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3/189)

새로운 이벤트

반투명한 상태로 양 손을 모은 채 십가자를 향해 기도를 올리던 천사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비

단 분위기만이 아닌 외모 그 자체도. 찰랑이는 긴 갈색 머리카락과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망울, 서글프

게 보이는 눈매까지.

다만 안타까운 점은,

-제가, 제가 보이시나요?

아름다운 남자라는 것이었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눈물방울이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지나 툭 하고 떨어지자, 육체의 끝자락과 함께 빛의 가루로 바스라지

며 사라진다. 신체의 끝자락이나 새하얀 의복의 끄트머리가 빛나는 가루로 변하며 사라지는 모양새를 보

니 천사를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딱 보고 ‘아, 쟤 곧 죽는구나’ 싶은 모양새.

남자가 눈물 흘리며 웃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두근대는 게 수치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남자한테 반응을

한 게 아니라 아름다운 얼굴에 반응을 한 거니까. 실제로도 얼굴만 떼어 놓고 본다면, 여성스러운 남성의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라 그냥 미녀의 얼굴이니까. 여자 천사였다면 어떻게든 살려서 데려갔겠지만...

-정말 다행이, 야?

조금 가까워지니 그제서야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말꼬리를 흐리는 천사. 불안정하게 일렁이는 모습이 그

불안해 보이는 심정을 대변한다. 겁에 질린 커다란 눈망울을 마주하니 죄책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몰려

든다.

뭐, 이쁜건 이쁜거고.

“하급 천사 정도면 가능할 것 같은데...”

-어, 어째서 이런 곳에 어둠의 권속이?

맛있어 보이는데.

애당초 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 중 천사에게 호감을 가진 녀석들은 거의 없다. 설정 부터 신이 목적을 부여

하고 만들어낸 피조물이기 때문에 융퉁성이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빨만 잘 털면 거래가

가능하고 다양한 스토리가 전개되는 악마들과는 달리, 천사들은 정말 덜 떨어지는 A.I.를 보는 기분이니

까 좋아한다고 하면 대부분 가지고 노는 용도.

대표적인 예시가 달려 나간 능품 천사. 악마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제들과 손을 잡고 신을 믿는 척이라

도 하며 유저들과 어울릴 수 있지만, 능품 천사들은 눈 앞에 이교도나 악마가 있으면 ‘회개’ 시켜버리려

들지 대화조차 나누지 않는다. 10분을 참고 100의 이익을 볼 것이냐, 지금 악마에게 덤벼들어 1의 이익

을 볼 것이냐 물어보면 물어보는 와중에 악마에게 덤벼드는 방식의 삶.

신의 이름 아래 계율을 지키고 예외는 단 하나도 인정하지 않는 고지식한 NPC를, 제 마음 가는 대로 놀려

고 게임에 접속한 유저들과 마찰이 없을 리 없지. 국가를 전복시키던 정당하게 왕위를 차지하던 일단 유

저의 행보에 간섭을 하고 태클을 거는 게 천사니까.

-난, 나는 아버지의 품으로...!

꺼져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팔을 허우적거리지만, 이미 다 죽어가는 모양새. 아마 천사들끼리 마지막

으로 정리할 시간을 주겠다고 곁에 아무도 안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얘들 입장에서는 죽음은 신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니 기도나 하라고 놔 뒀겠지.

누군가 이 안쪽까지 침입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고. 하긴 초능력자가 우연히 들어와 봐야 영혼 상태

의 천사는 보지 못할 것이다. 악마가 여기까지 기어 들어왔다고 해도 5분 내로 죽을 천사를 비웃기나 하

겠지. 하지만 나는 흡혈귀.

-아, 아, 아아악!

심지어 용사의 피 덕분에 신성력에 면역이 생긴 흡혈귀였다. 평범한 흡혈귀였다면 이빨이 깨지고 목구멍

이 타들어가며, 흡수를 한 만큼 오히려 수명이 깎여 나가고 죽음의 위기가 다가오겠지만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하급 천사 따위가 용사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리 없으니까.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작게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는 천사의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게임

속 흡혈귀의 약점이라 하면 당연히 성(聖)속성 공격인데 그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다는 이야기니까.

‘근데 천사 새끼들은 어쩌지.’

하지만 곧 사라질 것 같은 천사를 삼켜 신성력을 보충했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았다. 눈

알이 뒤집혀 김샛별의 회사에 불을 지르기 위해 뛰쳐나간 초능력자 지부장은 여전히 대로변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을 테니까.

뉴스 속보에 나오지 않을까 스마트 기어의 전원을 켜니 생각치도 못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소희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주변이 휙휙 바뀌는 것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 장난

삼아 시작한 운동 동아리를 관성에 따라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한 것이 그런 이유였으니까. 초능력자로

각성하지 않았더라면 어영부영 세월만 보내다 적당히 트레이너나 되지 않았을까. 운동에 재미를 느꼈다

던가, 장래 희망이라던가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좋게 말하자면 우직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사고가 굳어 있는 여성. 이제 고작 서른이지만 세월이 흐르면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곁에 10살이나 어린 자유분방한 애

인이 있다면 더욱 더.

‘이게 뭔 상황이래...’

애인이 흡혈귀였다.

아니 뭐, 그럴 수 있지. 초능력자가 존재하는데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가 있을 수

도 있지. 전에 하늘이를 구해줄 때, 하수도를 가득 채운 시체 병사도 봤었는데. 그 때는 갓 사귄 어린 애인

이 걱정되어서 뇌리에 남지도 않았지만, 그건 분명하게 걸어 다니는 시체였다.

도시 지하에 서식하는 좀비 무리.

생각해보면 히어로 활동을 할 때 제일 위험한 존재는 그 좀비들 아닌가. 빌런이야 무찌르면 된다지만 좀

비 바이러스가 하수구를 타고 퍼지면 어떻게 되는 건데. 물리면 바로 좀비가 되는 건가? 아니면 그냥 걸

어 다닐 뿐인 시체 비슷한 건가. 죽은 사람들이 걷고 뛰며 산 사람을 납치한다고? 하기야 악마도 있는데.

드라마 작가 겸, 회사 CEO를 맡고 있는 대악마 루시퍼, 김샛별.

이제는 믿는 사람도 별로 없는 기독교 성경에서나 나오는 대악마가 등장했다. 뿔 테 안경을 쓴 단정한 외

모의 남성이 스스로를 대악마라고 소개했으니까. 정신병자의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에는 증명하는 증거

들이 너무 많았다. 정말 날개를 달고 사람 등 뒤에 매달린 수호천사 비슷한 게 대로변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빌딩에 진입 하려다 경비원들과 대처중인 천사들.

불을 피워 올리는 근육질의 여성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건물을 오가며 자주 보기도 했고, 목소리도 쩌렁

쩌렁한 편이라 사무실에서 고함이 터져 나온다 싶으면 벌게진 얼굴로 제 화를 못 이긴 발걸음을 쿵쿵거리

며 돌아다녔으니까.

그런 그녀의 등 뒤에 날개 달린 기괴한 형상의 천사가 양 손에 칼과 지팡이를 들고 날아 다니니, 낯익은 얼

굴들이 똑같이 날개 달린 천사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와서 경비원과 자신들의 상사를 진정시키려고 노력

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개판 5분 뒤의 상황에서 그녀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일단, 협회 내부의 중요 인물과 천사가 암살에 죽었다. 덤터기를 쓴 대상은 악마인데 나랑 계약을 한 악마

다. 자신이 악마의 계약자라는 기분 나쁜 상황인 건 둘째 치고, 어린 흡혈귀 애인은 이 상황을 헤쳐 나가

기 위해 협회 건물로 후다닥 달려갔다.

‘그럼 내가 뭘 해야 하는 거야?’

천사가 지팡이로 근육녀의 머리 위에 흔들자, 능력으로 발생한 불꽃이 화르륵 타오른다. 바닥을 녹이는

위협적인 모습에 경비원들이 무전기에 대고 고함을 지르고, 시민들이 황급히 대피한다. 건물 내부에서

대 초능력자 장비로 무장하고 쏟아져 나오는 경비원들과, 그에 대처하는 협회의 초능력자들.

‘일단 악마랑 계약했으니까 김샛별씨의 재산을 보호 해야겠지? 그런데 하늘이는 협회 히어로 활동에도

관심을 가지니 협회와 등을 져서는 안되고. 결국 천사가 죽었다는 게 문제인데 그 천사라는 게 평범한 사

람이 암살을 할 수 있는 거야?’

복잡하다 못해 꼬여서 머리가 아파오는 와중, 시민들의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초능력자가 되고 나서 느껴보지 못했던 어두운 기분이 스멀스멀 몰려든다. 마치 망망대해 한복판에 둥실

떠오른 상태로, 팔다리를 허우적 거리는 기분. 하고 있는 행위가 유의미한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저

가만히 있으니 불안한.

‘하... 씨발, 언제부터 복잡하게 따졌다고.’

생각해보면 자신을 용사라고 부르는 어린 애인의 달콤한 목소리에 홀려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빛

의 용사, 빛의 용사 하니까 뭔가 정의롭고 멋진 히어로가 되어야 할 것 같았으니까. 똑똑하고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하늘이가 협회로 갔으니 해결책을 가지고 오지 않을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비운

다.

마음을 비우고 손아귀에 힘을 준다.

손등에서 빛나는 문양, 이상할 정도로 뜨겁게 느껴지는 심장. 분명 허공을 쥐었건만 단단한 무언가가 손

바닥에 느껴진다. 불안감과 복잡한 마음은 어느새 사라진 상태. 빛을 손에 쥔 상태로 인파를 헤치고 건물

정면으로 향한다.

‘생각해보면 동거하면서 터 놓을 거 대부분 터 놓았는데.’

“정문에 거수자 추가 발생! 지원 바란다!”

“넌 누구냐!”

모두의 시선이 몰릴 때, 용사는 희게 웃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는 방법은 딱 하

나였으니까. 중고등학교 때 질리도록 봐 왔던 교사들의 무기가 그녀의 손아귀에서 무럭무럭 자라난다.

“아이 씨발, 다 엎드려.”

뉴스 속보에 소희의 모습이 보인다. 녹아내린 아스팔트 위에 머리를 박고 있는 근육질의 여성이, 그 뒤에

같이 얼차려를 받는 협회 사람들이 보인다. 무릎을 꿇고 양 손을 들고 있는 경비원들도 빠지지 않는다.

‘...?’

그 앞에, 소희가 교문을 지키는 체육 선생처럼 양 다리를 벌리고 서 있었다.

손에는 성검... 아니 빛나는 각목을 들고.

‘성검이 왜 몽둥이 모양...?’

[작품후기]

소희 기준 제일 무서운 거 = 목검 들고 교문 지키는 체육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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