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벤트
너무나 당연한 소리라 다시 언급하기도 애매하지만, 히어로 협회는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
는 한반도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히어로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
올라가는 게 당연하니 미래 세계에서 풍족한 정보를 만끽하는 이들은 다양한 히어로를 국적 불문하고 응
원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히어로 협회의 중대 발표는, 고작해야 아시아 구석탱이만 소란스럽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빌런의 이름으로 히어로 협회를 테러 하여,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초고층 건물 몇 채를 태워 먹
은 그 대담한 행위.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안전한 거 맞지? 저렇게 대놓고 협회를 노리면 옆에 있다가 불똥 튀는 거 아니야?”
“에이, 협회가 빌런의 테러라고 성명 발표를 한 다음에 경비를 안 늘리겠어?”
“와, 사건이 좀 커지면 활동이 뜸하던 A급 히어로들 다 모이겠는데?”
“아니면 벌써 움직이면서 엠바고 걸렸을지도 모르지.”
“방화 구역마다 세 팀씩 가서 카메라 들고 1주일은 처 박혀 있어!”
“단순 화재라고 기사 쓴 놈 빨리 내려! 정정 기사 안 돌리냐?!”
히어로와 조금이라도 괸련된 인터넷 사이트, 아니 관련이 없는 사이트라도 이야기로 불타올랐다. 활동이
뜸한 자신의 히어로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사람, 인명 피해가 없다지만 테러를 보고 기뻐하는 게 미친 것
같다고 비난하는 사람, 거대 빌런 조직이 뭉쳐 히어로 협회의 건물을 골라 테러를 하는 동안 아무것도 모
르던 협회의 무능을 비난하는 사람, 그리고 다시 협회는 만능이 아니라고 옹호하는 사람.
고작해야 화재로부터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게임 계정을 확인하고, 가장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한 마법을 사용해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동안 테러, 히어
로, 빌런 태그를 단 글이 우후죽순 솟아나는 게 보일 정도. 게임 태그의 인기 포스팅이 되어 메인 사이트
에 걸릴 정도로 인기 있는 내 계정이었지만, 오늘은 테러에 관한 이야기 에게 화력으로 밀리고 있었다.
뭐, 일단 올려 두면 누군가는 내 글을 보고,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댓글 버튼을 누르니까.
“이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네.”
“그러게, 협회를 건드리는 간 큰 놈들이 남아 있던가. 아니, 3년이면 슬슬 뭐 하나 기어 나올 시기가 되긴
했지만 이렇게 커다랗게 시작하다니. 세상 참...”
소희와 둘이서 싸구려 와인에 과일 치즈를 먹으며 소파에 드러 누워 TV 예능을 보고 있으니 한 줄 뉴스가
지나간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협회에 아랑곳하지 않고 또 다시 화재가 일어났다는 내용.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 같다는 감각에, 참으로 게임 뇌를 버리지 못하는구나 싶어 소희에게 기대었
다. TV 속에서는 남자 아이돌이 예능 프로에 나와 섹시 댄스를 추고 있었고 나는 괜사리 소희의 뺨을 잡
고 시선을 돌렸다.
“어휴, 왜 또 장난질이야.”
“남자가 빵뎅이 흔드는 거 보기 싫어.”
“내가 보지 말라는 게 아니라? 넌 가끔 아저씨가 아니라 완전 할아버지 같더라.”
남자의 노출에 혀를 끌끌 차며 시선을 돌리는 것은 본능에 새겨진 불쾌감 때문인데, 소희에게는 보수적
인 모양새로 보였나 보다. 내가 눈을 돌린 것은 게임 친구 중 늘 팬티만 입고 다니는 40대 중년이 떠올라
서 그런 것인데.
현실을 인증하는 사진으로는 보디빌더 같은 몸을 만든 남자가, 살찌고 나태한 기분을 알고 싶다며 배 나
온 중년의 아바타로 팬티만 입고 뛰어다니는 모양새는 남녀 역전의 세계가 아니더라도 정말 보고 싶지 않
은 광경이었으니까.
그래도 근육질 몸으로 바니걸 옷을 입는 것 보다는 나은가?
뱃살 불룩하고 가슴에 털 난 중년의 삼각팬티 차림과, 갈색 근육 보디빌더가 핑크 바니 슈트를 입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역한가에 대한 토론이 일어났던 것이 떠올라 소희의 뺨을 놓고 다시 TV로 시선을 돌린
다. 남자 아이돌의 댄스 타임이 끝나고 여배우가 원 샷을 받고 있는 상황.
“초능력자가 아닌 순수한 배우는 간만에 보이네.”
시대가 흘러도 예능의 틀은 변하질 않았는지 그 뒤의 내용은 그냥 저냥 평범했다. 남녀 혼성으로 팀을 짜
서 게임을 하고, 힌트를 받아 대결을 하고. 남자 아이돌과 남자 고정 멤버가 머리가 헝클어질 정도로 게임
을 하자 ‘투’ ‘혼’ 이라는 자막이 유치하게 강조되고.
“게스트가 홍보 차 나오면 역시 재미는 없네. 그냥 게스트 없이 자기들끼리 노는 방송이 제일 재미 있는
것 같아. 그래야 선 위에서 작두를 타는데.”
“확실히, 예능은 망가지는 걸 보려고 보지, 아이돌이랑 배우 얼굴 보려고 보는 건 아니니까.”
달달한 과일 치즈가 어느새 뱃속으로 전부 사라졌는지 소희의 손가락이 빈 접시를 훑는다. 재미가 별로
라고 말하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보는 방송이라 그런지 시선이 예능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접시 위에서 까닥이는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온다.
움찔거리며 멈춘 손가락을 혀로 톡톡 건드린다. 따듯한 방 안에서 적당히 말랑해진 과일 치즈가 그녀의
손에 묻어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혀 끝으로 녹여 먹듯 살살 문지르니 치즈의 단 맛이 은은하게 혀 끝에 퍼
진다.
초능력으로 강화되고 신성력으로 청결함이 유지되는 육체라서 그런지 짭조름한 살 맛이 나지는 않았다.
굳은살은커녕 두껍게 각지지도 않은 부드러운 손가락을 입에 물고 살살 깨물며 장난을 치자 그녀의 반대
쪽 손이 허리를 휘감는다.
품 안으로 끌어당겨져 그녀의 살내음을 맡으며 파고들자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이 고요한 평화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과, 다른 사건이 빨리 일어났으면 하는 생각. 내 원래 플레이 대로라면 나도 불을 지르고 다니
다, 도망치는 녀석들을 몇 생포해 히어로 협회와 정체불명의 조직을 싸움 붙이겠지.
사건이 일어나면 일단 일을 크게 벌려서 난장판으로 만들어, 참모 캐릭터들의 계략을 엎어버리고 즉흥적
으로 판을 짜는 게 내 주된 방식인지라 이토록 느긋하게 늘어진 적이 거의 없었지. 게임에서 패배한 남자
아이돌이 물벼락에 홀딱 젖는 것으로 예능은 끝을 맞이하고 광고가 나온다. 양복 정장을 입은 남자가 맥
주를 시원하게 들이켜는 내용. 왜 바뀌지 않았나 싶었지만, 문득 오피스 룩을 입은 여자 연예인이 술 광고
를 찍는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우리 사이에 말은 없었다. 다만 나는 그녀의 손가락에서 손 등으로, 팔을 넘어 목으로 입을 맞췄다. 더운
난방에 걸맞게 헐렁한 반팔 셔츠는 그 사이로 내 손이 파고들어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헐렁했으니
까.
TV에서 음료수의 광고가 흘러가고 별 의미 없는 공익 광고가 지나가는 동인 그녀는 품 안에 나를 가둔다.
이번에는 뭘 하려나 궁금해 가만히 있으니 슬그머니 바지가 벗겨진다. 백허그를 당한 상태로 살살 내 물
건을 훑는 그녀의 손길. 등 뒤에서 느껴지는 탄력 있는 가슴에 물건이 참지 않고 우뚝 솟아오른다.
‘성 관련된 마법도 좀 지를 걸 그랬나.’
당연히 미녀 NPC에 집착하는 녀석들이 있는 만큼 섹스와 관련된 마법도 잔뜩 있었지만, 흡혈귀 종족 특
성인 페로몬과 흡혈을 가지고 만족시키지 못한 여성이 없어 돈 주고 살 필요는 못 느꼈는데. 아무리 성능
충이라도 가끔 비효율적인 짓에 눈이 가긴 하는 것이다.
“후우... 벌써부터 그렇게 도발하면, 내일 아침에 어쩌려구?”
“그런 것 치곤 완전히 짜낸 적 없으면서?”
도발하듯 눈꼬리를 살며시 휘자 그녀의 눈썹 옆이 움찔거리며 힘이 들어가는 게 보인다. 이쯤 되면 섹스
와 관련된 마법이 효율적일지도 모르겠는데. 흡혈만 하면 무한에 가까운 정력을 얻는 흡혈귀의 신체라
할 지라도, 용사의 정력은 쉽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더군다나 밖으로 내는 남자와 달리, 그녀는 쾌락을 받아들이는 쪽. 용사의 정신력과 체력이 어우러지고,
신성력으로 인해 행위 도중에 회복되는 체력을 생각하면 고개 숙인 남성들은 겁에 질려 도망칠 레벨.
장난을 칠 생각인지 TV에서 나오는 CM송에 맞춰 내 물건을 위아래로 흔드는 그녀에게 그대로 등을 기댄
다. 품 안에 가둬진 상태라 팔을 뒤로 꺾을 수도 없으니 일방적으로 당하는 수 밖에. 단단하다 못해 터질
것 같아진 물건을 본 그녀가 슬금슬금 허리를 뒤틀기에 몸을 돌려 반바지를 벗긴다.
열기가 가득한 시선이 마주하고, 우리는 그대로 입을 맞췄다.
오늘은 좋은 밤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밖에서 시끄럽게 구는 녀석들은 조금 무시해도 괜찮겠지. 집 밖에
서 불청객들이 꿈틀거리고 있지만, 나도 소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맨몸에 느껴지는 상대의 체온과 맨
살의 부드럽고 매끈한 감촉에 정신이 팔렸으니까.
제발 제 할일 하고 얌전히 돌아가기를.
소희와 입을 맞추고 가슴을 어루만지며 진심을 다하여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