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6화 (166/189)

새로운 이벤트

조직을 통합하고 이어 붙이는... 그래, 모가지를 이어 붙이는 작업 끝에 만들어진 도시관리실의 수백개의

화면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개미처럼 빨빨빨빨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중 몇 명은 사람이 아닌 걸 알

긴 하지만 뭐, 아무튼 많은 사람들.

자그마한 소년의 위엄 어린 호통에 제 잘난 맛에 사는 하류 인생들이 잘 훈련된 병사처럼 거리를 뛰어다

니기 시작한다.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저주파를 뿜어서 사슴 같은 놈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더니, 지금

내 꼴이 사슴 같기는 하네.

호가호위도 아니고, 록(鹿)가호위 아닌가. 전투 능력은 소싯적 군대에서 배운 태권도 밖에 없는 년이니,

여우나 사슴도 아니고 토끼 수준 정도. 그러면 토(兔)가호위 인가? 긴장감이 풀리고 불안감이 해소되며

엉뚱한 생각이 새록 새록 솟아난다.

- C구역 12블럭, 폐 창고에 노숙 흔적 확인! 출입한 사람은 없습니다!

- E구역 8블럭, 파이프 내부에 다수의 발자국 확인! A구역 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 D구역 9블럭, 공사 중단 지역 내부에서 식사를 한 흔적이 있습니다.

도시의 입구와 통로를 감시하던 병력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조직이 차지하지 않은 빈 건물들을 수색한다.

통로를 오간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내부에는 사람이 지냈던 흔적이 하나 둘 발견되기 시작되니, 그제서

야 이 불안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미친, 뭐 먹을 게 있다고 공간 능력자가 여길 기어 들어와?’

아무리 온갖 인간 군상이 모이는 지하 도시라지만, 공간계 능력자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막말로 마약부

터 총기까지 밀매하는 놈들이 모인 도시인데, 공간계 능력자가 있으면 걔가 이 구역을 다 차지했겠지.

더군다나 발견되는 흔적이 여럿인 걸 봐서는 등급도 높다. 최소 B, 재수 없으면 A. 하지만 고작 B급 하나

에 이렇게 등골이 벌벌 떨릴 리 있나. 나름 지하 도시 경매장 주인으로 옆구리에 칼침도 먹어보고, 머리통

도 저격당할 뻔 해본 사람인데.

“하, 씨발... 감 많이 뒤졌네 진짜.”

입술을 짓씹어 물며 작게 속삭이며 기분이 매우 나빠 보이는 모습에 다시 소름이 오소소 올라올 뻔했지

만, 때마침 비싼 돈 주고 고용한 셰프가 잘 익힌 송어 요리를 대접하기 시작했다. 조직을 개편하기 귀찮다

는 이유로 사람 모가지를 뜯었다 붙여서 좀비로 만드는 미치광이 흡혈귀를 송어 한 마리로 진정시키는 요

리사라니.

뭐, 사람 모가지를 뜯으며 나를 품평할 땐 정말 나잇값 못하고 치마에 지릴 뻔했지만 뭐 어떠랴. 그 무서

운 괴물이 내 뒷배가 되었고, 명령만 잘 듣고 눈치만 잘 보면 안전을 보장해 주고 있는데. 근 일주일 동안

잠도 못 잘 정도로 느껴지던 소름 끼치는 경고음이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만 해도 큰 절을 올릴 일이다.

셰프의 연봉을 세 배로 올렸지만, 다시 두 배 정도 올릴 마음을 먹으며 잠시 머리를 굴린다. 허영심과 사

치, 명예욕 때문에 ‘특별함’ 을 추구하느라 지하 도시 경매장까지 흘러왔다 빚을 진 양반이니까 적당한 명

함 하나 파 주면 좋아 죽겠지. 흡혈귀 전담 요리사를 VVVIP 전담 헤드 셰프, 이런 식으로 이름만 바꿔주면

좋아 죽을 양반이니까.

그리고 지금 기분이 조금 풀린 것 같은 이 흡혈귀는 어쩌지. 자신의 부하들이 아닌 그 시체 병사들에게는

텔레파시라도 보내는 건지 식사를 하며 말 한 마디 없는데 중간 보스들이 알아서 제 부하들을 이끌고 우

르르 몰려다니며 보고를 한다. 대체 흡혈귀는 어떤 존재 인지 궁금할 지경.

그리고 하나의 화면이 갑작스레 확대되자 관리실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

라도 발견했는지 소년이 급작스레 화면을 당겨 온 것이다. 화면 속에서 달려 나오는 세 명의 여성, 그리고

절뚝거리며 따라가는 한 명의 여성.

- A구역 환기구 내부에서 불법 침입자 감지, 마주치자 마자 기습당했습니다!

한 박자 늦게 울려 퍼지는 힘겨운 목소리에 다시 한 번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애들 다 모아, 무조건 생포해.”

소년이 아름답게 웃고 있었기에.

녹슬었다, 나태해졌다, 폼이 죽었다, 감이 죽었다, 퇴물이다, 초심 잃었네.

게임을 하는 놈들이 게임을 하며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아닐까? 그리고 그걸 스스로에게 말해야 하는 지

금 이 순간이 소름 끼칠 정도로 짜증났다. 세상에, 소희에게 빨대 타령을 하며 현모양처니 가정주부니 개

소리를 하며 얹혀 살아서 그런가. 진짜 퇴물이 아니라 고물이 된 기분인데.

공간 조작으로 침투할 수 있는 적이 있을 때, 지상을 다 긁어서 안 나오면 지하에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2

회차 전에는 회의를 하자 마자 무릎을 탁! 치면서 떠올렸어야 할 내용이었다. 그걸 이제야 생각해 내다니.

Made in 지하도시 제품인 김한나 경보기가 잠도 못 자고 다스서클이 콧볼까지 내려온 상태로 달달 떨고

있어서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얘가 다른 부분은 참 이상한데 감 하나는 끝내 주게 좋단 말이지.

육체능력도 초능력도 전부 발달하지 않았지만 오직 ‘직감’의 성능으로 B급까지 달성한 년 다운 반응이었

다. 생각해보면 B급은 인류 기준 상위 1%의 초인이긴 하지. 직감의 초인이라, 뭔가 남자의 가슴을 울리

는 단어가 되었는 걸.

소금과 후추만으로 가볍게 양념이 된 송어 스테이크의 붉은 살을 포크로 집어 맛보고 있으니 훅 치솟은

짜증이 점점 가라앉는다. 결국 게이머는 결과를 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늦게 도착한 것도 아니고 정확

한 타이밍에 와서 기어 들어온 새끼들을 찾아 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구석에 있는 찝찝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과만 본다, 좋게 끝났다 하더라도 가슴 한 구석에서 게이머인 내가 작게 속삭이는 게 느껴지니까. ‘병신

이 허리만 놀리다 스토리 터질 뻔 했쥬? 19금 게임 데이터 남챙놈 클라스 ㅋㅋ’ 하며 비웃는 목소리가. 이

렇게 짜증이 나는 날에는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한다. 환기를 하지 않으면 후반 진행 때 정신줄을 놔 버려

서 스스로도 이해 못할 트롤링을 할 때가 있으니까.

- A구역 환기구 내부에서 불법 침입자 감지, 마주치자 마자 기습당했습니다!

화면 속에서, 세 명의 여성이 황급히 튀어나온다. 아무리 봐도 한국인은 아니었다. 악성 곱슬머리에 새카

만 피부나, 은발 벽안을 가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보다는 다국적 빌런 연합원이라 보는게 맞겠지.

마지막 송어 한 점을 포크로 쿡 집자 접시가 그그극 긁히는 소리가 난다. 괜사리 흥겨워져서 진심을 담아

외친다.

“애들 다 모아, 무조건 생포해.”

근데 왜 니들이 오냐.

“오랜만에 보네요.”

“안녕하심까!”

흡혈귀의 마력을 담아 마이크에 외친 생포 명령은 CCTV 밑에 달려 있는 경고 방송용 스피커를 타고 지하

도시 곳곳에 퍼져 나갔다. 그 결과, 내 앞에는 턱주가리가 돌아간 상태의 세 명의 빌런과 두 명의 굴라가

존재하고 있었고.

아니, 굴라가 아닌데?

김세민과 이세정. 소희를 만나기 이전 남녀 역전 세계를 몰라서 김세민의 피를 빨고 따먹었었다. 그리고

소희에게 들러붙기 위해 뒷정리를 하려고 굴라로 만들었고. 지하 도시에서 알아서 먹고 살라며 구울 병

사를 쉰 마리 정도 붙여줬는데.

그래 뭐, 지난번에도 강화석을 처먹고 나 없이 지들끼리 진화를 하긴 했었지.

그런데 이건 좀 심하지 않냐?

김세민. 각선미가 매력적인,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예쁘장한 얼굴과 늘씬한 각선미를 빼면 몸매

는 조금 유감이었던 여고생. 지금은 지하 도시의 물을 먹었는지 순딩한 여고생의 태를 벗어나 있었다. 굳

이 따지자면 순한 인상이지만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슬랜더 모델 같은 이미지.

반투명한.

이소정. 금발 단발 머리의 양아치 거유 여고생. 소희만큼은 아니지만 확연히 커다란 C컵의 풍만한 몸매

때문에 여고생이라는 느낌이 거의 없던 여자 아이. 김세민을 감염 시키는 김에 덤으로 시켰었고, 활발하

며 몸으로 뛰는 육체파의 느낌이 더 강해졌다. 김세민이 슬랜더 모델이라면, 이소정은 금발로 염색한 그

라비아 모델 이미지였다.

뼈 갑옷을 입은.

“아니, 씨벌, 니들 그거 뭐야.”

나도 한국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내 굴라였던 녀석들에게 아니시에이팅을 걸고

말았다. 뼈 갑옷이야 벗을 수 있는 거라 눈치 채기 힘들지만, 몸이 반 투명하게 변해서 이마에 투명한 왕

관을 쓰고 있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아, 이거요? 이야기하면 좀 긴데... 지하 도시 침입자랑 싸우다 진화했어요.”

머리에 쓴 왕관도 그렇고, 새하얀 뼈 갑옷도 그렇고 평범한 진화 조차 아니다. 낮은 확률로 당첨되는 특수

개체의 특징이니까. 드레스도 없고 뼈로 된 군마도 없는 걸 봐선 레이스 퀸이나 데스나이트는 아니라 내

가 모르는 무언가로 진화한 것 같긴 한데.

“진화 존나 쉽네 씨발...”

문득 부하 구울들의 멍첨함에 치를 떨며, 어떻게든 중위급 언데드로 진화시키려고 개 고생을 했던 초반

부 플레이가 떠올라 코 끝이 찡해진다. 이렇게 진화가 쉬우면 개나 소나 네크로맨서 테크 타서 게임 쉽게

했지.

지하 도시에 던져둔 D급 병졸이 지 멋대로 C급으로 승급하더니, 반 년 만에 B급이 되어 있었다.

[작품후기]

내 글이 투베에 자꾸 보이니까 기분 되게 이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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