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 (140/189)

새로운 이벤트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금속 쪼가리.

“아니, 그게... 악마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나, 악마는 일단 우리편이라니까?”

은색의 금속 조각, 바로 오로바스의 일부분이었다. 황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목소리가 조금 뾰족해지

니 소희의 눈동자가 다시 한 번 이리저리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한다. 대체 숙면을 취하던 밤 사이에 무슨 일

이 벌어진 걸까?

“아니, 죽은 건 아니야. 그냥 지옥으로 돌아갔대.”

“...왜?”

머뭇거리는 소희를 대신하여 폭식이 다가와 설명을 한다. 사람 머리통만 한 맥주잔에 가득 찬 고량주를

쭉 들이켜 한번에 마시더니 트림 하나 없이 대충 내뱉어지는 설명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

었다.

“미안...”

어젯밤, 두 악마가 이 호텔을 찾아왔다. 하나는 피해자가 되어 지옥으로 역소환 되어버린 오로바스. 다른

하나는 지금 저기서 붕대를 풀면서 닭다리를 뜯는 탐욕의 악마 아마이몬. 같은 이유로 온 것은 아니지만

싸울 이유도 없기에 두 악마는 폭식의 영토인 이 호텔로 천천히 접근하였다고 한다.

일곱 악마 군주 중 탐욕의 자리를 맡은 아마이몬은 가치와 이익을 따지는데 능한 악마. 그렇기에 강력한

빛의 힘을 가지고 악마와 손을 잡는 용사 소희를 테스트하기 위해 황금으로 고용한 악마들을 일부 이끌고

호텔로 몰려왔다. 아마이몬이 주는 금은 특별하기에 같은 악마들끼리도 고용 당하길 원한다고.

그리고 오로바스는 지옥에서 연이 닿은 다른 악마들조차 정보를 알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

해, 지옥과 지상에 마왕의 끄나풀이 숨어들었다고 판단한 뒤, 자신이 이끄는 악마 군대를 이끌고 호텔로

왔다.

아마이몬은 소희와 전투를 하여 소희의 힘을 테스트하기 위해, 반대로 오로바스는 자신의 군단으로 소희

를 돕기 위해. 상반된 목적의 두 군대가 서서히 호텔로 다가왔지만...

“악마 얼굴을 어떻게 구분해... 난 그런 거 모르지.”

아마이몬의 권능 담긴 황금으로 고용된 악마 군단들과, 오로바스가 이끄는 군단의 차이를 인간인 소희가

무슨 수로 알아볼까? 소희의 눈에는 야밤에 호텔 앞에 몰려온 악마들의 군대들로 보였을 뿐. 그렇게 그녀

는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다짜고짜 칼을 뽑아 들어서쾅!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용사는 강하다. 내가 괜히 들러붙어서 노후 대비랍시고 내조를 하는 게 아니고, 마

왕이 강림해도 용사가 썰어버리는게 당연하다고 믿는 게 아니다. 숨만 쉬어도 스탯이 오르고 길 가다 돌

멩이만 걷어차도 레벨이 오르는 존재.

어딘가의 소설처럼 헛짓거리를 하다 채 성장조차 못하고 죽거나, 어중간하게 인성이 파탄 난 상태라 유

저들의 성장용 경험치가 되거나, 동료 A가 되어 파티의 구석탱이에 처박히는 존재가 아니라고.

그리고 소희는 용사다. 그렇기에 강하다.

얼마나 강하냐면, A급 초능력자는커녕 국가가 기밀로 숨기고 있는 S급 초능력자를 전부 데려오면 좋은

전투 경험을 쌓아주겠구나~ 하고 구경만 해도 될 정도로 강하겠지.

그런데 강한 건 강한 거고,

‘...좀 진심으로 대련을 했어야 했나? 그건 좀 무서운데. 아냐, 힘 조절 못할 때 대련이라고 깝치다 빛에 지

져지면 나만 손해야. 차라리 오로바스가 역소환 된 게 낫지.’

소희는 그 강한 힘을 전력으로 후려쳐 본 경험이 단 한번도 없었다.

지하 도시에서 내가 구울한테 납치당하는 자작극을 할 때는 각성 전, 각력으로 일으킨 후폭풍으로 일격

에 시체들을 박살냈었다. 그 다음 학교에 테러리스트들이 왔을 때에는 타인의 다양한 초능력을 무차별적

으로 난사하여 혼란을 줬었지. 어리숙한 납치범들 상대로는 건물 지붕만 뜯어낸 다음 사람이 죽지 않을

정도로 살살 레이저를 발사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용사라는 사실보다, 다중 능력 A급 초능력자라는 인식이 강하던 소희는 호텔 앞을

가득 채운 악마 군단을 보고 딱 한가지 실수를 했었다.

“그, 너무 많길래 전력으로 후려치고 호텔에서 농성을 할 생각이었는데...”

“누나... 자기가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는 거야?”

“그렇게 강할 줄 몰랐지. 악마니까 그냥 빛으로 때리면 좋지 않을까- 하고...”

전력으로.

소희와 나를 돕겠다는 명목으로 차출되어 온 오로바스의 휘하 군단도, 식탐의 성벽 앞에 홀로 서 있는 인

간을 우습게 보고 아마이몬의 황금에 취해 있던 악마 용병들도 전부 전투에 대한 대비를 하기 전에, 대화

를 나누기도 전에.

성검을 꺼내고 빛의 날개를 둘러 신성력을 후광처럼, 폭포처럼 콸콸콸 쏟아내어그래, 전력으로.

“이야, 정말 놀랐지 뭔가! 먼 옛날 아버지가 ‘빛이 있으라!’ 라고 소리치는 광경을 보는 것 같았어. 반짝하

고 눈을 깜빡이니 고용한 악마들이 전부 사라져 있지를 않나, 차원을 이어주는 결계도 지옥문도 전부 박

살이 나 있고, 폭식이라는 놈이 먹던 음식을 흘리는 모습까지 보였지!”

붕대를 다 풀어낸 탐욕의 악마, 아마이몬이 슬그머니 다가와 말한다.

“나름 산더미 같은 황금을 주고 불러온 군세인데 고작해야 일격에 쓸려 나가다니. 아군이 된 이의 힘이

상상 이상이라 기껍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헛되이 날린 황금이 아깝다고 해야 할 지 모르겠어!”

그래도 썩어도 일곱 군주 중 하나인 건지, 붕대를 다 풀어낸 그녀의 피부는 울긋불긋 푸르른 멍자국들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능글맞게 웃는 백인의 모습에 소희의 눈꼬리가 다시 위로 훅 치솟는다. 하지만 그것

도 잠시, 나와 눈이 마주치만 다시 스윽 눈매가 순해진다.

소희가 사고를 친 이후 중국에서는 딱히 커다란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소희는 조금 귀찮은 것 처럼 보였

지만 지은 죄가 있어서 얌전히 김샛별과 촬영을 진행하였고, 폭식은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껄껄 웃으며 호텔 로비에서 먹고 쉬고를 반복했다. 그나마 특이한 점이라면 뒤늦게 합류한 탐욕의 아마

이몬이 내 SNS에 관심을 보이는 것 정도.

“참으로 독특한 방법이네! 하잘 것 없는 댓가를 주고, 그와 마찬가지로 별 것 없는 댓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걸 이토록 광범위하게 사용하다니 이런 방식을 쓰는 마법사는 처음 보는데. 이런 술식을 짜는게 귀찮

지 않아?”

‘내가 짠 거 아니야...’

탐욕, 금전욕과 관련된 악마여서 그런지 내가 SNS로 사람들과 사기 계약을 맺은 점을 흥미롭게 살펴보

고 있었다. 게임 속 몬스터의 정보를 주고, 피 몇 방울 분량을 받아가는 방식이지만 무수히 많은 계약을

자동적으로 행하게 되는 그 점이 탐욕스럽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네의 배우자와 달라도 너무 다른 방식이야. 흠,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그 때문에 되려 어울리는 걸지

도 모르지. 그나저나...”

“보상 이야기 꺼낼 거라면 씨알도 먹히지 않으니 저리 가라?”

“내조를 하는 건지, 원래 냉막한 성격인건지. 악마라는 이미지 때문인 것 같지는 않고... 마음의 빚마저 씌

워 둘 수 없다니 안타깝네 정말.”

옆에서 어제 입었던 부상을 핑계로 게임을 하며 돌아다니는 내 옆에 들러붙어 종알거리는 아마이몬. 한

번 들키니 숨기려는 기색도 없이 어제 입었던 부상과, 날아간 황금을 핑계 대며 능글맞게 대화를 걸어오

지만 귀찮아도 떨쳐낼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음, 그 몬스터는 실제로 우리 군단의 녀석을 본따 만들었지. 그물을 던질 때 머리 쪽이 아닌 꼬리와 뒷다

리 쪽으로 던지면 미약하게나마 포획 확률이 올라가는 특성이 있어. 대충 3%?”

“그 녀석은 사내 공모전으로 만들어진 녀석인데 처음 그물을 던질 때 날개에 던지지 않으면 포획 확률이

절반으로 내려가는 숨은 기믹이 있지.”

“중국 설화를 본따 만든 녀석인데 소모품 중 술과 관련된 아이템을 사용하고 그물을 던지면 100% 확률

로 포획된다.”

탐욕의 아마이몬이 이 게임을 만든 회사의 CEO였으니까. 그 사실을 알게 되니 이 게임이 왜 전 세계적으

로 인기를 끌었는지도 알 수 있었고.

“자네와 비슷한 방법을 했을 뿐이네. 내부 디자인을 꾸밀 때 수집 욕구를 조금 자극시키는 마법진을 숨겨

놨지. 상점에 있는 비싼 아이템은 과시욕을, 몬스터 컬렉션 도감에 들어가면 수집 욕구를 자극받게 되어

사람들이 비싼 가격에 소모품을 구매하게 되는 거야.”

그녀가 옆에서 툭툭 던지는 이벤트 몬스터에 대한 설정을 내 SNS에 올리자 난리가 났다. 포획률이

100%가 되는 특성은 곧바로 증명이 되지만, 포획률이 절반으로 내려가는 특성 같은 것은 곧바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확률로 잡히는 몬스터의 포획 확률이 5%로 내려간다는 사실을 유저가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마어

마한 표본이 필요하니까. 믿고 쓴다는 댓글과, 왜 허위 정보로 어그로를 끄냐는 댓글로 다시 댓글창이 시

끌벅적 하게 변한다. 이 와중에 물러나지 않은 중국인 댓글부대가 몰려오니 내 SNS는 그야말로 난장판

이 되었다.

“흠, 공식 계정으로 선별해서 이 정보가 맞다고 인증해줄까?”

“필요 없어. 이렇게 관심 받는 게 나으니까... 하려면 조금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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