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4화 (94/189)

와 기둥서방!

주인공이 처음 이 세상에 날려왔을 때에는 세상 무서운 줄 몰랐죠. 굴라가 된 여학생을 건드리던 뒷골목

아저씨들이야 0.1초컷으로 슥삭 잡아 죽이고, 지하 도시도 끽해봐야 B급 초능력자가 가장 높으신 분이니

까요. 세상 무서울 게 없는데다 현실이란 느낌도 들지 않아 게임처럼 범하고 죽이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소희를 만났죠. 발차기 한 번으로 소환물 50마리를 일격에 가루로 분쇄하는 괴물이 판정상 B급

상위권인겁니다. 그런 괴물이 용사로 진화까지 했는데 어떻게 까불고 다니겠습니까. 무쌍물인줄 알고 잡

몹 학살하면서 '나 존나 쎈가?' 했는데 사실 보스 몬스터가 뺨만 때려도 즉사 할 수 있는 상황인거죠.

그 상황에서 누가 목숨 걸고 까붑니까. 얌전히 살아야지.

물론 똘기가 어디 가진 않습니다. 자기보다 약한 상대한테는요. 전형적인 약자멸시...

주인공 개쓰레기네 이거

히어로들은 잡몹, 천사와 악마가 중간 보스, 마왕군이 최종 보스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사이드 킥

껴안아오는 말캉한 팔뚝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강인한 힘을 품고 있지만 모순되게 부드럽기 그지없

어서 다른 게임을 하면서도 그다지 느껴볼 수 없었던 편안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선녀의 비단이니 천사

의 깃털이니 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족감.

'내'가 강해서, 황제 배때기도 쑤시고 천마의 단전을 깨고 세상을 정복하고 묵시록의 붉은 용 모가지도 쳐

보고 멸망도 막고. 그러고 나서 침대에 누워 이 데이터를 얼마에 팔까 고민하면서 가상의 쾌락을 느끼는

그런 편안함 말고.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나 대신 다 때려 죽이고 세상을 지키고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완전한 믿음에서부

터 오는 안락한 감정. 이 세상이 게임 속 세상이던, 게임 속 세상을 배경으로 한 평행 세계던 간에 소희는

용사니까. 가끔은 마왕이 이기는 버전도 있지만 플레이어인 내가 용사인 소희 옆에 붙어 있으니까.

"무슨 생각을 또 그렇게 해?"

"음...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SNS에서 잘 자랑할 수 있을까?"

체중을 실으면 거진 10cm은 포옥 내려앉는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이니 샤워를 끝마친 따끈한 피부가 전

신으로 느껴진다. 침대의 이불이 물기로 젖어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손가락을 까닥여 습기를 제거한다.

역시 이불은 포근폭신해야해.

"아... 아직도 SNS 한다고 했지?"

"사실 게임 자랑이 더 많지만."

가벼운 행운을 올려주는 마법이, 변이한 흡혈귀의 육체로 강화된 뒤 용사의 힘으로 다시 배가 되었으니

확률성 게임에서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겠는가. 더군다나 마법이 판단하는 것은 '사소한' 행운.

현거래 가격이 300만원에서 1400만원까지 올라가는 미친 게임이지만 고작해야 게임 데이터니까. 목숨

을 구해주는 것도 아니고, 이 게임을 함으로서 천사, 악마, 마왕군을 상대할 때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

다. 그렇기에 사소한 행운.

"니 계정, 아무리 봐도 미친 것 같아."

"반대로, 이런 내가 아직도 도감 100%를 못 채운 게 미친 거 아닐까?"

게임 속 내 아이디는 유명 인사다. 조금 많이 유명인사라서 어지간한 현역 C급 히어로보다 내 게임 닉네

임이 더 유명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 옆구리에서 슬금슬금 내려가는 손을 방치해 둔 상태로 손목의 기어

를 건드렸다.

...샤워를 하고 속옷도 없이 가운만 입은 상태인데 손목의 방수 기어는 놔두니까 되게 중독자 같다. 그런

데 심심하다고 하루에 수 십개의 사진을 SNS에 올렸으니까 중독자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중독자 아닐까?

부드러운 손길이 뜨거운 내 살갗의 열기를 더해주는 와중에도 나는 SNS를 확인했다. 0.01%로 등장하는

특별 몬스터를 0.002%확률로 원샷 포획했으니까. 댓글창은 외부의 게임 커뮤니티에서 특집 기사 링크

를 타고 온 사람들의 성지 순례 댓글과, 내가 일종의 전자기기를 조작하는 초능력자로 의심하는 사람과,

이미 게임사가 버그성 플레이가 아님을 확인했다는 댓글로 다시 난리가 나 있었다.

"0.01%를 0.002% 확률로 포획하는데, 몬스터 도감이 아직도 80% 언저리라니..."

"진짜 변태 같은 게임이긴 해."

뽀송뽀송한 이불을 습하게 만들 물기를 다 날려버렸건만, 우리는 다시 조금씩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능

숙하게 내 살기둥을 위아래로 훑는 그녀의 손아귀에서 츠붑츠붑 젖어 들어가는 소리가 난다. 그녀의 탄

탄한 허벅지 사이로 조금씩 파고드는 내 손가락에서도 마찬가지. 눈과 눈이 마주치고 자연스럽게 입술을

마주친다.

도수 높은 술, 맛 좋은 요리, 그리고 여자의 체온. 남자의 스트레스 지수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드는 마

법적인 조합. 근 2년간 공부하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기념비적인 새해 섹스.

“아니, 너무 적나라하게 말하는 거 아니야?”

“남자도 성욕은 있으니까, 뭐.”

가운도 이불도 어느새 호텔 거실 저 멀리 날려버리고 알몸으로 포개진 상태로 우리들은 스마트폰을 두드

리며 잡담을 나눴다. 이래서 호텔 데이트가 편하긴 해. 초코바 같은 주전부리를 먹다가 그대로 쓰레기를

테이블에 던져버리고, 침대에서 과자를 깨작이다 맥주와 음료수를 들이켜고. 보일러를 틀어 바닥과 벽을

따듯하게 뎁힌 다음 에어컨을 키고 알몸으로 두꺼운 이불 속에서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고.

“확실히, 공부를 그렇게 싫어하더니 어떻게 통과는 했네?”

“히어로가 되는 것에 이론 시험이 있다니, 너무 엄격해…”

“그래 그래, 수고했다. 고생 많이 했어.”

얼굴로 소희의 풍만한 가슴을 만끽하며 기억을 회상하니 다시 생기는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빌어먹을 히

어로법 같으니. 빌런만 때려잡고 체포하면 공권력의 이름으로 뭐든지 해결될 줄 알았는데. 빌런을 상대

할 때 지켜야 할 법률과, 인질이나 재산 손괴에 관련된 교육을 1년 반 넘게 교육받았다.

1학년 때는 단순 대련만 하더니 2학년때에는 빌런과 마주하는 다양한 상황극에서의 훈련을, 3학년이 되

니 히어로와 관련된 법을 공부하기까지 했다. 고전 소설에서나 보던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3학년을 실제

로 체험하게 되다니.

“아 진짜… 그냥 체포하면 되지 빌런이 벌인 행각에 따른 대응 단계를 왜 정해둔거야아-”

이 사회는 히어로가 아이돌이 된 만큼 도덕적으로 엄격하다. 예를 들어, 연예인이 음주 운전을 하는 순간

소속사와의 계약이 파기될 정도로. 무단 횡단 같은 사소한 비 도덕적 행위에도 눈에 불을 키는 사람들이

한 가득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히어로가 빌런이랑 싸우느라 도시를 파괴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높으신 분들이란 언제나 같기 때문에 시민의식이고 나발이고 뒷구멍으로 챙길 거 챙기는 놈들은 여

전하다. 지하 도시에서 만든 마약이 바깥 세상이므로 수출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한 봉지에 십만 이십만

하는 값비싼 마약을 공장 노동자가 먹겠어, 학생이 먹겠어? 다 파티용이지.

“으이구… 술만 들어가면 어리광이야.”

“내… 나이… 누나… 나이…”

“그래, 미안하다. 아직 어리광 부릴 나이지.”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달래며 슬금슬금 엉덩이를 토닥이는 그녀 때문에 아직 힘이 덜 빠진 아랫도리

가 발딱 일어난다. 단단하게 일어난 귀두 끝자락이 이불을 헤치고 말캉말캉한 복부를 살살 간질이자, 정

말 간지러웠는지 복근이 일어나 단단하게 저항하는 것이 느껴진다.

“…한번 더, 할까?”

“음… 조금만 있다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내 물건을 끼운다. 세밀하게 강화된 육체에는 나의 맥박 소

리뿐만 아니라 그녀의 심장소리까지 들린다. 이불을 덮고 둘만의 체온을 즐기고 있자니 엉덩이를 쥔 손

가락이 사브작사브작 이불을 건드리며 나의 등골을 쓸어내린다.

“왜, 참기 힘들어?”

“신체 건장한 여자라면 이 상황이 힘든 게 당연하지 않을까? 이렇게 온 몸으로 맞닿아 있는데.”

말은 그렇게 해도 몸을 움직이는 기색은 없었다. 맞닿은 피부가 달아올라 이불 밖을 시원하게 두드리는

에어컨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불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의도적으로 육체를 컨트롤

하면 땀이야 안 나겠지만… 뭔가 질퍽하게 서로 들러붙었는데 땀 한 방울 나지 않는 건 기분이 별로니까.

호텔에서 1박 2일로 이불의 습기를 제거하는 마법을 10번 이상 쓴 이야기는 대충 넘어가고, 민증이 나오

고 성인이 된 1월의 세 번째 주. 초보 히어로와 초보 사이드 킥의 임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뭔가… 뭔가 다른데…”

“하하, 히어로라는 이름이 조금 거창하긴 하지?”

물론 내가 생각한 것은 적어도 동네를 순찰하는 히어로지, 사무실에 처박혀서 무전 내용을 엑셀에 정리

하는 히어로가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심지어 나는 사이드 킥으로 등록되어서 그런지 순찰 업무보다 서

류 업무가 많아… 많다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짜증이 밀려온다. 법에 대해 공부시킬 때 엑셀 자격증을 추천하던 교수들이 떠오

르면서 더욱 더. 이딴게 무슨 히어로야! 하고 뛰쳐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게 더욱 스트레스를 가속시

킨다.

“자자, 빨리 끝내고 정시 퇴근해서 맥주나 사러 가자.”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지 않는 이유라 하면 한 사무실 같은 책상에 소희가 앉아 있었다는 것뿐이다. 그래,

소희는 영웅이 되어서 악마고 마왕군이고 다 때려잡고 나를 안락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몸. 그걸 위한

투자라고 생각 해야지.

“아무리 그래도 짜증나아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짜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깔끔하고 쾌적한 대리석 바닥, 고급스러운 파티션으

로 나뉘어진 책상들. 서류 업무용이라 생각하기에는 성능이 너무 좋아서 당황스러운 고가의 PC와 단말

기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사람을 놀리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난다.

히어로라고 떠받들면서, 돈은 팡팡 써서 설비도 어마어마한데 하는 거라곤 파출소에 들어온 민원 전화

내용을 이능 관련, 이능 관련되지 않음 이 두 가지로 나눠서 엑셀에 손수 입력하는 것 말고 없다니. 심지

어 전화번호와 신고인 이름, 그리고 이능과 관련되었는지 아닌지를 입력하는 거라 함수고 뭐고 없이 그

냥 옮겨 써야 하니.

“이딴 게 무슨 히어로야!”

[작품후기]

꽁냥은 슬슬 많이 본 것 같죠?

아 매운맛 땡긴다

생각보다 마조 힐러를 찾는 댓글이 꽤 많네요. 사실 소희가 준 밥을 남길 수 없어서 윗집 여자를 강간한다

는 사이코패스적 면모 + 흡혈귀가 가진 능력의 설명을 위해 등장한 단역이긴 한데... 재등장을 시켜야 하

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