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8화 (158/189)

새로운 이벤트

달달한 과자와 아메리카노로 시작된 다과회는 어느 순간 인터넷을 안주 삼은 맥주 파티로 전환되었다.

술에 취하지 않는 영웅들이 모여 있다 보니, 탄산 음료를 마시는 기분으로 맥주 캔을 뜯기 시작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맥주들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더니 두 여자들은 취하지도 않았으면서

언쟁을 시작한다.

“아니 4구역쪽이라니까?”

“그래도 능력 생각하면 5구역이지!”

언쟁의 주제 겸 안줏거리는 다른 히어로들. C에서 B급 사이에 포진된 특이한 컨셉의 능력자들에 대한 것

들이었다. 초능력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인기를 얻기 위해 컨셉도 다양하게 잡혔고, 그로 인해 초

능력자들의 업무 범위도 늘어났으니까.

같은 화염 속성이라 해도 근무 방식은 다양하다. 몸에서 화염을 뿜어 내는 초능력자들은 화력 발전소에

서 매달 정해진 량의 에너지 발전을 해야 한다. 반대로 외부의 불꽃을 다루는데 치중된 히어로는 소방서

와 연계해 화재 진압을 다닌다. 화염 속성인데 불꽃 보다는 열기의 조종에 치우쳤다면 농업 지구로 가서

온도 조절을 담당하기도 하고.

하지만 조금 특이한 종류의 초능력자들은 단순 노동이 아닌 다양한 곳에 사용된다. 초능력자도 많고 종

류도 많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인류에게 도움이 되게 만들어 민간인과 초능력자의 전쟁을 막으려 들었

던, 정치인과 과학자들의 피나는 노력 끝에 만들어진 일자리들.

분명 악마들이 만든 술은 따로 치워 둔 상태인데, 취하지도 않았을 두 여자가 취한 것처럼 대화를 이어 나

가니 옆에서 듣는 재미가 있었다. 평소 인터넷 서핑이 귀찮아 등한시하던 내게 커뮤니티의 내용을 줄줄

읊고 있었기 때문에.

“땅을 밟지 않으면 강해지는 능력, 딱 봐도 뱃사람으로 살아가라는 계시 아니냐? 5구역 섬 쪽에 가서 항

구 관리자가 되는게 제일 좋지.”

“아니지, 5구역쪽은 대부분 제주 관광 지구인데 그 정도로 강해질 이유가 있나. 그래도 B급이고 강화된

능력도 엄청 강한데 5구역보다는 4구역에서 있는 게 좋지. 인명 구조는 그녀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지만,

사고로 바다에 가라 앉는 화물은 건질 사람이 없으니까.”

분명 이야기의 시작은 ‘히어로 공익 때 이런 상사가 짜증났다’ 였는데, 어느새 다른 초능력자가 어느 지역

에서 근무하는 게 맞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어떤 상사가 짜증났는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

니 현대 판타지 모드에서 술만 마시면 군대 이야기를 하던 매니저가 생각나 지루했지만, 다양한 초능력

자의 이야기는 듣고 있으면 꽤 재미 있었다.

곧 망가지게 될 물건을 알아차리는 초능력자가 에어버스 정비소에서 일하다 대규모 화재 사건을 미리 감

지했던 사건 같은 것을 들으며 감탄사만 조금씩 해 주면 신나서 줄줄줄 설명해 주니까. 사실 내가 가장 익

숙한 모드는 판타지 모드라서 그런지 이런 초능력자 썰은 별로 들어본 게 없기도 했고.

성욕을 풀기 위해 게임 데이터를 사는 고객들의 음습한 욕구. 그들은 현대 배경에서 아이돌이 되거나 회

사 사장이 되는 것 보다는, 대륙을 정복하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떡만 치다 꺼버릴 수 있는 판타지 제

국의 황제 자리를 원하니까.

“그거 때문에 히어로 커뮤니티가 난리도 아니었지. 자기들이 쓴 글 때문에 히어로의 근무처가 바뀌고, 그

히어로가 200명 넘는 사람들을 구했으니까. 초능력이 없더라도 사람을 구했네, 뭐네 하면서 전부 살려냈

지요? 이러고.”

육체 강화가 된 튼실한 턱이 뻐근해질 때까지, 두 사람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바깥의 기자들이 지쳐서 돌아갈 때까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가슴 한 구석에서 자괴감이 올라오지만, 자괴감보다는 성욕이 앞서고 있다는 것

에 조금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하기야 열 살 어린 고등학생과 동거 중에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건드렸다

는 것 부터 자괴감 운운할 때가 아니긴 했지.

하지만 소파에 드러 누워 있는 고운 자태를 보니 짜증스러운 마음도 자괴감도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이

제는 둘 다 성인이고 할 거 다 한 사이인데 뭐가 나쁘랴. 그런 자기합리화가 듬뿍 들어 있는 속삭임이 질척

이는 성욕과 함께 귓가에 울려 퍼진다.

“하늘아, 뭐 좀 마실래?”

“엉...”

추욱 늘어진 저 모습이 그 자기합리화를 조금 더 강하게 만든다. 평소에는 맹랑하게 눈도 치켜 뜨고, 애인

이랍시고 반말과 존댓말을 오가며 사람을 가지고 노는 요망한 모습만 보여주면서. 눈을 멍하니 뜬 상태

로 비몽사몽 거실을 오가는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나태에 취한 그 모습은 인형에 가까웠다. 앉히면 앉고, 입가에 뭘 들이대면 오물거리며 쪽쪽 마시고. 그러

다 졸리면 그 자리에 기대거나 누워서 한숨 푹 자니. 원판부터 잘 생겼기에 그렇게 잠에 취한 모습도 마치

화보의 한 장면 같았다.

‘흡혈귀라서 미남일까, 그냥 잘생긴 걸까.’

침대가 아니라 소파가 우리 집에서 가장 폭신하고 좋은 가구라는 것은 조금 우스꽝스러운 상황이기는 하

지만. 1주일 내내 흐느적거리며 집 구석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결국 소파에 자리 잡음으로써 증명된 사

실이니 어쩔 수 없다.

지금도 소파 팔걸이에 비뚜름히 누워있는 저 모습을 보라. 반쯤 뜬 눈은 무언가를 바라보는 게 아니다. 눈

앞에 TV가 틀어져 있던 내가 지나가던 상관없이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니까. 다만 노출이 심한 남성 히어

로나 아이돌이 나오면 돌아 눕는 정도의 반응은 보인다.

여자의 노출은 아무런 감흥 없이 바라보는데, 남자의 노출에는 인상을 찌푸리고 돌아눕는 걸 봐서는 보

수적이라 해야 할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밤의 생활이 개방적인데. 물론 아름다운 애인이 내게만 개방적

이라는 것은 여자로서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할 일이긴 하다.

“하늘아, 배 안 고파?”

“고파...”

아까 기자들의 무리를 보고 진이 빠졌는지 다시 나른하게 잠든 무방비한 모습. 슬그머니 다가가니 오똑

한 코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다 이내 잠잠해진다. 사랑해 마지 않는 남성이 자신의 품 안에서 완벽히 무

방비가 된다는 것이, 그렇게 보여주는 무한한 신뢰가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연고 하나 없이 지하 도시에 떨어진 흡혈귀 소년. 집에 정붙이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이제는 늘

어져라 기대는 오는 것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전에도 애인 자랑을 하다 몇 대 얻어 맞았을 정도로 자

신이 푹 빠졌음을 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랑스러운 게 맞는데. 애인과 사귄 기간이 다 모아서 5년이 안되는 모태솔로들 앞에

서 염장을 긁었으니 몇 대 얻어맞아도 이득이지 않을까?

검지 손가락 끝을 살며시 손톱으로 긋는다. 핏방울 한 방울이 맺히자 마자 사라지는 흉터. 하지만 상관없

었다. 그대로 소파에 잠든 하늘이의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니 주저 없이 자그마한 입이 벌려진다.

새빨간 입술 사이로 마중 나오는 분홍색 혀. 백태 하나 없는 분홍색 살덩이가 뜨듯 미지근한 감촉을 남기

며 검지 손가락 위를 핥고 지나간다. 손톱 끝에서 손가락 마디로, 그리고 한 번 빙글 휘어 감으며.

슬며시 검지 손가락을 입 안에 집어넣자 미지근한 입김이 느껴진다. 입 안에 들어온 손가락이 반갑다는

듯 앙 다물린 입술. 비뚜름하게 깨물린 검지 첫 번째 손가락 마디에 따끔한 고통이 느껴지다, 이내 오물거

리며 손가락을 감싸오는 입술의 부드러운 감촉에 묻혀 사라진다.

심장 한 구석에서, 미세하게 무언가 흘러 나가는 기분이 든다.

“하늘아, 자니?”

만족스럽다는 것처럼 손가락을 문 소년이 고른 숨결을 내쉬자 손등을 간지럽히는 그 미약한 바람에 솜털

이 오소소 일어나는 게 느껴진다. 흡혈로 인해 약간의 기운이 빨려 나가고 있지만 아쉬움 따위는 없었다.

이 넘쳐나는 기운이 사랑스러운 애인을 강력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을 아니까. 초능력 적인 이야기

기도 하며, 육체적인 이야기기도 하다. 스스로의 음흉함에 감탄까지 하며 시선을 슬그머니 내린다.

흐트러진 셔츠 깃 사이로 보이는 새하얀 쇄골, 평범한 사람보다 느릿하게 들썩이는 넙데데한 가슴, 그리

고 셔츠 아래에 있을 여성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매끈하게 빠진 복근. 윗옷을 살며시 들춰 올리고 쓰다듬

으니 간지럽다는 듯 몸을 배배 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이 입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없었다.

오른손을 그대로 물려준 상태로, 왼 손만 이용해 슬며시 옷을 풀어 헤친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옷을 찢

어버리고 싶지만 깨어난 하늘이에게 잔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소파에 누워 풀어헤쳐진 옷 위에

누운 소년, 그리고 그 소년 앞에서 흥분한 상태로 알몸이 된 여자.

‘객관적으로 보면 그냥 성범죄자랑 다를 게 없네...’

지금으로서는 욕실에서 암묵적으로 허락을 받았다는 것 하나만이 유일한 변명이었다. 내일이면 또 반나

절은 이 걸로 놀려 먹히겠지만, 개구장이 애인에게 놀려 먹히는 것이 무서워서 여기서 손을 떼자니 여자

의 자존심이 울부짖었다.

슬그머니 고무줄을 당겨 남성의 마지막 보루를 치워내자 우뚝 솟아오른 고기 막대가 보인다. 그래, 이렇

게 되는데 고작해야 가슴 어림에 넘쳐나는 에너지 정도를 못 나눠줄까. 그대로 소파 앞에 무릎을 꿇으니

코 끝으로 진한 체취가 느껴진다.

[작품후기]

선호작이 매일 5~10씩 올랐는데

수요일 목요일은 갑자기 40, 50씩 오르네요 이게 무슨 일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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