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189)

새로운 이벤트

솔직히 말하자면 방법이 없는 게 아니었다.

이름 값을 그렇게 소중이 하는 악마들이니까, 복면이라도 뒤집어쓰고 내가 테러를 벌이면 되니까. 적당

히 연쇄살인마 놀이나 하면서 ‘내가 루시퍼다!’ 라고 소리를 지르고 다니면 되거든. 천사들이 협회에서 터

를 잡은 이 상황에 악마 군주를 사칭하는 또라이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기어 나올 것이다.

‘근데 하면 99% 뒤져.’

문제는 언제나 소희, 아니 용사였다. 용사의 힘을 100% 제어하는 게 아닌 소희가 곁에 있으니까. 용사의

성검이 저 흡혈귀는 나쁜 흡혈귀다, 라고 각을 딱 재면? 그대로 잿더미 엔딩을 찍게 되는 것이다. 사실 지

하 도시에서 오는 의뢰도 조금 불안 불안하기도 해.

게임 모드처럼 성향을 보여주는 창이 없으니까 더욱 그렇다. 너는 착한 사람이냐? 라고 물어봤을 때 예!

하고 즉답하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솔직히 내 게임 플레이 방식이 선한 방식이냐고 물어보

면 좀...

내가 직접 하자니 99% 사망 엔딩이 보이고 다른 녀석을 시키려면 인재가 없다. 지하 도시의 유명 인사가

된 굴라 두 마리한테 복면 씌우고 루시퍼라는 가명을 쓰라 해 봤자 들통나는 것은 시간 문제. 지금으로서

는 소희가 빨리 성검이랑 대화를 나누고 완전히 컨트롤 하는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첨단 과학이 초능력과 어우러지고, 거기에 개인적인 마법까지 사용하니 일상이 윤택해지고 행복해지지

만, 반대급부로 범죄를 저지르는 플레이는 힘들어지는 것이다. 여기가 무협지 세계였으면 벌써 복면 쓰

고 목 그어버리고 다녔지.

입체적으로 공간을 탐지하는 3D CCTV로 시작해서 현장에서 과거의 기억을 읽는 사이코메트리 형사들,

권능을 사용할 천사들과 마법을 사용할 악마들. 그 모든 추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방법 따위는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물론 소희의 품을 떠난다는 선택지는 바로 기각. 권력적으로 높은 사람이 되거나, 힘으로 지배하는 우두

머리가 된 것과는 전혀 다른 안락한 삶을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안락하게 놀고먹는 가정 주부의 삶을 포

기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순찰을 제외하면 하는 일 없이 놀고먹으며 소희의 품에 안겨 생활하는 게 얼마나 안락한지. 더군다나 게

임 속에서 게임을 하는 것도 의외로 재미가 있어 SNS가 풍족 해졌다. 히어로인 ‘나’와 SNS상의 ‘나’를 비

교하자면 SNS가 압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상태. 그 덕에 댓글 달기 버튼으로 슬금슬금 계약을 당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으니.

평온하고 안락하게, 마왕이 지구에 강림하기 전까지 놀고 먹어야지.

“그러니까, 단역 배우를 해보지 않을래?”

“왜 또 와서 개소리야.”

“개소리라니! 히어로 활동을 각 잡고 한다 해서 과거의 연줄까지 다시 붙잡고 일거리를 물고 온 참된 친

구에게! 아이고 섭섭해서 못살겠다!”

봄이 가까워질 무렵, 늘 골목길에서 오뎅 하나를 물고 기다리던 이하린이 뗑강을 부린다. 저게 28살 먹은

여자가 할 짓거린가 싶어 한숨이 나왔지만 나이를 지적하면 되려 소희가 상처받으니 목 안으로 할 말을

꿀떡 삼킨 채.

“A급 히어로나 되어서는 순찰만 돌 생각이야? 방송도 나가고 험지에 직접 뛰어들어야 인지도가 팍팍 오

르지! 2구역이라 해 봐야 술 마시는 고등학생 말고 뭐가 있다고 여기서 썩으려 들어? 적당히 영화나 드라

마 단역부터 시작하고, 인지도 좀 쌓이면 지명 의뢰 받아들여서 바로 올라 갈 생각을 해야지. 순찰로 등급

올리려면 환갑잔치쯤 올라가겠다.”

“...그건, 그렇긴 하지?”

“갑자기 드라마?”

이 쪽 세상의 취향은 조금 따라가기 힘드네.

히어로는 관심을 먹고 산다.

아 씨, 이거 전에도 생각했던 거 같은데.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지면 화성으로 테라포밍해서 근미래가 아니라 SF 세계로 넘어갈 것 같은 최첨단

과학 시대에서 초능력자들이 자신을 홍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말할 필요도 없이 인터넷이다. 그렇다

고 해서 인터넷에 셀카 같은 걸 올린다고 많은 사람이 볼 리 있나?

[너는 내 남자] 논란 속 초능력 사용 장면, 이대로 괜찮은가?

[연예 칼럼] 빛부격차, 빛렁뱅이... 도를 넘은 인터넷 악플들

[TV연예] 아나운서 김종철, B급 히어로와 열애 사실 인정

“너는 마스크도 꽤 괜찮은 편이고, 능력도 정형화된 상태라 영화 쪽에 써먹기 좋을 거야. 빛 속성 A급 능

력자라고 명함 한 번 돌리면 단역은 물론이고 조연까지는 한 번에 갈 수 있을 걸? 연기 부담스러우면 대사

없는 역할로 비중 줄여서 나가도 되고.”

초능력자가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있기에 벌어진 현상. 솔직히 말하자면 내 취향에는 전혀 맞지를 않는

다. 근육질 우락부락한 아저씨들이 속 시원하게 기관총을 뚜뚜뚜 빵야 쏴재끼는 영화가 취향이지, 근육

질 우락부락한 아줌마들이 손에서 불을 뿜어내는 영화는 취향이 아니라고.

‘무슨 B급 초능력자 영화 같아...’

초능력자와 민간인의 교류를 위해 사용된 것이 문화, 예술 쪽이다 보니 이쪽 세상의 문화 컨텐츠는 초능

력자와 밀접하게 얽혀서 발전하였다. 자기 딸과 연애하는 남자에게, 시아버지가 커피를 뿌리는 게 아니

라 손바닥에서 물덩이를 쏘는 장면 따위가 떡 하니 방송되는 것이다.

차라리 예능 방송에서 초능력을 사용한 미니 게임을 하는 것은 보는 재미라도 있지. C급 바람능력자 둘이

수영장 위에 떠 있는 부표에서 서로를 바람으로 넘어트려서 물에 빠트리는 게임 같은 거. 베게 싸움을 할

때 염동력으로 휘두르는 원거리 베게 싸움 같은 건 웃기기라도 한데.

시아버지가 남주인공한테 물덩이를 발사하던가, 부부싸움을 할 때 물건을 던지는 게 아니라 염동력으로

화분을 깨는 장면, 비능력자지만 당차게 살아가는 가난한 남주인공과 등급 높은 재벌 초능력자 여주인공

같은 건 보면 볼수록 어색한 CG같아서 보다 말고 시선을 돌리게 된다. 예능이 재미있어 진 대신 드라마가

취향 저 밖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니까, 하늘이도 늑대 하나 정교하게 소환할 수 있고, 너도 날개 뽑아낼 실력이면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 거기에 너는 일단 한 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으니까 데려가고 싶은 사람이 꽤 될 거야.”

“아오,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

하긴, 벌금 엔딩으로 끝났다고는 해도 인신매매 조직을 통째로 소탕한 소희니까 드라마에 출연하면 화재

성 하나는 끝내 주겠네. 아무리 그래도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찾아 공원을 헤메는 게 아니라 도시 상공

을 비행하는 건 어색해서 보기 힘들지만.

“일단 너한테 관심이 좀 많은 분이 있어. 드라마 작가 중에 김샛별 작가님이라고-“

“누나, 하자.”

“지난번에 시청률 22%찍은 드, 엥? 너 이 작가 팬이니?”

드라마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다 말고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을 무시하고 그대로 검색창으로 들어

간다. 김 샛별, 드라마 작가. 회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뿔테 안경의 남성이 검색 포털에 등장한다. 그대

로 김 샛별의 검색 결과에 연동된 드라마들을 터치해서 정보를 살펴본다. 히어로가 살아있다, 남편의 각

성 등 뭔가 애매한 제목의 작품들. 작품 내용들은 중구난방이지만 공통적인 클리셰가 있었다.

‘이 새끼, 숨길 마음이 없구나?’

야심만만한 캐릭터가 성공한다는 점.

드라마의 전형적인 클리셰, 히어로 세상의 기초적인 규칙인 ‘권선징악’이 아니다.

야심차고 오만한 주인공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가 되는 드라마를 찍어내는 작가. 재벌가에

장가가는 남자, 비능력자임에도 협회 요직을 차지하는 여자 등 다양한 방식(막장)으로 성공하는 막장 드

라마의 작가. 이름이 샛별(루시퍼)인데 교만을 권장하는 드라마를 찍어내며 평균 시청률 22%를 유지하

는 중이라니.

우연도 세 번 겹치면 빼도 박도 못하는 심증이 되는 것이다.

“어, 하늘아... 진짜 하고 싶어?”

“거 봐, 남자애들은 다 드라마 좋아한다니까?”

현실과 게임을 혼동하는 것 같지만, 맨날 대련하자고 조르기만 하는 멍청한 NPC가 처음으로 다른 이야

기를 꺼내면 이벤트 퀘스트 발생 맞지. 루시퍼를 한참 조사하고 있었는데 이런 사람이 등장한다? 그 것도

저쪽에서 먼저 접근을 해 와?

‘빛의 날개...를 보고 관심을 가졌다고 했지. 천사 끄나풀인지 체크하는 건가.’

회사들은 돈을 바치는 존재고, 자신은 대중들에게 영향력 있는 미디어 매체를 장악해서 사람들에게 그릇

된 가치관을 심는다. 가히 악마다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죽는 사람도 없고 부작용도 없이 TV 스크린

앞에 앉은 전업주부들에게서 깔끔하게 부정적인 감정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악플이 달리면 기뻐하는 막장 드라마 작가라, 악마 놈들한테 천직이기는 하네.’

사람들이 자신의 드라마를 보고 좋아한다? 이는 자신의 이름값이 높아짐을 뜻한다. 반대로 악플이 달리

고 욕을 먹는다면? 그 또한 이름값이 높아짐을 뜻한다. 마조히스트의 뺨을 때려봐야 쾌락이 되는 것처럼,

악마를 욕 해봐야 기뻐할 뿐이라는 것이다. 드라마에 몰입할수록, 등장 인물을 욕 할수록, 이런 스토리를

짠 작가를 욕할수록 이익이 되는 수익구조가 생기는 것이다.

[작품후기]

와 2월!

댓글 중 궁금하신 걸 남기신 분이 있어 후기로 작성합니다. 원래 글로 설명해야 하는데 취미로 쓰다 말다

하니까 조금 오락가락 하는 부분이 있는게 맞습니다. 나름 설정을 짜 두지만 초짜 작가라 허술한거죠. 답

변에 약간의 스포가 포함될 예정이니 넘기셔도 무방합니다

1. 초반에 나온 연금술사와 S급 능력자에 대하여

초반 주인공이 털어 먹은 창고에는 강화석 등 다양한 연금술 물품이 있었고, 주인공은 털어먹은 상태로

넘어갑니다. 그 이유는 '모드'를 설명할 때 같이 풀었어야 하는데 정보 전달이 미숙한 것 같습니다. 연금

술사는 '판타지 모드'에만 등장하는 직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 머릿속에만 넣어두고 지나간 것 같습니

다.

72 악마 중에는 연금술에 능숙한 악마가 존재하죠. 주인공 또한 연금술사의 창고를 털어 먹고,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세력이 없어 소희 옆에 웅크린 상태입니다. 창고를 털었는데 반응이 없는건 나를 무시하는

건가? 아니면 그 정도는 푼돈이라 관심도 없나? 라고 생각해서 날뛰었다는 묘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악

마가 연금술을 했던 악마와 계약을 했던 간에 날로 먹었으니 기분은 좋지만 자기가 직접 찾아서 한번 더

털어먹을 가치가 없는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강화석이라 해 봐야 굴라들이 집어먹고 외모 버프 받은

게 끝이니까요.

S급 능력자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하린에게 빌린 단말기, A급이 되어 갱신된 소희의 단말기에도

정보가 없고 직접 협회 내부에 침투하자니 천사 세력이 웅크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와중에 악마 새끼

들이 불지르고 테러하느라 경계가 삼엄해졌는데 얻을 것 도 없는데 궁금하다고 파고 들기에는 귀찮은거

죠. 지 꼴리는 대로 살면서 귀찮은 일을 소희에게 전부 넘긴 기둥서방이 발 벗고 나설 이유는 없다고 판단

했습니다.

2. 주인공의 등급

주인공의 표면적 등급은 B급이고, '지금까지 보여준 능력'은 B상위권~A하위권으로 보시면 됩니다. 귀찮

아서, 성검이 무서워서 등 다양한 핑계로 육체 강화나 청소 마법, 그림자 늑대 말고는 능력을 사용한게 거

의 없죠?

등급이란 게 게임 시스템처럼 띠링! 하고 바로 오르는 게 아니라, 히어로 협회에서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입학할 때 소희가 만들어준 신분증은 B급. 졸업과 동시에 히어로 시험을 치뤘지만 실적이 없어 A급은 되

지 않았습니다. 협회가 본 모습은 A급 히어로인 전소희, 이하린에게 조금 못미치는 대련 실력과 납치범을

제압한 그림자 뿐이니까요.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최고 등급이 A급인 만큼 눈에 띄는 실적이 없는 주인공

은 B급따리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어딘가의 히어로가 취미인 대머리 만화처럼, 히어로의 등

급은 사람들의 시선을 같이 평가합니다.

예비와 정식 히어로는 학생이냐 아니냐, 실무를 뛰냐 안 뛰냐에 따라 단말기에 제공되는 정보가 다를 뿐

이지 능력의 차이가 있는 게 아닙니다. 이 부분은 작가가 쓰다 헷갈렸을 가능성이 크네요. 주인공은 지금

힘숨찐 상태입니다. 각성했다고 존나 강해지는 건 아닌데, 귀찮아서 스킬을 쓰지 않고 있다고 묘사를 조

금 해놨지만 부족한 것 같습니다. 나름 떡밥이랍시고 이하린과의 대련, SNS를 하는 이유 등에 조금씩 묘

사했지만 글 쓰는 솜씨가 미흡해서 ㅎㅎ...

아무튼간에 게으르고 부족한 작가의 글을 끝까지 따라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취미로 쓰

는 글이라 오락가락 하지만 연중은 하지 않을 생각이고, 부족하더라도 생각하고 있는 엔딩까지는 써내려

갈 생각입니다. 과분한 관심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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