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1화 (171/189)

새로운 이벤트

당연한 이야기지만 물건을 파는 놈들은, 물건을 구매할 만한 곳에서 판매를 한다. 재개발도 되지 않는 달

동네 빈민촌에 슈퍼 카 매장과 명품 매장이 들어올 리 없는 것과 같다. 비싼 물건일수록 그 가격을 감당할

사람을 찾아야 팔아먹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1그램에 16만원 이상하는 이 최고급 합성 마약을, 동네 양아치에게 팔아먹는 녀석들은 정상적

인 녀석들일까? 제 값을 받고 팔았던 싸게 후려쳐서 팔았던 말이 안되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공짜로 풀어

서 중독시킨 뒤 일꾼으로 부려? 고등학생 양아치 세 명 고용하는데 50억을 쓰는 조직이 있었으면 이미 경

제적 세계 정복을 끝낸 상태 아닌가?

이 것과 똑같은 마약을 거래하는 조직이 있었고, 걔들을 내가 잡았다. 거의 백 명이 넘는 녀석들이 허리춤

에 권총을 차고 폐공장의 빈 사무실을 점령해서 지하 도시에 살금 살금 기어 오는 모양새였지.

무슨 뜻이냐면, 이 마약을 거래할 수준이면 불법 총기 거래까지는 가능한 조직이라는 뜻이었다. 돈이 많

은 걸로 끝이 아니라는 소리. 지하 도시가 아닌 다른 루트로 불법 총기 거래를 할 수 있는 놈들이 왜 고등

학생을 노리냐고.

테이블에 널부러진년이 힘 없는 손을 하비작거리며 바닥에 흘린 마약만 해도 거진 300만원을 넘어가는

양이다. 침을 질질 흘리며 벌어진 입가에 묻은 새하얀 가루가 50만 원어치는 될 것이고, 목구멍 너머로

넘어간 것은 얼마나 될 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다행인 것은 이 미친 상황을 설명해 줄 제정신인 사람이 하나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신 때문에, 당신 때문에. 뭐에 홀린 것처럼 떠벌거리는 녀석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목덜미를 물

었다. 아무런 특색이 없는 밍밍한 맛. 딱히 중요한 녀석은 아닌 것 같아서 정보만 얻고 그대로 내버려뒀

다.

이제, 지하실에는 몽롱하게 취한 것이 넷이다.

백정아의 잘못이 있다면, 너무 믿었다는 점이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조직원들의 충성심을, 자랑스러운 A급 히어로인 언니를.

그래, 너무 믿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뭐, 어쩔 수 없지.”

그나마 남아 있는 친구, 심백림이 추임새를 넣으며 아령을 쥐락펴락 한다. 몇 명씩 가득 차 있던 회의실에

는 이제 고작 두 명만 남아 있었다. 조직이라고 부르기도 뭐 한 상황, 서류가 있을 리도 없지만 그저 책상

에 앉아 있는다.

비현실적인 일의 시작은 그 남자가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부하 중 하나가 수상한 가방을 챙겨 왔을 때 인

가? 머리 속에서 쓸모 없는 생각이나 굴리면서 있으니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려온다. 남은 것은 하나도 없

지만 찾아오는 손님은 있었다.

“야, 이 썅년들아아, 악!”

“뭐, 뭐야 씨발!”

문이 벌컥 열리고 각목을 꼬나 쥔 여학생 몇 명이 자신 있게 앞으로 달려들지만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훙

하고 위협적인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간 아령이 가장 오른쪽에 있던 여학생의 코뼈를 박살내고, 깜짝 놀

란 나머지 녀석들은 곧바로 묵직한 주먹에 한 방씩 맞고 바닥을 나뒹굴게 되었으니까.

“대체 뭘 먹을 게 있다고 진짜, 억울해 뒤지겠네.”

처음에는 정말 가볍게 생각했었다. 금괴로 억 단위의 금액이 오락 가락 해도 현실감이 적었으니까. 고작

해야 고등학생 조직이 다루기에는 너무 거대한 금액. 여학생도 남학생도 모두 흥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지만 그 누구도 금괴의 무게감을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나누면 되겠지, 라고 가볍게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나름대로 거대한 조직이다 보니 머릿수만 생각해보면 거진 백여명이 넘는 숫자. 금괴 하나를 넉넉잡고 6

천만원이라 해도 100명한테 나누면 인당 60만원 정도니까. 딱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하 도시와 위험한

조직에 대한 입막음 비용으로 조직의 모든 애들에게 300만원씩 나눠주면 적당하겠네.

돈이 크다 하더라도 머릿수가 많으면 된다. 가슴 한 구석에서 올라오는 불안감은 자신의 언니를 믿는 것

으로 가라앉혔다. 비공개 A급 히어로가 흔한 것도 아니고, 자유 순찰이라는 이름으로 슬쩍 와 주면 고등

학생 조직들 따위는 가볍게 박살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의 현실이 믿기질 않는 것이다.

조직은 박살 났고, 남은 금액을 차지한답시고 싸움이 일어났으며, 주변 양아치들이 건물도 빼앗겠다고

슬금슬금 기어들어 온다. 수 백만원짜리 마약을 처먹고 다니는 애들의 모습에 황급히 언니에게 연락을

했지만 어째서인지 연락조차 닿지 않고.

‘정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300만원, 나름의 사업으로 돈을 모아 건물까지 구매한 조직에게 있어 어마어마하게 큰 돈은 아니었다.

처음 나눠줄 때만 해도 연말 보너스 같은 느낌이라 회사원이 된 것 같다고 낄낄거렸지. 여학생들은 바이

크를 업그레이드한다, 비싼 캡슐을 사서 게임을 한다 설레발을 쳤다. 남학생들도 입어보고 싶던 명품 옷

이나 가방, 피부 클리닉에 대해 떠들며 꺅꺅거렸고.

그리고 금괴를 조금씩 처분하며 먼저 돈을 받은 놈이 300만원으로 주사기 하나를 사 왔을 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가방도 금괴도 아닌, 그 빌어 처먹을 남창 놈의 주사기가 문제였다고 봐야겠

지.

태생이 양아치 그룹인지라 지들끼리 눈이 맞아서 모텔 빈 방을 점령하는 커플들이 당연히 있었다. 아무

리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 해도 지들끼리 물고 빨고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까.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매한 건진 몰라도, 가장 먼저 정산을 받았던 남학생 하나가 300만원으로 20ml짜

리 주사기 하나를 구매해 와서 여학생 하나를 살살 꼬셨다. 여학생은 하필이면 조직 내부에서 마당발로

통하던 녀석이고... 그리고 누가 뭘 사는지 백정아는 몰랐다.

300만원 나눠주면 명품을 사던 게임기를 사던 스쿠터를 사던 지들이 알아서 쓰겠 거니 생각했으니까. 그

결과, 정산을 마치고 나니 멀쩡한 사람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것은 딱 세 부류의 사람들이

었다.

일회용 주사기 하나씩 들고 난교 파티를 연 녀석들, 마약이라는 두 글자가 너무 무서워서 난교 파티에 참

여하지 못한 겁쟁이, 근손실 온다고 거부한 바보.

약에 취한 부하들은 제각자의 아지트에 틀어박혔으며, 겁쟁이들은 도망쳤고, 바보는 지금 옆에서 피 묻

은 아령을 대충 닦더니 다른 자세로 열심히 팔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쯤 되면 무능력자가 아니라 D급 육

체 강화 능력자라고 봐도 되지 않나?

“야, 안 찝찝하냐?”

“땀 흘리면 안 찝찝해.”

“어오 씨, 말을 말자 진짜.”

금괴를 팔고 남은 돈이 있을 거라며 지레짐작하고 달려드는 전 부하들도 턱이 깨져서 돌아갔다. 가장 큰

조직이 와해되자 스쿠터 수리나 무인 판매점의 수수료를 노리고 덤벼드는 근처 조직 애들도 콧잔등이 내

려 앉아서 돌아갔다.

문제가 있다면 이런 녀석들이 며칠에 한 번 계속 온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당 300만원은 100명이 모여 낡은 건물을 구매한 조직에게는 거대하지 않지만, 뒷골목에서 담배

나 뻑뻑 피워 대던 양아치에게는 눈이 뒤집힐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니까. 그렇게 사업자로서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백정아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너네 언니는 아직이고?”

“그래, 마약 관련된 이야기인데 답장도 없다. 원래대로라면 당장 달려오고도 남을 양반인데. 대체 어떤

미친놈이 이 구역에서 저렇게 비싼 마약을 파는 거야?”

“비싸냐?”

“비싸지! 20ml짜리 주사기 하나를 300만원 주고 사 온 것만 봐도 존나 비싸! 우리가 스쿠터 개조나 술,

담배 따위 뚫어서 팔아먹어도 한 달에 꼴랑 얼마를 버는데? 생각할 수록 존나 이상하네 진짜!”

“그 뭐냐, 저기 14구역 애들이 맨날 말아 피우는 것도 마약 아니냐?”

“운동기구도 몇 만원 부터 수백 만원까지 다양하게 있잖냐.”

“오.”

그제서야 이해를 해 먹은 이 근육질 친구를 놔 두고 머리를 굴린다. 지하 도시의 소행일까? 아니면 그때

그 금괴를 주고 간 남자의 소행? 대체 왜 이런 구석진 곳의 고등학생 조직에게 저런 어마어마한 물건을 팔

아먹고 있을까?

그걸로 볼 수 있는 이익이 뭐가 있다고?

그래, 고작해야 고등학생이다. 여학생을 노린 거라면 하루 일당 50만원만 쥐여줘도 언니 언니 하면서 충

성심이 생기는 녀석들. 남학생을 노렸다 쳐도 몰래 몸 파는 애들이 받는 화대가 20만원을 넘기질 않을 텐

데.

아니 그 전에, 대체 어디서 어떻게 저런 위험한 마약을 파는 사람과 우리 애들이 접촉을 한 거지? 뭘 믿고

판 건데? 아무리 마약에 대해 모른다 하더라도 저런 걸 전문적으로 파는 사람에 대해서는 대충 안다.

되게 은밀하게 거래하고, 히어로가 무서워서 신용 거래는 당연한 거 아닌가. 그걸 왜 동네 고등학생이 뚫

고 구매를 해 왔냐고. 머리가 복잡하게 엉켜서 관자놀이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한 달 만에 마약중독자가

되어 사라져버린 부하들, 고등학생에게 최고급 마약을 파는 미치광이 빌런, 연락이 끊긴 A급 히어로 언니

까지.

‘말은 못하지만 진짜 위험한 것 같은데.’

차오르는 불안감에 숨도 시원하게 쉬지 못하는 와중에 다시 한 번 빈 건물에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작품후기]

기말 시즌입니다. 기도하느라 연재가 조금 뜸할지도 모르겠네요.

공부를 해야하나 기도를 해야하나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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