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6화 (146/189)

새로운 이벤트

문명과 교류

이 얼마나 찬란한 울림인가!

‘세상은 넓고 병신은 많다더니...’

더군다나 교류의 대상이 향수를 느끼게끔 하는 병신들의 총 집합이다 보니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넉넉한

미소가 지어지게 된다. 이런 병신들도 먹고 살자고 돈을 벌고 방에 보일러를 틀고 지내는구나~ 같은 저속

한 우월감.

인간을 대상으로 우월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인성이 조금 파탄 났다고 볼 수 있겠지만[월급 두배로 올리기 vs 가슴 크기 두배로 올리기]

전 후?

└ 닥전이지

└ 뭐래 닥후지

└ 이미 충분히 길어 절벽년아^^

└ 키울 가슴은 있고?

└ 올릴 월급은 있고?

└ 병신들끼리 카운터 KO 났네 ㅋㅋ

여자 연예인 가슴 크기와 남자 연예인 꼬추 길이로 토론을 나누는 새끼들이 모여서

[늑대인간한테 박히면 수간임]

머리는 늑대인데 몸은 인간

└ 몸이 뭔 상관?

└ 쥬지가 거기 있는데

└ 언제부터 늑대인간이 대가리만 늑대였냐

└ 두 발로 서서 다니는 늑대여서 늑대 인간 아님? 아래도 늑대자너

└ 고정도면 될 거 같은데

└ 되긴 뭐가 됨 씨발;;

이딴 대화를 진지하게 하고 있으니 웃음이 안 나올 리가 없었다. 역시 게임 중독에 유머 사이트 눈팅족에

게는 보고 웃을 녀석들이 필요 했었다고 진지하게 느낄 정도로. 중간에 크게 웃음이 터져 술에 취한 소희

가 비척비척 기어 나와서 다시 재우기도 했으니까.

그 와중에 더욱 놀라운 것은, 웃기다 못해 누군가는 혐오스러워 할 수 있는 글 사이에 알짜배기 정보가 숨

어 있었다는 것이다. 대체 왜 이런 곳에서 활동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금손인 그림쟁이가 팬아트를 그리

거나, 자칭 히어로 전문가가 히어로의 전력을 분석하던가.

늑대인간과 떡을 치면 수간인가를 고민하는 글 다음에 존재하는 게 나와 소희의 팬아트라서 그런지 더욱

놀란 것 같았다. 빛의 날개를 달고 웅장하게 비행하는 소희와, 그림자 늑대 위에 반쯤 누운 상태로 걸쳐진

상태로 소희를 올려다보는 내 그림. 그림 수준이 어지간한 게임 공식 일러스트보다 퀼리티가 좋아서 그

런지 댓글 수백개가 난무하고 있었다.

그 바로 밑에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조랑말 성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는 기나긴 글이 있어서 그렇

지.

어차피 잠도 안 오는 몸이겠다, 시간 보낼 일이 생겼다고 치고 게시판을 쭉쭉 둘러본다. 초능력자의 빌런

진압을 진입 금지 구역에서 몰래 촬영하다 경찰서에 갔다는 썰, 현직 D급 초능력자라 협회에서 일하는데

질문받는다는 썰, 질문이라는 단어가 여성의 사회적 위상을 뜻한다고 주장하는 년, 그러면 좆문이라고

하는 건 어떠냐는 남성 우월주의자를 패러디한 놈...

그런 글 사이사이에 있는 은근히 쓸만한 정보들.

협회에서 폭동이 일어난 이유는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고 애지중지 보호되고 있던 특수 능력자가 암살을

당해서 그 분노로 인한 것이다. 그 폭동을 막은 A급 초능력자 전소희는 집안이 빠방해서 협회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래서 협회가 전소희에게 전부 깨진 다음 각 지역 A급 초능력자를 1구역 중앙본부와

관공서 쪽으로 은밀하게 소집했다 등등.

사실 관계야 어떻게 되든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어느 정도 맞추는 녀석들이 있으니 한 번 걸러 듣더라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정보들이 은근 많았다. 가장 많은 건 상체를 노출한 남자 사진이었지만. 심지어 인기

많은 연예계 초능력자에 대한 정리글에도 남자 노출 사진이 있어서 삭제를 당하는 꼴을 보니 말이 안 나

왔다.

‘하긴, 우리 쪽 게시판에도 데이터 인증 사진이라고 여자 알몸 하렘 같은 거 우수수 올라왔다가 다 차단당

했지...’

생각해보면 이쪽 게시판이 더 낫다. 있는 게 머리 나쁜 음담패설뿐이니까. 우리 쪽 게시판은 전쟁이나 이

교도 심문, 고문법을 알려준답시고 고어짤까지 올라왔다가 공중파 뉴스까지 탈 뻔했으니까. 불법 게임

데이터 공유를 하는 입장인데 자중할 줄 모르는 병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서 자연스럽게, 소희의 컴퓨터에 게임을 깔았다.

‘근데 인체공학 좆같네.’

휠 내리는 것 말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에서는 약간 기묘한 느낌이 들었지만 무슨 상관이랴. 대충 인터

넷에서 검색해 인기 게임 순위를 살펴보다 5위권 안에 있는 FPS게임으로 향한다. RPG나 AOS는 튜토리

얼이 길 테니까 그냥 소희 깨기 전까지 대충 하기 위해서.

이병도 되지 못한 훈련병 리본 하나를 메고 자유 게임으로 들어가니 인기 게임 답게 수십개의 방이 존재

한다. 짧은 배꼽티에 핫팬츠를 걸친 남자가 이챠이챠 군장을 메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참으로 역겹기 그

지없었지만 뭐, 어차피 적군은 쏴 죽일 거고 아군은 오래 볼 필요 없는 FPS라 참을 수 있었다.

킬뎃도 승패도 상관없이 마우스를 움직여 원하는 총을 쏴 재끼며 돌아다니니 금세 해가 뜬다.

숙취로 고생할 소희를 위해 콩나물 국이나 얼큰하게 끌여 둘까?

숙취로 머리를 싸매고 일어난 소희가 빛으로 뚝딱 샤워를 한 뒤, 내가 차려준 아침밥을 같이 먹었다. 차렸

다고는 해도 콩나물 국을 제외한 밑반찬은 다 폭식이 진공 포장을 해서 보낸 반찬을 골라 데웠을 뿐이지

만.

어느 나라 음식인지 모르는 불 맛 나는 훈제 햄과 김치를 씹던 와중 소희가 갑자기 떠올랐다는 것처럼 말

을 꺼낸다.

“하늘아, 컴퓨터 한 대 더 사서 거실에 둘까?”

“음, 왜?”

슬그머니 그녀의 눈길이 향하는 곳으로 눈을 돌리니 새벽까지 게임을 돌리다 깜빡하고 끄지 않은 컴퓨터

가 보인다. 소희 입장에서는 내가 진득하게 게임을 한 게 조금 신기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네.

TV를 같이 볼 때도 예능이고 드라마고 전부 재미없다고 소희 옆에 들러붙어서 TV에 집중한 적 없고, 하

는 게임은 팔목에 찬 증강현실 단말기로 하는 모바일 게임이 전부.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몇 년 동

안 동거를 하며 소희 앞에서 컴퓨터 사용을 한 날이 한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같이 게임하면 좋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게임은커녕 남자들이 껌뻑 죽는 인기 드라마나 예능, 영화, 독서 등 문화 생활은 담 쌓고 식도락

여행만 하던 애인이 어느 날 갑자기 게임을 시작해서, 그 것도 다섯 시간 이상 밤까지 새면서 플레이를 하

면 이런 반응을 보이겠지.

심지어 최첨단 게이밍 컴퓨터랍시고 오버 스펙으로 견적을 짜도 우리 탐욕씨의 회사에 부탁하면 하루 안

에 뚝딱 배달이 되어서 올 테니까. 지금 거실에 있는 것도 생긴 것은 구식 컴퓨터 본체지만 성능은 소규모

가상 현실 서버를 돌려도 멀쩡할 괴물 컴퓨터니까.

“그러지 뭐. 누나가 하는 게임 있어?”

“많이 하지는 않는데, 선배들 따라서 같이 하던 게임은 있어. RPG 게임이라 천천히 키우긴 했는데... 같

이 해 볼래?”

분명히 같이 하겠다는 마음으로 컴퓨터 하나를 더 사자고 말을 꺼냈겠지만, 다시 한 번 게임을 같이 하자

고 물어보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건 아닌 소희였

지만 애인과 게임을 하는 로망이 있던 걸까.

음... 새신랑 야동이 취향에 내조 받는 걸 좋아하니 애인이랑 꽁냥거리면서 ‘같이’ 뭘 하는게 좋은 걸지도.

“무슨 게임인데?”

“엉, 이터널 히어로즈라고...”

슬쩍 그녀가 보여주는 게임 사이트를 단말기로 검색해 본다. 인기 순위 TOP 10 안에 들지 못해서 내가

어제 보지는 못했지만, MMORPG 주제에 20위권 안에서 몇 년을 버틴 게임. 특이하게도 전사, 마법사,

궁수, 사제 같은 직업군이 아니라 염동력자, 신체 강화 능력자 등 초능력이 직업으로 존재하는 RPG 게임

이었다.

그 외에는... 뭐, 시간이 흘러도 기본 뼈대는 똑같았다. 기본 잡몹을 사냥해서 아이템을 맞추고 보스 레이

드를 가고. RPG 게임이 이거 말고 뭐 있겠어~ 하고 주장하는 컨텐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유지한

다는 건 뭔가 있다는 뜻일까.

“일단 내 컴퓨터로 신규 캐릭터 만들고 있어봐. 서버는 아시아 서버.”

대충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고 캐릭터 생성 버튼을 누른다. 아니나 다를까 헐벗은 남캐와 중장갑으로 무

장한 여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임 홈페이지에서 이벤트로 판매하는 아바타 부터 남자는 찢어진

청바지로 엉밑살 노출중이고 여자는 양복을 입고 있더만 역시.

“누나, 초능력 뭘로 정해?”

“누나가 탱커 골랐으니까 겹치지만 않으면 같이 다닐 수 있어~”

레벨을 올리면 속성을 골라 원딜이 되는 키네시스(kinesis)를 고르자 후웅 하고 다양한 속성의 구체가 회

전하며 그 너머로 남캐가 요염하게 허리를 씰룩이며 등장한다. 짜증나니까 여캐로 해서 양복이나 입힐

까.

혹시나 해서 소희의 프로필 캐릭터를 슬쩍 보았는데, 다행스럽게도 갑옷형 슈트를 멋들어지게 차려 입고

있었다. 그래도 여캐를 키우고 있으니 같이 하자는 말을 한 걸까, 아니면 남캐였어도 같이 하자고 말을 했

을까?

[작품후기]

눈팅족을 미팅족으로 교정하려 드는 워드 센세... 미팅족이란게 존재하는 단어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