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189)

새로운 이벤트

그저 좋은 시간 보내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얌전히 가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어디 사람 사는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던가.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지들끼리 쌈박질을 하는 것 같

기는 한데...

“아.... 진짜, 하늘아 미안.”

“아냐, 그럴 수 있지. 같이 나갈까?”

“집에 있어, 내가 잠깐 정리하고 올 게.”

소리가 전부 들린다. 초능력이 있고 발전한 기술력이 있다고 해도 흡혈귀의 성장 버프를 받아 빠르게 강

해지는 용사와, 용사의 피를 빨아먹고 돌연변이에 가깝게 강화된 흡혈귀의 귀를 속이는 것은 무리였다는

것이다.

지켜, 뚫어, 가방이 여러 개, 증원이 곧 옵니다, 같이 밖에서 들리는 단편적인 단어만 들어보면 상황이 대

충 파악이 된다. 이 아파트에 사는 어떤 히어로 공무원이 중요한 물건이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왔다가 습

격당한 상태. 교란용 서류 가방 여러 개를 들고 도망치려는 공무원, 빼앗아 가려는 강도들, 지키기 위해

난입한 경호원들.

손목의 단말기가 먹통이 되고 피부가 찌릿한 걸 봐선 전파 방해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였지만, 저들이 몰

랐던 사실이 하나 있다. 퇴근길 집에 들어가는 순간을 노리고 아파트 단지에 숨어 있는 데다 전파까지 끊

는 치밀함을 보였지만“일단, 좀 쥐어 패고 올 게!”

그 아파트 단지 베란다에서 용사가 강림할 수 있다는 사실.

“뭐, 뭐야!”

쿵- 하고 묵직한 소리가 아파트에 울리는 동시에 단말기에 전원이 들어온다.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뒤

섞여 웅웅거리자 늦은 밤 잠에서 깬 주민들이 화가 나서 베란다 창문으로 몰려드는 상황. 습격 계획을 짠

사람이 있다면 어처구니가 없어 머리를 부여잡겠지. 그 기분은 내가 잘 안다.

통일 제국을 만들기 위해 병사를 모았더니, 길 가던 마룡이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브레스를 지지고

갈 길 가버리는 상황 같은 걸 하루 이틀 당해보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며 베란다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에 몸을 식히니 끄악 으악 하는 다채로운 비명 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진다.

슬쩍 내려다보니, 먹통이 된 전등 아래에서 휙휙 사람이 날아다닌다. 방해 받은 타이밍도 끈적하게 몸을

섞다가 삽입 직전인지라 화가 좀 많이 났나 보네. 힘 조절은 확실하게 하는지 누군가의 머리통이 터져 산

산조각난 뼛조각이 단지 내부를 도배하는 일은 없었지만, 적어도 어디 두 군데는 부러진 것 같은 복면의

사람들이 허공으로 몇 m는 날아올랐다.

“누, 누구신... 이쪽 사는 히어로 분이신가?”

“어, 어어어! 야 받아! 머리부터 떨어지면 죽는다 저거!”

열세에 몰렸던 경호원들이 오히려 허둥지둥 허공에서 떨어지는 복면인들을 안전하게 붙잡는 상황. 바닥

을 구르거나 수평으로 날아가 화단에 처박힌 녀석들은 몰라도, 허공으로 붕 솟아올랐다가 머리부터 떨어

지는 녀석들을 챙기는 빠른 판단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진귀한 장면에 베란다에서 고함을 지르려던 사람들은 황급히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기 시작.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질 않았는지 어느 초능력자가 조명탄 마냥 소희의 머리 위에 동그란 빛의 구체를 띄워 놓

기까지 했다.

흐트러진 헐렁한 반팔 티에, 후다닥 걸쳐 입은 수면 바지 차림의 여성이 방탄복처럼 보이는 두꺼운 조끼

를 입고, 복면에 각종 장비로 무장한 집단을 어퍼컷으로 수 m 공중부양 시켜주는 영상은 확실히 촬영할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이걸 막아야 해, 말아야 해?’

소희는 히어로 겸 용사니까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좋다. 아파트 단지에서 협회 요원을 습격한 테러범

끄나풀을 때려잡은 히어로 타이틀을 달게 되면 실전 투입에서도 이득이 있겠지. 안 그래도 테러 소식으

로 난리가 난 인터넷이니 그녀의 활동에 날개를 달아 주기 충분할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조금 꾀죄죄한 몰골로 뛰쳐나갔다는 건데... 그래도 남녀역전 세상이니 상관없으려

나? 속옷도 없이 반팔 티만 입은 상태라 영상만 보면 히어로 영상인지 그라비아 특촬물인지 구분할 수 없

는 상황이긴 한데...

“에이 씨, 모르겠다!”

“하늘아, 들어가 있으라니까!”

그대로 베란다 문을 박차고 뛰어내린다. 빛의 구체를 다루는 녀석은 어디 방송국 전문직이라도 되는지

그대로 분열된 조명이 이 쪽을 비추기 시작.

허공에서 떨어지는 습격자들을, 습격자(였던 것)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경호원들부터 소희까지 모두

가 이 쪽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왕 할 거라면, 조금 화려하게!’

그대로 날개를 펼치고 흡혈귀의 특성을 드러낸다. 조명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기회를 노리는 습격

자들이 숨어 있었다. 소희가 쓰러트린 놈들이 열 댓명은 되는데, 아직도 멀쩡한 놈들이 거진 스물.

정확히 40명의 습격자가 아파트 단지에서 단 한 명을 노리면서 실패하다니?

얘들이 병신인지 아닌지 알 게 뭐람?

그대로 활강해 복면인들에게 둘러 쌓인 소희의 곁으로 간다. 멀쩡한 복면인들에게 둘러 포위당한 상황이

고, 다섯 정도 남은 경호원들은 복면인들이 허공으로 날아가지 않자 서류 가방을 든 아저씨 곁으로 모여

들어 호위를 하는 상태.

“너어, 집에 있으라니까.”

“에이, 빨리 끝내고 하던 거나 마저 하죠.”

“뭐, 뭐?! 야, 밖에서!”

속닥거렸지만 소강상태가 된 밤의 정적 속이니 귀가 밝은 초능력자라면 충분히 들었겠지만 뭐 어때. 솔

직히 말해서 물고 빨고 다 해놓고 삽입 직전에 방해받으면 화가 나는 건 남자도 마찬가지라고.

착지 자세 그대로 바닥의 그림자에 손바닥을 짚는다. 관객도 잔뜩, 카메라도 잔뜩. 이쪽 세상 히어로 감성

에 맞춰 주기 위해 생략 가능한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듬직하게 서 있는 여성 히어로와, 그녀에게 보호받

으며 원거리 공격을 하는 사이드 킥. 전형적인 2인조의 모습.

“솟아라, 나와라, 달려라!”

빛의 조명으로 인해 어지럽게 늘어진 그림자에서 새카만 늑대들이 뛰쳐나온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자

모양의 늑대. 흡혈귀의 기본 종족 기술 중 하나라 강한 기술은 아니지만, 적어도 화려함 하나는 제일이다.

지옥 마법은 대부분 저주나 전염병에 가까워 보이지도 않고 적이 픽픽 쓰러지니 영상미가 부족하단 말이

지.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각인이 잘 되는 것은 이 그림자로 만든 짐승들이다.

“악, 이게 뭐야!”

“능력이 아니면 통하질 않는다, 2인 1조로 대비해!”

묵직한 삼단봉이 그림자 늑대의 머리를 후려치지만, 그림자를 몽둥이로 깨트릴 수 있으면 이미 소드 마

스터의 경지에 올라서 소희랑 1:1로 싸우고 있었겠지. 날카로운 늑대 이빨에 발목을 물린 몇 명의 습격자

들이 그대로 늑대 아가리에 물린 상태로 질질 끌려 경호원들에게 배달된다.

언제 자기 그림자에서 늑대의 아가리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 안 그래도 5분만에 열 명을 쓰러트린

소희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

“젠장, 전원 퇴각해서 재 집결한, 아아악!”

복장은 동일했지만 지휘관이었는지 고함을 지른 녀석이 조명 밖, 그림자로 뛰쳐나가자 마자 무수히 많은

늑대들에게 팔 다리를 물어 뜯긴다. 동영상 사이트에 투고될 것이 100%라 팔다리를 뜯어내지는 않았지

만.

늑대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으니, 조명 밖 어둠이 위험하다는 것은 흡혈귀를 상대할 때 너무나 당연

한 이야기인데. 역시 모르면 맞아야 한다는 게임계의 오래된 명언은 어디를 가도 통하는 것이다.

사실 이 마법은 어린이용 뾱뾱이 신발처럼, 발에서 불빛이 나서 그림자를 방해하면 통하지 않는 저급 마

법이다. PVP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면 흡혈귀랑 싸울 때 신발 밑창에 조명을 달던가, 아니면 빛나는

인챈트를 바르고 와서 자기 주변에 그림자를 없애고 시작하거든.

하지만 쟤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어, 어떻게 합니까?!”

“젠장, 전원 달려들엇!”

모르면 맞아야지.

발 밑에서 솟아나는 늑대를 의식했는지 자동차를 밟고 높게 뛰어올라 달려든 잔당들은, 내가 손쓸 필요

도 없이 아직 화가 사그라들지 않은 소희에게 정리되었다. 지휘관이 하나였는지 우왕좌왕 하다가, 일단

전부 달려들자는 아군의 목소리에 우다닥 몰아치다 전부 카운터 펀치에 기절.

“정말 감사합니다, 현직 히어로 분이신가요?”

“아뇨, 밤에 너무 시끄러워서 나왔을 뿐인 걸요.”

얼굴을 붉힌 오피스 레... 오피스 보이? 가 서류가방을 소중하게 껴안고 눈물을 글썽거리고, 경호원들이

기절한 복면인들의 팔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운 뒤 히어로 본부에서 뒤늦게 온 증원 인력에게 인수 인계

하며 야밤의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소희가 협회에서 나온 사람과 뭔가 숙덕거리며 이야기하는 동안 슬그머니 뒤로 빠져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부 스마트폰을 들이대는 와중, 뭔가 전문적으로 렌즈가 커다란 카메라를 들이 대는 여자가 하나.

‘기사는 아침이 되기 전에 나오겠는데.’

내 머리통보다 커다란 렌즈에 삼각대까지 사용해 아파트 베란다에서 이 쪽을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손가

락으로 V자를 그려보았다. 인지도도 쌓고, 간만에 장난감도 줍고. 오늘은 정말로 좋은 날인 것 같다.

“서른 일곱 명, 확실하게 인계 받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습격한 사람이 마흔인지 서른 일곱인지, 정확히 세는 사람은 없을 거 아니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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