고 하니까요. 제가 과장으로 승진하면 너무 빠르니까요. 뭐 내년이나 되겠죠.”
“그래. 보통 10년차면 과장이 되니까. 자네는 아직 5년차잖아. 그러니까 대리가 맞아. 너무 걱정은 말아. 어차피 승진은 하게 되어있어. 자네가 올린 공적을 다 알고 계실테니까.”
“그렇군요. 뭐 솔직히 기획실에서 작성한 훌륭한 기획서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죠.”
황 상무는 이번 자신의 승진, 박 대리의 승진누락에 대한 위로, 이번 성공적인 대출에 대한 자축을 하기 위해 노 사장이 운영하는 골목가의 선술집으로 택시를 타고 향했다.
택시가 도착한 후 차에서 내린 둘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이미 손님들이 여러명 들어차 있었고 노 사장 혼자 가게 일을 보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황 상무.”
“노 사장. 나 진짜 상무됐다. 그리고 우리 무등그룹 100억 엔 대출 성공했어.”
“진짜요?”
갑자기 얼굴에 웃음을 띄며 노 사장이 대답했다. 황 상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빈자리로 황 상무와 박 대리 둘을 안내했다.
“맛있게들 들라고. 오뎅탕 만들어줄테니”
황 상무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찾아 그 안에 들어있던 명함을 하나 꺼냈다.
“맞아. 아마미 타카코 기자.”
선술집 안에 위치한 공중전화로 다가가서는 동전을 집어넣고 다이얼을 돌렸다. 황 상무가 통화를 하는 동안 주문한 오뎅탕이 나오자 먹음직스럽게 익은 오뎅을 하나 꺼내 접시에 넣고 박 대리는 조금 잘라 먹었다. 그리고 잔에 술을 따라 그냥 들이켰다.
승진을 염두에 둔 일은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누락이 되었다는 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위로했다. 직장생활 1~2년 할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승진이 될거라고 보았다. 솔직히 남들 가는대로 승진해도 좋다고 봤다.
55년생이니 회사생활 10년차에 과장을 달아도 35살에 과장. 40에 차장. 45살에 부장을 달면 10년은 버틸 수 있고 그 후에 사표를 써도 여생은 편안히 보낼 수 있으니까.
‘하긴. 31살에 과장 달면 너무 빠르지. 대리가 서른인 경우도 많고. 보다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려면 능력있다고 너무 빨리 승진해도 모양새가 좋지 않아. 내 나이 먹고 대리단다고 무능한건 아니니까. 각자 자기 위치에서 일을 하다보면 조금 빨리 승진도 하는거니까.’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전화를 끝마친 황 상무가 의자에 앉았다. 그는 잔에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아마미 타카코라고 일본 기자가 올거야. 인터뷰를 하려고. 대출을 성공시켰으니 말이지.”
1시간 정도 지난 후 문이 열리고 아마미 타카코 기자가 들어왔다. 황 상무를 쳐다보고 미소를 한번 짓고는 바로 황 상무 옆에 앉았다.
“아. 오늘 무슨 특종이 있나요?”
“우리 무등그룹이 100억엔을 빌렸어요. 8%이자에 5년 거치 7년 상환 조건으로요. 물론 원리금 상환은 석유로도 가능합니다.”
“석유라니요?”
아마미 기자의 질문에 황 상무가 답했다.
“우리가 짓는 석유화학단지. 즉 나프타를 추출하기 위한 정제소를 짓는데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인 LPG, 가솔린, 디젤, 케로신등은 모두 한신은행에 원리금 대신 팔아도 되는거요. 국제시세의 75%가격으로.”
“나쁜 조건이군요.”
“어떻게 보면. 좋은 조건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국내시장에 이들 부산물을 팔지 못하거든요.”
박 대리의 말에 아마미 기자가 되물었다.
“어째서요.?”
“이미 국내 석유시장은 유공 등 여러 대기업들이 독과점이거든요. 우리는 애초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나프타만 추출하고 다른 원류 부산물은 해외수출한다는 명목으로 허가를 받았거든요.”
“그럼 그 한신은행은 원리금 대신 받은 석유를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요?”
“한신은행이 킨키 상사 석유부와 연계가 되어있다는군요. 그래서 그 쪽에게 넘기려는 모양입니다.”
박 대리가 영어로 말하자 아마미 타카코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음. 킨키 상사 석유부에 효도 상무가 있어요. 아주 능력있는 사람이지요. 한신은행은 아나 거기와 접촉할 모양인데 아마 잘 되겠죠. 그런 조건이라면 당신네들도 아주 협상을 잘한 셈이군요. 그럼 내일자 신문에 올려도 되나요?”
“신문 마감시간이 언젠데요?”
황 상무의 말에 아마미 기자는 일어나 채비를 하며 말했다.
“이건 스쿠프라고요. 스쿠프(특종)”
문을 열고 황급히 차가운 도쿄의 밤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 작품 후기 ============================
늦게 연재를 해서 죄송합니다.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요새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힘듭니다) 좀 늦었습니다. 죄송해요.
이제 1부가 거의 끝나갑니다. 조만간 2부로 뵐께요. 한 대여섯편만 더 올리면 끝날 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