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아침 7시에 회사로 출근해 책꽃이에 놓인 책을 조사해보니 1985年 自動車 百科事典 이라고 쓴 책이 있었다.
책은 손가락 세 개를 포갤만큼 두꺼웠고 딱딱한 겉표지에 한문으로 써 있어서 다소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막상 페이지를 펼치니 한문으로 가득 차있지도 않았다. 어려운 단어는 풀어쓴 책으로 자동차 기업편, 자동차 용어편, 통계 및 부록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부인 자동차 기업편에는 ‘世界의 自動車産業 -美國, 日本, 유럽이라고 되어있었다. 먼저 일본편을 펼쳤다.
世界의 自動車産業-日本편
1982년 현재 기준으로 세계최대 자동차 생산대국은 일본이다. 매년 1천1백만대의 차를 생산하는 일본은 절반가량인 5백만대 가까이를 수출하고 또 나머지 5백만대를 자국수요로 충당한다.
일본의 자동차 내수시장 규모는 계속 성장하였고 현재는 미국 다음가는 자동차 시장을 자랑한다.
일본의 자동차공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 지난 1971년 통계를 보면 내수 435만대, 수출 135만대로 도합 570만대를 생산한 일본이 1980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1위로 도약한 후에는 1104만대를 생산하고 수출 596만대, 내수508만대를 기록했다.
미국과는 다르게 3개가 아닌 10개 회사가 나누어 시장을 분할한 일본은 시장점유율 순으로 도요타, 닛산이 시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회사이고, 그 밖에 혼다, 이스즈, 미츠비시, 마즈다, 스바루, 스즈키의 8개 대형회사가 있다.
그리고 경차전문인 다이하쓰와 트럭 및 버스 전문인 히노라는 회사도 존재한다.
총 10개의 회사가 차를 생산하는데 도요타와 닛산은 각각의 시장점유율이 20%수준이다. 따라서 두 회사를 제외한 나머지가 60%의 시장을 먹으려고 한다.
그중 그나마 큰 회사는 혼다로 대략 10%를 점유하고 있다. 결국 3사의 시장점유율이 50%인 셈이다. 그만큼 일본시장에서 도요타, 닛산, 혼다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각 회사들에 대해 정리해 놓은 내용을 보았다. 그는 일단 이스즈 자동차는 제외시켰다.
이스즈와 손을 잡은 미국 자동차 회사는 GM으로 바로 현재 대우자동차와 합작관계에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중형차인 로얄 프린스, 로얄 듀크. 고급차인 로얄 살롱 모두 GM의 또다른 자회사인 독일 오펠에서 생산한 오펠 레코드나 오펠 세네터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차이다. 따라서 팔공그룹과 손을 잡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본 것이다.
“이스즈는 아니고.”
중얼거리며 종이에다가 이스즈라는 글자위에 두 줄을 그은 뒤 볼펜을 내려놓고 다른 회사를 찾아보았다. 잠시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일본의 마즈다였다. 이 회사는 1983년에 기아자동차와 자본제휴를 했고 마즈다는 1970년 미국의 포드와 손을 잡았다. GM처럼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포드-마즈다-기아의 삼각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그럼 마즈다도 아니야.”
또 지워나갔다.
“크라이슬러는 어디랑 잡은거지?”
현대자동차는 이미 미쓰비시랑 손을 잡고 엔진을 사와 포니를 만드는 등 그 협력관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미쓰비시 자동차 역시 제외되는 것이었다. 남은 회사는 도요타, 닛산, 혼다, 스즈키, 스바루, 히노, 다이하쓰로 좁혀졌다.
회사 문이 열리면서 황 상무가 들어왔다.
“좋은 아침. 언제 온건가?”
“오늘은 좀 일찍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아 상무님. 팔공이 경차와 같은 차도 들여온다고 했던가요?”
그 말에 황 상무는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박기범 대리에게 말했다.
“아침부터 바로 일 시작인건가? 잠깐만. 숨 좀 돌리고.”
양복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나서 의자에 앉은 황 상무는 본사에서 온 텔렉스 내용을 점검하면서 말했다.
“아니. 아직 국내 자동차 시장이 경차를 소비할 정도로 대중화되지 못했어. 자네도 여기 일본와서 보면 알겠지만 중산층들도 집에 경차가 있는 경우가 있지. 경차를 타는 건 잘 사니까 사는 거야. 생각해 보라고. 가난하면 자동차를 아예 살 수 없어. 풍요로우니까 다양한 목적으로 차를 사는거 아니겠어? 가난한 아프리카 후진국 가봐. 차가진 사람은 다 부자지. 그러니 벤츠같은 큰 차를 타는거 아니야?”
“그 말이 맞는 듯 합니다. 우리는 아직 집에 차 한 대만 있어도 상류층인데 여기는 차가 대중화되었으니 가정주부들이 장보러 갈 때 쓰는 경차도 나름 인기가 있겠군요. 세컨드(Second) 혹은 서드(Third) 카로요.”
그 말에 황 상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자동차라는게 초기에는 고가일 수 밖에 없는거야. 대량생산을 하게 되면 값이 뚝 떨어지거든. 그 단계가 되려면 국민소득이 어느 정도 받쳐주어야 하거든. 가난한 나라에서 어떻게 자동차가 대량생산되겠어. 경차를 팔아먹으려고 해도 수요층이 있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자동차는 아무리 싸게 만든다고 해도 비싸. 기본 원가라는 게 있으니까. 결국 여기 일본처럼 집집마다 차가 있으려면 국민소득도 받쳐주고, 대량생산시스템이 있어야 하는거야. 그래야만 하는거라고.”
자동차 박사가 된 것 마냥 황 상무는 신나게 말을 했다. 그는 침을 삼키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팔공그룹의 생각에 아직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집집마다 차가 두 대는 기본으로 있는, 대학생들도 차를 가지고 다니는게 보편화된 국가로 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나봐. 그들 말로는 88년 올림픽을 개최하면 내수가 50만대로 확대되고 이후에는 내수가 다시 줄어들어 40만대 수준을 유지할거라고 하는군.”
“그렇게나 적어요?”
박기범 대리는 황 상무가 말한 팔공그룹의 자동차 시장 전망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85년. 올해 100만대 등록대수가 95년엔 3백만대. 2000년에 5백만대가 될거라고 하는군. 그렇다면 대중차보다는 고급차, 아니면 대형 트럭과 버스 수요이지 않겠어?”
“혹시 팔공그룹 내부 데이터는 있나요?”
“아니.”
박기범 대리의 말에 황 상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쪽에서 흘러나온 정보야. 거기 장준성이라는 인물이 기획 및 자금총괄과장으로 승진해서 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더라고. 그 친구 말로는 연간 40~50만대 수준의 자동차 시장에서 대다수 서민들이 타고 다니는 소형차나 경차보다는 부유층이 타는 고급대형차, 서민을 위한 대형 버스, 화물트럭이 인기를 끌거라고 하더군. 뭐 어찌보면 당연한 논리지.”
“저희 기획실은 조금 다르게 봤잖아요.”
“그건 그렇지.”
황 상무가 대답했다.
“우리는 10년 이내에 일본처럼 자동차가 보편화된다는 것이 전제였지. 우리 예측이 맞을 거야. 지금은 아주 별 볼일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얼마 안 있으면 자네도 차 가지고, 아마 자동차라는 거 보급이 엄청나게 많아질 거야. 차는 재산이 아니라 신발처럼 필수적인 물건이 되겠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자동차 회사가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보다 더 커질 날도 올 거고.”
“그러길 바래아죠.”
박기범 대리는 짧게 말하고 다시 책상에서 내용을 정리했다. 이미 이스즈와 마즈다는 제외되었다. 남은 회사는 도요타, 닛산, 혼다, 미츠비시, 히노, 스즈키, 스바루, 다이하쓰였다.
‘현대자동차가 미츠비시와 자본제휴를 맺었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미츠비시라고 쓴 글자위에 펜으로 두줄을 그었다. 팔공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방금 전 황 상무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자동차 수요가 늘어난다면 세컨드 혹은 서드 카로서 경차의 수요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팔공의 아이디어는 정반대이므로 이 분야의 차는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어디보자. 경차전문 메이커가 어디라고 나와 있지?’
일본편을 차례로 펼쳐보니 도요타가 가장 먼저 눈에 띄였다.
(1) 도요타(Toyota)
한국사람들에게 있어서 도요타는 아주 친숙한 회사이다. 지난 1960년대 중반 이후 신진자동차와 손을 잡은 후 주은래 4원칙에 의해 국내에서 1972년에 철수한다.
도요타는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으로 1983년 말 현재 전세계 주식시장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회사이며 매출액 4조 8천9백억 엔, 경상이익 4000억 엔, 순이익 2000억 엔이다.
1983년 기준으로 도요타는 세계3위의 자동차 메이커이며 1위는 GM으로 777만대를, 2위는 포드로 5백만대, 3위 도요타는 341만대, 4위는 닛산으로 270만대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랑 손을 잡을까?”
혼자서 중얼거리며 다음 페이지를 살펴보았다. 다른 페이지를 넘겼다. 그는 도요타와 닛산, 혼다는 대형 메이커이고 유명한 회사여서 굳이 경차전문은 아닐거라고 생각했기에 이들 회사와 아까 국내 타 회사들과 제휴를 맺었던 회사는 모두 빼버렸다. 그러자 남아있는 회사는 스바루, 히노였다.
(8) 히노 자동차
히노자동차는 일야(日野)자동차라고도 불린다. 이 회사는 84년 중반. 우리나라의 아세아 자동차와 손을 잡고 트럭 및 버스를 생산하기로 한 회사이다. 원래 이 회사가 트럭과 버스전문 메이커라는 점이 아주 독특하다.
이 회사는 50년대 프랑스의 르노와 손을 잡고 4CV라는 차를 생산한 적이 있다. 아주 저급한 품질의 이 프랑스차는 이렇게 일본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63년에 히노는 히노 코르테사라는 1300cc급 소형차를 만들어 팔았으나 별 재미를 못보고 완전히 버스, 트럭과 같은 상용차부문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기까지 읽자 더 읽을 필요는 없었다. 여기도 이미 제휴를 맺었으니까. 그래서 펜으로 지웠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는 회사는 도요타, 혼다, 닛산이다. 하지만 이들 회사는 승용차 전문이어서 손잡을 가능성은 미흡했다.
혼다는 기술력은 뛰어나도 1985년 10월 초의 시점에서 고급차라고는 혼다 레전드 뿐인데다가 주로 중형차와 소형차 부문에 집중한 탓에 팔공이 수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미 현대가 포니 엑셀을 만들어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말이 나오는 판국에 비슷한 급의 소형차를 수입하는 건 큰 이익이 되지 않을 듯 싶었다.
“상무님.”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적은 메모지를 같이 들었다.
“현존하는 일본 자동차 회사들 가운데서는 팔공과 손을 잡을 회사가 없는 듯 합니다.”
“말이 되나?”
자기 책상으로 다가오는 박기범 대리를 쳐다보았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이미 미츠비시, 마즈다, 이스즈, 히노는 국내 회사들과 손을 잡았거든요. 미츠비시는 현대, 이스즈는 대우, 히노는 아세아, 마즈다는 기아. 주로 자본제휴 식으로 힘을 합치는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인데. 이들 회사의 공통점은 일본 내에서도 세가 약하고 그다지 큰 회사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일본내에서도 뛰어난 경쟁력이 없는 회사거든요.”
황 상무는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일본 내에서도 별 볼일 없는 회사들이 손을 잡았다는 건데. 그렇다면 제대로 된 놈들은 손을 안 잡는다는 거지?”
“뭐 능력이 있으니까요. 돈도 잘 버는데 굳이 손잡으려고 하지는 않겠죠. 남아있는건 스즈키, 다이하쓰 정도인데 이 회사들은 경차 위주라서 팔공과 맞질 않습니다. 결국 남아있는 회사는 없는 셈이지요.”
박기범 대리의 말에 황 상무는 물끄러미 그가 들고 있던 메모지를 들고 쳐다보았다. 자신의 생각에도 마땅한 회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팔공그룹은 어디랑 손을 잡는다는 걸까?’
물끄러미 생각한 황 상무는 팔공그룹의 자동차 산업을 제지할 방법을 고민해보았다.
‘우리도 이런 생각을 할 정도면 팔공도 마찬가지겠는데? 굳이 사전 작업이 없어도 팔공은 그저 실패하겠군.’
황 상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기범 대리에게 말했다.
“좋아. 여기까지만 파악해두자고. 아마 팔공도 어려움을 느낄거야. 내가 본사에 텔렉스를 보내도록 하지. 자넨 한신은행에서 대출이 시행될 때 뭐가 필요할지 미리부터 준비를 좀 해 놓도록.”
“알겠습니다.”
자리로 돌아간 박기범 대리는 바로 은행측에 제출할 서류를 구비하기 위해 나름대로 필요한 데이터를 파일철에서 찾기 시작했다. 한편 서울 본사에서는 텔렉스로 팔공그룹 직원들이 자동차 합작사업을 위해 일본으로 오는 일정표를 구해 급히 일본지사로 보냈다.
“어라? 이게 뭐야? 오늘 오후 5시 비행기로 팔공그룹 사람들이 온다는데?”
“그렇습니까?”
텔렉스 내용을 확인한 황 상무가 큰소리로 말했다.
“지금 시간이 2시니 우리도 바로 가야겠어. 이미 도쿄에 팔공그룹 사무소가 있다는 말인데?”
“여지껏 왜 못봤죠?”
“아마 우리가 놓쳤을 거야. 어쨌거나 일단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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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 자동차 기업의 재무제표, 생산대수 등은 실제 당시 신문데이터를 찾아가면서 조사하였습니다.
오펠 레코드 : GM의 독일 자회사인 오펠이 생산한 중형승용차오펠 세네터 : 오펠의 고급승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