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189)

새로운 이벤트

발걸음이 무겁다. 등 뒤에서 누님들이 낄낄거리며 떠미는 손길 속에 섞인 떨림이 느껴지고, 내가 아니라

서 다행이라는 안도 섞인 한숨이 귓가에 천둥처럼 들려온다. 늘 가던 창고 구역이고, 이 심부름을 하루 이

틀 하는 것도 아닌데.

“으, 음식 가져왔습니다!”

“아, 왔어요?”

철문을 퉁퉁 두드리고 크게 외친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맑은 미성은 언제 들어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나보다 어린 남자 아이에, 전투조에 속한 누님들을 전부 때려 눕힐 수준으로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었다.

“손이 바빠서 그런데, 안 쪽까지 밀고 와 줄래요?”

“느, 녜에...”

이전에 심부름을 갈 때는 귀찮아도 꽤나 기분 좋게 다닐 수 있었다. 선배님들이 눈 호강이나 하라며 시킨

음식 심부름을 할 때 삐끼나 해야 할 카트 서빙을 왜 내가 하냐고 화를 낸 것도 잠시, 나신으로 음란하게

허리를 흔드는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으니까.

덜그럭, 카트가 울퉁불퉁한 창고 바닥에 흔들리자 심장도 같이 떨린다.

강한 남성... 왜곡된 성욕... 하며 선배들이 낄낄거리며 놀려도 상관없었다. 조명 아래에서 음탕하다 못해

고결해 보일 정도로 섹스를 하는 모습은 외설물 보다는 예술품에 가까웠으니까. 새하얀 몸, 새카만 머리

카락, 새빨간 눈.

“주, 죽...”

“와, 아직도 말을 하네?”

카트의 음식을 살펴보며 배시시 웃는 눈웃음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여우 같은 남자, 라던가 눈웃음에 여

자가 홀린다는 말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얼굴. 걸음걸이는 조용하고 손짓은 나긋하며 옷을 입었

을 때의 몸가짐은 조신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가 나긋한 손짓으로 어루만지는 것은, 분해되어 있는 사람의 팔뚝.

‘저게, 저게 뭐야 대체...’

멀쩡한 팔목과 팔꿈치의 사이, 여성의 팔뚝은 말 그대로 분해되어 있었다. 너저분하게 토막 난 시체도 보

았고 미치광이가 한 입 뜯어먹은 시체도 보았으니 감히 말할 수 있다. 오히려 분해 된 모양새가 너무 깔끔

해서 무섭다고.

‘저게 말이 되냐고...’

새하얀 뼈는 한 점의 살점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긁어내진 상태. 그 새하얀 팔뚝 뼈 몇 cm위를 몽글몽

글한 핏방울이 바쁘게 오간다. 두근, 두근 크게 울리는 심장 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모습이 현실감을 사라

지게 만든다.

“아직 한 팔 밖에 안 했는데, 벌써 포기하면 안되는데~”

날카로운 손톱이 새하얀 뼈를 긁는다. 거품을 물며 바들바들 떠는 여성에 대한 동정심이 갑작스레 솟아

오른다. 팔뚝 하나에서 멈춘 상태여서 그렇지, 만약 온 몸을 저렇게 분해해서 살려 둘 수 있다면“음, 속이 안 좋으신가 봐요?”

“괘, 괜찮습니다! 식사를 다 끝내시고 벨을 누르면 바로 치우러 오겠습니다!”

어느새 귓가에서 속삭여지는 미성이 마치 지옥 구덩이에서 유혹하는 악마의 목소리처럼 들려와 자세를

바로잡는다. 목구멍으로 욕지기가 튀어 올라 말을 더듬었지만 그대로 내뱉을 머저리는 아니었다.

지금이야 음식을 배달하느라 막내로 눈도장이 찍혀서 가만히 놔 두는 거지, 만약 대접에 실수가 있어서

화가 난다면... 아마 좋은 꼴은 보기 힘들 것이다.

“가지마, 죽여즈, 날 죽여줘! 아아악, 가지 말라고!”

“안녕히 계십시오!”

의자에 묶여 바둥대는 여자 하나와, 그걸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는 두 여자. 그리고 그 세 명의 사이를

춤추듯 오가는 남성. 닫혀가는 철문 사이로 들려오는 그 웃음 소리에 등골이 절로 오싹해진다.

와인을 곁들여 구운 송아지 안심 스테이크에 노릇하게 구워진 하얀 아스파라거스와 양송이 버섯. 검정에

가까운 갈색 소스와 하얀 야채들이 아름답게 플레이팅 되어 눈으로 보는 맛을 확 살려준다. 나이프로 슬

쩍 썰어보니 누르기만 해도 잘리는 부드러운 고기 조각에서 육즙이 흘러나온다.

입 안 가득 풍기는 고기의 풍미를 즐기며 단말기를 두드려본다. 역시나, 검색 포털 10위권 이내에 나와

소희에 관한 이야기가 절반 이상. 사람들이 주목하는 부분이 소희가 아니라 나라는 점에서 조금 김이 빠

지지만, 그 정도는 당연히 예상했다.

그냥 힘이 강해서 일격에 한 명씩 기절시키는 여자랑, 그림자 속에서 늑대 수 십 마리를 소환하는 남자랑

누가 더 인기가 많겠어. 성별 버프에 화려함 점수까지, 내게 시선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니까.

“원하시는 게 뭡니까?”

소희에게는 습격 사건에 대해 알아볼 게 있다고 대놓고 말한 상태. 내가 성인이 되고, B급 히어로에서도

상위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그녀는 최대한 과보호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다. 밤 늦게 싸

돌아 다닌다고 반 각성 상태의 영웅이 도시를 배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적 여유가 충

분하다.

느긋한 손짓으로 기사를 살펴보고 있으니 쉰 목소리가 질문을 던져온다. 어둠 속에서 잘게 떨리는 목소

리와 애써 가운데 앉은 동료를 외면하는 그 눈동자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겁에 질려서 올려다보는, 자

비를 구걸하는 애처로운 눈.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게 있으니까 이러시는 거 아닙니까?”

셋 중 외모가 가장 마음에 드는 여성이 묻는다. 바싹 갈라진 입술과 쉰 목소리가 안타까워 냉수를 잔에 따

라 입가에 가져다 대자,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는지 곱게 마신다. 꼴깍 물 넘어가는 소리와

끅끅대는 처절한 신음소리가 창고를 가득 채운다.

“원하는 거?”

의자에 팔 다리가 사슬로 묶인 세 사람 중 왼쪽 여자. 자기 관리가 게으르지 않은지 피부도 깨끗하고, 배

에도 복근이 있을 정도로 단련된 몸매. 이목구비도 뚜렷해서 굳이 따지자면 미남 직전의 훈남 포지션에

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그러게, 뭘 원할까?”

뺨을 살살 쓰다듬으며 귓가에 속삭이지만 그닥 반응이 없다. 하긴 자기 동료의 팔뚝 살점을 손톱으로 꼬

집어서 조금씩 뜯어낸 다음, 힘줄까지 말끔히 발라버리는 모습을 보았는데 귓가에 속닥거리는 목소리 하

나로 넘어오면 그것 또한 미치광이의 반응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가지고 놀까?’

그리고 흡혈귀의 매력은,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만들기에 충분하지.

한 명에게는 고통을 준다. 오늘은 팔뚝 하나지만, 그녀는 날이 가면 갈수록 조금씩 분해되어 살점 하나 남

지 않게 되는 자신의 육체를 보게 될 것이다. 그녀의 기억과 강함에는 관심이 없으니 산 채로 조금씩 해부

해서 하급 스켈레톤으로 만들어 버리면 좋겠네.

한 명에게는 쾌락을 준다. 조금 험하게 가지고 놀아도 되는 여자 아닌가. 소희와의 부드러운 섹스도, 김한

나가 데려오는 접대부들도 마음에 들지만 가끔은 풍만한 엉덩이가 터질 것처럼 허리를 박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저 방치. 고통이 지속되기 위해 식사를 제공받을 가운데 여자와, 자발적인 섹스

를 위한 체력 때문에 식사를 하게 될 왼쪽 여자와는 달리 오른쪽 여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것도 당하

지 않고 그저 굶주릴 것이다.

“글쎄... 그런 딱딱한 이야기보다,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래?”

서큐버스들이 어떻게 사람을 유혹했더라. 19금 데이터로 유명한 몽마의 정원을 떠올린다. 모드를 만지

작거려서 온갖 종류의 여캐를 다 모아둔 성인용 데이터는 별다른 이유 없이 매력적인 여캐가 많다고 거의

1천만원에 가까운 가격에 거래되었으니.

목덜미에 손가락을 올리되, 피부가 눌리지는 않게 살살 쓰다듬으며 귓가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평소의

호흡보다 반 박자 느리게 뿜어내는 숨결이 매혹의 페로몬을 가득 담은 상태로 목덜미와 귓가를 쓰다듬는

다.

“누나는, 다른 두 사람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데...”

방문은 이제 두 번째. 그녀들이 창고에 감금 당한지 벌써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지났고, 목덜미를 살살 쓰

다듬다 가슴을 부드럽게 쥐어 짜인 여성은 발정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식사에 약을 탄 것은 아니지

만, 가운데 여자를 고문하는 시간 외에는 그녀 옆에 딱 달라붙어 있었으니까.

플레이어끼리 PVP를 해도 어느 정도 통하는 게 흡혈귀의 페로몬이다. 고작해야 B급도 되지 않을 인간 여

캐가 30시간 정도 절여졌는데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하루를 꼬박 정

신력으로 버틴 것에 감탄해야 할 지경.

“자아, 어떻게 할까?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쾌락, 원하지 않아?”

귓가에서 목덜미로, 목덜미에서 쇄골로, 쇄골에서 가슴으로. 조금씩 내려가던 손길을 더더욱 아래로 내

린다. 어느 정도 방어 기능을 가졌는지 손톱으로 톡톡 찔러도 단단함을 유지하는 전투복의 바지 너머로,

음탕하게 젖어 들어간 암컷의 냄새가 난다.

손톱을 세워 바지를 긁자, 뼈를 긁어내던 모습이 떠올랐는지 흐읍, 하고 겁먹은 숨소리가 들리지만 잘린

바지 너머로 축축히 젖은 속옷을 문지르자 금세 쾌락으로 물들어 쌔액쌕 가쁜 숨을 내쉰다.

“너, 이, 씨..발, 발정 난 개새끼가...!”

개새끼가 맞다는 것처럼, 일그러진 예쁜 얼굴을 올려다보며 혀 끝으로 속옷을 핥아 올리자 울컥 음란한

액체가 튀어 오른다. 이리저리 떨리는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쾌락에 갈등하다 못해 자기합리화를 시

작했다는 것을.

“후우... 하, 계속 핥아.”

세 여자의 얼굴이 각자 다른 이유로 일그러진다.

[작품후기]

민증 발급 기념으로 외박 가능해진 주인공.

허락 받지 않고 외박시 용사가 지하 도시로 쳐들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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