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화 (87/189)

휴식

게임 속에서 SNS를 한다. 딱히 이득 볼 게 없어 보이는 행동이다. 어지간한 관심종자가 아니라면 게임 속

에서 게임 속 NPC를 대상으로 SNS 팔로워를 끌어 모으고 싶어 할 까? 물론 연예계나 방송 일을 해서 돈

이 된다면 하겠지만.

솔직히 가상현실 게임에 들어와서 SNS 팔로워 100만명 모아서 광고비로 돈 버는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가수나 배우, 아이돌 활동이 메인이고 SNS는 덤으로 하는 거면 몰라도. 그런 생각을 하다

가 현대 모드를 몇 번 해보면 마음이 바뀐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SNS는 사회에 파고들고, 사람들은 그걸 잘 믿거든.

쉽게 말해서, 돈 안들이고 평판, 명성작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내가 붙잡은 여자는 용

사가 되어서 세계평화군 비슷한 용사 조직을 만들고 마왕으로부터 지구를 지킬 사람이고. 이렇게 말하니

까 진짜 망상증 도져서 SNS에 붕대 감은 오른팔 찍어 올릴 것 같긴 한데.

‘그게 변하지 않는 팩트란 말이지.’

용사가 있다. 그러니까 마왕이 있겠지.

뱀파이어가 피를 빨고 늑대인간이 탈모 면역인 것과 같다. 용사가 있는데 마왕이 없는 모드라면 아마 인

어공주가 헤엄치다 익사하고 4대천사가 날개에 쥐가 나서 추락사하고 아주 지랄이 나겠지. 모드가 깨진

거니까. 적어도 이 날려보내진 세상에는 그런 커다란 오류는 없으니까.

“그래서, 촬영하고 싶다고?”

“예.”

“뭐… 비영리 목적이면 상관없고. 소속사랑 계약 싸그리 갈아 엎었으니까. 그런데 촬영하는 대신 대련 횟

수 늘리면 안 될까?”

“주 6회. 월, 수, 금 1주일에 3번 오전 오후에 해서.”

“이야, 통 크게 쏘네.”

남녀 정조역전 세계니까 대충 단추 풀고 반바지 입고 소희랑 데이트하는 사진 찍어 올리면 발정난 암캐들

이 좋아요 버튼을 딸근으로 팥팥팥 누르겠지만 그건 패스. 지금 SNS를 시작하는 이유는 무료함 때문이

기도 하지만, 훗날 소희가 용사가 되는 날을 위한 홍보 작업의 의미도 있으니까. 용사에게 늘 발생하는 사

상검증 이벤트나, 시민들이 용사를 공격하는 배반 이벤트를 막기 위해서.

‘그리고 서비스 씬은 대련 영상으로도 충분해.’

나야 말할 것도 없는 병약 미소년 캐릭터다. 물론 아바타만 병약 미소년 캐릭터지 하는 짓거리는 근접 전

사지만. 소희는 갈색으로 적당히 탄 피부지만 피부에 여드름이나 흉 하나 없는 매끈한 몸매의 운동계열

누님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소희랑 치고 박고 싸우는 이하린은?

“요즘 운동 좀 했나 봐?!”

“A급 자존심이 있지!!”

콰아앙-! 폭풍이 몰아치며 대규모 실습을 위한 연습장이 덜덜 떨린다. 여파만으로 콘크리트를 갉아내는

칼 바람 속에서 눈에 보일 정도의 기류를 온 몸에 휘감은 이하린이 공중으로 떠올라 소형 토네이도를 만

들기 시작한다.

A급 초능력자, 전 천만 배우, 스타 생활이 가장 핫 할 때 갑작스레 위약금으로 거의 모든 재산을 지불하고

초능력 학교 교사로 빤쓰런한 4차원 연예인. 실체는 그저 자신과 싸워주는 사람이면 좋다고 헤벌레 들러

붙는 배틀 정키지만 적어도 SNS 너머 네티즌들은 그녀에게 커다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어, 그걸 몸으로 막냐?!”

“이, 씨팔새끼, 잡았따아아!”

난기류 속에서 두 주먹을 불끈 모아 쥐고 복싱 선수 마냥 앞으로 스텝을 밟은 소희가 세 개의 용오름을 어

깨로 들이 받아 뚫고 나아간다. 화들짝 놀란 이하린이 위로 치솟지만 아쉽게도 이 대련장은 실내.

“올라가 봐야 천장이지, 이 날파리쉑!”

“아니, 시팔 사이보그세요?”

칼바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오른 소희가 손가락으로 바람 장벽을 찢어 발긴 뒤 이하린의 발목을 잡아

관절기를 걸며 대련이 종료된다. 이로서 승률이 대충 70%쯤 되나? 심지어 용사가 되어 베낀 타인의 능력

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육체 능력으로만 비빈 거니 실제로는 100%라 봐도 되겠지.

“수고하셨어요.”

“아오, 발목아… 하늘아, 대련은 30분만 있다가 하자.”

“30분으로 되겠어요?”

카메라를 들고 가서 두 사람에게 수건과 이온 음료, 그리고 갈아 입을 체육복을 내민다. 칼바람에 상의가

너덜너덜 해 져서 구멍 난 옆구리로 복근이 보이는 소희와, 소희에게 멱살을 잡혀서 상체 목부분이 길게

뜯어진 이하린.

‘결국 찌찌 파티는 통하거든.’

말한 것처럼, 서비스 씬은 충분하다. 물론 약간은 다른 의미에서의 서비스지만. 내가 두 사람의 출렁이는

가슴과 잘록한 허리, 그 탄탄한 근육이 보이는 등을 보며 강한 성욕을 느낀다면 이 세상 남자들은 성욕 보

다는 감탄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 테니까. 아닌가?

사실 여자들이 남자 연예인 식스팩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남자고 여자고 성욕 앞에

서는 평등하니까. 육체적으로 훌륭한 두 여자가 땀에 번들거리는 근육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 만으로

도 무수히 많은 남성 팔로워들이 생기겠지.

여자들은 내 몸과 초능력 대결의 화려함에 열광할 것이고, 남자들은 소희와 이하린의 찌찌 파티에 열광

하겠지. 물론 내 여자를 직접적으로 노출시킬 일은 없다. 보여 봐야 옆구리나 복근, 등 근육 정도지만 그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어, 지금 바로 올린 거야?”

“네. 초능력 대전인데 뭐 화려하게 편집할 이유 있나요? 학생들도 무편집본으로 데이터 제공받는데, 그

거 각도만 하나 추가해서 그대로 SNS에 올리는 거에요.”

가장 이용자가 많은 HCB. 초능력자 영상이 모이다 어느 순간 SNS로 변한 거대 사이트에 계정을 만들어

둔 상태. 대한민국 예비 히어로(고1 / B등급) 이라는 간략한 자기 소개만 있는 새하얀 화면에, 프로필 사

진으로 소희와 같이 찍은 셀카를 넣고, 첫 동영상으로 방금 전의 대련을 올린다.

제목은 음… ‘스쿨 가드에게 얻어 맞는 이하린’ 이라고 올려야지.

“아, 첫 영상부터 개 털렸네. 좀 멋지게 찍은 것 좀 올리지.”

“뭐래.”

“영상 촬영 끝났다고 다시 반말하는 거야?”

“존댓말 받고 대련 횟수 줄이기, 콜?”

“오빠라고 부를까요.”

슬그머니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니 5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벌써 수 백명의 사람들이 영상을 시청했다.

역시, 제목과 키워드에 이하린을 껴 넣기를 잘 했네. 댓글도 어느 새 십 수개가 넘게 붙어 있었다.

소희나 촬영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는 단순한 댓글, 소희의 팬클럽에서 온 사람들, 근육량과 체구에 비해

육체의 흔들림이 적다니 뭐니 하며 두 사람의 능력을 분석하기 시작하는 사람. 한국 초능력 고등학교의

대련실 설비에 감탄하는 사람.

‘역시, 남자랑 남자를 엮는 변태들이 여기서는 여자끼리 엮네.’

마른 근육질의 여자 둘이 땀을 흘리며 몸을 부비니 보기 좋다는 사람까지. 개인적으로 가장 커다란 화력

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쪽 세상 말고 현실에서 게임을 팔 때 부녀자들이 의외로 큰

손님이었으니까.

부하들을 만들 때, 먹고 살기 힘든 거지나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는 꼬맹이들을 반쯤 세뇌하다 시피 키우

는 방식을 자주 사용했었다. 그러면 잃었다가 다시 가지게 된 가족에 대한 집착으로 끈끈한 남자들의 우

정이 피어나는데… 그 NPC들이 좀만 곱상하다 싶으면 브로맨스를 외치며 따블에 따따블을 불러주는 여

자 고객들이 꽤 있었다.

뭐, 남자 고객들도 쌍둥이 미녀 NPC만 보면 눈이 돌아가서 따따따블을 외치긴 했지. 성욕은 남녀를 가리

지 않으니까.

“하늘아, 한 판 뜨자!”

“네, 갑니다!”

띠링 소리가 나게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 내가 앉아 있던 곳에서 쉬는 소희에게 넘겨주었다. 이제 이하린

이랑 대련을 하는 내가 적당히 패배하는 영상을 올리면 된다. 누구 하나가 일방적으로 줘 터지는 영상은

사람들이 오래 볼 리 없다. 이하린과 소희가 막상 막하로 비벼야 다음에는 누가 이길지 궁금해서 계속 볼

것이고, 내가 이하린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까 없을까 아슬아슬하게 계속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야 조회

수가 오르겠지.

“으햐핫, 소희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둘 다 잡히질 않냐!”

다시 한 번 대련실에서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했고, 나는 소희와는 다르게 토네이도를 피해 요리 조리 뛰

어다녔다. 고작 3m짜리 소형 칼바람이지만 옷을 너덜너덜하게 만들기는 충분하니까. 사각 사각 소리와

함께 옆구리나 허벅지의 체육복이 조금씩 잘려 나갔고, 대련을 지켜보는 소희의 얼굴에 불편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 정도 끌었으면 되겠지.’

피부에 난 생채기에서 핏방울이 흘러나와 바람에 흩날린다. 소형 토네이도에 쫒기고 이하린이 던지는 바

람 칼날을 피하며 떠오른 그녀의 아래까지 달려든 뒤,

“흐아아압!”

“아, 진짜 이게 학생이라고?”

바람과 바람 사이, 토네이도를 밀어내느라 잠시 생겨난 무풍지대로 몸을 던진다. 물론 이 일격이 먹힐 리

는 없다. 그래도 눈 앞에 있는 바보는 A급 히어로니까. 양 손을 뻗은 상태로 허공으로 뛰어올랐지만 나를

맞이하는 것은 이하린의 발목이 아닌 그녀가 만들어 낸 바람의 장벽. 소희의 육체 능력이라면 무시하고

이하린을 붙잡았겠지만… 날개도 펼치지 않고 자신의 혈액만 조금 준비한 흡혈귀가 뚫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와… 한 명은 몸으로 뚫고 들어오고, 한 명은 보이지도 않는 바람 사이로 뛰어들어오네?”

“보이는데요.”

“그게 이상한 거라고.”

바닥에 드러 누워 있으니 허공에서 내려온 이하린이 손을 뻗어온다. 붙잡고 일어서기도 귀찮아 잠시 바

닥에 누워 있으니 한숨을 폭 쉰 그녀가 소희 쪽으로 손을 까닥거리자 타탁 빠른 발소리에 반응하기도 전

에 소희가 다가와 있었다.

“그래… 니 애인 니가 챙겨라. 점심 먹고 2시쯤 여기서 다시?”

“엉, 알겠어.”

때마침 점심 시간을 알리는 벨 소리가 울리고, 나는 소희와 식당으로 향하며 계속해서 SNS의 페이지를

새로 고치며 관찰하였다. 1시간 안에 만 단위로 진입하겠는데.

[작품후기]

주인공 특 : 법사인데 귀찮아서 마법 안 씀

버프 18인가 뭐시기에 당첨되었다고 하네요. 뭐 응모한 기억도 없는데 그게 뭐지?

아무튼 댓글 다시는 분 중 15명 뽑아서 딱지 10장씩 보내드리겠습니다.

15명이 넘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만약에 넘으면 네이버 사다리 타기님에게 맡길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