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7화 (7/159)

7화

4권 전질을 무려 만 2천원을 주고 샀기에 꼼꼼하게 읽을 심산이었다. 그가 지금 읽는 부분은 상무 겸 영업본부장인 주인공 이키 타다시가 오사카 본사에서 킨키 상사의 전체 경영회의를 주재하는 장면이었다.

“전직 군인출신이 많이 승진했군.”

그는 중얼거리며 책을 읽었다.

“그것들을 정확한 숫자로 도출하기는 어렵지만, 1965년 이후의GNP와 민간 설비투자, 수출총액 및 수입총액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65년 GNP는 5년 전의 갑절인 32조 4천억 엔, 설비투자 5조 엔, 수출 87억 달러......1966년 GNP 38조 4천억엔, 설비투자 8조 2천억 엔, 수출 99억 5천만 달러, 수입 1백억 달러......그리고 금년도 GNP를 보면 45조 엔을 넘어 자유세계로는 영국, 프랑스를 앞질러 제2위인 서독을 바싹 뒤쫓고 있습니다. 향후 2,3년 후에는 서독마저 능가함으로써 미국 다음가는 수준에 도달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추측됩니다. 한편 여기서 공업 생산력의 상징인 우리나라의 철강 생산력으로 눈을 돌리면 작년인 1966년 생산량이 4천 8백만 톤으로 3천 5백만 톤의 서독을 웃돌아, 1억 2천만 톤의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인데, 1970년에는 6천만 톤을 넘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키는 먼저 제1단계는 거시적인 숫자를 들어 기업 전반을 둘러싼 경제 환경을 말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숫자의 단위가 생소했다. 물론 가지고 있는 신문에는 환율표가 나와 있었지만 여기 나오는 숫자는 65년도의 자료이므로 지금의 환율로 따질 수가 없었다. 차라리 달러로 계산을 하는 편이 나을 듯 싶었다.

2차 대전 이후 일본은 1971년 닉슨 쇼크(미국 대통령 달러 방어정책)이 발표한 달러 전까지 달러당 360엔 이라고 하는 고정환율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모지에다 대충 옮겨 적었다. 달러로 환산을 하게 되니 더 알기가 쉬웠다. 그러면서도 계속 책을 읽어나갔다.

4월에 고향인 전남 목포에 다녀온 후, 한달이 넘게 지났다. 5월 들어 시국이 어수선해진 가운데, 신군부는 도저히 해서는 안될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전남 광주(現 광주광역시)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열망을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잔혹하게 짓밟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태가 강력한 언론통제로 보도가 되지 않았지만 뉴욕타임즈 등 미국과 서방의 주요언론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여론의 압력 때문에 민주당, 광화당 할 것 없이 미국의 정계인사들도 이 문제를 계속 물로 늘어졌다.

인권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미국은 한국에 대한 경제 재제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 1차 조치로 미국의 대기업은 수출대기업들에 대해 대금지급을 고의로 연기했다.

“전무님. 미국 네브래스카 방직회사가 섬유수입대금 30만 달러를 지급해주지 않겠답니다.”

“뭐야?”

영업담당 이사가 황급히 경영지원실 최 전무의 방으로 뛰쳐 들어오면서 외쳤다.

“아무래도 이번 광주사태가 큰 영향을 미친 거로군.”

심각한 표정으로 최 전무는 턱을 괸 채 전무실을 거닐었다.

“평소 30만 달러 정도의 대금은 제때 돈을 지급하는 회사인데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거 때문일까요?”

“아마 미국 정부가 기업들에게 요청을 한 모양이야. 한국을 상대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대금지급을 무조건 딜레이 하라고.”

최 전무는 영업담당 이사의 어깨를 툭쳤다.

“같이 사장실로 들어가지. 사장님께 보고를 하도록 하자고.”

두 사람은 사장실로 들어갔다. 10평 정도의 크기인 사장실에서 사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사장님. 긴급 보고입니다.”

“뭔가.”

차분하지만 슬픔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네브래스카 방직회사가 30만 달러 지급을 거절하겠답니다. 수출진흥공사나 이런 곳에 말한다면 대금은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라고 보험금을 지불한 것이니까요.”

최 전무의 반응에 오남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망할 놈들. 아무리 우리가 5등 국민이라고 해도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거야. 이게 말이 돼? 군대가 뭐하는 곳이야? 국방의 임무를 다하라는 거지 우리 국민에게 총을 쏘라는 게 아냐. 공수부대를 왜 만들어. 북괴 공산당을 물리치라고 만든거지. 누가 광주시민들을 학살하는데 사용하라고 했어?”

화가 난 그는 크리스털 재떨이를 집어던졌다. 수입품인 고급 재떨이가 소파모서리에 부딪혀 박살이 났다.

“사장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 우리도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진짜 광주 시민들을 위한다면 여기서 분노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좋은 방법이 없는 건가?”

오 사장이 답했다. 최 전무가 금테 안경을 살짝 매만졌다.

“어렵지만 사장님께서 직접 접촉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광주지역에 신규공장 설립인가를 받아내시고, 수출대금 관련해서도 어떻게 해서든 돈을 다 받아내도록 해야할 듯 합니다.”

“그건 안될 말이야.”

오 사장이 딱 잘라 말했다.

“난 저 정통성이 없는 신군부와 그 놈들의 수족노릇을 하는 관료놈들과 협상은 없어. 30만 달러 없다고 죽지는 않겠고 최 전무 자네가 어떻게든 설득해내. 나가 봐.”

사장실 밖을 나간 최 전무는 자리로 돌아와서 미국쪽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날 이후 회사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1980년은 격동의 시기였다. 그해 5월 18일. 신군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 공수부대를 광주에 투입, 수백명의 민간을 학살했고, 오일쇼크 때문에 경제기획원 예상대로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했다.

미국과 일본은 자국의 민간인을 공수부대를 동원해 학살하는 군사독재정권의 모습에 치를 떨었고 본격적으로 한국에 대한 경제재제에 착수했다.

경제 재제라는 건 단순했다. 전반적으로 외채가 많은 한국에 대해 미국과 일본의 은행들이 만기연장을 거부하고 신규대출을 완전히 중지하는 것이다.

워싱턴의 강경파는 한국에 대한 모든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선거 때문에 먹혀들지 않고 가벼운 수준의 경제재제가 이루어졌다.

대형은행들은 그저 만기연장만 했지만 이 조치는 의외로 타격이 커서 대기업들조차도 달러 가뭄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정치인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들의 정치게임을 즐겼지만 그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은 사람들은 기업인, 종업원, 일반 국민들이었다.

해가 바뀌어 1981년이 되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심각한 경기침체, 외환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급기야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2.28조치)를 통해 산업을 강제로 재편했다. 자본주의시스템을 가진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조치로 인해 기아자동차는 승용차의 생산을 중단하고 상용차만 생산하며 현대는 승용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대우자동차의 경우 미국의 GM이 대주주로 있어서 정부도 아무런 손을 대지 못했다.

무등그룹의 경우 전남 목포와 충북 진천에 위치한 나일론 생산라인은 미국의 포드자동차와 전속계약을 맺은 탓에 신군부가 건드리지 못했지만 거제도에 추진 중이던 신규 조선소 건립은 포기해야했다. 물론 그 대가로 산업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을 수는 있었지만 말이다.

다행히 무등그룹은 매출이 두 배로 성장하여 2050억 원을 기록했다. 강력한 수출실적의 개선 덕분이었다. 수출의 확대로 인해 매출이 크게 늘어난 덕이었다.

1982년 경영 예상치는 81년보다 더 성장한 3천억원 대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에 맞게 경영계획을 짜고 신규사업역시 지속적으로 검토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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