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한편 이 고급 요정의 다른 별실에서는 팔공그룹 자금부 부장과 자금조달과 계장인 장준성이 앉아있었고 그들의 맞은편엔 재무부 은행국장 최천식과 산업은행 김준엽 차장, 그리고 상공부 기업국 오연세 국장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오늘 상공부로 전화가 왔는데 일본에서 옵서버 자격으로 통산대신 한 사람이 파견 온다는군요.”
상공부 오연세 국장이 배가 고팠던지 안주를 게걸스럽게 집어먹으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통산성이 왜 개입하지? 한일 경협차관 40억 달러는 한일 국교정상회담의 논제라 대장성이나 아니면 일은(일본은행)이 개입할 문제인데.”
의외라는 듯이 최천식 재무부 은행국장이 대답했다.
“거기에 더해서 자금의 배분에 관한 문제는 내부문제야. 외부에서 개입할 사안이 되지는 못하지.”
“이런 경우가 흔치는 않았나 봅니다.”
장준성이 말했다.
“그럼요.”
오 국장은 한과 한 개를 집어 들었다.
“통산성이 여기에 낄 필요는 없어요. 왜냐면 그들이 참여한다면 괜히 트집을 잡을게 뻔하거든. 이건 왜 이렇게 주느냐. 특혜융자가 너무 티가 난다. 뭐 별의별 생트집을 잡기 일쑤요.”
“혹시 옵서버 때문에 우리 팔공그룹이 특혜융자를 못 받는다 하는 사태는 없겠죠.”
팔공그룹 자금부장의 말에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산업은행 차장이 대답했다.
“어차피 자금을 받게 되면 상공부와 재무부가 어느 기업군에 자금을 배정할지를 정하고, 그 지침대로 산업은행이 지급을 해주는 것 아닙니까? 재무부가 준다고 해도 결국은 시중은행에게 지시를 내리는 거고. 그게 아니면 산업은행이 주는 것이죠. 그것도 다 상공부와 재무부의 지침대로 움직이는 겁니다. 게다가 민정당이 세워지면서 정치자금도 엄청나게 필요한데, 평소 저희 산은을 챙겨주시는 팔공그룹에게 진 빚이 있잖아요. 게다가 민정당 창당 자금으로 수십억을 내신 팔공그룹에게 우리 산업은행은 팔공그룹에 지원을 해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아. 제 아내가 이번에 새로 이사간 집을 아주 좋아하더군요. 게다가 소니 컬러TV도요.”
“그렇게 된다면 좋지만, 저는 조금 마음에 걸립니다. 예정에도 없던 통산국장의 내한은 뭔가 수상쩍지요.”
장준성은 조금 아는 체를 했다.
“물론 아주 이례적인 일이지. 통산국장정도가 오려면 대개의 경우 한일간에 합작 사업이라든가, 정상회담때 경제 및 통상부문 업무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거든. 그래서 내 생각에 이건 그저 보여주기 용이지. 내부사정은 그 쪽이 잘 모르거든. 그러니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서 감독만 한다든거야. 옵서버라는게 그거 아닐까?”
최 국장의 말에 상공부 오 국장이 입을 열었다.
“이건 다분히 정치적인 거니까. 아마 내 판단이 맞다면 통산국장을 파견 보낸건 통산성이나 대장성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나카소네 혹은 그 쪽 총리라인에서 결정한 문제인 듯 싶어요. 미국과도 정상회담을 해야 하는 일본입장에서는 아시아의 맹주로서 뭔가를 보여주어야 미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거든. 가뜩이나 미일통상마찰이 심각한 지경인데 이렇게라도 해야 모양새가 좋지요. 미일안보. 경제 안보면에서 제 역할을 한다. 뭐 이런 거죠.”
정치적인 제스처라는 것에 방점을 두면서 오 국장은 별거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듣자하니 무등그룹은 수출위주로 커온 회사라 일본쪽에도 선이 닿아있다고 들었거든요. 그기 자금부 직원이 말하기를 자기네들은 통산성이나 대장성만 취급한다고 콧대를 높인 적이 있었죠.”
그는 3년 전 처음으로 박기범을 대면했을 때를 떠올렸다.
“핫핫. 그 무등 그룹 아주 배짱이 좋구만. 우리가 제대로 상대를 안 해주니까 그런 식으로 말을 하나본데. 마치 존 드로리언(John DeLorean. 1925~2005. 미국의 기업가. 40세의 나이에 GM 시보레 디비전 사장에 오름)처럼 말하는구먼. 내가 GM을 해고시켰다고 말이지.”
오연세 상공부 국장은 호탕하게 웃었으나 장준성은 조금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정말 괜찮겠죠?”
“걱정 말래두. 통산성국장이 대단한 존재임에는 틀림없어.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야. 일본이 아니거든. 여기는 지네들 나와바리가 아니야. 팔공그룹은 아무런 걱정이 없을거요.”
국장은 잔에다 술을 따랐다.
“거. 생면부지의 통산국장이란 자에게 괜히 우리가 휘둘렸군.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야.”
그는 잔을 들었다. 모두들 잔을 높이 들고 잔을 서로 맞부딫혔다.
“자. 팔공그룹과 상공부, 재무부, 산업은행의 상호발전을 위하여. 건배.”
이 말에 모두들 건배를 외치고 술을 쭉 들이켰다.
화요일 아침. 재무부 청사 은행국. 송영찬 사무관은 자기 책상에 놓인 서류를 훑어보았다. 경협자금과 관련한 서류였다. 토요일날 박기범 계장과 약속을 한게 있었던 이유로 자신이 읽던 서류를 쭉 읽어내려갔다.
여러 페이지를 넘겨가며 읽던 중 무등그룹과 관련한 내용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무등그룹 팔공그룹 남산그룹수출비중 71% 44% 68%매출액 4,200억 3,400억 4,600억순이익 194억 187억 202억자산 3,312억 6,600억 7,252억부채 1,656억 4,968억 4,140억자본 1,656억 1,632억 3,112억ROE 11.7% 11.4% 6.5%부채비율 100% 304% 133%합격여부 불가능 가능 가능
‘어차피 ROE로 따지면 무등과 팔공이 엇비슷하고, 남산이 좀 늦은 편이군. 물론 부채비율로 치면 무등과 남산이 가장 우량한데. 솔직히 팔공의 부채비율 304%는 너무 심하다. 근데 왜 무등은 불가능이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그는 서류를 잠시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혹시 기범이 말이 맞는 건가? 근데 팔공을 선정할 이유가 없잖아. 내가 은행입장이어도 무등에게 주겠다.’
서류를 더 넘겨 읽던 그는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기재가 된 재무정보를 보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부채 부분을 눈여겨 보았다.
[요약재무정보-부채(단위 백만원)]
과목 무등그룹 팔공그룹 남산그룹
부채
[유동부채] 157,847 486,431 394,618 매입/기타채무 128,574 154,289 321,435단기차입금 15,275 305,500 38,188당기법인부채 6,378 8,353 20,867파생상품부채 2 - 5기타유동부채 5,792 17,376 14,480하자보수충당 1,826 913 4,565
[비유동부채] 7,767 10,366 19,418기타금융 1,175 2,300 2,938기타비유동 108 90 270퇴직급여 6,484 7,976 16,210부채총계 165,614 496,797 414,035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최천식 은행국장 자리로 걸어갔다.
“저. 국장님.”
“자넨가? 무슨 일로 온거지?”
가죽 소파에 몸을 깊게 들이밀며 국장이 입을 열었다.
“좀 이상해서요.”
“뭐가 이상해? 자네가 잘 모르는 것이겠지. 뭔지 애기나 들어보자고.”
송 사무관이 서류를 건네자 그것을 받아든 최 국장이 서류를 훑어보았다.
“뭐 이상할 거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국장님. 정말로 모르시겠습니까? 이 표를 보시면 무등그룹이 가장 우량한 편인데도 자금융자가 불가능하다는게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부채비율도 100%에 불과하고요. 팔공그룹은 단기차입금이 너무 높습니다. 가장 규모가 큰 남산그룹보다도 많아요. 이건 좀 문제가 있습니다. 단기차입금이 300억이나 되면 이자가 10%라고만 해도 30억이나 됩니다.”
“그래서? 이자를 30억 정도 줄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재무제표에 기재된 단기차입금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처럼 대답을 했다. 하지만 송영찬 사무관은 의문이 가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좀 이해가 안가요. 수출비중도 그렇고. 여러모로 좋은 회사는 팔공보다는 무등이니까요.”
“재무상태로만 보면 그렇지. 그런데 세상일이 그렇게만 되는게 아니야. 생각해봐. 여기서 말하긴 그렇지만 무등그룹은 늘 정부정책에 비협조적이야.”
무등그룹에 대해 아주 차가운 시선이었다.
“봐. 자넨 이제 막 사무관이 되었으니 잘 모르는거야. 가만히 생각해보게. 경제란게 뭐야? 경제기획원이 성장률을 제시하면 재무부와 상공부가 그 달성을 위해 산업 및 재정 금융정책을 제시하고 각 기업들은 열심히 따라오는 거라고. 즉 관(官)이 이리로 가자고 하면 민(民)은 따라오는거야.”
그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금제 지포 라이터를 꺼내 매만졌다.
“나라에서 하는 일과 관료에게 늘 협조적이어야지. 자네도 조만간 알겠지만 명절이 되면 선물도 바치고, 인허가를 우리가 내주니 뭔가 예의를 보여야지. 헌데 무등은 그렇지가 않아요.”
그는 뒷짐을 지고 짐짓 무겁게 무게를 잡았다. 관료답게 코를 살짝 들고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관료에게 선물도 주지 않고, 가끔은 관료들을 위해 집이나 자동차를 선물해야 하는게 당연한데, 그런 맛이 없어요. 우리 같은 관료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데 기업은 당연히 그 보답을 해야지. 옛날 같으면 사농공상(士農工商) 중에서 가장 미천한 족속들이지.”
최천식 국장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에게 있어서 기업과 은행은 아주 천한 존재였다. 이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관료들이 하자는 대로 밀고나가는 관료위주의 국가.
그리고 관료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자기들 마음대로 경제정책을 이끌고 마음에 드는 기업에게 특혜를 제공해주기도 하는 그런 국가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 관료에게 있어서 기업과 은행은 자기들의 이론이 맞는지 시험하기 위해 이용하는 도구이고, 감독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료들의 입장에서는 기업들이 망한다 해도 경제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여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나라를 이끄는 기업인들이 테러등으로 몰살당한다고 해도 한국경제는 아무 이상이 없지만 관료집단이 몰살당하면 한국은 붕괴할 것이라는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최천식 은행국장의 말에 진저리를 느낀 그는 조용히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는 그 서류를 검토하는 척 하며 복도를 건너가 등사실로 향했다.
“김 주사님. 이 문서 등사좀 해주세요. 제가 전철안에서 읽을거라서요.”
“알겠어요. 바로 하지요. 10분 뒤에 찾아오시오.”
등사담당 직원이 말하자 송영찬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공중전화 박스로 걸어들어가 지갑에서 토요일날 받은 박기범 계장의 명함을 빼들었다.
“여보세요. 예. 저. 무등그룹인가요? 경영지원실 박기범 계장 부탁합니다.”
잠시 뒤 박기범 계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감사합니다. 박기범 계장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야. 송영찬. 니가 말한대로 확인을 해봤는데, 무등그룹은 해당사항에 없다. 그 문서 내가 복사하고 있어. 만나서 줄 수 있지만 서로 시간대가 맞지 않잖아. 팩스는 되나? 팩스로 보내면 되지?”
“팩스라. 좋지. 거기 명함에 팩스 번호가 아마 있을거야. 보내면 바로 전화 좀 줘. 그래야 내가 확인을 하지. 확인한 다음엔 내가 어떻게 하지? 재무부로 전화를 걸면 되지?”
“그렇게 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은 박기범 계장은 다시 전화가 올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갑갑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전화를 끊고 다시 등사실로 향한 송영찬은 등사담당 직원으로부터 서류 복사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팩스로 보내기 위해 그는 재무부 본관 1층에 위치한 우체국으로 뛰어갔다.
“팩스 보낼 수 있나요?”
우체국으로 뛰어들어가면서 말하자 우체국 직원이 답했다.
“네. 여기서 보내시면 됩니다. 어디로 보낼지 알려주세요.”
친절하게 하지만 사무적으로 말한 우체국직원에게 무등그룹의 팩스번호를 알려주자 직원은 기계적으로 종이를 넣고 팩스를 전송했다.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바로 전송이 되었다고 우체국 직원은 말했다. 원본 서류를 들고 그는 숨을 몰아쉬며 공중전화로 다시 향했다.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전화를 받았다.
“네. 감사합니다. 무등그룹 경영지원실 자금부입니다.”
자금부 대표전화를 여직원이 받고나서 그녀는 박기범 계장을 불렀다.
“계장님. 전화입니다.”
박계장은 의자에서 용수철 튕기듯 일어나 바로 여직원자리로 달려왔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박기범 계장입니다.”
“나야. 송영찬. 지금 보냈어.”
“그래. 고마워.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잊지 않으마.”
그는 곧바로 경영지원실 입구 근처에 있는 팩스 앞으로 뛰어갔다. 커다란 복사기 옆에 나란히 놓인 팩시밀리에서 서류가 언제쯤 올까 가만히 기다렸다.
2분 정도 지나자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팩스로 서류가 전송되고 있었다. 고작 2분이지만 그에게는 그 2분이 2시간 정도 되는 것 같아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서류가 도착하고 그것을 펼쳐보는 순간 그는 숨이 막혔다.
서류 맨 아래에 써있는 불가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는 서류를 보고 바로 윗선에 보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단 김 과장에게 달려갔다.
“과장님. 재무부 내부문건입니다. 경협자금출처와 관련해서 저희회사가 누락된게 확실합니다.”
서류를 죽 읽어보던 김 과장이 말했다.
“이 친구야. 자네 계장인데도 아직도 말이 어눌하군. 누락이 아니라 배제가 된거잖아. 누락되었다면 아예 여기 없어야 하는거야.”
타이르듯 말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랑 같이 부장님께 보고 드리러 가지.”
황 부장은 파티션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부장자리로 향한 김 과장은 서류를 황 부장에게 건넸다.
“박기범 계장이 알아낸 정보라는데, 일단 재무부에서 융자불가판정을 내린 듯 합니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전무님께 보고는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팩스용지를 죽 읽어보던 황 부장은 기분 좋다는 듯 표정을 씰룩거렸다.
“야. 팔공그룹 완전 쓰레기네 이거. 김 과장. 이거 봐. 단기차입금이 우리의 몇배야? 그리고 여기 앞장에 있는 것처럼 부채비율은 300%가 넘어. 이건 완전 자본잠식 아니야?”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남산 그룹은 퇴직급여충당부채가 많아. 직원 숫자는 우리의 2.5배인데 너무 많이 쌓은거 아니야?”
“글쎄요. 뭐 그거야 그 회사 사정이니. 어쨌든 팔공그룹이 그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습니다. 부채비율이 높다손 치더라도 그게 퇴직급여충당부채라든가 매입채무라면 할 수 없습니다. 제조기업은 언제나 매입채무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매입채무와 퇴직급여충당부채는 기업으로서 피할 수 없는 채무조건 아닙니까? 어차피 매입채무는 우리가 원자재 산 돈을 주어야 하는 것이고, 퇴직급여는 말 그대로 퇴직금을 쌓는 거니까 많다고 반드시 나쁜건 아닐겁니다.”
“맞아. 헌데 여기는 팔공을 보라고. 너무 심각해. 이렇게 심각한 재정 상태를 가져서 정부가 융자를 주는 건가? 우리 무등은 우량하니까 특혜융자는 없다 이런 거야?”
무등그룹 팔공그룹 남산그룹수출비중 71% 44% 68%매출액 4,200억 3,400억 4,600억순이익 194억 187억 202억자산 3,312억 6,600억 7,252억부채 1,656억 4,968억 4,140억자본 1,656억 1,632억 3,112억ROE 11.7% 11.4% 6.5%부채비율 100% 304% 133%합격여부 불가능 가능 가능황 부장은 빨간색 색연필로 무등그룹의 합격여부를 표시한 부분에 동그라미를 작게 그렸다. 전무님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근데 이거 누가 얻은거야? 재무부 자료 같은데 대외비 아닌가? 맞어?”
“그건 제가 얻었습니다. 재무부 은행국에 친구가 있어서요.”
박기범 계장이 말하자 황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최 전무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전무님 방으로 향했다.
“수고했어. 좋은 데이터를 가져오는 걸 보니 기범 계장. 아주 능력이 있구나. 난 몰랐는데 말야.”
김 과장이 칭찬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 날 오전. 회사로 출근한 장준성은 부장이 술집에 지갑을 놓고 왔다고 해서 도로 가져가러 술집으로 택시를 타고 향하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장준성은 주인이 보관하고 있는 지갑을 찾아 확인을 해보았다.
“감사합니다. 저희 부장님 지갑이 맞습니다.”
“잘됐군요.”
“요새 장사 잘 되시죠.”
바로 향하나 조금 있다가 출발하나 별 차이가 없었기에 숨좀 돌리고 회사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40대 후반의 여주인은 카운터에 설치된 소파에 앉아 대답했다.
“엊그제에는 외국손님들도 오셔서 좋았어요. 일본에서 온 사람인데, 무등그룹 사장님이 동행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장준성은 긴장한 눈빛으로 주인에게 다가갔다.
“외국손님?”
“네. 일본사람인 듯 한데 나름 무등그룹의 높으신 분들이 오셔서 식사를 하더라고요.”
이건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한 그는 다짜고짜 캐묻기 시작했다.
“그럼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는.”
“거기까지는 몰라요. 나도 알 도리가 없지. 손님들의 대화를 함부로 듣게 되면 쓰나.”
여기까지만 듣게 되었지만 장준성은 머리를 굴렸다. 이 소식은 대단한 뉴스인 것이다. 그도 아직 계장이지만 자신의 지식으로는 다 알 수 없었기에 일단 부장에게 보고를 하도록 마음먹었다.
술집 앞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급히 회사로 복귀했다. 그는 회사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부장을 불러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래? 그렇다면 그 일본인이 통산국장이라는 소리인데. 알겠어. 오 차장 불러와.”
그는 자신 바로 밑의 부하직원을 불러 모든 직원들이 서울시내 고급호텔을 다니며 소재를 파악하라고 지시했고 그는 직접 재무부와 상공부로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보고했다.
팔공그룹 자금부 직원들이 탄 택시가 각각 서울시내 주요 호텔로 배치되었다. 신라호텔, 매리어트 호텔, 힐턴 호텔 등으로 분산되어 로비에서 호텔직원들에게 뇌물을 쓰던, 적당히 통사정을 하던, 일본인 고객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다.
장준성은 신라호텔 로비에서 일단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11시정도가 되었을 무렵, 야마시카 국장은 천천히 호텔 로비를 빠져나왔다.
그가 정장을 차려입고 로비를 걸어 나갈 때, 바삐 움직이던 다른 손님과 부딫혔다. 그 손님이 아무런 말 없이 사라져 버리자 야마시카 국장은 투덜거렸다.
이 소리를 슬쩍 듣게 된 장준성은 그 일본인 손님을 눈여겨보고 뒤쫓아 갔다. 호텔 로비로 그라나다 한 대가 다가오면서 헤드램프를 두 번 정도 번쩍거리며 멈춰 섰다. 뒷좌석 문을 이미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열어준 듯 했다.
순간 장준성은 몸을 숨기며 차 안에 탄 사람의 얼굴을 슬쩍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는 사라지는 그라나다의 번호판을 볼 수 있었다.
‘서울 3다 5474. 검정색 그라나다.’
장준성은 곧바로 호텔을 빠져나가 신라호텔 앞에 위치한 경찰서로 뛰어갔다.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본 팔공그룹의 오 차장이 소리쳤다.
“야. 어디 가?”
경찰서 안으로 뛰어간 장준성은 숨을 헐떡이며, 경관에게 물었다.
“저 서울 3다 5474 그라나다 자동차 소유주 좀 알려주세요.”
“아니. 그걸 왜요?”
이상하다는 듯이 묻자 장준성이 얼른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전 팔공그룹에 다니는데, 제 친구가 그라나다에 탄 걸 봤어요. 이 친구가 어느 회사에 취직했기에 그라나다를 타는지 알고 싶어서요.”
그 말에 경찰은 무전기로 차적을 조회요청 무전을 서울시경으로 보냈다. 대략 15분 정도가 흐른 후, 시경 교통국에서 연락이 왔다.
“뭐라고? 무등그룹의 자동차라고. 알았어요.”
무전을 끊고 경관이 장준성에게 재확인 시켜주려고 그를 쳐다보았을 때, 그는 이미 파출소의 문을 박차고 신라호텔로 뛰어갔다.
“어이. 너 어딜 간거야?”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장준성에게 소리를 친 오 차장에게 그가 말했다.
“알아냈어요. 통산국장. 무등그룹과 관계가 있더군요.”
“뭐? 어떻게 알았어.”
오 차장이 소리쳤다.
“방금 전 무등그룹 소속 회사차가 호텔에 들렀거든요. 일본인 손님을 태운 듯 해요. 지금 이런 시점에 일본인 손님이라면, 그것도 그라나다로 모실 정도면 통산 국장정도겠죠.”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한 오 차장은 소리쳤다.
“전원 철수. 회사로 복귀한다. 자넨 따로 택시타고 가서 전부 돌아오라고 말을 전해줘. 장준성이와 나는 회사로 간다. 부장님과 전무님께 보고해야해.”
이렇게 소리친 후 호텔 앞으로 다가온 택시에 타려는 외국인 손님을 밀쳐내고 대산 올라탄 오 차장과 장준성은 불쾌한 표정을 짓는 기사에게 요금의 3배를 주겠다고 소리치고 회사로 빨리 가도록 지시를 내렸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이 사실을 보고받은 팔공그룹의 박 전무는 다시 장준성과 오 차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홍보과에서 고급 펜탁스 카메라를 빌려 사진을 잘 찍는 직원 두어명과 함께 같이 차를 두 대에 나눠 타고 이동해 무등그룹 본사 앞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감시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 작품 후기 ============================
ROE는 Return On Equity로 자기자본대비 순이익 비율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배경에 그라나다가 자주 나오는데 이 차는 현대자동차가 독일 포드로부터 들여온 고급승용차입니다.
포드는 영국과 독일지사를 두고 유럽시장에 특화된 차를 내놓았는데 그래서 영국 포드로부터는 코티나를, 독일포드로부터는 그라나다를 들여왔죠.
1985년. 현대는 일본의 미쓰비시와 손을 잡고 미쓰비시 데보네어라는 고급차를 들여와 그랜저로 출시합니다.
소설속에 로얄시리즈는 당시 국내 최고급 승용차로 대우(새한자동차. 1983년에 대우로 사명변경)자동차가 생산한 자동차입니다.
당시 대우는 미국의 GM과 손을 잡고 GM의 자회사인 독일(당시는 서독)의 오펠로부터 오펠 레코드와 세네터를 들여와 로얄로 판매합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고급차의 대명사는 로얄이었고 86년부터 그랜저가 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물론 그래봐야 2000cc급이지만요.
여기 나온 1인당 GDP같은 데이터는 전부 위키피디아, 세계은행 데이터를 참고했어요.
그리고 펜탁스 카메라. 캐논, 니콘과 마찬가지로 고성능의 일본산 카메라였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기 전, 필자가 엄청나게 애용한 자동카메라였습니다. 애용했던 필름은 코닥 컬러필름이었고요. 지금 코닥은 망했죠.
참고로 필자의 블로그는 http://blog.naver.com/ltd1977입니다. 자동차와 관련해서 자료를 찾으시고 싶으신 분들은 여기에서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