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 (150/189)

새로운 이벤트

일이 바쁘게 돌아간다, 뭐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이 정말 게임처럼 움직인다면 내가 원할 때 사건이 일어

나도록 유도할 수 있지만 그게 안되니까. 당장 일곱 악마들만 봐도 어쩔 수 없다고 납득하게 된다.

인기 막장 드라마 작가로서 매일 드라마 대본을 작성하며 덤으로 회사 몇 개를 인수한 오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 식료품을 공급하며 덤으로 초호화 호텔 사업까지 진행하며 정치까지 은근 슬쩍 손을

뻗은 식탐. 월가를 비롯하여 세계 각 국가에 다양한 회사를 거느리고 산업에 깊게 연관된 탐욕. 그리고 이

번에 연락이 닿은, 세계 최대 합법 포르노 사이트를 운용하며 휘하 악마들과 배우들로 동영상부터 잡지

까지 수백 수천개의 음란물을 찍어내는 색욕까지.

딱 봐도 일을 안할 것 같은 나태나, 빌런 쪽에 흘러 들어간 뒤 딱히 소식이 없다는 분노, 그리고 언급조차

되지 않는 존재감 없는 질투를 제외하면 다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것이다.

아니 진짜로, 생각해 보면 얘들은 지옥에도 자신의 영지를 가지고 있어서 거기까지 돌보니까 장난 아니

겠네. 아무리 악마 군주고 칠대 죄악이고 거창하게 이름을 달고 있어 봐야, 결국 자신이 인간에게 끼친 영

향에 따라 힘을 얻게 되는 거니까.

“기분 좋으신가요?”

“엉... 계속 해.”

그러니까 푹 쉬는 게 최고다.

여섯 개의 손이 온 몸을 주물럭거린다. 부드럽게 근육을 자극하는 그 가벼운 손짓에 해소하지 못한 욕망

이 슬그머니 올라오지만 그런 의도는 없다는 것처럼 사타구니 쪽으로는 접근도 하지 않는다.

어깨를 어루만지며 날개뼈를 꾹꾹 눌러주는 손, 등허리를 꽉 잡고 척추를 눌러 뜨득 뼛소리가 들리게 하

는 손, 발목부터 종아리까지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눌러 오금 아래의 힘을 쭉 빼 버리는 손. 대체 3인 1조

마사지는 어디서 가르치는 거고 얘들은 왜 이런 걸 잘 하는가 궁금할 지경.

호스트던 호스티스던, 그러니까 창녀던 남창이던 일단 몸을 팔 때 기본적으로 개인 플레이 아닌가. 그런

데 이 세 명의 접대부의 호흡은 완벽했다. 빈 말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 큰 제국의 황제가 되어서

받았던 접대와 비교해도 나쁘다는 말은 안 나올 수준이었으니까.

남녀 역전 세계 답게,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직접적으로 성적인 접촉은 하지 않고 열심히 마사지를

하는 그녀들이었지만 그 것 만으로 1주일간 쌓인 스트레스와 욕구 불만이 해소될 정도라서 입 가벼운 년

하나를 살려줄 정도로 뛰어난 실력.

“이 쪽까지... 할까요?”

“...음, 아냐, 마사지나 계속 해.”

근육이 흐물흐물 늘어지고, 코 끝을 가볍게 스치며 지나가는 아로마 향 때문에 온 몸이 나른하게 풀어진

다. 자연스럽게 축 늘어지니 열기가 오른 식히라는 것처럼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기에 슬쩍 실눈을 뜨

고 그 쪽을 보니 단발머리가 슬그머니 커다란 부채로 바람을 부쳐주고 있었다.

‘뭐지 얘들 진짜...?’

원래 세계의 호스트들도 돈 많은 마나님들을 접대하기 위해 이 정도의 노력과 기술을 갖추었을까? 문득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척추 사이 사이를 가볍게 눌러 뼈 마디마디를 풀어주는 기술이 흡혈

귀의 육체를 노곤 노곤하게 만드니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받을 만한 의뢰 없나 찾아온 마음이 사라질 정

도.

“조금 있다... 후우, 들어와.”

그렇게 거친 숨소리를 내며 헐레벌떡 달려온 김한나도 대기시키고, 복도에서 가볍게 아가리를 놀리는 경

호원의 목숨도 살려준 상태로 소파에 축 늘어져 있으니 온 몸을 어루만지던 손길이 사라지고 조심스럽게

문이 열린다.

“그, 경매장이라도 한 번 둘러보시겠습니까?”

뭔가 얼굴색이 밝아진 김한나가 말을 걸어온다. 아까 전 까지는 불안감에 가득한 목소리로 부하 직원들

을 갈구더니 이제는 또 마음이 풀리기라도 한 걸까. 기분도 풀렸겠다 몸 상태도 좋아진 것 같아 그냥 집으

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았더라면.

“경매장이고 뭐고...”

축 늘어진 상태로 소파에 슬그머니 손톱을 박아 넣었다. 입구에서 들어온 김한나는 멍한 표정으로 내 이

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슬그머니 마법의 시전을 멈추지 않았다. 감 하나로 이 바닥에

서 살아남은 년이 마사지를 받는 도중에 기어 들어올 리 있나.

“너, 누구.... 뭐냐?”

짜악-! 메마른 살소리가 방 안을 크게 울린다.

벌떡 일어나 마법을 발사하려는 순간, 김한나가 스스로의 뺨을 때린다.

“어...?”

“무슨 일이... 악! 정신 차렸으니까 그거 내려 놓아주세요!”

부채와 아로마 향을 내뿜는 미니 가습기를 정리하던 삼인방도 방 구석에 처박혀 테이블과 의자를 엄폐물

삼아 후다닥 숨어버리고, 제 뺨이 부어오를 정도로 스스로 후려친 김한나는 자신이 왜 방 안에 들어와 있

는지 살펴보다 내 손을 보고 비명을 지른다.

“너 뭐야, 이게 뭔지 보여?”

“아뇨, 보이진 않는데 맞으면 죽을 것 같은데요?!”

어처구니가 없어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낮은 포복으로 비상구로 향하던 세 명이 보여 그냥 걸어서 나가라

고 슬쩍 손짓을 했다. 잘록한 허리와 포동포동한 허벅지가 참으로 보기 좋았지만 정자세로 포복 전진을

하는 걸 보니 군필이라는 생각이 들어 성욕보다는 웃음이 새어 나와서.

“야,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그, 기다리라 하셔서 문 앞에서 기다리다 눈을 깜빡이니까 이 안에 들어와 있었는데요.”

“그리고?”

“어... 뭔가, 정신이 멍한데 이대로 있으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정신 차리려고 뺨을 때렸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그거 치우시면 안됩니까? 진짜 무섭습니다.”

포복으로 기어가다 어색한 웃음을 띄우고 후다닥 달려 나간 세 명을 떠올린다. 그녀들의 시선은 내 손으

로 향하지 않았었다. 되려 자신들의 사장이 갑자기 슬쩍 들어오더니 제 뺨을 때리는 기묘한 광경을 보고

뭔 일이 있나 보다 싶어 납작 엎드렸을 뿐이지.

하지만 지금 겁에 질린 김한나는 내 손을 보고 있었다.

일반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마법이 장전된 나의 손을.

심심하던 차에 하고 싶던 실험이 생겼다.

그래서 했다.

“그, 이제 그만 하시면 안됩니까? 머리로는 알아도 심장이 되게 벌렁벌렁 한데요...”

김한나의 우는 소리는 뒤로 할 정도로 재미 있는 실험이었으니까. 현실성이 뛰어나고 PVP가 일상이 된

게임에서 마법은 두 가지 종류로 발전하였다. 하나는 히어로처럼 자신의 힘을 광고해야 하는 모드에서

쓰이도록 모두가 볼 수 있는 마법. 다른 하나는 암살 같은 것에 사용되도록 누구도 볼 수 없는 마법.

내가 방금 사용한 것 또한 보이지 않는 마법이었다. 수상함을 느끼고 기습을 하려는 상황인데 손이 반짝

반짝 빛나면서 매지컬 리리컬 핏방울아 황산이 되어라~ 같은 주문을 외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손의 혈관 안에서 흐르는 피를 촉매 삼아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는데, 마법은커녕 흡혈귀에 대

해서도 모르는 김한나가 위험을 눈치 챈 것이다. 살기를 느낀 것도 마력의 유동성을 느낀 것도 아니고, 그

냥 불안해서.

“야, 너 진짜 신기하다. 어디 전쟁터에 던져 놔도 죽지는 않겠는데?”

“감만 좋은 거지 능력이 좋은 건 아닙니다. 막말로 미사일 같은 게 날아오면 위험을 알아차려도 대비도

못하고 죽어요.”

내 말에서 불안감을 느꼈는지 죽상이 울상이 된 김한나가 황급히 말을 이어 나간다. 내가 말한 전쟁은 중

세시대나 무림시대처럼 눈 먼 칼과 화살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인데, 현대 과학에 익숙한 그녀는 전투기와

핵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전쟁을 떠올렸나 보다.

...이상한데서 소외감 느끼게 만드네.

가슴 한 켠에 스며든 떨떠름한 감정마저 해가 된다고 느꼈는지 김한나가 슬그머니 내 눈치를 본다. 이쯤

되면 예지가 아니라 예언이라 봐도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제게 닥쳐올 일만 감각적으로 느끼는 거니 B급

에서 멈춰 있는 것이겠지.

아무튼 눈 앞에서 축복과 저주가 이리저리 오가는 모습을 관람한 그녀가 초췌한 모습으로 축 늘어졌기에

손아귀에 담긴 마력을 흘려보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녀는 자신에게 불행이 닥쳐오는 것 말고, 어떤

불행이 닥쳐올 것인지 대략 예측을 했었다.

눈이 멀거나 시야가 어그러지거나 환청이 보이는 저주를 몰래 시전하면 ‘내일 햇빛을 못 볼 것 같다’ 라고

표현하였고, 직접적으로 신체에 데미지를 주는 마법은 ‘병원에 한동안 신세 질 것 같은 불안감’ 이라고 표

현하였다. 세뇌와 매혹 같은 정신계 마법은 ‘내가 내가 아니게 되어버린... 아니 이런 대사는 좀 이상한

데?’ 라고 말했고.

... 그러니까 그녀의 정신을 건드린 놈은, 나보다 마법 실력이 뛰어나다는 소리였다.

‘이 씨발 새끼, 어디 있는 거지?’

[작품후기]

주말에 과제를 하던 중 매복 사랑니쪽 잇몸에 고름이 생겼습니다.

치과 블로그 위주로 검색을 해보니 사랑니 뿌리가 썩어서 고름이 밖으로 새어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엄청

나게 겁을 주더군요. 엄청 겁먹은 상태로 월요일 9시 땡 되자마자 치과로 달려가서 엑스레이를 찍었습니

다.

잇몸 염증은 피곤해서 난 거고, 이빨은 양치에 치실까지 해서 멀쩡하답니다.

사랑니 위에 정확히 염증이 생긴건 그냥 우연...

그런데 사랑니가 이상한 방향으로 전진을 시작해서 결국 뽑게 생김.

독자님들도 몸에 이상이 좀 있다 싶으면 검색해보고 쫄지 말고 그냥 바로 병원가세요.

주말 내내 겁먹은 상태였는데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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