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8화 (168/189)

새로운 이벤트

그래서, 이걸 어떻게 처리하지?

허공이 일렁이는 기묘한 장면. 마치 반투명한 오로라 커튼 같이 생긴 문이 공기 정화 장치 구석에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약을 즐기러 온 외국인 유학생 손님으로 변장한 정찰조가 인간이 아닌 기계가 관리

하는 곳을 찾아 그 곳에 자리 잡은 상황.

녹슬어 버린 대가리가 파업을 하는 건지, 방법이 딱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저 안으로 들어가서, 애들을 뒤지기 직전까지 열심히 패 버린 다음 혼란과 공포 쪽 정신 마법을 걸어 버리

는 것. 세뇌 쪽으로 하면 협회 수사관한테 걸릴 것 같으니까 맛탱이가 가게 만든 다음 자연스럽게 유도를

하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지하 도시 포탈이 아니라, 지상의 협회 쪽으로 갑자기 급습을 해버리면 위에서 대기하고 있

던 소희가 호다닥 날아와서 정리를 하겠지. 전투력 말고 기동성도 소희가 압도적이니까. 밸런스로 백날

천날 떠들어 봐야 결국 비행 유닛이 더 빠른 것은 모든 게임의 공통점이다.

얘가 넘어올 때까지 기다리면 좋은 꼴은 못 볼 테니까. 지하 도시에서 싸움이라도 났다가 지하 도시가 박

살 나거나 협회가 도시를 처리하면 얼마나 귀찮겠는가? 악마들과의 계약을 했다고 해서 지하 도시의 시

설들이 불필요해진 것은 아니니까.

손가락을 예쁘게 가다듬으며 들은 정보가 진짜였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어떻게 할까. 머리 속에 여러

가지 마법들이 떠오르다 사라진다. 마법을 워낙 난사하듯이 쏘다 보니 비스무리한 종류가 많아 이럴 때

에는 결정 장애가 오게 되는 건 귀찮게 느껴진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에 정말 대가리가 녹슬었구나 싶었다.

‘아니 씨발, 진화 잘 한 부하 냅두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생각해보면 전략 작전을 짜는 것 부터, 외교를 하거나 동맹을 맺는 일은 당연히 참모 역할의 캐릭터에게

맡겼다. 상행을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상인 캐릭터가 따로 있고, 내 일을 담당하는 비서나 매니저 캐릭터

가 있는 식으로.

지금이야 소희의 무력 하나만 믿고 노느라 조직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부려 먹을 사람은 꽤 있었다. 당장

클럽에 대기중인 김한나부터, 명함 한 장 찢으면 냉큼 달려와 거래를 시도할 악마들까지. 심지어 지금 쫄

래쫄래 따라온 두 명도 있었다. 언데드 중 정신 계통 마법에 특화된 레이스 퀸으로 진화한 김세민을 두고

대체 무슨 고민을 하는 걸까.

협회가 보낸 조직도를 열어보니 조직원 대다수가 전투원들이었다. 아퀼라의 능력 상 어디를 습격하기 좋

으니 문을 열 아퀼라와, 문 안으로 들어가 깽판을 칠 조직원으로 이루어진 조직. 고작해야 조직의 일부가

100명이 넘어가는 거대한 덩치를 보여주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공포 내성이 없는 상대라면 100명이나 1,000명이나 똑같으니까.

“세민아, 가능하니?”

졸래졸래 따라오는 두 명에게 정보를 담은 핏방울을 한 방울씩 물려준다. 아무리 진화를 했어도 내게 감

염되었다는 근본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간만에 맛보는 내 피 한 방울에 싱글벙글 하는 모습이 조금 짠하

게 느껴졌다.

“네, 말씀하신 대로 100명 단위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보다 수가 많으면 몰라도 정보 대로면 가능하죠.”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감을 내비치는 두 명이 새삼 든든하게 느껴진다. 한 가지 능력밖에 쓰지 못하는

초능력자와 달리, 종족 자체가 진화한 두 명은 다양한 스킬을 스스로 깨달은 상태니까 당연한 이야기였

다. 반투명한 상태로 둥실 떠오르거나, 새하얀 뼈로 만들어진 갑옷과 무기만 봐도 초능력자와 동떨어진

상태 아닌가.

“일단 몰래 잠입해 있다가... 각 나오면 매혹 걸고. 안되면 무리하지 말고 연락해.”

툭툭, 가볍게 등을 두드리니 고개를 끄덕인 두 녀석이 일렁이는 포탈 너머로 숨어들어간다. 반투명한 상

태로 살며시 떠오른 김세민이 이소정을 등 뒤에서 끌어안으니 두 사람 다 투명하게 변한 상태로.

‘아오, 남자한테 백허그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여자를 업고 다니다니.’

‘시끄러, 난 내 인생 첫 매혹을 여자한테 쓰게 생겼으니까.’

텔레파시로 작게 속삭이던 두 명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집에 처박혀도 될 것 같다는 생

각이 들었다.

물론, 착각이었다.

나름대로 협회의 비밀 작전이라 그런 건지 이 빌어 처먹을 새끼들은 사람이 쉬는 꼴을 눈 뜨고 보질 못했

다. 지하 도시의 경매장에 다시 돌아가 셰프가 내온 디저트를 한 입 먹으려는 순간 연락이 왔으니까.

초콜릿으로 만든 장미와, 그 위에 살짝 얼린 브랜디를 이슬처럼 올려 둔 분자 요리 디저트를 맛보려는 순

간 ‘기자들이 당신을 찾고 있다’ 같은 독촉 메시지나 보내고 말이야. 음미할 시간도 없이 한 입에 우겨 넣

고 씹으니 그냥 알콜 들어있는 초콜릿 맛이 난다. 섬세함 따위 없는 내 먹방을 목격하고 울상이 된 셰프를

뒤로 하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누나한테도 연락 왔어?”

“어, 왜 나 혼자 다니냐고 바로 연락 오더라.”

지하 도시로 향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지하 도시의 존재를 몰라서 물어본 건

지. 날 잡아서 협회도 한 번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협회의 썩은 부분을 조사하고 다니던 백아영이

주인공 버프를 받았다면 정보를 꽤 모으지 않았을까?

슬그머니 단말기를 확인해 보니 난리도 아니었다. 내가 슬쩍 숨어서 쉬었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더 이

상의 순찰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건지 다들 불만을 한 가득 쏟아내고 있었으니까. 하긴 다른 업무 하나

도 없이 같은 장소를 몇 주 내내 계속 순찰하는 것은 짜증날 만하지.

거기에 나랑 소희는 데이트랍시고 영화도 보고, 오락실도 가고, 숨은 맛집을 찾겠다고 음식점 거리를 탐

방하기라도 했지, 다른 히어로들은 하루 종일 감시만 하지 않았겠는가? 그 때문인지 짜증을 떠나 정보의

신뢰성을 따지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 확실한 정보 맞습니까? 이 정도로 등장하지 않는다면 슬슬 본업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 위장 신분이라지만 자체 휴업으로 카페 문 1달 내내 닫아 두게 할 생각은 아니죠?

- 저 여기서 며칠 더 빠지면 학사 경고인데 협회에서 공문 처리 가능합니까?

- 체육관 PT 빵꾸났다고 지금 회원권 반품 들어오게 생겼는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

대중에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A급 히어로들이다 보니, 생계 관련된 항의가 많았다. 관련자가 하나 하나

답변을 해 주면서 달래려 들지만 저걸 무슨 수로 달래겠는가. 당장 눈 앞에 없는 빌런 보다는 지금 항의하

는 고객들이 무섭겠지.

고급 원두를 들여놨는데 카페에 있을 시간이 없어서 원두가 걱정된다는 카페 사장. 헬스장 고객들이 PT

를 왜 중단했냐고 따진다는 헬창남. 그리고 며칠 더 빠지면 출석 횟수 미달로 이번 학기 모든 수업 F가 나

올 것 같다는 대학생까지.

협회가 손을 쓴다면 전부 처리가 가능한 일이지만, 처리를 해 주는 와중에 당연히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대학생 하나가 학교에 다니지도 않았는데 출결이 완료되어 있다? 이상함을 느낀 학생이 파고 들면 바로

A급 히어로 신상 하나 공개되는 거지. 빌런을 제보해 히어로를 돕겠다고 망상 하는 젊은 애들이 많은 게

이 동네다. 교양이면 몰라 전공 수업에 얼굴도 안 비췄는데 출결이 문제없으면 꼬리가 안 잡히는 게 이상

한 일이다.

공무원들이 백날 천날 어르고 달래봐야, 그래서 학사 경고 받은 기록 삭제해 주냐고 따지는 대학생을 이

길 수 없었다. 커피 원두나 회원권처럼 돈으로 커버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자기 단말기로 그 모습을 본

소희가 이제 이 짓거리도 끝나겠다고 작게 중얼거린다.

그 모습을 보니 입이 근질근질 하다. 게임도 그렇고 인터넷 커뮤도 그렇고 관종끼가 다분한 나로서는 정

보가 진짜고, 포탈은 찾았고, 너네는 좆밥 새끼들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지만 큰 그림을 위해서 참는

수 밖에.

히어로들이 감시를 풀고 안심을 할 때, 서울 한 복판에 포탈이 열릴 것이다. 빌런 조직이 없이 비어 있는

한국 암흑가를 통치한다는 야망을 품은 빌런 조직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도시는 불타고 시민들은 공격

당할 때, 그 때야 말로 용사가 등장할 때다.

그렇게 단말기를 바라보고 있으니 눈치 없는 공무원 한 놈이 어차피 취직은 히어로 협회에 할 텐데, 학점

에 너무 매달리는 거 아니냐고 답변을 한다. 그러자 흥분했는지 ‘아니’ 라는 글씨가 곧바로 화면에 떠오른

다. 소희가 오- 하고 감탄성을 내며 단말기에 집중한다.

- 아니

- 저기요?

- 무슨

- 말을

- 죄송합니다, 표현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 그따구로

- 합니까?

뒤늦게 잘못을 깨달았는지, 아니면 옆에 있던 사수가 알려줬는지 황급히 사과 인사가 올라오지만 늦었

다. 이미 학사 경고에 눈이 돌아간 대학생은 1초에 한 단어씩 끊어서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채팅 할 때 길

게 쓰는 사람이면 몰라도, 저건 이미 회생 불가능인데.

- 내가

-뭐

- 어려운

- 부탁을

- 했나?

- 아니

사과 한 문장마다 단어 스무 개 정도의 비율로 채팅이 올라와서, 우리 커플은 편의점에서 산 콜라를 마시

며 길거리에 우뚝 서서 단말기를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작품후기]

엑셀 파일 분석해서 그래프 뽑고 뉴스 기사 작성하는게 과제입니다.

교수님이 과제를 한글로 내줬는데 나는 왜 이해를 못할까

0개국어가 되어버린 것인가? 그 찐따같던 작가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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