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 (149/189)

새로운 이벤트

거실 한 구석에 놓인 컴퓨터 두 대. 무광 블랙의 날렵한 본체 안에는 어지간한 증강 현실 영화도 손쉽게 상

영할 수 있는 최첨단 부품들이 충격 방지와 온도 조절 마법을 비롯한 각종 다양한 마법진으로 보호받으며

웅웅 돌아가고 있었다.

그 좋은 컴퓨터로 하는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는 RPG 게임이지만.

“누나, 뒤로 돌아온 애들 묶어 놨어요.”

“알겠어, 앞쪽 애들 처리되면 바로 이동할 게.”

한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나와 소희는 게임 서버 내에서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탔다. 내가 SNS에 질문을 가

장한 기만 글을 올려서 어그로를 끌었기 때문이다. 물론 순수하게 어그로만 끌어서 유명해진 것은 아니

다.

“7시 방향 언덕에 33m에 은신하고 있는 애 있다. 사제 계열이 은신하고 가만히 있는 거 보니까 한 파티

가 온 것 같은데? 빠질까?”

“그럼 뒤쪽 애들은 묶어 두고 앞쪽 마무리한 다음 빠지자.”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하는 정통 MMORPG 답게 이 게임은 진형이 두 개로 갈라져서 유저끼리 전쟁을

한다. 초능력자는 국가가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무’ 진영과, 초능력 또한 개개인의 재능이니 국가

가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자유’ 진영.

뭐 말은 멋들어지게 하더라도 결국 빨간 팀이냐 파란 팀이냐의 차이기 때문에 고민 없이 소희가 선택한

자유 진영으로 들어가 PVP를 시작했다. 용사의 신체 능력과 변종 흡혈귀의 신체 능력, 거기에 게임 플레

이 중 렉이 걸리기는커녕 인디게임 서버를 하나 돌려도 될 수준의 마법의 컴퓨터가 합쳐지면 끔찍한 결과

가 벌어지기 마련.

소희가 기절시키고, 내가 디버프를 걸고, 소희가 필살기를 먹이고. 내가 발을 묶고, 소희가 상태이상 중첩

을 걸고, 내가 필살기를 먹이고. 단순 무식한 2인 파티의 스킬 연계지만 0.01 초 단위로 실수 한 번 없이

이루어지는 연계는 적을 학살하기에 충분했다.

RPG라서 우리보다 템이 더 좋은 유저라면 두 명을 상대로도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게 아슬아슬하게 처리가 되네. 이럴 줄 알았으면 파이로 하라고 시킬 걸 그랬나?”

“카운터 맞는 건 싫어. 데미지가 좀 약하더라도 범용성 좋은 게 좋은 거야.”

억 단위의 상품권을 보내는 탐욕의 악마가, 우리 커플이 게임을 하는데 관련된 뇌물을 보내는 것은 당연.

색욕이 보내온 잡템은 비교도 되지 않을 수백 수천만 원짜리 장비가 어느새 우리 캐릭터들의 우편함에 들

어 있었다.

- 동남쪽 정리 완료!

- 악! 북쪽 죽었어요! 북쪽에 무림 명가 애들 스무 명 이상 등장!”

게이밍 헤드셋에서 여러 목소리가 난잡하게 울린다. 여성 비율 80%에 이르는 게임 길드원들의 목소리였

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길드원의 대부분은 소희와 엮인 사람들이었다. 히어로 공익 생활을 하다 친해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으쌰으쌰 만든 길드.

술자리를 좋아하고 취향이 아재틱한, 여기 세상 기준으로는 아줌마 취향인 사람이 주축이 되어서 만든

길드였기 때문에 나와 소희가 날뛰기 전 부터 어느 정도 명성이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길드

원 대다수가 히어로 공익 생활로 모인 사람들이니까길드원 전원, C급 이상의 초능력자였다.

전 세계를 휩쓰는 인기 1위의 가상현실 게임도 아니고 고전 명작이라 불리는 오래된 PC MMORPG에 20

명이 넘는 초능력자가 우르르 몰려들어 강화된 신체 능력으로 컨트롤을 하고 있으니 기본적으로 결투장

상위 10%안에 못 올라간 사람이 없다.

- 이야 동생이 센스가 있어 진짜! 나중에 정모하면 꼭 데려와라!

- 어이구 누님, 누님 같은 늙은이가 말하면 성희롱이야!

으하하 웃는 길드장 아줌마와 타박하는 부길드장 아줌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의자를 옆으로 슬그머니 밀

어 소희의 옆으로 붙는다. 슬슬 서늘해지는 가을 공기를 만끽하며 그녀의 옆구리에 달라붙으니 다시 피

부로부터 따끔한 감각이 올라온다.

“으, 아직도...”

“미안해, 많이 따가워? 물 가져다줄까?”

“아냐, 누나가 강해지는 건 좋은 건데 뭘. 그리고 물을 왜 가져와, 나 마법사야 마법사.”

둘이 딱 달라붙어서 게임에 열중하게 된 이유가 아직도 사라지질 않는다. 삼일 내내 그녀의 피를 흡혈했

지만 이번에 얻은 깨달음은 조금 큰 놈이었는지 내 피부가 적응을 하지 못한다. 맨 살끼리 닿아도 이렇게

따가운데 그녀의 안에 내 물건을 넣었다가는... 으윽, 그러고보니 고문법을 배울 때 산성 액체를 사타구니

에 부어버리는 것도 있었지.

인상 깊은 미친년이 보여줬던 장면이 떠올라 몸을 부르르 떨었더니 오해한 소희가 다가오지도 못하고 옆

에서 안절부절 다리를 달달 떤다. 그래도 사포로 피부를 긁는 수준의 따가움에서 정전기가 탁탁 튀는 정

도의 따가움이 되었으니 곧 적응되겠지.

- 아니 성희롱이라니! 정모 할 때 밥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 원래 모일 때는 떠들썩하게 다 같이 모여서

화목하게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하는 거야!

- 으휴, 지난번 정모 때 희령이가 친구 데려왔다고 말도 어물어물 제대로 붙이지도 못하믄서 말만 잘혀!

여전히 호탕하게 웃으며 이년 저년 하고 웃는 두 40대 아줌마들의 목소리를 배경 삼아, 여러명의 길드원

들이 떠든다. 대다수가 여성의 목소리지만 사이사이 남자의 목소리도 섞여 들려온다. 그나마 다행인 점

은 히어로 공익에서 만나 결성된 길드라서 그런지 남자한테 치근덕 거리는 사람은 없다는 점일까?

예전이었다면 여자한테 꼬리치는 남자와,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주는 온라인 호구의 콜라보를 구경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소희가 강해진 자기 힘도 제어 못하고 쩔쩔매는데

누군가 내게 찝적거려서 소희의 감정이 격해지는 일이 있다면?

강제로 독방 생활이 조금 더 길어지는 것 아닌가.

신혼이라 불러도 무방한 우리의 생활에서 1주일 정도 지속된 금욕 생활은 내게 묘한 짜증을 불러 일으키

기 충분했다. 물론 내가 받는 것 이상의 스트레스를 소희가 받고 있었지만. 무의식 적으로 스킨십을 하다

내가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 미안해하는 소희의 반응이 재미 있어서 그나마 참은거지.

‘참을 만큼 참은 것 같은데.’

피부가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흡혈을 하는 것은 귀찮기 그지없는 일이니까.

말만 하면 100% 완벽히 따르는 꼭두각시 부하들, 그 누구도 위협하지 않는 안전한 상황, 원한다면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정보력. 거기에 세상 귀한 보물들이라도 자기 경매장을 한 번 거치는 상황이니 정신

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완전히 풍족한 상황.

“예, 이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표정 봤어? 어떤 상황이야? 셰프는 제대로 요리를 준비했나?”

누구 하나만 없었다면 말이다.

“예, 조금 짜증난 것 같았고, 요리는 맛있게 드셨고, 셰프 에게 금괴 하나를 던져 주시고 소파에 드러누워

계십니다.”

“이런 씨발! 우리 애들 때문에 짜증난 건... 아니야, 아니겠지. 우리 애들 때문이면 알아서 잡아 족치셨겠

지. 우리 애들 문제는 아닐 거고 불똥은 튈 일 없을 거야.”

“그런데 보스, 그... 좀 많이 어린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존칭을?”

어리버리한 경호원 하나의 말에 뒷골이 뻣뻣해지며 시야가 하얗게 변하는 게 느껴져 어느 순간 무의식적

으로 손을 휘둘렀다. 짝 하고 메마른 살소리가 울려 퍼지지만 욱신거리는 것은 자신의 손. 신체 강화 능력

자의 피부를 민간인에 가까운 예지 능력자가 후려쳤으니 당연한 결과겠지.

손목에서 올라오는 은은한 고통을 재료 삼아 혼미해지는 정신을 다잡고 명령을 내린다.

“이 새끼 끌고가서 정신 교육시키고 예비, 아니, 아니다. 경호원 다 물려. 괜히 아가리 놀리다 씹창 내지

말고.”

아프지도 않게 뺨을 맞은 어리버리한 놈이 멍한 표정으로 제 동료들에게 끌려간다. 그 모습에 불행을 감

지하는 예지 능력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느끼고 한숨을 내쉰다. 미친년, 아무리 그 때 그 자리에 없었다

해도 소문 정도는 들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지하 도시의 실질적 1인자, 만물 경매장의 주인, 중앙 구역의 여왕, 김한나.

이런 저런 칭호가 있지만 지금 자신을 기다리는 그 작은 괴물 앞에서는 전부 소용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안다. 이해는커녕 짐작도 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신과 비등하거나 조금 더 높은 권세를 누리던 지하 도시의

보스들이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모가지가 어떻게 뜯겨 나갔는지 기억하고 있으니까.

‘좋아, 셰프가 요리 실수는 없었다고 하고... 아로마 향? 그때 그 접대부 삼인방도 들어가서 마사지 하고

있는 건가? 누가 불렀는지 몰라도 보너스를 쏴야 겠다. 얻어 맞고 쫓겨난 놈도 안 보이고, 핏물 흘러나오

지도 않고, 누구 하나 죽지도 않은 것 같으니까...’

심호흡을 하고, 방 문을 두드린다.

“조금 있다... 후우, 들어와.”

나른하게 늘어지는 소년의 목소리와 함께, 간드러지는 여성들의 교성과 추잡한 물소리가 들린다. 같은

여성으로서 아양을 떠는 가느다란 여성의 교성은 참으로 익숙해지기 힘든 것이지만 기분이 풀린 것이 확

실한 소년의 목소리를 배경 삼으니 천상의 찬송가보다 듣기 좋았다.

‘씨발년들, 일 존나 잘해 진짜... 전속 계약으로 묶어 둘까?’

[작품후기]

대학교가 슬슬 실강을 준비하려는 것 같습니다.

근데 이런거 정하는 사람이 개 빡대가리인건지, 대형 강의는 비대면 강의로 진행한답니다. 그러니까 저

는 전공은 학교에서 듣고 교양은 P/F와 대형강의로 가득찼으니까... 등교한 다음 학교에서 사이버 강의

듣게 생김.

전공 다음에 바로 교양을 듣는 경우 그렇게 됩니다.

아니 제발 머리를 좀 굴려서 뭘 진행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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