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8화 (188/189)

새로운 이벤트

S급이 된 뒤로는 서류 처리에 별 문제가 없었다.

S급이 되는 것 자체는 한 달이 넘게 걸리는 기나긴 인내의 시간이었지만, S급이 되고 나서 방송 신청을

하는 것은 1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서류 때문에 계약을 한 업체에서 비싼 돈 주고 방송용 장비까지 다

구매했으니 남은 것은 방송을 시작하는 것뿐.

“아 예, 그럼 이대로 계약하죠.”

“네, 바로 물건 보내 드리겠습니다.”

뚝. 소희가 통화를 끊고 단말기에서 시선을 떼고 내 쪽을 바라본다.

촬영용 인공지능 드론부터 단말기 동기화에 음성 집약기까지 다 준비했고, 협회의 허락까지 받았다. 처

음에는 B급 이상의 빌런을 사냥하는 걸로 방송을 시작하려 들었지만 어제 본 방송을 따라 소소한 일상 방

송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상태.

“일단 이걸로 첫 방송 시작할 거야.”

“그래? 그럼 나는 이대로 측정하러 간다?”

평소에 좀 허당끼가 있는 소희의 모습을 보여주다 빌런이 등장했을 때 S급 히어로의 무력을 보여주는 게

더 임팩트 있을 것 같으니까. 소희는 그대로 협회 연구소 내부로 들어가 몸에 이것 저것 붙이기 시작하고

나는 단말기로 그 것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 S급 히어로 신체 능력 측정]

HH 사이트에 아무런 꾸밈없이 올려진 방송.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들어오는 속도가 꽤 빨랐다. 어

디에 딱히 광고를 한 것도 아닌데 방송을 켠 지 10분만에 백 단위의 사람들이 몰려 들어왔으니까.

첫 방송때는 원래 10명은커녕 2, 3명만 들어와도 많이 들어오는 편이라고 알고 있지만 S급 히어로의 이

름값이 대단한 건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 이거 사칭임?

- 어떤 빡대가리가 HH에서 히어로를 사칭하겠냐 병신련들아

[관리봇이 악성 채팅을 감지했습니다]

- 무슨 깡으로 S를 사칭함?

- 저거 협회 내부 같은데 사칭은 아닌듯?

들어온 사람은 고작 백여명이지만, 채팅은 벌써 난리가 났다.

첫 방송이라 기능에 익숙하지 않아 기본 모드로 놔 두었더니 자기들끼리 우다다다 채팅창을 어지럽히며

말싸움을 하다 기본 A.I. 에게 욕설 필터링에 걸려 퇴장 당하기까지 한다. 하기야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

을 보면 채팅창에 시끄러운 것이 공감되고 만다.

“근력 테스트 2차, 기준치 이상으로 측정 불가능입니다.”

눈 앞에서 소희가 가볍게 쇳덩어리들을 던지고 받는다. 무게추가 부족해 인근 폐차장에서 가져온 압축된

자동차 덩어리들이다. 자동차를 때려 부수거나 쳐서 날리는 모습도 아니고, 압축된 승용차들을 공깃돌처

럼 던지고 받고 놀고 있었으니.

“파, 파괴력 테스트 1차, 기준치 이상으로 측정 불가능.”

소희의 손 끝에서 뻗어 나간 백색 광채에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진 기둥이 서걱 잘려 나간다. 온갖 히어로

들의 공격을 받아내며 굳건히 서 있던 흉터투성이의 거대한 기둥이 허망하게 반으로 토막이 났다.

- 지난번에 저거 우그러트렸다고 뉴스가 호들갑 떨지 않았냐?

- 흠집도 아니고 그냥 반으로 갈라버리네;;

악력 측정이나 지구력, 심폐 지구력같은 간단한 체력 테스트에서 온갖 물건을 때리고 부수고 옮기는 다

양한 상황에서, 소희는 언제나 기준치 이상을 찍어버렸다. 슬슬 실험을 진행하는 히어로 협회 요원들의

눈에 ‘그냥 테스트를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아른거리는게 보인다.

“비행 속도 테스트, 테스트 대상의 아음속 도달 확인. 기준치 이상으로 테스트 종료.”

연구소 밖으로 나와 인근 산봉우리 정상에 반짝- 하는 느낌으로 비행을 마친 소희를 본 시청자들의 반응

또한 연구원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애당초 A등급밖에 없던 나라에서 S급을 테스트할 정

밀 기계가 있을 리 없으니까.

“나, 생각보다 빠르네?”

“그걸 이제야 알아 차린 거야?”

“아니 뭐, 이렇게 정밀하게 측정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맨날 나보다 약한 사람이랑만 싸웠으니까...

솔직히 그 이사벨라나 악마랑 싸울 때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수치로 측정하니까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고 할까.”

하긴, 확실히 그렇다. 그녀가 용사로 각성하고 나서 겪은 전투는 그게 전부니까.

이하린과의 대련은 당연히 힘을 약하게 내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한 것이었고. 지옥에서 사소한 오해로

오로바스와 악마 군단을 쓸어버린 것은 신성력을 폭탄처럼 터트렸을 뿐.

그러니까 자기가 얼마나 강한 지 모르다 이제야 눈치를 채는 것이겠지.

“아, 그러고 보니 방송은?”

“첫 날인데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오기는 했네.”

난리가 난 방송은 소희의 비행 속도 테스트가 끝나고 대충 꺼버렸다. 생방송은 이렇게 일이 있을 때만 꼈

다 껐다 할 예정이고, 나머지 기록된 자료들과 영상들은 협회에게 제공받아 우리와 계약한 업체에 넘길

생각이다. 그러면 거기서 돈 받고 알아서 잘 정리해 올리겠지.

“공부까지 해서 열심히 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야 뭐, 집에 돌아가서 다시 키면 되는 거 아닐까? 뭐 하러 집에 돌아가는 길까지 방송을 해.”

톤 단위의 쇳덩이를 휙휙 던지며 가지고 놀던 소희의 손이 부드럽게 내 손을 맞붙잡는다. 강철도 우그러

트리는 손아귀가 나를 다치게 할 세라, 그녀가 평소보다 내 손을 살살 붙잡는 것이 여지없이 느껴진다.

아마 그녀는 불안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꿈꾸는 것은 히어로였으니까.

정확하게 묘사하자면 B급, 운 좋으면 A 등급의 히어로가 되어 지내는 것을 꿈꾸었겠지. 지금처럼 아음속

으로 비행하며 합금을 녹여버리는 광선을 내뿜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꿈꿀 리 있겠는가?

때로는 과도한 힘이 오히려 불안을 가져오고는 한다. 마왕에 대한 걱정이 아주 약간은 그녀의 마음을 좀

먹고 있을 것이다. 용사가 된다는 것은 마왕을 무찌를 힘이 주어진다는 것이지만, 정신적으로 완벽해지

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잘게 떨리는 손을 마주 잡고 차에 올라탄다. 이번에는 악마 운전 기사 따위가 없는 자율 운행 차량

이니 조금 남사스러운 짓을 해도 되겠지. 그 묘한 공기를 읽었는지 소희의 손이 다른 의미로 떨기 시작한

다.

“집에 가면 물건 배달이 와 있을 거야. 그럼 그걸로 방송을 켜서 질문을 받자. 첫 날이니까 아마 방송 내내

질문을 받아도 모자랄 걸?”

꼼지락 거리는 손가락. 내 손보다 조금 크고 굳건하지만 여자의 것이라는 걸 증명하듯 매끈하고 길쭉한

예쁜 손. 마주 잡은 손등을 다른 손으로 살살 간질이자 소희의 입이 굳게 다물어진다. 연구소가 주거 지역

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고 자동 운전도 속도가 꽤 낮으니 집까지 거의 1시간은 걸릴 것이다.

“그래? 그러면... 정리할 거 생각하면 조금 서둘러야지?”

스윽 하고, 소희가 몸을 기울여 운전석 쪽의 스크린을 건드린다. 풍만한 여체가 내 무릎 위에서 슬그머니

미끄러지는 것을 만끽하는 가운데 차량의 유리창에 검은 필름이 짙게 씌워진다. 프라이 버시 보호 기능

인지 햇빛 차단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유용한 기능인데?

앞좌석을 건드리느라 몸을 쭉 뻗은 상태의 소희가 그대로 슬금슬금 뒤로 몸을 뉘인다. 테스트를 위해 입

은 간편한 추리닝 바지로도 가리지 못하는 풍만한 엉덩이가 내 무릎에서부터 조금씩 배를 향하 다가온

다.

잘 닦여진 도로에 최첨단 A.I.가 느릿하게 운전하는 자율주행 자동차는 미동하나 없이 도로 위를 달린다.

소희가 좌석에서 일어나 내 위에 수월하게 올라탈 정도로.

상의 안에 손을 집어넣고 그대로 뻗어 잘록한 허리를 감싼다. 내 손길이 다가오는 걸 기대했는지 바짝 힘

이 들어간 옆구리. 문득 장난기가 샘솟아 그대로 손톱 끝을 이용해 살그머니 긁어본다. 매끈한 살갗에 닿

는 감촉을 만끽하자 웃음이 빵 터진 소희가 그대로 내 위에 주저앉는다.

“어우, 하늘아! 갑자기 왠 간지럼이야.”

한 번 크게 꿈틀거린 소희가 그대로 뒤로 몸을 밀어 나를 내리누른다. 엉덩이로 나를 깔아 뭉개며 장난을

치는 모습에 가느다란 실이 툭 끊어지듯 차 안에 감돌던 긴장감이 스르륵 사라진다. 그래도 소희의 보드

라우면서 탄탄한 여체의 감촉은 마음에 들기에 그대로 껴안았다.

아음속의 속도로 비행하며 톤 단위 쇳덩이로 공기놀이를 하며 조금 달아올랐는지 평소보다 체온이 따끈

따끈하다.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웃기네.

그게 고작 체온이 조금 오르고 땀 몇 방울 나고 말 일이 아닌데. 그래서 나쁠 건 없지. 용사의 체취가 불쾌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되려 달아오른 체온 때문에 은은하게 풍기는 소희의 냄새를 맡으며 등 뒤

에서 그대로 꼭 껴안았다.

그러자 소희가 내 품에 그대로 몸을 뉘인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는

것처럼. 양 손을 그녀의 탄탄한 복근 위에 올려 깍지를 끼고 꽉 껴안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피부를

통해 내게 전해진다.

“뭐, 방송도 그렇고 어떻게 되겠지.”

“당연하지, 전부 다 잘 될 거야. 집에 도착할 때까지 푹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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