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3/189)

새로운 이벤트

참방참방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욕조 물을 휘젓는다. 평소라면 벌써 그녀가 달려들고도 남았을 타이밍이

지만 오늘은 당한 게 많다 보니 쌓인 것도 많은 것 같다. 슥슥 부드럽게 내 물건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

기분 좋은 침묵이 욕실을 가득 채우고, 물 참방거리는 소리만 간간히 들린다. 등 뒤에 있는 소희에게 몸을

기대니 그녀도 내 어깨에 턱을 괴고 들러붙는다. 젖은 피부가 닿았음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손장난에 집

중하고 있었다.

“후우... 누나?”

“왜, 물이 좀 식었나?”

천연덕스레 엉뚱한 말을 하는 걸 보니 놔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손이 기분 나쁜 건

아니니까 스트레스를 풀게 좀 놔 둬야지. 아무 말없이 다시 몸을 뒤로 기대며 그녀의 품에 안긴다.

부드러운 손길이 기둥을 앞뒤로 흔든다. 김이 자욱하게 일어나 욕실 내부를 가득 채울 정도로 뜨거운 물

과 그녀의 손길이 만나니 낯선 쾌감으로 다가온다. 자연스럽게 호흡이 가팔라지니 그녀가 흐으음 하고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이제껏 당하기만 한 것에 대한 복수인가? 뭐, 이해할 만한 내용이긴 하지.

내가 보기에 그녀는 전형적인 마초에 가깝다. 남녀 차별이니 여존남비니 하는 고루하고 차별적인 사상을

지녔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살면서 자연스럽게 박힌 생각이 있다는 것이지. 여자니까, 연상이니까 이끌

어 줘야 한다고.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한테 용사의 책임감까지 떡하니 얹혔으니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지만 그녀는 그

런 내색따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으니까 한다, 지켜야 하니까 지킨다, 구해야 하니까 구한다. 참으로 히

어로에 어울리는 마음가짐.

사람 심리가 말 몇 마디로 정리될 정도로 간단명료 할 리 없지만 아무튼 소희는 그런 쪽이다. 남자 애를 도

와주는 게 당연하잖아? 같은 마인드의 어딘가의 만화 주인공 같은 성격. 그런 성격이다 보니 되려 지켜야

할 남자애한테 당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할 수 밖에.

“누나, 나올 것 같은데...”

“그래? 욕조 물 더러워지는 건 싫지?”

오른손이 부드럽게 고리를 만들어 앞뒤로 슥슥 훑고, 왼손이 쫙 펴져 귀두 앞부분을 손바닥으로 문지른

다. 하지만 뭔가 어색하다는 듯 중간 중간 멈추는 손놀림. 되려 그 머뭇거리느라 꾹 누르는 감촉이 쾌감으

로 다가온다.

참을 이유도 없고, 참고 싶은 마음도 없어 그대로 허리에서 힘을 뺀다. 가볍게 몰려오는 사정의 쾌감에 몸

을 살짝 떨고 있으니 그녀가 손바닥에 모인 정액을 그대로 욕조 물과 함께 밖으로 날려버린다. 그와 동시

에 안심했다는 듯 호흡이 정돈되고 머뭇거리던 손놀림에 자신감이 붙는다. 어쩐지 요즘 남성향 야동을

조금 보기 시작하더니.

남녀 정조 역전이 된 세계라 하더라도, 양쪽 모두 성욕이 있는 건 당연하다. 누구는 성욕 몇 배니, 누구는

성욕이 없다는 둥 하는 특수 모드도 있다는 것 같지만 그런 기괴한 모드에는 관심도 없고. 아무튼 이쪽 세

계 남성향 야동은 아름다운 여성이 봉사하는 종류가 대다수였다.

요컨대 여성이 손이나 입으로 남성의 물건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거진 30분 이상을 들여서 천천히 보

여주는 장면. 소희가 받아 둔 몇 종류의 야동을 보니 싸지도 못하고 30분동안 핥아지고 빨리기만 하는 걸

보면 남배우가 돈을 많이 받아야겠네 싶었지만.

뭐 딱 봐도 야동 보고 따라하는 소희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가만히 놔 두었다.

소희의 고정 관념 상, 나는 어린 소년에 가벼운 모바일 증강 현실 게임과 SNS만 하는 이미지라서 그런지

자기 컴퓨터 파일을 꽁꽁 숨겨놓지 않는단 말이지. 전에 한 번 새신랑 야동에 관해 들켰을 때 이후로 폴더

숨기기가 전부였고.

그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부드러운 손길이 다시 내 몸을 어루만진다. 음란한 목적이 아니라, 양 손에

거품을 잔뜩 비빈 상태로. 사정 후의 쾌감과 후끈한 공기에 멍하니 정신줄을 놓고 있었더니 어느새 욕조

물을 빼고 비누칠을 하고 있었다.

슥슥 적당한 세기로 시원하게 씻겨주는 손놀림. 아까의 그 동영상 시청으로 배운 어색한 손놀림보다 기

분이 좋다는 게 조금 웃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내 몸에 비누칠을 마친 소희에게 몸을 돌려 나도 그대로

손바닥으로 거품을 낸다.

손바닥과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말캉말캉한 감촉. 그토록 단련된 용사의 육체인데 어디를 만져도 말캉하

고 부드럽다니 참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양 손으로 등을 쓸어내리다 그대로 손을 앞으로 보내 커다란 가

슴을 주물럭거려도, 그 어디에도 단단하거나 축 처진 군살은 없었다.

등에서 시작해 가슴과 옆구리를 넘어 허벅지까지 맨손으로 거품을 칠하며 감촉을 느끼고 있으니 슬그머

니 다리를 베베 꼬는 게 보인다. 한바탕 대련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손으로만 해서 그런지 참기 힘든 걸

까?

조금은 상을 줘야할 것 같으니 그대로 허벅지를 붙잡는다. 예쁘게 살이 붙었지만 군살 하나 없이 쫙 빠진

말벅지 사이, 부끄러움인지 기대감인지 모를 감정으로 움찔거리는 그녀의 두툼한 살집이 보인다.

“하, 하늘아?!”

황급히 놀란 그녀가 내 머리에 손을 올리지만 부질없는 손짓이었다.

세 번째 악마 군주와 엮이게 되고, 중국의 한 지역을 통째로 붕괴시켰으며, 정보 하나 얻지 못한 오로바스

가 박살이 나서 지옥 한 구석에서 요양중이며, 그로 인해 지옥의 악마들도 정보를 쉽사리 얻지 못하니 마

왕군이 지구로 슬금슬금 기어들어온 게 기정 사실이 되어버린 이 상황에서.

“와, 진짜 이쪽 순찰 도네?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건가?”

“어디 소매치기라도 안 나오나?”

우리들의 일상을 가장 크게 바꾼 것은

“둘이 되게 잘 어울리긴 한다. 만화 캐릭터 같아.”

“으으 오따꾸... 너 그런 거 보니?”

다름 아닌 소희의 드라마 촬영이었다.

평소대로의 골목길 순찰 코스. 딱히 인기 있는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근처에 주택가나 빌딩이 빽빽하

게 들어선 것도 아닌 무난한 골목이었는데. 오늘따라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카페에서 속닥거리는 남

자들, 식당에서 밥을 먹다 황급히 카메라를 들어 올리는 직장인들, 장바구니를 잠시 내려놓고 우리를 촬

영하는 사람들까지.

“이야... 드라마가 생각보다 흥했나?”

소희는 당연하다는 듯 거리를 걷는다. 하긴 지난번에 아파트 단지에서 습격자들 때문에 잠깐 유명세를

얻었던 상황에서도 무덤덤하게 대응하였었으니까. 히어로 vs 빌런 세계관이 조금 익숙하지 않은 내게는

생소한 기분이 들지만.

예의를 지키는 사생팬이 존재하는 세계라니, 뭔가 신기하지 않은가.

이쪽 세상 들어오기 직전, 여리여리한 남자 아이돌 몸에 들어가서 사생팬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온 몸으

로 겪고 난 뒤라서 더 신기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저쪽 세계에서는 미친년들이 자기 좀 봐 달라고

생리대를 던지는데, 여기서는 얌전하게 길까지 터 주고.

“순찰하는데 목 마르지 않아? 과일 쥬스 한 잔 마시고 가!”

그렇게 골목을 도는데 갑작스레 넙데데한 아저씨 하나가 툭 튀어나온다. 너스레 좋게 튀어나온 아저씨가

제 가게에 손짓을 한다. 커다랗게 박혀 있는 과일 사진들과 덩그러니 놓여있는 로봇 팔. 가게 구석의 자그

마한 TV 액정에서는 빛의 날개를 펼친 여성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드라마를 참 좋아해서 그래. 자자, 딸기도 좋고 파인애플도 질이 좋아.”

“저기... 죄송하지만 순찰 중에 뭘 받으면 안되서요.”

“고거야 나도 알지. 이 바닥에서 장사를 얼마나 했는데~”

내 투정을 들어주는 상황을 제외하면 은근히 고지식한 소희가 난색을 표하지만, 시장통에서 로봇에게 맡

기지 않고 스스로 장사를 하는 아저씨의 넉살은 이길 수 없었다. 살집 있는 손이 나와 소희의 손을 부드럽

게 잡아 쥐고는 가게 쪽으로 은근히 이끈다.

“이번에 드라마 잘 봤어요. 지난번에 대로변에 난리 났을 때 막아준 게 고맙기도 하구~ 내가 원체 드라마

를 좋아해서 가게 나와서까지 드라마를 보고 있기도 하구~ 쥬스 가격 얼마되지도 않는데 돈 대신 둘이서

사이 좋게 싸인 한 장씩 해주고 가요.”

턱 하니 종이 두 장과 펜을 내미는 아저씨의 넉살에 소희가 슬그머니 나를 쳐다본다.

“저는 딸기에 바나나요.”

“그래 그래, 요즘 딸기가 맛이 좋더라니까. 시럽을 안 넣어도 될 정도로 달달해~”

연예인 시절 만들어 뒀던 싸인 방식으로 대충 내 이름을 휘갈긴다. ㅎ 옆에 글자보단 그림처럼 멋들어지

게 휘갈겨지는 ‘ㅏ늘’을 본 소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녀의 성격상 자신의 싸인을 미리 연습했을 리 없

으니까.

“아이고, 아직 싸인이 없나? 그러면 이름 석 자 적어줘도 괜찮아~ 대신 첫 번째 싸인이라고 적어주면 되

지~”

그 말에 망설이던 소희가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정갈하게 쓰고 정말 첫 싸인이라고 밑에 작게 적어 넣는다.

[작품후기]

철학 관련 토론 수업이라 이빨터는걸로 날먹할 생각이었는데

강제로 고전 문학 읽고 영화까지 시청하게 되었슴...

강의 복불복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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