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
SNS를 시작하는 것. 별 것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일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내 힘은 아니고 지분으
로 따지면 70%는 이하린 때문이겠지. 30%는 내가 아니라 우리 학교의 이름값이고. 나름 대한민국 미성
년 초능력자가 거의 다 모이는 거대한 학교. 말만 고등학교지 건물만 10개가 넘고 실습용 건물과 대련장
의 면적까지 포함하면 대학교 두 개 정도 크기는 된다.
그런 학교에서, 안 그래도 테러 때문에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데 학생 하나가 A급 히어로들의 싸움과 예비
B급 히어로의 싸움을 편집 없이 통으로 올린다? 사람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있나. 빌런을 체포하는 히어
로를 스토킹하는 찍덕들이 있는 시대인데.
첫 영상의 조회수는 고작 1주일만에 10만을 넘어갔고, 해외로 링크가 퍼져 나갔는지 외국인들의 팔로잉
도 어마어마하게 증가했다. 광고 제의 쪽지로 쪽지함이 하루에 백 단위의 숫자가 왔다 갔다 하며 광고인
척하며 이하린과의 연결, 혹은 나에게 스폰 제의를 하는 사람들이 잔뜩 생겼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무료함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는 점이다.
“이야… 인기가 많으시네요?”
협회에서 인증한 A급 초능력자 이하린과 정면으로 싸움을 걸어 20분 이상의 전투를 유지할 수 있는 실력
자. 어중이 떠중이만 모인 지하 도시에서는 꽤 탐나는 인재 아닌가. B급의 초능력자 대부분은 도시 중앙
에 소속되어 있으니까.
“오늘도 일거리가 꽤 들어오나 보네?”
지하 도시에 갑자기 나타난 미성년자 초능력자를 적대할 정도로 멍청한 녀석들은 없었다. 나랑 원한이
있는 녀석들이라 해 봐야 나한테 창고를 털린 조직이나, 테러를 일으킨 빌런 희망범들의 잔존 세력 정도
가 끝. 나머지 지하 도시의 녀석들은 경매장에 등록된 나를 적대시하며 도시 중앙의 집행자와 마찰을 일
으키느니 돈을 쥐어 주고 일을 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뭔데?”
“네, 파일 보내 드렸습니다. 지하 도시에서 싼 값에 약을 사서, 지상의 빌런 조직에 팔아먹음으로써 이익
을 얻으려는 녀석들이 있어서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의뢰자는 마약상으로 유명한 조직이고… 마약을 판
뒤, 녀석들을 몰살시키고 물건과 돈 전부 회수하는 의뢰에요.”
파일에도 똑 같은 내용의 텍스트가 올라와 있지만 읽는 게 귀찮아서 읽게 시켰다. 역시 지하 도시. 설정이
설정인 도시인지라 지상과는 다르게 심심할 일이 없다. 마약 조직을 단신으로 소탕하는 일이 즐거운 것
은 아니지만, 이런 퀘스트 비슷한 것이라도 해야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게임 중독자
의 뇌다.
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게임에서 10시간 뒤 업그레이드가 완료된다고 치자. 그러면 10시간 뒤에 알람
맞춰 두고 게임에서 관심을 딱 끊어버리는 사람이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다. 2시간, 3시간마다 게임
창을 들여다보며 관심을 가지는 스타일이라 2년 뒤에 히어로가 된다고 해서 2년동안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학교 생활과 대련만 하면 심심해서 죽는다고.
심지어 스킬 사용 금지 대련인데.
“그래서… 오늘의 식사는 어떠셨는지?”
“늘 만족해. 애인을 데려오고 싶을 정도로?”
“하하, 봐 주시죠. 그녀가 여기에 오면 저희는 다 죽을 걸요?”
나와 소희는 지하 도시에서 여러 의미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타인의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돈과 쾌락
과 맞바꾸는 지하 도시지만, 제 목숨과 안전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챙기는 동네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주
거지에서 고작 몇 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2, 3일마다 A급 능력자가 토네이도를 일으키고 있으니 불
안하기도 하겠지.
빌런이 되기에는 제 목숨이 너무나 소중한 좀생이 같은 범죄자들.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양날의 검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이 정도까지 잘 먹혀들 거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돈을 내고 사용하면 유용하지만,
무리한 가짜 의뢰를 넘겨서 내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지하 도시의 일부 주민들은 그날 발차기 한 번으로 수십 구울을 찢어 발기고 미친 황소 마냥 씩씩거리는
소희를 봤다. 약간의 변장조차 하지 않고 도시 외각의 대로변에서 발차기로 지면을 갈아 엎은 그 폭력적
인 상황. 정보에 조금 일가견이 있는 친구들이라면 소희와 내가 그 사건의 당사자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
적어도 내게 의뢰를 맡길 보스라면.
A급 능력자가 일으킨 토네이도를 어깨로 뚫어버리는 광전사를 누가 적으로 돌리고 싶어하겠는가?
“그렇지, 요즘 의뢰가 참 쏠쏠해서 좋아. 한나야, 너는 뭐 떨어지는 게 있냐?”
“저야 이 도시에서 평판으로 먹고 사는 년인데요 뭐. 데면데면하던 조직이랑 의뢰로 이어져서 최소한의
신뢰라도 얻는다면 남는 장사죠. 이번 의뢰를 맡긴 조직도 도시 중앙에 화학 약품을 납품하는 덩치 큰 친
구들이거든요.”
그 결과 도시 중앙의 집행자가 나서기엔 스케일이 적고, 조직이 직접 움직이기에는 피해가 예상되는 중
간 정도의 달달한 의뢰가 내게 물 흐르듯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이번 사건만 봐도 그렇다. 고작해야 중
소 조직 하나. 나 하나가 하룻 밤 안에 처리할 수 있는 머릿수라면 그냥 그 덩치 큰 조직이 조직원으로 밀
고 들어가면 된다.
문제가 있다면 지도에 찍힌 저들의 아지트. 외부 조직과 거래를 하고 싶다는 것을 온 몸으로 표현하듯이
도시 밖에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위치상으로는 3구역 학업 지구에서 조금 벗어난, 2구역 산업지구의 폐
공장 단지. 지하 도시의 조직원들이 나가기에는 조금 먼 거리였다.
“그럼, 다녀올 게~”
물론 날개가 달린 내게는 전혀 상관없는 거리. 등이 간질거리더니 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새카만 박쥐
날개가 펼쳐진다. 원래 검붉은 색이여야 하는데 무슨 무광 처리한 검은색처럼 짙고 짙은 날개. 소희의 피
때문에 내 육체가 미지의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창고에 있는 돈은, 내가 먹어도 되지?”
“네, 이번 거래 물품이랑 걔들이 가져올 돈가방만 돌려주면 됩니다.”
지하 도시에서 넘쳐나는 화학 약품 찌꺼기로 자체 생산된 마약은 매우 싸다. 고순도 코카인 비슷한 게 1
그램에 천원 단위 거든. 세종대왕 한 명으로 먹고 뒤질 양의 마약 덩어리를 구할 수 있다. 일종의 복지 정
책으로 중앙에서 찍어내서 뿌리는 거다.
업소용 콜라는 수퍼에서 팔면 안 되듯이, 내부 복지용 마약을 밖으로 빼돌리면 쓰나. 가방을 쥐고 도시의
어둠 속을 비행한다. 천장의 환풍구 내부까지 웅웅 울리는 시끄러운 EDM음악. 다녀오면 김한나한테 저
빌어먹을 음악 좀 바꿔보라고 할까.
‘이전 모드랑 물가가 비슷하다면 밖에서는 대충 1그램에 20만원쯤 하나? 창고에 돈은 두둑하겠네.’
월드 스타 아이돌로 살아가면서 마약이랑 조금 엮여봤던 경험으로, 1인분에 대충 20만원만 잡아도 내가
들고가는 이 가방 하나는 대충 10억이 넘는다. 여기에 불순물 조금 섞어서 양만 늘리면 아마 산업지구 인
부들이 전부 중독되고도 남을 양.
구름에 반쯤 가려진 달빛 아래에서 날개를 활짝 편다. 소매와 목덜미를 펄럭거리는 차가운 바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지나는 계절인지라 밤 공기만큼은 거의 겨울 바람처럼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은 전부
퇴근하고 기계만 가득한 공장들을 지나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어둑어둑한 공장 단지에 착륙한다.
“그 쪽이 지하 도시에서 온 사람인가?”
“흠, 그 쪽이 물건을 받기로 한 사람?”
날개를 접고 옷 매무새를 다듬으니 공장의 잔해 사이에서 검은 코트를 입은 여성이 그림자 사이에서 스르
륵 나온다. 검은 구두를 신고 콘크리트 잔해 위를 걸어옴에도 불구하고 발자국 소리가 나질 않는다.
‘체술? 그림자 능력? 아니면 기척 은폐?’
“흠… 이렇게 어린 녀석이 온 다고는 못 들었는데.”
“너희가 들은 정보는 새하얀 가루가 온다는 정보지, 누가 가방을 들고 온다고 약속한 적은 없잖아? 돈부
터 꺼내.”
“무슨 소리를, 물건 확인이 먼저지.”
“보기만 하면 알고?”
마약 거래 짬밥이 얼마인데. 밑바닥 인생이 큰 돈 만지려면 마약 아니면 사채 테크트리지 뭘. 내 말을 듣
고 코트의 여성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니 그녀의 등 뒤에서부터 한 소년이 살며시 걸어 나온다. 자박거리
는 발소리. 굴러 떨어지고 바스라지는 콘크리트 조각들.
‘광역 은폐는 아니네. 기척 차단 능력이라고 보기에는 발자국 소리만 안 들리지 나머지는 생생하게 잡혀.
그림자 이동과 관련된 건가? 아니면 지면과 동기화?’
가방을 살며시 열어서 두 남녀에게 보여준다. 돌돌 말려서 고무줄로 고정되어 있는 수 십개의 비닐 봉지
들. 새하얀 가루들이 달빛 아래에서 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소년이 살금 살금 다가와 비닐 봉지 하나를 손
바닥 위에 털어 놓고, 그대로 혀를 가져다 댄다.
“…약속한 것 이상의 품질이야, 누나.”
“그래, 그거 참 좋은 소식이네.”
코트 여성의 발치에서 네 개의 검은 가방들이 솟아난다. 흙바닥을 무겁게 누르는 걸 봐선 지폐로 가득 차
있겠네. 마약이 든 가방을 다시 잠궈 들고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달짝지근한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
“그런데… 이걸 도시 밖에다 내다 팔면 어느 정도 이익이 남지?”
“왜, 이쪽 사업에 한 발 걸쳐보려고? 너희도 우리에게 넘기면서 이익을 꽤 보고 있지 않나? 지하 도시에
서 마약은 술 한병보다 싸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아니… 솔직히 얼마나 돈을 버는지 궁금하잖아.”
어둠 속에서, 흡혈귀의 눈은 밝은 태양 아래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
힘이 들어가는 어깨가 보인다. 뒤로 살짝 당겨진 팔꿈치가 보인다. 살며시 돌아간 손목이 보이고 가방을
교환하는 척 슬그머니 앞으로 내딛은 발이, 틀어지는 허리와 들이 마시는 호흡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받길래 목숨을 걸지?”
그리고 그림자에 숨죽이고 웅크린 몇몇 사람들까지.
“꽤 싸구려 목숨이구나?”
그대로 팔을 뻗어 그림자를 뒤틀어버린다.
[작품후기]
와 ㅋㅋ 저녁 먹고 운동 다녀와서 극세사 이불 꺼내고 침대에 엎드려서 글 쓰다가
극세사 이불의 온기에 깜빡 잠들었습니다. 9시에 졸았는데 눈뜨니까 1시네 ㅋㅋ
오늘 잠 다 잤네 ㅎㅎㅎㅎ
매운맛은 곧 나올겁니다. 느긋하게 지낸다고 느긋해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