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3화 (173/189)

새로운 이벤트

탈 여고생급으로 유능한 두 명을 굴라 삼는 일도, 마약 판매범들을 추적하는 일도 일단 미뤄둔 상태로 집

으로 돌아왔다. 두 명은 흡혈귀에게 감염되는 것을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는지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말

했으며, 마약 판매를 하는 녀석들은 오는 날이 따로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적당히 잡았던 마약쟁이 한 년을 골목길에 버린 뒤, 집으로 날아오는 길에 습관처럼 해야 할 일과 했던 일

을 정리하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게임이 너무 쉬운데?’

이 세상에 떨어진 지 3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고, 그 동안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을 했다. 자동 진행이나

시간 배율로 장난질을 칠 수 없어 체감상 엄청 오랜 기간 동안 게임을 한 것 같지만, 다른 모드랑 비교를

하면 성장세가 눈물이 날 정도로 빠르다.

아카데미 모드의 주인공은 이제 이름도 기억이 잘 안나는 반장 부반장 콤비였다. 평범한 학생이라고 주

장하지만 미남 소꿉친구가 있고, 폭력적인 전학생과 미스테리한 선배와 엮이며 청춘을 보냈으니까. 물론

청춘의 댓가로 내게 잠재력을 쪽쪽 빨아 먹혔으니 아마 찬란한 미래는 조금 수그러들었을 것이다. 구체

적으로 A급 히어로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세 배, 다섯 배는 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이때 아카데미 모드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세 명을 빨아먹기 위해서 한 노력이라곤, 최면 마법으로 지

들끼리 난교 파티를 하게 한 것밖에 없었다. 그 뒤에 음몽에 빠져 있는 녀석들을 거름망 삼아 잠재력을 빨

아 마셨고.

히어로 모드의 주인공은 사슬에 묶여 내게 범해진 백아영. 비공개 A급 히어로라는 준수한 능력과, S급까

지 노려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던 여성. 거기에 피 맛을 보아하니 순수한 인간이 아니라 이종족이

조금 섞여 있는 혼혈이라 초능력을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었다. 협회의 부정 부패를 파헤치는

것은 내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잠재력을 빼앗지는 않은 상태.

그리고 그녀를 포획하기 위해 내가 한 노력은 역시 안개화와 흡혈 밖에 없었다. 지하 도시까지 찾아온 추

적자들과 싸우던 걸 내가 냉큼 주워 갔을 뿐이니까. 소희와 이하린 다음으로 내가 마시게 된 A급 능력자

의 혈액 덕분에 내 육체가 빠르게 강화되기도 했고.

정리해보면 얻는 것에 비해 들인 노력이 너무나도 적었다. 적어도 기사의 종자가 귀족이 되려면 전쟁에

서 10년은 구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3년 동안 이뤄낸 성취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 치트 모드를 처음

접하면 이런 기분이 들까?

악마들과의 관계도 소희 덕분에 날로 먹었고, 이하린 같은 A급 히어로도 날로 먹었다. 이러다가 탈 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날로 먹고 있는 상황. 솔직히 내가 한 노력이라고는 여자를 밤에 즐겁게 해 주는 인

큐버스 플레이 말고 없지 않나? 남녀 역전이라서 그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집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문을 열기도 귀찮아 안개화 한 그대로 문틈

으로 스며드니, 소희가 귀신같이 고개를 휙 돌리며 나를 바라본다. 신발장에서 안개화를 해제하고 신발

을 벗으니 바로 말을 거는 그녀.

“하늘아, 그래서 뭐였어?”

“별 거 아니였어. 그냥 고등학생이 낡은 A.I. 통해서 몰래 술이랑 담배 사서 아지트로 옮기는 중이더라. 쫓

아가 봤더니 그냥 여학생 네 명이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있길래 그냥 왔어. 나도 나름 TV에도 나오고

누나도 S급 심사까지 하는데 그런 사소한 것까지 하나 하나 잡기는 좀 그렇잖아.”

“걸음걸이부터 티가 팍팍 나기는 하던데... 품에 껴안은 게 담배였구나. 하긴, 학생 때 담배 처음 피던 애

들은 코치가 자기 노려만 봐도 제 발 저려서 겁 먹더라고.”

소파에 앉아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는 소희에게 다가가 그대로 옆에 풀썩 앉는다. 몸을 던지듯이 풀썩 앉

아도 미동 없는 소희의 모습에 괜사리 악마들의 가구 제작 실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역시 중세 시대부터

마녀 집회를 열 때 양배추와 수제 햄 같은 가정식을 먹고 체력을 키우던 악마들답다.

“그런데... 뭐 할 말 있어?”

“오, 눈치 좀 늘었는데?”

쓸모 없는 생각에서 벗어나 쭉 해오던 생각으로 되돌아간다. 나는 이쪽 세상에 강제로 끌려 들어왔다. 하

지만 그런 것치고 지금까지의 일은 너무 손쉽게 풀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후반에 좆 되는게 아닐까?

원래 게임을 계속 해서 이것 저것 몸으로 느끼면 알 게 되는 것이다. 초반에 빡세게 구르면 그걸 기반으로

후반에 편해지고, 초반이 널널하고 편안하면 후반이 개판 지랄이 난다는 것. 이상하게 OP급 NPC들이 나

를 엿 먹인 데이터 대부분이 그랬다.

“그러면 누나, 기왕 S급 이야기도 나오는데 개인 방송해볼 생각 있어?”

“...개인 방송, 갑자기?”

2황자로 태어나 형제들이 병신 짓으로 자멸하여 별 노력 없이 제국의 황제가 되었을 때, 붉은 용이 나타

나 나의 왕성을 불태웠었다. 반대로 좀 먹은 나무 창 하나 쥔 고아 징집병이 되어 아득 바득 살아 남았을

때에는 별 일 없이 행복한 엔딩을 맞이했었고.

판타지가 아닌 무림 모드에서도 명문세가의 대공자로 태어나면 주화입마에 눈깔이 뒤집힌 천마가 무림

을 멸하였고, 반대로 개방에서도 내쳐진 비루먹은 몸뚱이로 단련을 했을 때에는 별다른 저항 없이 무림

일통을 이루어 냈다.

그 때문에 나는 누군가 인터넷에서 전체적인 고난의 양이 정해져 있다고 주장한 것을 믿는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S급에 비비는 소희 덕분에 손쉽게 놀고먹는다지만, 마왕도 그냥 뚝딱 잡아버릴 수 있을까? 아

직 마왕의 부하인지 그냥 빌런인지 악마 새끼인지도 모르는 미지의 적이 활개치고 다니는 와중에 어떻게

장담하지?

“응, 방송. 기왕 S급 때문에 회의하고 심사하고 난리가 났는데 덤으로 같이 자격증 따 두면 좋을 것 같아

서.”

그러니까, 뭔가 더 준비해 두고 싶어 진다.

내 SNS가 아무리 인기를 끈다 해도 게임을 하는 유저들일 뿐이다. 하지만 소희가 다른 히어로들처럼 방

송을 하면 어떻게 될까. 인터넷의 개인 방송인처럼 시청자 비위를 맞추려고 컨텐츠를 소화하는 그런 방

송이 아니다.

범죄가 일어나면, 카메라를 켜고, 날아가서 체포한다.

고작 그 뿐인 것이지만 아마 대한민국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S급 초능력자는

그 정도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이건 일반적인 히어로 모드를 할 때 자주 하는 일이기도 하고.

원래대로라면 C급에서 B급으로 넘어올 때쯤,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선택하는 방식이다. 과잉 대응 논란

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촬영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방송을 하게 되니까. 지금이야 용사

가 곁에 있어 다짜고짜 S급 부터 시작하지만.

아마 소희가 뿌쓩빠쓩히어로티비 이러면서 별 의미 없는 개소리를 해도 내 SNS보다 구독자가 많아지지

않을까? 더군다나 소희는 전형적인 미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건강미 넘치는 외모에 화려하고 정교

한 초능력 이펙트까지 남성 팬이 없을 수가 없었다.

현대 모드에서 아이돌을 할 때 여성 팬들의 강력함을 생각해보면, 이쪽 세상 남성 팬들의 강력함도 짐작

이 간다.

“음... 확실히 나쁘지는 않네. 방송을 하는 게 도움이 많이 될까?”

“당연히. 누나에게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내게도 엄청 큰 도움이 될 거야.

아무튼 소희의 히어로티비던 S급티비던 방송이 활성화되면 나야 행복할 일 밖에 없지. 게임 SNS와 달리

인터넷 동영상 커뮤니티는 간단하게 수십만까지 갈 수 있으니까. 파이의 크기가 다르니 몰려드는 사람의

머릿수도 다를 것이다. 최초의 S급 방송인이라는 메리트를 생각해보면 1억은 가볍게 넘길 수 있지 않을

까?

“최초의 S급 방송인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 응? 안 그래도 김샛별이 방송 쪽이랑 엮여 있으니까 그 쪽으

로 계약해서 사람 쓰면 편집 걱정도 없으니까.”

“정말 출동한 부분만 촬영하면 되는거지?”

아직 방송 경험이라고는 드라마 조연과 해외 뉴스에 짤막하게 나온 것밖에 없는지라 소희가 조금 부담감

을 느끼는 것 같았다. 당연히 일상 생활도 은근 슬쩍 촬영을 해서 워너비 초능력자 부부로 어그로를 끌 생

각이기 때문에 소희의 신경을 다른 쪽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그럼, 당연하지 누나아~”

그대로 몸을 옆으로 기울여 소희의 팔을 양 팔로 껴안는다. 어색하게 꼼지락거리는 그녀의 손이 내 옆구

리로 향하도록 몸을 밀착시킨다. 팔뚝에 눌리는 커다란 살덩이의 감촉이 만족스럽지만 소희도 마찬가지

의 기분을 느끼고 있겠지.

“어유 증말... 그림자도 그렇고 은근 관종 끼가 있다니까.”

내 능력이 흡혈귀고, 그림자로 동물을 만드는 것은 방송용이라는 것을 아는 소희가 작게 한숨을 뱉으며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말한다. 남녀 역전 세계는 이래서 편하구나 싶었다. 물론 여기서 끝낼 마음이 없어

서 한층 더 팔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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