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화 (137/189)

새로운 이벤트

건축 현장을 박살 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재건축을 방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좋을까.

폭식의 부하들이라면 뭐, 건축 현장을 다 뜯어먹겠지. 벌레 떼를 부리던, 짐승 무리를 부르던 아무튼 ‘폭

식’이니까 깔끔하게 다 먹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하나 있다. 통신에서 말했듯이 도시 면적 하

나를 씹어 먹는 일은 오래 걸리는 단점도 있지만, 터가 깔끔해진다는 단점도 있다.

터가 잡혀 있으면 다른 놈들이 건물을 올릴 수 있다. 이미 뼈대를 세우기 전 밑작업은 완료되어 있으니 공

사를 다시 시작하기 쉬울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뼈대를 남기는 것도 좋다’ 같은 조언이 돌아왔겠지.

그래서 뼈대를 남기려고 한다.

“아아악! 지반이 가라앉는다!”

“싱크홀? 싱크홀인가?! 밟아! 달리라고 멍청한 것아!”

지하에.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양복을 입은 높으신 분들이 공사 현장을 둘러보다 급히 차량으로 빠져나

가려다 꿀렁꿀렁 땅 밑으로 집어 삼켜진다. 초능력이 없다면 곧 톤 단위의 흙에 짓눌려 사망하겠지.

사용하는 마법은 정말 별거 없었다. 마법사들도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연금 마법으로 지반의 단

단한 암석층을 물처럼 곱게 분해했을 뿐이니까. 단지 그 범위가 조금 넓어서 꼼수를 사용해야 했을 뿐.

‘10%정도 소모했나?’

중국 로컬 이벤트를 하기 위해 여행을 왔다는 게시글과 함께, 어제 호텔에서 잡았던 몬스터의 정보를 올

린다. 최고등급 몬스터도 아니고 최신 정보도 아니지만 나름의 추종자들이 좋다고 댓글을 작성하고 좋아

요 버튼을 누른다.

조금씩 늘어나는 조회수, 비례해서 회복되는 마법.

혼자서 이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마법을 사용했다면 탈진으로 앓아 누웠겠지만... 한 1만 명 정도한테 부

담을 나눠버리면 조금 지친 정도로 끝나니까. 건강한 사람이라면 기립성 현기증을 앓은 정도로 끝날 것

이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빈혈로 기절하는 정도.

열 살배기 노예병사의 몸으로 부러진 창대를 쥐고 백 단위의 정예 기사단과 동귀어진을 하는 칼잡이가 있

고, 고전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며 연필 한 자루로 암살을 하는 암살자와 아이템 없이 토끼 꼬리 달린

삼각 팬티만 입고 맨주먹으로 용을 잡는 격투가가 존재하는 세상.

이런 미치광이 사이에서 전투 재능은 하나도 없는 내가 PVP를 위하여 선택한 방식, 물량.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면 시인이 되어 계약서가 교묘하게 배열된 서적을 출판하고, 현대와 미래에서는

SNS를 이용하여 거짓 계약자를 늘린다. 사기 계약이기 때문에 한 사람한테서 받아올 수 있는 마력은 쥐

꼬리만 한 양이지만 쥐꼬리도 십만, 백만개를 넘겨 억 단위에 누적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흙 알갱이 하나를 물 한 방울로. 바위 한 덩어리가 샘물 하나로. 효율은 따지지 않는 기초 연금 마법이 도

시 면적의 대 마법 수준으로 발현된다. 손 끝에 맺힌 기분 나쁜 색의 마법진이 아지랑이처럼 흩어지며.

“영웅! 영웅입니까! 도와주세요!”

아래에서 그 모습을 보았는지 어색한 번역체로 도움을 요청하기에 조금씩 가라앉는 건물 뼈대에서 살며

시 지상으로 내려앉는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악착같이 내 근처로 기어오는 게 마

치 고글로 보는 4D 재난 영화 같아서.

“나는! 13구역 위원 리펑(李鵬)이다! 나를 먼저 구해라 영웅!”

“히어로를 영웅이라고 번역하는 건가. 조금 웃긴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당장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안내해라!”

악착같이 기어오는 양복 여성의 머리를 꾸욱 밟는다. 찰흙에 박혀 들어가는 유리 구슬처럼 얼굴부터 땅

에 처박힌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야 얼굴이 지면 아래에 완전히 가라앉았으니까. 흙 밖에 나와 있는 몸뚱

아리가 마치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다 그대로 추욱 늘어진다.

“아오 씨, 똥 냄새.”

그 와중에 리얼하게 바지를 더럽히는 게 너무 역겨워서 등허리를 꾹 눌러 땅 깊숙한 곳으로 안내해 주었

다. 그 모습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던 사람 둘이 무너지는 잔해에 깔려 푸직!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뭔가 보는 재미는 있는데 화려하지는 않네...”

무너지는 잔해에 깔리는 사람들, 토양 액상화를 일으킨 지면 아래로 쑥 빨려 들어가며 비명을 지르는 사

람들. 점점 낮아지다 못해 이제 아파트 높이에서 빌라 높이가 되어버린 건물들. 이제 이 곳에서 공사고 뭐

고 지반 아래가 지랄이 났으니 아무것도 못하겠지만, 생각보다 보는 맛은 없었다.

“남은 구역은 어떻게 할까?”

건물 하나였다면 가라앉히고 끝이었지만, 범위가 너무 넓으니 배부른 고민을 하게 된다. 그 와중에 죽어

가는 사람들의 원한도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알뜰살뜰하게 모으고 있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게 느

껴진다.

그야 그럴 게, 사고 현장의 시체에서 검은 기운이 몽글몽글 솟아나 내 쪽으로 모이기 시작하면 다들 내가

범인이라고 생각하겠지. 별로 상관없어서 놔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고미는 하고 있는 와중 눈 앞으

로 스쳐 지나가는 한 줄기의 물대포.

“저 새끼를 죽엿!”

“아니, 보자 마자 사살 명령이야?”

나름 지방 정부가 추진하는 일 답게 히어로들이 우글우글 몰려온다. 생각해보면 중국의 어지간한 지방

정부면 한반도 크기랑 비슷하긴 하겠지. 역시 인해전술의 원조 중국 다운 물량인가. 머리를 노렸다 빗나

간 물줄기 이후, 허공을 수놓는 무수히 많은 초능력들.

“둘러 싸! 실수로라도 무너지는 대지 안으로 들어가지 마라!”

“진압조, 앞으로!”

검은 강화 플라스틱 헬멧과 갑옷을 입은, 마치 진화한 전경같은 초능력자들이 2m가 조금 안되는 거대한

방패와 기다란 장대를 들고 무너지는 잔해를 밟으며 내게 접근하고, 그 사이 사이로 얼음 조각과 자갈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온다. 장대 끝에 달린 전류가 파직파직 흐르는 강철 바늘은 제

압용이라기엔 너무 흉악한 모습.

그래서 도망쳤다.

“누가 니들이랑 싸워 준대?”

빗발치듯 날아오는 각종 속성 탄환들을 피하기도 귀찮아 그대로 몸을 안개로 만든다. 백주 대낮부터 검

정에 가까운 짙은 회색 안개가 꾸물꾸물 허공을 기어다니는 꼴이 되어 집중 사격을 받았지만, 그저 그 뿐.

“속성탄환, 어떠한 것도 통하지 않습니다!”

“쫒아갓!”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것 마냥 무너지는 잔해 위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허망하게 나를 올려다보는 제

압조가 얼음 징검다리를 건너거나 팀원들이 일으킨 바람을 타고 멀쩡한 땅 위로 올라선다.

처음에는 적당히 상대해 줄까 싶었지만, 몰려오는 물량이 장난이 아니었다.

“야, 나 게임 해야 해!”

이래서 인해전술, 인해전술 하는구나.

“뭐라는거냐, 이 악적놈!”

한국은 지부 하나에 수십명이 있는 게 전부였고, 순찰조를 합치면 그제서야 백 단위의 머릿수가 있었는

데,

“원군을 불러라! 놈이 문제가 아니다! 건물이 더 무너지면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여기는 근거리 제압조, 원거리 사격조 두개 합쳐서 이미 백 단위였다. 주변에서 몰려드는 우글우글한 기

색이 마치 개미굴 한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들어 조금 징그럽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 지금 하고 싶은 것은

건물을 부수는 거지, 초능력자들을 학살하는 게 아닌데파앙!

‘...뭐야?!’

파공성과 함께 안개가 찢겨 나간다. 심장이 욱신거리는 느낌과 동시에 강제로 안개화가 풀려 허공에서

떨어진다. 반사적으로 날개를 꺼내 공중에서 자리를 잡으니, 또다시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려와 황급히

날개를 접고 추락했다.

“창룡 소저가 오셨다!”

“사격조, 도망치지 못하게 화망을 만들어라!”

푸른 빛에 휩싸여 허공을 날아다니는 두 개의 검. 아무리 봐도 초능력자가 아니라 무림 검객들이 쓸 법한

기술이 눈 앞에 펼쳐지니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정말 어검술은 아닌 것 같고... 그냥 투사체를 던지는 기술

인가?

‘단순 무식한데, 강하네.’

날카롭게 벼려진 직검 두 자루.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있으니 우우웅 에너지가 차오르는게 보인다. 저렇게

에너지를 충전시키면 일정 시간동안 비행을 하며 공격을 하는 건가. 저럴 거라면 칼이 아니라 투창이나

화살을 쏘지.

소매가 펄럭거리다 못해 무릎 아래까지 내려간 새파란 복장에 금빛으로 새겨진 남궁(南宮) 이라는 글자.

비효율적이지만 파괴력 하나는 끝내 주는 투검 기술까지. 전체적으로 무림 컨셉을 잡은 것이 티가 나는

모양새였다.

‘하긴 한국에서도 트레이닝복만 입는 놈이나, 야구 방망이로만 싸우는 녀석들이 있었지.’

히어로라는 게 시민들의 관심을 먹고 살다 보니, 제 개성을 살리겠다고 무기나 전투 방식을 요상하게 고

정하는 경우가 있더라니, 이건 물 건너 중국도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더하면 더 하다고 할 수 있었다.

“역시, 남궁의 검은 통한다! 놈을 몰아라!”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검 하나를 밟고, 다른 검 하나를 내게 겨누며 날아오는 긴 장발의 여성. 하필 주입하

는 게 순수한 에너지인지 안개로 변한 나를 타격할 수 있는 것 같았다. 한 대 정통으로 맞았다고 위험할 생

명력은 아니지만, 귀찮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도포를 펄럭이며 날아오는 남궁 뭐시기 초능력자의 아래에서는 방패와 전기 장대를 든 녀석들이 슬금슬

금 내게 모여 들고, 어느새 백명은 훌쩍 넘긴 초능력자들이 동그랗게 나를 포위했다.

“무뢰배 놈!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몰라도 곱게 돌아가지는 못할... 잡앗!”

“아까부터 자꾸 잡으라는데, 니들 다른 초능력자는 없니?”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내게 선전포고 하듯 외치기에 나는 그대로 땅 속으로 파고들었다. 재미고 뭐고 지

반을 전부 갈아버린 다음 게임이나 하러 가야지. 몸을 속박하거나, 음파로 공격하거나 하는 특이한 놈 없

이 돌맹이만 던져대는 놈들이랑 무슨 재미로 싸움을 하겠는가.

“정정당당하게 싸워라, 이노옴!”

원래 칼 든 놈이랑 정면으로 싸우는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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