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Ⅴ. 기업의 자금조달
기업의 운영에는 자금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쟁에서 아무리 좋은 총이 있어도 총알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듯이 기업에게 있어서 충분한 자금의 확보는 중요한 과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나라이건, 어떤 제품을 취급하는 기업이건, 자금조달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회계처리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기업의 채무는 반드시 기업통장에서 은행으로부터 입금된 금액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채무라는 것은 내가 줄 돈을 의미하므로 기업이 거래처에게 주어야 하는 미지급금도 포함된다. 하지만 자금을 다루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조금은 다른 문제다.
일단 기업은 필요한 돈을 어떻게 조달하는가? 첫 번째는 차입이 있다. 개인도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 기업도 돈을 빌리게 되면 통장에는 현금이 입금되므로 현금보유량이 는다. 즉 기업의 빚은 늘지만 현금은 늘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현금흐름면에서는 좋은 징조이나 대차대조표상에서는 불리한 것이다.
두 번째는 채권의 발행이다. 채권이란 기업이 미리 돈을 빌린 후 이자와 함께 원금은 특정 날짜까지 반드시 갚겠다는 증서이다.
어떤 사람이 이 채권을 구입한다면 채권을 구입한 대가로 그 사람은 이자를 꼬박꼬박 받고 만기가 되는 날에 원금을 다 돌려받는다.
그런데 만기가 되는 날에 기업이 채권을 사들인 사람에게 원금을 주지 못하게 되면 그 기업은 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흔히 말하는 부도가 나서 폭삭 주저앉는다. 물론 채권을 한 번 더 발행해 원금을 더 늦게 지급할 수 있다. 이를 리볼빙이라 한다.
따라서 기업이 원금을 주기 싫으면 또 채권을 발행해 다른 사람에게 팔면 된다. 그럼 다른 사람에게 받은 원금으로 돈을 돌려주어야 할 사람에게 줘버리면 된다. 기업은 이자만 지급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주식의 발행이다. 앞선 두 개는 모두 기업의 빚이기 때문에 반드시 갚아야 한다. 하지만 주식은 갚을 필요가 없는 돈이다.
즉 내 지분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주식의 소유주는 기업의 일부분을 소유한 실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주식을 발행하는 건 아주 어렵다. 쥐뿔도 없는 기업이 주식을 발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사람들이 ‘와아아’하고 감탄을 토할만한 큰 기업이거나 특출한 기술이 있거나 재무상태가 우량해야 한다.
그는 여기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그는 상장부분을 찾아서 읽어보았다.
-상장이란?
상장이라는 것은 기업의 주식을 주식시장에 등재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기업은 존재하고 이 기업의 소유권을 거래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인다.
이 상장기업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저축을 기업에게도 맡겨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상장된 기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량한 기업이 많고 기업의 숫자도 많다는 것이다.
기업이 많다는 건 그만큼 돈을 많이 벌어 국민들의 삶을 풍요하게 한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풍요한 나라인 미국의 경우 GM, 포드, 크라이슬러, 듀퐁, IBM등의 거대기업들이 즐비하고, 미국 다음으로 풍요로운 나라인 일본의 경우도 도요타, 혼다, 닛산, 소니, 이토추 상사들이 있고, 세 번째로 풍요로운 서독의 경우 고급차의 대명사인 메르세데스-벤츠나 화학업계의 거두인 BASF, 등이 존재한다.
이 상장의 요건은 매우 엄격한데, 아무기업이나 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상장은 주식시장에 하는데, 많은 기업들은 보다 큰 주식시장에 상장하기를 원하는데, 이렇게 되면 기업은 더 많은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팔고, 보다 더 합리적인 금액으로 주식을 팔 수 있어서 자본금확충이 아주 쉬워지게 된다.-책을 덮었다. 더 읽을 수도 있지만 읽기가 귀찮았다. 책을 더 읽는 것도 좋았지만 언제라도 책은 읽을 수 있으니까 굳이 지금 다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서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는 일도 좋았지만 더 필요한 일은 업무를 배우는 것이다.
시간이 6시가 넘어서자 서서히 사람들이 퇴근을 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박기범도 책상을 정리하고 내일 할 일을 메모지에 간략하게 적었다. 그리고 OJT용지를 꺼내어 기재했다.
내용을 기재하는 일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이제 OJT내역도 전부 모아다 파일로 만들고 이를 자신의 책상에 보관한 뒤 영원히 안보게 될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찾기 쉬운 곳에 놓고 보관하기로 했다.
OJT리스트를 과장의 책상에다 올려놓고 그는 퇴근을 했다.
야근도 자주 하지만 맨날 하는 것도 아니었고 정시최근이라고 해도 30분이나 한 시간 정도는 더 일하다가 집에 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근무시간이 길었다.
월말과 월초동안에 해야 하는 마감업무는 근무시간을 많이 잡아먹었고 이 때문에 늦게 퇴근하는 일이 아주 잦았다.
그러나 평소에는 빠르면 7시. 늦어야 8시 정도에 퇴근을 하기 때문에, 아주 늦게 퇴근을 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토요일에도(주5일제는 2005년에 도입) 근무를 하니 전반적인 근무시간은 아주 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7시에 가는 날도 있고 6시 반에 가는 날도 있고. 늦을 땐 11시나 12시에 가기도 하니. 회사규정대로 8시 출근-6시 퇴근만 지켜도 10시간씩 근무를 하는 셈이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니 주당 50시간. 거기에 토요일엔 오전근무만 한다손 치더라고 54시간. 거기에 최소 한 시간씩 초과근무를 한다고 해도 주당 59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물론 한 시간만 초과근무를 하지 않으니.’
단순 계산으로도 그가 일하는 시간은 무려 60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앞으로 새로운 장비가 나오고 지식이 쌓이게 되면 일찍 퇴근을 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
그는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노트를 꺼내놓고 간단한 계산을 한번 해보았다. 그의 1월 달 월급이 22만 8천원.
현재의 원달러환율은 한국은행 기준고시로 5백8원. 달러로 계산하면 448달러를 받는 셈이었다.
그리고 주당 60시간으로 잡으면 월 240시간. 따라서 월급을 월간 근무시간으로 나누면 그는 근무시간당 1.87달러를 받는 셈이었다.
이런저런 계산을 하며 지하철 안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그의 집은 영등포에 위치한 작은 연립주택. 작은 방 두칸 뿐인 연립주택 1층은 대략 12평. 역시 서울에 올라와있는 동생과 단 둘이 살기에 이 정도면 충분했다.
“형 왔다.”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막내인 박영범은 대학교 학생이었다. 서울로 올라와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의 전공은 전자공학과.
목포에 살고 있는 큰 형은 사대를 나와 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다. 큰 형이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있기에, 늘 그 점이 마음에 걸렸던 그는 얼마간의 돈을 부치기로 했다.
“왔어요? 저녁은?”
“안 먹었지. 너는. 안 먹었으면 나가서 중국집이라도 가자. 밥해먹기가 너무 귀찮아.”
정장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집에서 입기 편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박기범은 방 한구석에 누워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공부는 잘되고?”
“응. 맞다. 형. 그러면 요 앞 빵집 가서 뭐라도 사가지고 올까?”
“그래. 너 좋을 대로 해. 야근한답시고 회사에서 먹고오다가 집에 일찍 오니 정말 뭐 먹을 게 없구나. 집에서 밥을 먹는 게 정상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니.”
푸념을 늘어놓듯 말을 던지며 그는 방바닥 한구석에 놓은 책 한권을 집어 들었다. 그 책을 읽으려다 다시 내려놓고 공중전화로 걸려고 했다.
하지만 집에 아직 전화가 가설되지 않았기에 체신국(現 우체국 전신)으로 가서 전보를 보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메모지를 꺼내 간략히 전보를 칠 내용을 적었다.
물론 전보요금이 비싼 건 알고 있었다. 10자를 보내는데 2백 원이니 상당히 비싼 편이지만 그래도 직장에 다니는 터라 비싸도 전보로 보내고 싶었다. 많은 단어를 기재하지는 못하지만.
‘그래. 내가 받는 월급이 얼만데. 좀 비싸도 전보 보내지 뭐.’
메모지에 적힌 내용을 한번 읽어보았다.
다들 잘 지내셨어요?
회사생활은 아주 재미있답니다. 형도 잘 지내시죠? 4월에 내려갈게요.
고작 인사말 수준의 단어나열이었지만 50자 수준이라 요금이 천원이나 되었다. 영등포에서 그의 회사가 위치한 종로3가 까지 지하철 요금이 100원이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출퇴근 교통요금과 맞먹었다.
22만 8천원 중 방세가 4만5천원. 출퇴근만 해도 지하철요금이 무려 5천원. 거기에 각종 공과금에, 잡비 등을 합하면 10만원 가까이 나간다.
월 저축액은 10만원을 어떻게든 유지를 해야 하는 것을 알기에 전보요금마저도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조금은 웃겼다.
“형. 빵 사왔어.”
봉지에 빵을 담아서 들고 왔다.
“같이 먹자. 그나저나 이번에 영화 새로 개봉하는거 뭐 있지?”
“글세 나도 잘 모르겠는걸. 그런데 맞다. 형. 아버지는 TV안사신대?”
“TV값이 얼만데 그걸 사냐?”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듯 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흑백텔레비전은 가격이 대략 5만 5천원 수준으로 어찌 보면 그다지 높지는 않았다.
신입사원 월급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금액이지만 월급의 4분의 1 가까이 주어야 하는건 부담이 컸다. 또 텔레비전을 사게 됨으로서 전기요금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아직 상공부에서는 허가를 하지 않고 있지만 컬러방송이 실시가 되면 컬러텔레비전을 사야 하는데, 이 컬러TV의 가격은 국산이라도 14인치가 33만원. 20인치가 43만원이라는 것이었다.
듣기로는 국산업체보다 일본 소니 등 외산제품이 좋기는 하지만 소니 컬러TV는 그 가격이 무려 80만원을 훌쩍 넘겼고, 물론 그렇게 비싼 건 살 능력이 아예 안 되지만, 어쨌든 아직까지는 텔레비전도 고가의 제품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래? 하긴 비싸긴 해도 있으면 좋지.”
“근데 컬러 TV시대는 언제 여는 거야? 학교 가니까 친구녀석 이번에 컬러 TV를 일제로 하나 장만했다는데.”
“돈이 좀 많은가 보군.”
빵을 뜯어 먹으면서 그가 말했다.
“컬러 TV시대라. 아직 상공부에서는 컬러 TV국내시판 계획자체가 없다잖아. 물론 해외수출은 하지만.”
빵과 함께 사온 우유를 컵에 따르면서 동생인 박영범이 말했다.
“미국은 컬러TV를 방영한다던데? 일본도 그렇고.”
“야. 그놈들은 이미 옛날에 컬러TV시대 열었다. 미국이 1953년인가? 그때 세계최초로 컬러TV전파를 송출했고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61년도에 시작했지. 그 놈들은 도쿄 올림픽을 컬러TV로 본 놈들이야. 아마 우리도 올림픽을 개최할 때가 되면 하겠지. 기다려 봐. 컬러로 TV못 본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우린 흑백으로도 못 보잖아.”
동생이 컵에 따른 우유를 쭉 들이키고는 안경을 벗어서 내려놓고는 미간을 잠시 손으로 문질렀다. 그는 배가 불렀던지 잠시 산책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책가게? 가지 마. 형은 산책 나갔다 하면 기본이 두 시간이잖아. 그러다 통금에 걸려. 작년에도 학교 다닐 때, 통금 걸려서 얼마나 혼났다고. 게다가 통금에 쫓긴 택시한테 치일뻔 했었잖아. 마침 경찰이 그 근처에 있었기에 다행이지.”
“그래. 나도 알아. 통금에 쫓기던 과속 택시에 치여 죽은 사람 여럿 봤지. 덕분에 경찰서 가서, 차 번호 말하고. 웃기는 나라야.”
바로 몇 년 전까지 경험했던 일이라 그는 나갈 생각을 포기하고 도로 주저앉았다. 박기범은 읽으려다 말았던 책을 꺼냈다. 그 책은 일본의 여류작가인 야마사키 도요코(山崎豊子)가 쓴 ‘불모지대(不毛地帶)’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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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이 2천달러가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철요금등이 다 쌉니다. 모든 숫자. TV가격, 월급, 전철요금등은 실제 80년대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대로 쓴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두세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찾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