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벤트
수 십명 단위의 인신매매 조직을 체포하고 열 댓명 가량의 피해자를 현장에서 구출함으로서 받는 포상금
을 그대로 반납하고, 거기에 더해 수리비로 수천만원의 벌금을 추가로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손해는 아
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득이라 보는게 좋았다.
[이번에 인신매매 조직 애들 터진 거 봄?]
밤에 번쩍거리길래 눈뽕맞고 잠에서 깼는데 히어로여서 참았다 아 ㅋㅋ
― 식칼 들고 다닌다는 그 븅신들?
― 협회 옆에서 삼단봉에 식칼이면 완전무장이지 ㄹㅇ
ㄴ 그쯤 되면 범죄 조직이 아니라 동네 양아치 아니냐?
ㄴ 뭘 동네 양아치야 진짜로 길 가던 남자들 납치 했던데.
히어로 활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유명세가 붙었으니까. 물론 인터넷에 올라온 글인지라 100%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능력 제어가 안되니 건물을 부순 거 아니냐, 저러다 과잉 진압 하면 어떻게 하냐 등
우려 섞인 글도 있었고 이유 없는 욕설들도 있었으니까.
[능력이고 뭐고 그냥 미녀 미남 정석 콤비라 좋은데]
히어로도 전형적인 운동부 미녀고, 같이 다니는 사이드 킥도 미남이고.
원래 히어로는 눈 호강이 1순위 아님?
― ㅇㄱㅁㅈ
― 아 ㅋㅋ 사이드 킥 존나 꼴리던데 슈트 안 입나?
하지만 중요한 것은 관심. 미녀 히어로가 잠입 임무를 진행하던 미남 사이드 킥을 위기에서 구해주는 것
은 정석적이다 못해 고전적인 이야기였기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낸 벌금이 수천만원
이고, 취소 된 포상금까지 생각하면 억 대의 돈이 오간 것이다.
새해맞이 첫 업무부터 인신매매 범죄자들 수 십명을 잡아 넣고, 건물도 하나 부숴버리고, 밤에 번쩍 번쩍
빛기둥을 날리며 빛의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히어로.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지. 그렇게 관심이
쏠리면“왜 나랑은 안 싸우냐고오오오오!”
“아이 씨발, 나 지금 선배님들한테 욕 존나 먹고 자숙중이거든?”
불청객이 찾아오기 마련이고.
우리가 맡은 순찰 범위는 생각보다 좁은 구역이었다. 하기야 A급이라고 하지만 이제 첫 업무를 맡은 초짜
들에게 넓은 구역을 할당하지는 않았겠지. 식당가 인근 스무 블럭 정도가 우리에게 할당 된 범위였다.
“그나저나 우리 위치는 어떻게 알고 온 건데?”
“그야 담당 구역은 공지사항에 올라와 있으니까 당연히 알지. 사람을 무슨 스토커로 몰아가려 하네.”
순찰 업무는 별 것 없었다. 지정 구역 내부에 있는 가게 앞을 걸어다니며 혹시 진상 손님이 난리를 치고 있
는지, 과도한 헌팅 같은 것으로 호출 벨을 누르는 손님이 있는지 확인하며 돌아다닐 뿐이니까.
솔직히 동네 식당 골목에서 빌런이 뛰쳐 나올 일은 거의 없지.
연예인이라면 몰라도.
“스토커 맞다고 봐야 하지 않냐. 남의 집 문 앞에 쪼그려 앉아서 대기하면서.”
분식집에서 오뎅 국물을 마시며 우리를 기다리던 이하린이 우리들의 순찰에 합류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뜨겁게 달궈진다. 드라마부터 예능까지 대한민국에 이름 석 자 알린 연예인이 식당이 모여 있는 골목에
서 마스크도 없이 빙빙 돌아다니니 당연한 이야기.
소희랑 데이트 할 겸 외출을 다녀오니 우리집 문 앞에 쪼그려 앉아서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거나, 술에 취
해서 우리 집 침대에 누웠다가 소희한테 얻어 터지고 창 밖으로 던져져서 허공에 둥실 떠다니는 게 인터
넷에 사진이 올라오던가 하는 일이 있지만, 일단 이하린도 A급은 A급 히어로였다.
이제는 소희한테 제압당하고 나와 비등하게 싸울 뿐이지. 물론 목숨을 걸고 싸우면 나한테도 복날 개처
럼 털리는게 이하린이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전투력 측정기 같네. 히어로 중 최상위인 A급이지만 주
인공 패밀리한테는 맨날 얻어 터지는 역할.
여성 연예인 하나와, 그 연예인에 맞먹는 외모를 지닌 여성 히어로. 그 사이에 낀 왜소한 체구의 남성 사
이드 킥.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고 당연하다는 듯 이 쪽을 촬영한다. 정의에 미친 사회인데 어째서 초상
권은 없는 건가 싶어 짜증이 조금 났지만, 이하린은 커녕 소희조차 아무 말 없이 평범하게 대화를 나눈다.
‘히어로에 익숙해 지니까 이 쪽도 익숙해 진 건가.’
조금은 기괴하다고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아무리 아이돌이라 해도 사생활이란 게 있었고, 업무를 할 때
방해를 하는 사람들 또한 있었다. 아이돌의 팬들은 악질 팬, 사생 팬들과 늘 싸우고 있었으니까. 들이대는
카메라, 과도한 접근, 우르르 몰려와서 길을 막고 마구잡이로 만지작 대는 팬들. 정신을 차려보면 소지품
이 없어져 있고 옷 단추가 뜯겨 있고 주머니에 뭔가 들어와 있고.
그런 일 따위는 없었다.
통제하는 사람 하나 없이 군중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좁은 골목에서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게 벽
에 딱 붙어서 우리 셋이 가는 것을 열심히 촬영한다. 접근해서 인사를 하는 사람도 없고 고음으로 꺅꺅 비
명을 지르는 사람도 없었다. 소희와 이하린의 목소리를 제외한다면 골목에 가득한 것은 사람들의 숨소리
뿐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또 뭐.”
“아, 니들 구역에 내 단골 식당이 있거든. 거기서 한 끼 먹은 다음에 간만에 체육관이나 가자.”
“너 다음 학기 수업 준비 안 하냐?”
“야, 나 실습 교관이야. 준비를 하면 일괄적이게 되잖아. 학생들을 직접 보고 고쳐줘야지 참된 스승 아니
겠냐. 솔직히 교과서는 실전이랑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너 임마, 공인이었다 교사가 되어서 길거리에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지 마라.”
사이에 껴 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단말기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히어로 관련 카페에는 벌써 목격담
이 올라오며 우리들의 사진이 떡 하니 게시되어 있었다.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덤으로 나오는 사람
들도 자기 사진이 인터넷에서 수 천명의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뭔 놈의 삼각 관계여...’
내 입장에서는 양 손의 꽃이지만, 네티즌들에게는 남자 하나를 두고 여자 둘이 대립하는 모양새의 소설
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하린이 성격과 행동만 빼고 보면 참 인터넷에서 백마 탄 공주님을 찾는 남자들
에게 인기가 있으니까.
술, 담배를 안 하는 수려한 외모의 연예인 겸 A급 초능력자. 딱히 욕설을 하지도 않고 소희와 술자리를 가
지게 되면 소주 한 병 이상은 마시지 않고.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스캔들도 일어나지 않았고 갑질 논란이
나 부적절한 언행으로 논란이 일어난 적도 없으니 정말 바른생활 아가씨 그 자체다.
‘그만 엮어, 씨발...’
문제가 있다면 그 반대 급부로 내가 신데렐라가 되어 있다는 점? 이하린과의 대련이야 학교에서만 유명
했지, 인터넷에 썰을 푼 녀석은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이번에 소희가 천장을 박살내고 나를 구출했다고
소문이 나서 더욱 그렇다.
‘아오 씨발, 억울해서라도 히어로 등록을 해야 하나.’
소희와 2인 1조로 다니면서 귀찮은 일은 대충 떠넘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사이드 킥이 되겠다고 했는데
어째 사회의 시선이 히어로 하나 잘 고른 제비, 현대판 신데렐라(남자) 를 보는 시선이라 기분이 묘하다.
소란은 없지만 작게 속닥거리는 소리도 들려와서 더욱 더.
‘쟤가 그 사이드 킥이야? 확실히 잘생기긴 했네.’
‘와... 하긴 저 정도는 되야 히어로가 이성을 잃고 구하려 들지 않을까? 나 였어도 그랬다.’
심지어 얹혀가는 사이드 킥이라고 생각하면서 악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더욱 기분이 이상했
다. 남녀의 정조 관념이나 사회적 통념이 뒤바뀐 것은 그저 역할이 바뀐 것이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
는데, 히어로에 미쳐 있는 사람들을 보니 오히려 기괴하다고 느껴지는 기분.
“그래서 하늘아, 오늘 저녁에 불 족발 먹자는데 먹을래?”
“또 맥주죠?”
“아하하, 그래도 다 큰 여자들끼리 모여서 식사하는데 술 한 잔 정도야 뭐...”
알겠다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다시 히어로 커뮤니티를 살펴본다. 내 평판은 대체로 운이 좋은 신데렐
라, 제비 정도인데 왜 악의적인 사람은 없는 것인가. 사이드 킥 = 어리숙함의 공식이 세워진 세상이라 다
들 이 정도 민폐는 당연하지~ 라고 넘어가는 건가?
‘빨리 악마 새끼들이라도 기어 나와라.’
소희에게 얹혀 살고 영웅의 오른팔 겸 애인이 되어 인생을 날로 먹고 마왕 모가지도 날로 썰어버릴 생각
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대놓고 신데렐라 취급을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중에 좀 커다란 사건이 벌어
지면 소희 없이 내가 단독으로 처리를 해야 겠다.
... 그러면 또 사이드 킥의 성장! 하면서 사람들이 따듯한 시선을 보내줄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한데. 공포
의 대명사나, 대량 학살을 하는 피의 군주 등 경외와 공포의 시선이라던가, 게임 스타팅 할 때 노예나 고
아를 보는 낮잡아보는 시선은 익숙하지만, 이렇게 애매하고 뜨듯미지근한 시선은 기분이 이상하다고.
[작품후기]
고인물 자존심이 있는데, 0년차 사이드 킥이 그렇지 뭐~ 하고 낮잡아 보여서 자존심 상함
몬헌 아이스본, 메이플 신캐
ㅎㅎ ㅈㅅ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