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같은 시간. 서울의 은행감독원 8층 기업금융국 국장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전화를 받은 사람은 2년 전 재무부 은행국장이었던 최천식이었다.
이제 은행감독원으로 발령받은 그는 막강한 재무부 은행국장의 권한 대신 좌천되다시피 쫓겨온 터라 다소 불쾌한 표정으로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전화벨 소리를 듣고 수화기를 집어든 그는 힘없는 소리로 대답했다.
“여보세요. 은행감독원 기업금융국 최천식 국장입니다.”
“국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저 오연세입니다. 은행감독원은 어떠신가요?”
“오. 오연세군인가? 나야 잘 지내지. 은행감독원이 별로 할 일은 없어. 재무부에 비하면 아주 편하지만 재무부 시절처럼 누구하나 명절 때 떡값을 주거나 내 생일에 로얄프린스 한대 안사줘. 나 말고 시험쳐서 올라온 국장들은 아직도 버스타고 다녀. 집도 18평이야. 재무부 국장이 좋았지.”
그는 그동안 은행감독원 국장으로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서러움이 쌓였던지 한번에 다 토해냈다. 오연세 국장은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래도 시간여유가 있으시니 도쿄에 한번 오시죠.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일본은행들과 관련하여 선진국의 은행감독사례를 시찰하시겠다고 하면 되겠죠. 한번 들르셔서 도쿄에 있는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에 머무르셔야죠. 그동안 제가 신세진 것도 있어서요. 그리고 아드님께서도 워크맨 필요하지 않습니까?”
“음. 좋아. 여권은 아직 유효하니 내 바로 갈 수 있으면 가야겠군. 그래 거긴 어떤가? 상공부보다야 낫지?”
“물론입니다. 비교적 편하게 있는데, 다만 국내 기업들이 여기서는 별로 접대를 안하고 선물도 없습니다. 아마 일본지사를 유지하기에도 급급해서 인 듯합니다. 아. 참. 무등그룹이 일본에서 해외차입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산은이 지불보증을 해야 차입이 가능한데 무등그룹이 아주 미쳤나봅니다. 모가지를 뻣뻣이 세우고 아주 관료에게 큰소리를 치는게, 관료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입니다. 참. 나라꼴이 어떻게 돼가는 건지 원.”
“그런가? 그래 알았어. 내가 어떻게 해보지. 자세하게 적어서 팩스로 보내게.”
최천식 국장은 전화를 끊고 오연세 국장 말대로 도쿄에 한번 가기로 했다. 잠시 뒤 팩스가 날아오자 그는 내용을 확인한 후 메모지를 한 장 꺼내들고 인터폰으로 부하직원에게 연락했다.
“나다. 신문사에 연락잡게. 특별기고문을 하나 써야겠어.”
다음날 아침 회사로 출근한 박기범 대리는 특급우편으로 배달된 한국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뒤늦게 회사에 도착한 같이 신문을 응시하던 황 상무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신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特別寄稿-기업들의 무분별한 해외차입](특별기고)崔喘息 銀行監督院 局長 (최천식 은행감독원 국장)
약력
-1928年 大邱 出生 (대구 출생)
-1953年 서울大學校 經營學科 卒業(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1954年 財務部(재무부)
-1971年 財務部 企業金融局(기업금융국) 제 2과장-1978年 財務部 企業金融局 局長 (국장)-1979年 財務部 銀行局 局長 (은행국 국장)-1984年 銀行監督院 企業金融 局長 (은행감독원 기업금융 국장)최근 들어서 각 企業(기업)들이 해외차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다. 海外에서 돈을 빌린다는 것은 國內보다 어렵고, 그러한 이유로 해외차입은 그 기업의 대외신인도가 높다는 것을 나타내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이어지는 企業들의 해외차입은 銀行監督院(은행감독원)의 입장에서는 위험하다고 판단된다.
1962년 經濟開發(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經濟發展(경제발전) 방식은 철저하게 官(관) 주도로 이어졌다.
따라서 기업들이 외국의 巨大資本(거대자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정부가 철저하게 外換(외환) 및 자금을 통제해야 했고 이러한 이유로 財務部와 商工部의 감독이 필요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부서는 기업들의 過剩投資(과잉투자)를 막고자 企業經營(기업경영)을 지도하여 무분별하게 특정사업에 기업들이 과도하게 투자를 하는 것을 견제한다.
혹자는 이게 말이 되느냐? 정부가 무슨 능력으로 過剩投資有無를 판단하느냐 하지만, 철저하게 經濟(경제) 및 産業(산업)현황을 분석한 정부부처의 현명한 판단덕에 이런 조치를 시행하는 것이다.
물론 항상 정부가 맞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父母(부모)가 항상 옳은 말만 하지 않는다 해서 자식이 부모 말을 무시하는 건 인간된 도리가 아니듯이 기업도 마찬가지 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차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그 이유를 한번 보도록 하자.
첫째, 해외차입이 성공리에 이루어지게 되면 財務部(재무부)와 商工部(상공부)의 기업지도가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현재까지 財務部(재무부)와 商工部(상공부)가 企業(기업)을 지도할 수 있던 까닭은 국내 銀行(은행)이 모두 財務部 산하에 있기 때문이다.
民間銀行(민간은행)이라 해도 國策銀行(국책은행)의 성격을 띄고 財務部 銀行局이 다 통제를 했고, 부채비율이 높은 국내기업으로서는 財務部의 산업지도정책에 철저히 부응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해외차입으로 외국은행이 국내기업에게 돈을 빌려준다면, 재무부는 기업지도를 할 수 없다. 재무부는 外國銀行(외국은행)을 통제할 수 없어서이다.
이럴 경우, 외국자본의 힘을 등에 업고 기업이 사세확장을 위해 투자를 한다고 할 때, 그 투자가 과잉투자로 변질되거나, 혹은 상공부가 주도하는 産業政策에 따르지 않고 회사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투자로 인해 國民經濟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도 정부는 두 손 들게 된다.
父母(부모)는 子息(자식)이 잘못된 길을 갈 때, 타이르거나 매를 든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다. 기업정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때, 국민전체를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에서 정부는 기업을 통제해야 한다.
헌데 外國資本(외국자본)을 참여시킨다면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이 되어 韓國經濟(한국경제)를 파국으로 이끈다.
둘째, 피땀 어린 국민의 돈이 외국으로 나간다. 美國(미국)이나 日本(일본)과 같은 금융선진국에서 돈을 빌리게 되면, 그에 대한 이자를 지급해야 하고 자연히 그 이자는 외국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잔혹한 압제로부터 해방된지 고작 40년.
이 상황에서 당장 이자가 싸게 먹힌다고 일본에 가서 돈을 빌리느라 국내 굴지 大企業(대기업)의 전무급 임원이 일본의 은행 사원급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은 진정으로 애국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런데 돈을 빌려 이자까지 바치는 모습은 마치 日帝治下(일제치하), 日本(일본)에게 앞다투어 헌금을 바치던 民族(민족)반역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국내 이자가 비싸다는 점은 정부관료 보두 다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비싼 이자라고 해도 그 이자는 국내은행을 통해 국내 저축예금자들에게 또한 높은 예금이자로 환원된다. 하지만 해외차입을 하게 되면 아무리 싸다고 해도 이자가 해외로 줄줄 새나가게 된다.
우리는 피땀 흘려 돈을 벌고 日本人들은 가만히 앉아서 돈을 빌려주고 그 이자를 챙겨가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다면 愛國市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一國의 金融政策(금융정책)을 감독하는 銀行監督院 국장으로서, 前 財務部 官僚(전 재부무 관료)로서 비통한 심정으로 현 상황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여기까지 읽고 난 후 박기범 대리는 신문을 구겨버렸다.
“상무님.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습니까? 관이 기업을 통제하다니. 지금 미국과 일본은 기업에게 부여된 규제를 풀고,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며 각 경제주체들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필요하다면 돈을 어디서든 빌려야 하며, 정부가 과잉투자 운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철저한 통제경제를 꿈꾸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말을 신문에서 할 수 있을지.”
“그게 우리나라 관료들이지. 결국 기업은 5공화국과 관료집단의 먹이인 셈이야. 자네도 알잖아. 재계 7위의 국제그룹을 한 번에 날려버린 것. 도저히 자유 시장 경제체제를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한심하다는 듯 신문을 응시하면서 황 상무가 말했다. 어제 박기범 대리가 산은에게 화를 낸 점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했다고 맞장구를 치기도 했으니까.
“산업은행에게도 제가 화를 냈으니 거기와 접촉하는 것은 무리일 듯 해요. 일단은 저희 단독으로 은행들과 교섭을 해야겠습니다.”
“그게 가능할까? 일단 우리는 신용도가 낮으니 힘이 없다는 건 자네도 알 테고.”
“그렇다 해도 접촉을 해야겠습니다. 향후 우리 회사의 미래를 생각한 다면요. 그리고 은행들도 우리의 미래가치를 가지고 설득해야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박기범 대리는 자기 책상에 앉아 은행 측에 제시할 서류를 자기 나름대로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