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벤트
천사와 악마, 그들이 인간들과 계약을 맺는 이유, 협회에 있는 천사들과 사회에 퍼진 악마들.
용사와 마왕, 마왕이 지구를 침략하는 이유, 외계에서부터 침략해오는 마왕을 저지하는 용사.
“그래서, 악마나 흡혈귀나 인류를 적대시 하는 게 아니란거지?”
“맞아.”
“그렇군요, 용사라... 용사는 마왕의 살해를 목적이라면 악마를 적대시할 이유는 없겠군요?”
“그렇죠.
“”그럼 상관없어.””
를, 전부 설명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궁금한 게 더 없어요? 두 사람 전부 이게 끝?”
대범하다 봐야 할 지, 귀찮아 한다고 봐야 할 지. 용사와 악마가 서로 적대시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서는 상관없다며 드라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되려 어디부터 설명을 해야 하나, 질문을 던지게
하고 답하는 게 좋으려나 고민하던 내가 우스꽝스러울 지경.
“그야 뭐, 너도 흡혈귀라며. 흡혈귀도 있고 악마도 있고... 뭐 어디 외국에는 늑대인간도 있겠네. 아, 드래
곤이 있으면 한 번 보고 싶기는 하네. 결국 우리를 해치는 것도 아니고, 나쁜 짓 하려는 것도 아니라며.”
“빛의 힘을 다루는 용사, 무서운 존재기는 하네요. 하지만 이유 없이 저희를 살해하거나, 지옥을 멸망시
키려 들지 않는다면 천사보다 훨씬 괜찮은 이웃이 되겠죠. 저희는 인간계에서 발이 좀 넓으니까 도움될
일은 많을거에요... 협회 빼고.”
“아, 협회에는 천사들이 있다고 했던가요?”
“예. 딱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고, 히어로의 자기 희생적 사명감이 천사들에게는 좋은 양식이니까
요. 몇몇 부패한 사람들 제외하고는 대부분 천사들이 붙어서 케어하고 있을 거에요. 저희 악마들은 대부
분 사업 쪽에 퍼져 있는 상태고.”
슬그머니 내밀어지는 명함들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명함 두께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면 대체 몇 장이나
되는건지. (주)Venus 같은 이름 때문에 의심했던 회사도 있고, L마트 같이 연관점이 전혀 보이지 않던 거
대 프랜차이즈점도 섞여 있었다.
“우와... 엄청나네요.”
“악마라는 존재가 본디 사람의 욕망을 이루어 주는 존재다 보니, 기본적으로 사업을 말아먹는 일이 없더
군요.”
상황에 대한 순응이 너무 빠른 두 사람에게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 지 몰라 멍하니 있으니 종업원이 음식
을 쟁반에 올려 등장한다. 자그마한 솥에 담긴 정갈한 버섯밥부터 한 입 크기로 예쁘게 꾸며진 고기와 나
물이 다양하게 담긴 한정식 세트.
“일단 식사부터 마치고 마저 이야기하죠.”
식사를 진행하며 서로 존대를 하며 대화를 진행시킨다. 악마가 초능력과 빛의 힘에 대해 묻고, 용사가 악
마들의 계약에 대해 묻는다. 대악마와 용사가 사이 좋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직접 보니, 예상은 하고 있
었지만 머리가 따라가지를 못한다.
악마와 용사가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은 보면 볼 수록 기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뭐라 해야 할까, VR 게임 처음으로 접속해서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수인족이나 드래곤을 본 기분.
누군가가 그린 만화의 한 장면이 눈 앞에 3D로 펼쳐진 것 같은 상황이니까.
‘기분이 되게 묘하네.’
악마들이야 뭐, 입장에 따라 아군이 될 때도 많았다. 결국 대부분의 악마들이 원하는 것은 지성체의 감정
일 뿐이며 넘쳐난 감정을 그들이 흡수해 간다고 해서 죽거나 다치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용사와 이
렇게 가깝게 지내고 있다니.
중세 시대 배경이면 NPC 인구가 1억 단위다. 현대 배경이면 50억에 가깝고 SF 세계관으로 가면 행성마
다 있으니 조 단위에서 놀 수도 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면 이런 게임을 만들 수 있나 궁금하긴 하지만 뇌
를 건드려서 가상현실 게임을 만든 놈들이니 뭐.
아무튼 천만분의 1, 60억분의 1, 1조분의 1 확률로 용사 NPC를 이웃집에서 딱 만날 가능성이 높아봐야
얼마나 높겠는가? 확률 상 완전히 랜덤이라 인구 많은 중국에서 용사가 나올 때도 있고 저기 그린란드 같
이 사람 적은 섬나라나 아마존 원주민 중 하나가 당첨될 때도 있는데.
“연기 경험이 없다고 하셨으니, 조연이라도 대사는 별로 없습니다. 물론 촬영 전에 단기간 연기 강의를
들으셔야 하긴 합니다.”
“연기 강의... 얼마나 걸리죠?”
“3주짜리입니다. 계약을 마음먹으신다면 바로 들어가는 게 좋으니까요.”
두 남녀가 정중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대본을 들어 읽었다. 드라마는 심령현상에 대한 24
편짜리 판타지 드라마였다. 초능력이 실존하는 세계다 보니 사람들이 오컬트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걸까, 아니면 악마여서 이 쪽 내용이 편한 걸까?
2명의 주인공으로 진행되는 드라마는 젊고 아름다운 여배우와, 노련미 넘치는 중년의 여인 콤비였다. 세
세한 뒷 설정이야 제쳐 두고, 두 엑소시스트가 초능력자의 틈바구니에 숨어 든 악령들을 사냥하는 내용
뿐이고 다른 건 없었다.
‘확실히 재미는 있겠네.’
초능력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몰라, 초능력자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악령을 사냥하는 건 어떤 기
분일까. 귀신 들린 초능력자가 불지랄을 할 수도 있고, 귀신 들린 소녀가 천장을 기어다니는 게 아니라 그
림자 속을 헤엄칠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소희가 나오는 부분을 찾는다. 책갈피가 끼워져 있고 형
광색으로 칠해져 있는 부분이겠지.
소희의 배역은 약 18화 후반부에 처음 등장하는 추락한 천사. 인간을 돕기 위해 능력을 사용했다 천국에
서 추방당했다는 설정이었다. 역시 악마가 쓴 대본 답게, 초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신에 대한 의심으로 가
득 차 있었다.
“음... 대사가 많지는 않은데.”
“원래 하다 보면 늘어요.”
주인공 두 명이 자꾸 악마들을 퇴마하여 지옥으로 돌려보내자 그 걸 못마땅하게 여긴 대악마가 주인공 일
행을 함정에 빠트리게 되자, 소희가 등장하여 주인공들을 구원한다. 인간을 구해 추방당했음에도 인간을
구하는 천사와, 천사에게 구원받았지만 그 것이 신의 뜻이 아닌 천사의 독단적인 판단이었음을 알고 신
앙에 흔들림이 생기는 두 인간.
소희가 걱정하는 부분은 그 것이었다.
“아니... 이게 3주로 될까요?”
“대사가 적고, 무뚝뚝한 무표정으로 있는 거니까 카메라 앞에서 평정심만 유지하시면 됩니다.”
신에게 추방당했음에도 신앙심을 버리지 않는 천사.
24편 중 18편 후반에 등장해서 후반부 20%정도에 잠깐 잠깐 얼굴만 비칠 뿐이고, 대사도 거의 단답형.
대본만 읽어 봐도 주인공 두 명이 신앙이 흔들리는 게 메인이라 비중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지만 연기의
난이도가 문제였다.
얼굴만 스윽 비추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대략 5~10분은 신성스럽고 고요한 천사의 모습
을 연기해야 하니까. 차라리 히어로나 빌런을 연기하라 하면 하겠지만, 이런 천사 배역은 상상도 하지 못
했을 거다.
“자, 뭘 망설이시는 지 알겠습니다.”
그런 소희의 모습에, 악마가 입을 열었다.
※
악마의 유혹은 달콤했다.
“네, 그럼 다음주 화요일부터.”
사기 계약은 아니었고 독소 조항도 없어 그대로 놔 두었지만, 소희는 반쯤 홀린 상태로 멍하니 고개를 끄
덕이고 있었다. 초능력이나 마법이 사용된 것은 아니다. 그게 사용되었다면 지금쯤 악수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잿가루(前 대악마)를 치우고 있었겠지.
루시퍼는 그저 뿔 테 안경을 슬쩍 들어 올리고서는 자신이 줄 수 있는 혜택으로 소희의 청사진을 나열했
을 뿐이다. 드라마 조연으로 시작하여 배우가 부담된다면 방송국 경호원 코스로 시작해서 리얼리티 프로
그램에 잠시 비추는 식으로 화재를 몰 수 있게 해주겠다.
방송과 맞지 않는다면 기업을 주선해 줄 것이며, 협회에는 천사가 있어 입김을 불어넣지 못 하지만 국내
대기업부터 외국계 기업까지 협력 업체가 많으니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애인과의 오붓한 시간을
챙길 수 있도록 임원진의 경호를 위해 해외 일주 크루즈 선에 타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밀착경호를 핑계
로 원하는 지역에 단독 주택을 선물할 수도 있다.
고작해야 드라마 주연 연기에 대한 고민과, 혹시 악마와 싸우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온 소희
에게 온 무자비한 돈의 폭력. 내가 아무리 게임을 핑계로 1억, 2억씩 통장에 받아오고 집안이 금 수저였
다 하더라도 김샛별이 제안하는 것은 그 정도를 아득히 뛰어 넘는 일이었으니까.
1년짜리 초호화 크루즈 여행이나, 1구역 중심부에 있는 빌딩 하나를 주겠다는 제안이나, 중소 기업 하나
를 선물하겠다는 이야기는 평범하게 살아오던 소희에게는 쉽사리 넘기기 힘든 제안이었을 테니까.
“어, 어째서 이 정도까지 하는 겁니까?”
“당신이 용사라는 존재고, 그 것에 대한 설명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김샛별이 희게 웃었다. 악마라기 보다는 사업가의 미소를 지으며.
“마왕이 지구를 침략해 인류를 위협하고, 당신과 당신의 애인이 정말로 인류를 구원한다면.”
독사같이
“거기로부터 파생된 감정을 제가 독점할 수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