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벤트
가상현실게임의 가장 신기한 점은 초능력 같은 스킬을 사용하는 감각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갈려 나
간 공돌이들이 몇 명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가끔 A.I.나 외계인이 희생되었다는 소문도 돌지만. 어쨌든 이
가상현실게임을 팔아먹는 최첨단기업들은 뇌를 여차여차 건드려서 마법을 사용하는 감각을 창조한 것이
다. 물론 안전선 안 쪽의 이야기고, 나 같은 게임에 목숨 건 새끼들이 선 밖에서 뇌를 만지작거리다 훼까
닥 하면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끌려가는 것이고.
게임 속에만 존재하는 능력을 다루는 컨트롤은 엄연히 재능의 격차가 날 수밖에 없고, 나는 만드는 것에
는 영 젬병인 사람이다. 주특기가 원거리 전투와 대규모 난전에 특화된 마법사형 캐릭터지만, 연구 개발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그럼 스킬을 어디서 배울까?
순정 모드를 사용하면 각자 그 모드에서 해결법이 생긴다. 게임 모드를 까는 사람이라면, 스킬 포인트를
지불해서 스킬 창에 마법이 생긴다. 그 마법을 사용하겠다고 생각하면 A.I.의 보조를 받아 마법이 뾰로롱
하고 나가게 되지. 순정 판타지를 원한다면 마탑에서 스승 NPC가 알려줄 것이고, 무협이라면 내공 움직
이는 방법은 구파일가 오대세가 이런 애들이 알려주겠지. 하지만 나같이 짬뽕 모드를 덕지덕지 발라서
하는 사람들의 경우,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사용하곤 한다.
현질.
게임 세상 속에서 못하는 게 없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단어.
무림 세상에서 내공으로 마법을 사용하길 원해? SF세계관에서 에너지 코어를 단전에 박아 넣고 그것으
로 무공을 쌓길 원해? 요괴의 내단으로 심장에 서클을 만들고 싶어? 돈을 내면 데이터를 팔겠다!
온갖 모드를 허용하는 이 리얼 게임의 회사가 유저들의 현거래를 막을 리 있나? 나처럼 불합리한 전쟁을
뒤집어 엎어버리고 전쟁 영웅이 되는 시나리오를 판매하는 사람이 있다면, 크리에이티브 모드에서 온갖
마법을 만들어 그 데이터를 파는 녀석들도 있는 게 당연한 것이다.
생활 마법 패키지, 뉴비 흡혈귀를 위한 기초 혈마법, 악마족을 위한 지옥마법 입문서로 시작해서 나 같은
빠요엔 유저가 주문해서 만드는 맞춤형 마법까지. 실제로 내가 데이터를 팔아서 번 돈의 8할 가까이는 마
법을 구매하는 것에 사용되었다.
마법 제조에도 빠요엔들이 있으니까“아, 사진 찍지 마세요! 물러나세요!”
“거기! 슬쩍 안전선 걷어 올리지 마세요!”
“화재 진원지는 찾았어? 어, 뭐? 사이코메트리가 먹통이야?”
이런 짓이 가능하지.
건물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는 타버린 건물 내부 안을 왕왕 울릴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스트레스 받아서
단 걸 먹고 싶다는 이유로 임시 사무소를 박차고 나온 상태. 조금 짜증난 상태로 나왔으니 조금 늦게 들어
가도 상관은 없겠지.
몇명의 사이코메트리들이 불에 탄 바닥을 손바닥으로 짚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과학수사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불에 탄 전선을 촬영하고 있는 곳에서 나는 허공에 둥실 떠올라 있었다. 안개로 변하기
엔 너무 수상해서 투명화의 마법만 사용하고 있지만 눈치 챈 사람은 없는 상태.
한 두시간이 흐르자 건물 밖을 통제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사라졌다. 사진이야 찍을 만큼 찍었
고 사이코메트리들이 방화범의 존재가 없다고 말했으니 자연 발화로 처리되어 건물 관리 소홀의 철퇴를
관리자가 맞겠지.
물론 공권력에게 맡길 거라면 여길 오지도 않았지.
손톱을 길게 뽑아 양 손바닥을 그었다. 부르는 것은 밤 말을 엿들은 쥐새끼. 몽글몽글 떨어진 핏방울은 바
닥의 잿가루를 집어 삼키고 덩치를 불려가더니 이내 생쥐의 모양으로 변해간다. 마치 찰흙을 잿가루 위
에서 굴린 것처럼 생긴 검댕 쥐들이 수십 수백 마리로 분열하여 바닥을 소란스럽게 기어 다닌다.
“밤 말은 쥐가 듣고, 벽에도 귀가 있으니, 내가 너희에게 입을 선물한다. “
판매자가 취미로 넣어둔 쪽팔린 마법의 영창을 읊자 잿가루들이 다시 시간을 역행하듯 내게 몰려든다.
잿가루가 뭉쳐 벽에 생겨난 흉물스러운 검은 입과, 발치 주변에서 뱅뱅 도는 작은 생쥐 모형들이 각자 정
보를 가져오는 것이다.
발치의 쥐 한 마리가 사라질 때 마다, 벽에 달린 검은 입이 입술을 달싹일 때 마다 정보가 쭉쭉 들어온다.
어두컴컴한 밤, 센서에 이상한 스프레이를 뿌리고 내부로 침입하는 여러 사람들. 서류를 챙기더니 천장
을 살짝 뜯어내고 전선이 모여 있는 곳에 기묘하게 생긴 깡통을 설치해 불을 지르는 걸 봐선 백정아가 아
닌 것 같긴 한데.
백정아 정도의 화력이라면 사이코메트리에 들키지 않기 위해서 층 하나를 깔끔하게 지워버릴 수 있으니
까. 사이코메트리는 사물에 접촉하여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읽는 기술이기 때문에, 물건이 아니라 잿가
루가 되어 바람에 소실되게 만들면 들키지 않게 된다.
‘그래서, 저 새끼들은 누구야?’
발치를 맴돌던 핏방울 생쥐 몇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내 발치에서 벗어난다. 과거의 현장 말고 다른 정보
를 머금었다는 소리. 어지럽게 퍼진 잿가루를 다시 원래대로 만들고, 현장이 훼손되지 않았나 마법으로
한 번 정리를 하고 따라 나선다.
화재 현장의 잿더미의 모양을 기억하는 변태는 없겠지만, 실수로 전선을 끊어 먹었거나 생쥐들이 마루
위에 발자국 같은 걸 남겼다면 귀찮으니까. 화재 근원지에서 위로 올라가는 생쥐를 따라 느긋히 공중부
양을 한다.
옥상으로 향한 생쥐들이 전한 정보는, 정체불명의 집단을 마중 나온 순간이동 능력자가 있다는 것. 대규
모 순간 이동 능력자는 국가가 엄격히 관리하는 초능력 중 하나일 텐데 말이지. 뒷배가 있는 놈들이란 건
가.
※
“차라리 표로 넘어왔으면 스캔이라도 하겠는데.”
“으... 진짜 왜 거기에 불이 나서는.”
퇴근 시간 2시간 전에 들어온 사무실은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각자 해야 할 일이 다 다르기 때문에 늦
게 들어오는 내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투덜거리는 소리가 가득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거 너무 비효율적인 거 아니야?”
일단 그 투덜거림의 일부는 내가 하는 것이기 때문. 경찰서에서 사건 관련된 요약본을 보내줬다면 참 감
사할 텐데, 경위서 사본을 수백 장 보내온 것에서 사람에 관한 정보만 뽑아 쓰는 것이라 스캔을 할 수도 없
다.
화재 현장에 나타난 복면과 마스크를 쓴 수상한 무리가 있다는 걸 알아도, 걔들이 뭘 훔쳐갔는지 내가 알
리 있나. 걔들이 빌런 조직이라 히어로의 약점을 찾는 중인지, 백정아처럼 타락한 히어로의 윗대가리를
찌를 정보를 찾는 건지 모른다고.
“얼마나 남았어?”
“그래도 꽤 많이 했어. 주말 출근은 안 해도 되겠다.”
“주말 출근까지 시켰으면 내가 여기에 불을 질렀을 걸?”
아무리 그래도 소희 혼자서 할 수 있는 양은 아니었기에 남은 시간은 소희 옆에 달라붙어 열심히 타자를
쳤다. 홀로그램 광고판이 있고 자기부상 버스가 돌아다니는 미래 시대에 키보드로 서류 작업을 시키다
니, 역시 공무원이란...
“그래도 뭐, 이제 다음 달이면 이런 서류 작업이랑은 거리가 멀어질 거야. 알아보니까 현장직 사람들은
순찰 보고서 말고는 딱히 서류로 골머리 앓는 일은 없다고 하네. 초코맛은 너무 달다.”
“그래요? 마카롱은 단 맛으로 먹는 건데. 아무튼 우리 능력이면 현장직에서 떨어질 리 없으니까 정말 한
달만 참으면 되려나. 누나, 말차 맛은 싫어하죠?”
“말차가 녹차던가? 그것도 좀. 그냥 과일 맛으로 하나 줘.”
핑계를 대기 위해 사온 마카롱을 하나 둘 집어먹으며 끝나지 않는 서류의 산을 옆에 두고 키보드를 두드
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 맛이 땡기는 건 나만 그런게 아닌지, 사무실의 남자 대다수들은 임시 사무소
근처의 마카롱이나 수제 사탕을 사 와서 와작와작 씹어 먹고 있었다. 자기 파트너가 남자인 여자들은 당
연히 심기가 불편한 남자들의 분위기에 숨도 조심해서 쉬고 있었고.
“야, 퇴근하면 바로 닭갈비 볶을래?”
“닭갈비 보단 떡볶이 어떠냐? 떡볶이 뷔페 신장 개업했던데, 맥주 서비스 있대.”
여자들로 이루어진 팀은 끝나고 술을 마실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퇴근 시간 30분 전은 서류가 산처럼
쌓여 있음에도 타자 소리가 들리질 않게 되는 마법의 시간. 소희에게 기대 스마트폰에서 넓게 튀어나온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편안하게 웹 서핑을 하고, 소희도 업무용 컴퓨터로 인터넷 뉴스를 보는 평화로운
월급 루팡의 시간.
[속보] 히어로 협회, “무분별한 방화 테러 뿌리 뽑겠다”
인터넷을 뒤지는 와중 흥미로운 뉴스가 보여 들어가 보았더니, 5분도 되지 않은 따끈한 뉴스가 히어로 탭
에 있었다. 사람들은 히어로와 관련된 자극적인 뉴스에 눈이 돌아갔는지 5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내에
수 백개의 댓글이 우르르 달려 있는 상황.
“뭐야, 방화 테러?”
“아오, 결국 테러범 때문에 이 고생이야?”
뉴스를 보던 게 나 하나는 아닌지 사무실이 금세 쑥덕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지만,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
다. 국가가 직접 신병을 책임지는 대규모 텔레포트 능력자를 데리고, 국가 공인 사이코메트리 수사관들
을 방해할 수 있는 조직이 반나절만에 꼬리가 잡힌다고?
[작품후기]
1. 다른 사람이 잘 안하는 변태 난이도를 클리어 해서 데이터를 판다
2. 데이터를 판 돈으로 스킬을 주문 제작한다
3. 주문 제작한 스킬로 더 어려운 변태 난이도를 클리어한다
주인공이 데이터를 백만원 단위에 팔면서도 닭장 같은 원룸에 살았던 이유입니다.
아 ㅋㅋ 10평 넓은 집으로 이사가느니 그 돈으로 게임 스킬을 하나 더 현질하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