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9화 (189/189)

새로운 이벤트

TV쪽에 설치되어 소파를 촬영하는 카메라와 거실 한 가운데에 붕 떠있는 드론까지 장비들이 완벽하게 준

비되었다. 집 안에 있는 드론은 좀 낯설어서 기묘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방송 준비는 완료.

일단 소희부터 인터뷰를 하듯 소파에 앉아 있고, 나는 간식을 들고 조금 뒤에 끼어 드는 식으로 연출을 하

기 위해 주방 쪽으로 슬쩍 몸을 뺐다.

“안녕하세요, 오늘 방송을 새로 시작하게 된-“

주방에서 단말기로 방송을 키자 마자 곧바로 대사가 턱 하니 막혀버리는 소희. 어째서 자기 소개부터 막

힌 걸까, 정말 그 정도로 긴장을 했다고? 하지만 드라마 조연 촬영을 할 때에는 정상적으로 초능력 뿜뿜

쓰고 돌아다니더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민을 하자, 소희가 입술을 짓씹듯이 한 마디를 내뱉는다.

“ - S급 히어로, 광익(光翼) 전소희입니다.”

“크, 흡...”

내가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해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과 동시에 채팅창이 화산 폭발하듯 터져 나가기 시작

한다.

- 히어로 네임이 어떻게 광익?

- 아 ㅋㅋ 협회 틀딱쉑들 또 일냈쥬?

- 광익이 뭔데 이 씹덕 새끼들아

- 히어로헬스에서 나왔습니다 3대 몇 치셨나요

한 번 피식 웃고 채팅을 읽었다. 그러자 억울하다는 것처럼 소희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야 하늘아! 니가 웃는 건 너무하지. 너도 웃을 처지가 아닌데?”

- 머임? 화면 밖에 누구 있음?

- 그 사이드 킥? 남자 하나 있을 텐데

- ㅗㅜㅑ 동거 하는 거임?

[삭제 처리된 메시지 입니다]

- ㅋㅋ S급 히어로 앞에서 선 넘네

- 내일 협회 법무팀이랑 미팅 잡힌다 ㅅㄱ

소희가 방송인 것도 잊고 진심을 담아 던진 한 문장. 그 말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곧바로 깨달아 버린

다. 많은 히어로들은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데, 실명을 부를 리 있나? A급과 S급 위 쪽 부터는 히어로의

개인 정보는 군 기밀처럼 처리되는데.

그리고 나도 A급 히어로로 인정 받았었다.

“에이 누나, 설마...”

“자, 그리고 제 사이드 킥이자 애인인, 귀영(鬼影) 이하늘입니다.”

새로 A급이 된 히어로의 닉네임으로 놀리는 게 인터넷 밈이라도 되는지 이번에는 귀영이라는 단어로 온

갖 개드립이 올라온다. 소희의 능력을 테스트하던 것이 인터넷에서 퍼졌는지 사람도 아까보다 훨씬 많은

상태.

귀영이라니, 대체 뭐 때문에 그런 호칭을 붙인 건가. 아니, 그냥 흡혈귀라고 소개하는 것도... 그것도 좀

쪽팔리네. 차라리 A급 S급이라고 급만 소개하면 괜찮은데 이상한 한자 이명이 붙으니까 손발이 오그라

든다.

그래도 일단 불렀으니 나가기는 해야겠지. 쟁반 위에 우유와 과자, 작은 파이 같은 것들을 잔뜩 담아서 소

파 테이블 위에 올렸다. 남자인 내가 등장하자 선을 넘는 채팅들의 빈도가 조금 늘어났지만 전체적으로

는 양호한 상태.

하긴, 변호사 개인 방송에서 패드립 박는 년이 없듯이 히어로 개인 방송에서도 까부는 년은 별로 없겠지.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기분 나쁜 이름. 어차피 방송 컨텐츠를 준비한 것도 아니니 바로 궁금한 것을 물어

본다.

“그나저나 누나, 귀영이라니 그 이상한 칭호는 뭐야?”

“음? 이번 S급 승급할 때 생각 나는 게 없어서 그냥 비워 둔 상태로 제출했거든. 그때 그 서류에 작성을 안

하면 얼굴도 공개했겠다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으려나~ 싶어서. 그랬더니 자기들 마음대로 정해준

것 같은데.”

그 말에 입이 떡 벌어진다. 아니, 히어로가 자기 코드 네임을 안 적어서 냈다고 지들끼리 마음대로 정하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소희는 그걸 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어? 솔직히 저런 이름이 붙는 게 익숙하

지 않아서 무협지보다 판타지를 많이 하긴 하는데.

“아, 그래도 두 글자 이름이면 잘 붙은 거야. 이상한 이름이 얼마나 많은데.”

- 영어쪽 애들이 가관이지 ㄹㅇ ㅋㅋ

- 근데 저게 잘 붙은거냐?

- 그냥 ㄹㅇㅋㅋ만 치라고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히어로 코드 네임으로 넘어가자, 채팅을 비롯해 후원으로 다양한 히어로들의 코드

네임이 튀어나온다. 히어로들은 컨셉을 잡고 다니기 때문에 다양한 이름이 붙어 있지만, 협회가 공식적

으로 인정하는 것은 A급 이상부터.

그러니까 B급쯤에 인기가 많아 팬들이 붙여준 이름이, A급으로 승급되면서 공식으로 인증 받는 느낌이

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소희는 S급으로 올라가는 것이 너무 빨랐다.

활약이라 해도 테러리스트 사살과 인신매매단 검거, 그리고 이사벨라와의 전투가 끝. 히어로의 코드 네

임 대부분은 몇 년 동안 활동하고 그 동안 팬들이 암묵적으로 붙이는 이름인데, 소희가 그걸 얻기에는 드

러난 사건이 너무 적었으니까.

심지어 나는 더 적었다. 내가 대중 앞에서 그림자를 쓴 것은 아파트에서 일어났던 짧은 소동이 전부. 협회

가 인정했으니 A급은 맞겠지만, 그래서 쟤는 뭐 하는 애야? 같은 의문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아니, 그럼 공모전이라도 하던가? S급 히어로 이름 짓기 공모전 같은 거 하면 얼마나 좋아?”

“공모전... 차라리 이 두 글자 이름이 낫지 않아? 지금 올라온 사례들만 봐도 난 만족스러운데.”

관심을 받고 싶다는 것 처럼 시청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채팅을 올린다. 히어로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보

니, 우스꽝스러운 히어로 코드 네임에 대한 유머글도 많은 것 같았다.

“성의 없기로 최고인 코드 네임, 역사(力士)... 이거 진짜 대충 짓긴 했네. 심지어 남자분이셔?”

“해외 저격수 쪽에서 호크아이랑 이글아이가 겹쳐서 그 팬덤끼리 서로 짭이네 아니네 싸운 경우도 있

네.”

히어로가 많으니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 같았다. 심지어 유럽권에서는 컨셉이 비슷하다 코드넴이 겹

쳐 소송이 일어나거나, A급 먼저 도달하는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공식 인증된 코드 네임이야 A급부

터라고 협회가 정했다지만, 팬들이 자신의 히어로에게 붙여주는 이름은 막을 방법이 뭐 있겠는가?

“아 맞다, 지금 후원하시는 금액은 전부 좋은 곳에 쓰기 위해 기부될 예정입니다.”

전기 속성 초능력자 둘이서 토르와 제우스의 코드 네임을 두고 법정에 섰다는 뉴스 기사까지 읽고, 채팅

이 좀 잠잠해졌을 때 슬쩍 이야기를 던졌다. 방송으로 버는 돈이 아무리 많다 해도 소희의 용사 이미지 만

드는 비용이라 생각하면 별 거 아니니까.

거기에 탐욕이 가져다주는 뇌물성 금액과 히어로 지원금만 있어도 인생을 평생 풍족하게 살 수 있으니

까.

아, 그냥 악마들한테 비영리 봉사 단체 같은 걸 만들라 부탁해서 거기에 기부나 왕창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과자를 집자 소희가 채팅창을 보며 알아서 시청자들과 대화를 시작한다.

“네, 방송 후원금은 좋은 곳에 쓸 예정이고... 솔직히 둘이서 먹고 살기에는 풍족하기 때문에 저희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집이 좁다? 아니죠, 그래도 둘이서 사는 건데 이 정도면 넓죠. 해외 히어로들 넓은 저택

같은 거 보면 부담되지 않나요? 집 청소하는 인원이 따로 있고. 그 정도로 넓은 저택은 로봇 청소기 수준

으로 못 건드리잖아요.”

그렇게 알아서 방송을 진행하던 그녀가 귀가 벌게지더니 갑자기 말을 돌린다.

“아니 그, 신혼은 아직이고.”

음담패설과 욕설을 걸러주는 A.I.지만, 히어로와 사이드 킥 둘이 신혼이냐는 질문까지 지워버릴 리 없기

때문인가. 개인 방송 시청자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든다. 현실에서 얼굴 까고 달려들 수는 없어도,

인터넷으로 조금 짓궂은 질문 정도는 던질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곧바로 옆으로 몸을 뉘이며 팔짱을 꼈다.

“와 누나, 대답이 너무 당당하지 못한 것 같은데?”

팔짱을 끼고 엉겨 붙자 마자 채팅창이 또다시 우르르 떨리는 것 마냥 사람들이 난리가 난다. 대체 남자 넙

데데한 가슴에 뭘 볼 게 있다고 팔짱 낀 거 하나로 ㅗㅜㅑ가 도배되는 걸까?

“아니, 당당하지 못하다니. 신혼은 아니니까 그런거지.”

“네~ 신혼은 아니고 동거 하는 중이죠.”

숨길 생각도 없었으니 그대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언제부터 사귀기 시작했냐 같은 연애 질문부터, S급

히어로가 되기 전까지 자주 했던 운동이 있냐는 헬창들의 질문까지.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우리 둘 보다

집 안에 있는 가구와 드론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사전 예고도 광고도 없이 시작한 개인 방송. 어그로는 제목에 써 둔 한국 최초 S급 타이틀이 전부. 그럼에

도 불구하고 첫 날 최고 시청자가 1,000명은 넘기며 방송을 종료하였다.

“하늘아, 화 난건 아니지?”

“아니, 괜찮다니까 누나.”

별거 아닌 거에 쫄아버린 소희를 남기고.

[작품후기]

[남녀역전] 역전세계의 성좌님 연재 시작했읍니다

학기도 시작되었지만 최대한 써보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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