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4화 (124/189)

새로운 이벤트

[용사님이 생각하는 강하고 정의로운 것이 무엇인가요?]

귓가에서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하지만 처음 듣는 목소리. 녹았다가

급히 냉각된 아스팔트 위에서 대치하고 대피하는 사람들의 난동을 보며 전소희는 머리를 굴렸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히어로라고 대답하겠지만, 히어로의 실상을 잘 알고 있는 그녀

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히어로는 무적도 절대적인 정의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들

도 결국은 힘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대한민국 유일한 초능력자 고등학교의 이사장 겸, 정보를 은폐한 S급 초능력자인 할머니가 정치인들과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고, 어머니가 그 것을 도우며 사업을 하는 것을 알며 아버지가 내조라

는 이름으로 사교회를 만들어 어느 정도 돈이 오가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나이 서른을 먹으며 권력다툼

을 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정도로 천진난만하지는 않으니까.

히어로라 해도 결국 초능력을 가진 일반인. 그들이 완전무결하지 않기 때문에 히어로에게 피해를 본 피

해자들이 있고 빌런과 내통하는 배신자들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강하고 정의로운 것’에 대한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떠오르는 것은 10년도 더 넘게 흐른 중학교 시절의 추억.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체육 교사가 있었다. 반 담임 선생님도 아니었고 체육 수업을 담당한 교사도 아

니었기에 접점은 그저 교문을 지킬 때나 인사를 하는 수준. 아마 그 교사가 맡은 학년과 전소희의 학년이

계속해서 달랐을 거다.

그럼에도 떠오르는 강렬한 기억.

자주 빨아서 빛 바랜 빨간 운동복을 입고, 손때 묻은 목검 손잡이를 쥔 채 목검으로 어깨를 안마하며 교문

에서 복장 불량과 지각생을 잡아내는 모습. 이름은커녕 얼굴도 희미하게 떠오르는 사람이었지만 그녀를

떠올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정의로운 것은 그 교사야.’

중학교 2학년 1학기 정도였나, 초여름의 어느 날 불량배 중에서 막 초능력을 각성한 녀석이 교문에서 난

동을 피웠다. 학년이 달라 자세한 사정은 몰랐지만 교내에서 싸움을 하다 정학을 당한 녀석이 앙심을 품

고 학교로 찾아왔던 날.

‘너는 폭력 사건으로 정학중이고,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다. 집으로 돌아가라.’

양 손에서 전기를 파직 파직 흘리며 고함을 지르는 녀석 앞에서, 체육 교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분에 못이

긴 녀석이 덤벼들 때까지 그녀는 그저 교문 앞에 늘 같은 자세로 서서 다른 학생들에게 어서 등교를 하라

고 말했으니까.

제 분을 못이긴 양아치가 양 손에 전기를 두르고 달려든다. 등교를 하던 학생들도, 교실 창문에서 구경을

하던 교사들도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그 체육 교사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짙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목검을 쭉 뻗어 양아치의 목젖을 후려치는 것으로 사건은 끝났을 뿐이니까.

목젖을 부여잡고 컥컥거리며 주저 앉은 양아치를 협회에 신고하고서는 치마를 줄이고 뒤늦게 등교하던

여학생의 뒤통수를 한 대 탁 치며 잔소리를 하는 모습은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소문을 만들어 내기

충분했었다.

평소에 꼰대라고 불리며 FM의 딱딱한 모습만 보이던 비능력자 체육 교사가 학교에 이름난 양아치가 초

능력을 각성하고 달려들었는데 단 한수만에 제압했다는 사건은 전소희가 체육 동아리에 흥미를 가지는

이유로도 충분했었고.

그렇기에 심부름으로 교무실에 가서 들었던 그 교사의 말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야, 이 새끼들아.”

- 일단 잘못을 했으면 말로 한 번은 멈춰야지.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게 안보여? 기업이고 협회고 뭐고, 대로변에서 뭐하는 짓이야.”

- 안 멈추면? 때려야지. 동서고금, 몽둥이가 특효약이야.

손아귀에 쥔 것은 길게 뻗은 목검, 정의(正義) 한 단어 음각된 것이 전부인 길다란 나무 막대기. 하지만 그

것 하나 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이 서른을 먹으니 그 교사가 왜 손에 든 막대기로 어깨를 습관적으로 툭툭

쳤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인파를 헤치고 혼란스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전소희는 대립하고 있는 두 인파 가운데에 섰다.

마치 기억 속 체육 교사와 같이 빛나는 목검으로 제 어깨를 두드리며.

휘잉 소리와 함께 목검이 바람을 가른다. 아스팔트를 녹이는 불꽃과, 그를 막아서는 방패 등 초능력과 최

첨단 과학이 싸움을 벌이는 한복판에서 휘둘러지는 목검은 사람들의 걱정과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했지

뻐억-! 퍽!

“아, 아악! 뭐야 이건!”

용사의 무기는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뭐, 뭐야?”

“엎드리라고, 이 새끼들아아아!”

일렁이는 불꽃이 날아들지만 목검이 불꽃을 베고 지나가니 아지랑이조차 남지 않고 훅 꺼진다. 맨들맨들

해진 아스팔트 위로 서리가 얼어붙으며 날카로운 얼음 칼날들이 일어나 소희의 발목을 노리지만 그대로

목검을 내리 찍자 쩡!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횡으로 한 번 휘두르고 그대로 바닥을 내리 찍었던 목검이

그 반탄력을 이용해 아래에서 위로 초능력자의 턱을 후려친다.

뻐억!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사람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간다. 아래에서부터 턱을 깔끔하게 후려친 일격. 거구

의 성인 여성이 수 m를 날아갈 정도의 타격이니 머리에 큰 데미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썩어도 중급 능

품 천사의 계약자인지 곧바로 자세를 잡고 일어나 양 손을 뻗는다.

“어, 뭐야 이거!?”

비틀거리며 양 손을 뻗었지만 그 손아귀에서 화염이 나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초능력을 무리하게 쓰

려다 양 손으로 머리를 잡고 두통을 호소하며 바닥을 뒹군다. 고작해야 목검으로 한 대 얻어맞았을 뿐인

데 협회 관리자급 초능력자의 능력을 완벽히 봉인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같은 A급 히어로라 해도

‘용사’ 타이틀이 붙은 소희가 우세하다 못해 월등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

‘목뼈가 돌아갈 정도로 후려쳤는데 상처가 없으니 제압, 고작 한 대 맞았는데 초능력이 안 나가는 걸 봐선

탈진, 건드린 것 만으로 초능력을 지우는 걸 봐선 파쇄... 일단은 세 가지인가?’

성검은 용사에 따라 능력이 전부 다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드로 진행되는 오픈 월드에서 세계관이

다른데 용사가 Ctrl+C, Ctrl+V로 만들어져 있으면 이상하니까. 그러니까 저 목검은 소희가 생각한 ‘용사’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따라한 건데...

‘근데 목검? 왜?’

가족도 마을 사람도 여행하던 동료도 전부 죽어서 마왕을 무조건 죽여버리겠다는 집념의 용사가 있었다.

그 용사의 성검은 그쪽 동네 신화에 따라 커다란 낫 모양으로 변했고, 특수 효과에는 부활 불가, 맹독, 저

주 전염, 치유 불가 등 흉흉한 스킬이 잔뜩 붙었었다.

반대로 마왕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을 구하는 걸 중심으로 하는 용사가 있었다. 그러면 성검은 새하얀

지팡이 모양으로 변했는데, 휘두르면 주변 사람들의 질병과 상태 이상이 사라지고 HP가 100%가 되며

모든 디버프를 무시하는 효과가 있었다.

일단 한 쪽 방향을 잡으면 밑도 끝도 없는 성능이 생기는 게 성검. 겉보기에는 목검이지만 이제 초능력자

고 뭐고 저 성검에 한 대 맞으면 일정 시간 동안 무조건 무능력자가 될 것이다. 어찌 보면 문명화 된 현대

사회에서 최강이라 볼 수 있는 무기. 그런데,

‘진짜 왜 목검이지?’

다른 건 다 이해가 되는데 딱 하나, 왜 목검 모양으로 변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소희가 이야기를 할

때 검도를 배운 적은 없는데. 성검도 이번에 용사로 각성하면서 생긴 거지, 중학교부터 고등학교를 거쳐

히어로 견습이 되어 정식 히어로가 되고 A급이 될 때까지 그녀는 맨몸으로 싸워왔는데. 아니, 오히려 맨

몸에 주먹질이 익숙하니 날붙이를 생각 못 했나?

“일어서지 마! 엎드려 이 새끼들아!”

“악! 저희는 정당방위인데!”

협회의 초능력자들이 목검에 한 대씩 얻어 맞더니, 제 초능력이 봉인된 사실을 알고 조용히 아스팔트 위

에 주저 앉는다. 그 모습을 본 빌딩 경호원들이 황급히 달려들지만 소란을 피웠다는 죄로 똑같이 정수리

에 목검을 얻어 맞고 바닥에 나자빠진다.

“언제부터 빌딩 경호원이 대로변에서 장비를 끼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정당방위야! 고개 숙여! 방패 내

려, 이 새꺄!”

목검이 반짝반짝 빛나며 허공을 가르고 방패와 헬멧을 두드린다. 땅땅 플라스틱 통 두드리는 소리를 내

며 빛나는 목검이 빠르게 허공을 휘젓는 모습이 마치 날아다니는 형광등처럼 보여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온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던 사람들도 그 모습에 다시 몰려들어 다시 한 번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다.

“방패 내려, 이 새꺄! 어쭈? 가드를 해? 야, 안 벗냐?”

“벗, 벗는 중입니다!”

분명 두드린 것은 두꺼운 방패와 헬멧이고, 초능력자의 화염도 버텨낼 수 있는 견고한 방어구지만 고작

목검 하나를 막아내지 못하고 바닥을 이리저리 뒹굴면서 처절하게 장비를 벗어가는 모습에 사람들이 하

하 호호 웃으며 그 장면을 촬영한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재난 영화 엑스트라 마냥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쳤으면서.’

그렇게 겁먹고 도망을 쳤으면 집이나 가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우르르 몰려와 그 일방적인 폭력의 현장

을 둘러싸고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용사나 마왕보단 시민들이 무섭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었다.

[작품후기]

요즘 코로나가 난리네요

그놈의 (병)신천지, (시)신천지 종교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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