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1983年 1984年 1985年(E) 1986年(E)매출액 5,250 6,300 7,750 9,222순이익 202 240 280 310매출액증가율 N/A 20% 23% 19%순이익증가율N/A 18% 16% 11% 그리고 본사에 요청해서 일본어로 번역한 2개년치 재무제표를 첨부했다. 서류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자 바로 서류를 들고 회사 밖으로 나갔다.
그의 행선지는 다이산 은행이었다.
다이산 은행에 도착해서 기업뱅킹 창구에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만났던 담당자를 다시 만났다. 그에게 서류를 건넸다.
“산업은행한테는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물론 산업은행도 중요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 다 없이 독자적인 능력으로 당신네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고요.”
서류를 대충 읽으면서 그 은행원이 말했다.
“솔직히 당신네 회사가 융자를 받을거라고는 생각을 아예 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다른 은행을 알아보거나 방법을 달리하세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당신네 황 상무라는 사람도 왔고 당신도 계속 오긴 하지만 우리 다이산 은행은 당신네들과는 별로 거래를 하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일본 내 은행들 중에서 당신들에게 차입을 해줄 은행은 없습니다. 설령 차입을 한다고 해도 별 효험이 없을 가능성도 있죠.”
그 말에 박기범 대리는 눈을 살짝 찡그렸다.
“그건 무슨 소리죠?”
은행원은 이마를 살짝 긁으면서 박기범 대리의 질문에 답했다.
“당신네들이 돈을 빌린다 치죠. 그럼 그 돈을 한국 본사로 송금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대장성이 금지를 하면 어떻게 할거요? 그러면 정작 돈을 빌리고도 쓰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말입니다. 그 땐 어떻하려고요?”
“아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우리나라야 개인이 달러를 가지고 있으면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체포되지만 여긴 아닐 테고요. 우리는 국가적 차원에서 외환의 국외반출을 엄격하게 금하는 시대착오적인 멍청한 정책을 쓰지만 여긴 아니지 않아요?”
“봐요.”
은행원은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있다가 자세를 바로 잡았다.
“다 맞습니다. 이 나라가 지금은 아무리 자유경제체제를 도입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장성의 입김이 강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건 대장성 역시 우려를 하고 있어서죠.”
“무슨 우려요.”
“생각해봐요. 지난 1981년에 자동차 문제로 미국과 일본간에 마찰이 있었죠. 그 결과 그 해 대미 자동차 자율수출규제를 통해 연간 168만대만 팔 수 있었답니다. 당연히 일본 자동차 업계는 두 가지 해법이 있었죠.”
그 은행원이 하는 말의 의도를 잘 몰랐지만 일단 박기범 대리는 가만히 듣기로 했다.
“첫째는 고급차를 만들어 값을 비싸게 받는 것이고, 둘째는 미국에 현지공장을 지으면 됩니다. 그러면 수출규제를 피하니까요. 그래서 1982년에 혼다자동차가 미국 오하이오 주 메리스빌에 현지 생산 공장을 지은 거죠. 대장성은 이걸 우려합니다. 일본의 일자리가 이동할 가능성이죠. 그런 점 때문에 급격한 자본유출을 우려하는 대장성이 당신네들이 돈을 마음대로 빼 가는걸 허락할까요?”
이 말도 아주 엉터리는 아닌 듯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돈을 대출해주신다는 겁니까? 그래서 뭐 어쩌라는 소리요. 대체.”
“결론적으로 말해서 대출 불가입니다. 산업은행의 지불보증이 없다면 안 됩니다.”
박기범 대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행문을 나서면서 그는 투덜거렸다.
“아. 저 망할놈. 싫다면 그냥 싫다고 하지. 혼다자동차 미국공장이 오하이오에 있던 뉴저지에 있던 알게 뭐야.”
투덜거린 박기범 대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회사에 돌아오자 황영식 상무가 그를 맞이했다.
“좀 어때?”
“다이산은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아예 빌려주기 싫은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대놓고 말을 못하니 혼다가 어떠네 대미 수출규제가 어떻네 헛소리나 찍찍 갈겨대고 있으니까요.”
가방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선풍기를 앞으로 끌어당기며 더위를 다소 식히려 하자 황 상무가 말했다.
“은행에서 뭐 들은 건 없나?”
“차라리 사무라이 본드 쪽으로 선회를 하는 게 어떨까요?”
“그건 안돼.”
황 상무는 정색을 하며 딱 잘라 말했다.
“채권발행은 장기차입금으로 되는데다가 발행비용도 있잖아. 그리고 사무라이 본드는 엔화로 빌리는 건데 ”
“상무님. 채권으로 가면 우리 경영전략에 맞는 장기투자를 하는데 돈을 충분히 댈 수 있거든요.”
“채권이라. 채권.”
황 상무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일단 은행 몇군데 더 알아봐. 올해 말까지 안되면 86년엔 본드로 무조건 방향 선회하고. 우리가 다이산 하나를 접촉한 거야. 자네 여기 와서 산은에게 지불보증요청하고 다이산을 접촉한 게 전부야. 일본에 은행은 많아.”
“맞습니다. 하지만 다이산은 중형 은행 급인데도 그렇게 반대하는데 대형은행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급을 낮춰서 소형은행으로 가면 대출여력이 안될 테고요. 그나마 다이산을 접촉한 건, 대만의 전자회사가 다이산으로부터 150억 엔 엔화차입을 한 전례 때문에 접촉을 한 것이니까요.”
“아. 맞다.”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 듯 의자에서 일어난 황 상무는 말했다.
“2년 전에 한일 경협자금 관련하여 자네가 큰 성과를 냈었지. 그 때 접촉했던 일본측 인사 기억나나?”
야마시카 통산국장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기억납니다. 상무님 덕분에 접촉을 하지 않았습니까? 야마시카 통산국장 말씀이시죠?”
“그렇지. 그 친구 지금 통산국장 그만두고 미나토 특수강 감사로 가 있어. 감사인데도 아주 열정적으로 회사 일에 참여하는 모양이더군. 최근 미국 NASA에 우주왕복선 제작용 특수강을 공급하고, 미국 철강회사들한테 특허관련해서 아주 잘나가나 보더라고. 그 친구가 감사로 가고 나서 미나토 특수강의 주가가 80%나 뛰었더라고.”
박기범 대리의 책상에 걸터앉은 황 상무가 계속 말을 이었다.
“미나토 특수강과 접촉해보면 어떨까? 거기도 은행을 끼고 있으니 접촉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상무님. 같이 가시죠.”
“그럴까? 약속을 잡도록 하지.”
말이 끝나자마자 황 상무는 전화를 바로 걸었다. 미나토 특수강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 어렵사리 야마시카 감사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어. 나 황영식이야. 잘 지냈어?”
“한국에서 전화를 거는건가? 이제 난 통산국장이 아니라 미나토 특수강 감사에 불과해. 청탁이라면 사양하겠어.”
“청탁아니야. 나 도쿄에 있어. 한번 만나보려고 해. 그 때 같이 있던 그 젊은 친구도 여기 왔거든. 우리가 식사나 한번 대접하지. 내일 점심은 시간이 되나?”
“좋아. 12시부터 1시까지가 점심시간이니 맞춰서 오도록 해. 아. 그리고 웬만하면 택시로 와. 우리회사 주차장은 항상 꽉 차서 말이야. 지하주차장도 다 차거든.”
약속일정을 확인하고나서 전화를 끊었다.
“내일 가도록 하지. 내일 점심에 가자고.”
“역시 황 상무님이십니다. 상무님 덕분에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듯 싶습니다.”
박기범 대리가 감탄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무슨 소리야. 솔직히 일제시대때 산 사람들 치고 그 정도 인맥 없는 사람이 있던가? 자주 연락하고 잘만 활용하면 어떻게든 얻게 되어있어. 내일은 미나토 특수강으로 가서 한번 알아보자.”
“알겠습니다.”
황 상무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마저 처리해야 할 일을 했다.
“아. 본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재무투자방안에 대해서 한번 검토해보라는군. 필요하다고 말이야. 뭐 당장 할 것도 아니고 자본시장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기에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미래를 생각한다면 큰 줄기는 필요해.”
“언제까지 입니까?”
“기간에 대해서는 뭐 언제까지라고 딱히 정해진건 없지만 말야. 충분히 자료를 찾고 2~3주 여유 줄테니 해봐. 여유자금이 있다고 할 때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할지 큰 틀을 정리해 놓는 거니까. 물론 몇 년 지나면 다 바뀌겠지.”
다시 자리로 돌아가면서 황 상무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차근차근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러다가 투자론 교과서를 그대로 베끼는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그럼 안되는거지.”
박기범 대리는 메모지를 꺼내 대충 어떻게 기획안을 짤지 고민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