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0/189)

비둘기들

등허리로부터 시작되는 나른한 감각. 평소의 몰아치는 쾌감과는 다르게 느긋히 흘러 들어오는 쾌락에 입

에서 자연스럽게 앓는 소리가 나온다. 마치 알몸으로 극세사 이불에 돌돌 말려서 낮잠을 자는 기분. 물론

내 몸을 덮고 있는 것은 보송보송한 이불이 아니라 새하얀 나신이었지만.

“흐으음… 기분 좋네.”

“그래, 아프진 않지?”

한숨과 함께 앓는 소리를 내자 슬쩍 내 눈치를 보며 손길이 점차 부드러워지는 게 느껴진다. 이성을 다룬

다기 보다는 아기를 다루는 것처럼 느릿하게 어루만지는 손길. 경험이 없다는 것을 온 몸으로 주장하듯

서투르기 짝이 없었지만 성욕으로 달아오른 몸은 그 부드럽고 서툰 손길마저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남자를 모르는 여자 답게, 동정 냄새가 풀풀 나는 언행을 반복하는 게 재미있다. 목덜미를 어루만지던 손

이 쇄골에서 멈추다 조심스레 가슴으로 넘어온다. 어색하게 입을 맞춰 오는데 중간 중간 눈동자가 바쁘

게 움직이는게 귀엽다. 눈치를 보는게 티가 너무 나지만 스스로만 모르는 상태.

머릿속은 반쯤 패닉이라 어쩔 수 없겠지.

"그래, 그렇게 부드럽게... 배우는 게 빠르네."

사람의 위에 올라타는 게 어색한지 침대를 짚은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여 겨드랑이를 쿡 찌른다. 아담

하게 부풀어오른 가슴. 고작해야 가슴과 배를 어루만지는데 온 정신을 집중했는지 갑자기 간지럽혀지니

화들짝 놀라 푹 엎어진다.

느긋하게 잘 모르는 여자를 내 입맛대로 가르치는 것 또한 재미는 있었다. 금방 질려서 그렇지.

몸 위에 올라온 가볍디 가벼운 체중. 아무리 남녀역전 세상이라 해도 남자와 여자의 체형까지는 변하지

않았다. 강화된 흡혈귀의 육체가 고작해야 가냘픈 여자 하나가 몸 위에 올라왔다고 힘들 리 있나? 달아오

른 피부끼리 기분 좋게 비벼진다.

“몸에서 힘 빼. 고작 사람 하나한테 깔렸다고 끙끙거릴 정도로 사람 몸이 약한 게 아니 라서.”

어색하게 내 몸 위에 걸터 앉은 그녀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 물건을 쥐고 삽입을 한다. 소희는 성 경험이

거의 없었어도 운동신경은 있어서 어느 정도 자세를 잡았지만, 지금 내 위에 올라탄 그녀는 운동신경조

차 없어 어정쩡하다.

뭐, 알아서 기분 좋은 모양새로 움직이겠지. 이건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동물의 본능이니까.

어색하게 허리를 돌리는 그녀에게 최대한 맞춰 아래에서 허리를 찔러 올린다. 생소한 쾌감에 끙끙거리면

서도 금세 쾌감에 취했는지 자신의 속을 최대한 기분 좋게 긁으려고 온 몸을 비튼다. 어색하지만 그 때문

에 좀 더 야해보여 흥이 솟는다.

왜 야동도 전문 포르노스타의 야동보다, 아마추어 카테고리가 더 꼴릿 할 때가 있지?

“자, 잠깐만…”

“하다가 멈추면 오히려 더 힘들어요. 원래 달리기도 뛰다 멈추면 다시 못 뛰듯이.”

쿡쿡, 허리를 쳐 올려 약점을 공격한다. 만난지 2시간도 되지 않은 여자지만 본능적으로 제 G스팟을 내

물건으로 살살 긁으려 들어서 그만. 본능적으로 허리를 돌리니 제 기분 좋은 곳만 반복적으로 건드리고,

그러다 자기 약점을 그대로 전부 알려준 꼴.

마치 달리는 망아지 엉덩이를 두드리듯이, 체력이 떨어져 허리 놀림이 느려 지면 재촉하듯 허리를 쳐 올

린다. 습하게 죄여오는 조임, 귀두 끝자락부터 느껴지는 말캉말캉한 살 주름. 끝내 눈물까지 흘리던 그녀

는 내가 만족할 때까지 내 위에서 허리를 돌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뿌듯함과 쾌감으로 만족스럽게 풀어진 얼굴로 축 늘어진 그녀. 입꼬리를 건드리며

뺨을 꾹꾹 눌러보지만 이미 만족해서 기절하듯 늘어진 그녀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새하얀 목덜미가

보여 간만에 원조 흡혈귀처럼 목을 깨물어 보았다.

별 의미는 없었다. 초능력자도 아니고 메인 NPC도 아니지만 아무튼 하룻밤... 아니 하루 저녁을 함께 안

여자니까 한 번 깨물어 둔거지. 구울로 만들 마음도 없고 권속으로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다.

혀 끝에 느껴지는 시큼한 맛. 동네 슈퍼에서 만원에 파는 싸구려 레드 와인의 맛이었다. 역하지는 않지만

향도 애매하고 맛도 시큼해서 미간이 살포시 찌푸려지는 그런 맛.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입맛이 너무 고급스러워졌다. 용사, A급 히어로와 찐또배기 영웅, 학원물 주인공까지 쪽쪽 빨아먹다 보

니 노예로 밑바닥에서 흙탕물에 젖은 빵 뜯어먹던 시절을 완벽히 다 잊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여기에 떨어지기 직전에 했던 데이터는 현대 아이돌 버전이라 더욱 그렇다. 아무리 찢어지게 가

난해도 현대인이 먹을 것은 잘 포장된 인스턴트 라면이나 편의점 1천원짜리 빵이다. 흙탕물에 젖었는데

도 돌처럼 딱딱한 검은 빵, 사람 하나 들어갈 냄비에 손바닥 크기의 육포를 넣고 끓인 스튜 따위와는 비교

할 수 없는 맛이니까.

분위기 반, 호기심 반으로 괜히 입을 댔다가 입맛만 버렸네. 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에 널브러진 그녀를 두

고 욕실로 향하는데, 시야 한 구석에 커다란 팝업창이 떠오른다.

'뭔데 이렇게 많아?'

혈액에는 영혼이, 정보가 담겨 있다~ 라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특성. 따라서 흡혈을 많이 할 수록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늘어난다. 우리 빨간 머리 영웅의 피를 심심해서 리터 단위로 빨아먹은 게 아니다. 알아

야 할 게 많으니까 많이 마신거지.

그런데 지금 한 모금 홀짝였는데 시야를 가릴 정도의 정보가 튀어나온다고?

마치 버퍼링에 걸린 것 마냥 버벅이면서 느릿하게 떠오르는 정보창. 빽빽하게 들어선 글자는 조금만 멀

리서 보면 깜지로 보일 수준이었다. 그대로 변기 위에 앉아 기나긴 글을 읽는다.

또 건졌네?

뜨거운 물을 가득 담은 모텔 욕조 안에서 여유롭게 글을 읽는다. 쾌감이 익숙치 않은지 금방 기절해서 잘

하면 밤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고작 한 두방울만 마셨음에도 목욕을 하는 동안 작은

소책자처럼 읽을 수 있는 방대한 정보량.

수분을 마법으로 날리고, 모텔 화장대 구석에 널브러진 그녀의 핸드폰에 내 번호를 찍어 두고 길을 나선

다. 저녁이 되니 어째서인지 클럽의 음악이 한층 더 시끄러워진 기분. 지하 도시를 등지고 슬그머니 하수

구 속으로 몸을 돌렸다.

기대되는 재밌는 일이 생겼다.

나름 갓갓겜이라 불리는 이 가상현실게임은, 다양한 모드가 겹치면 알아서 밸런스를 조정하고 NPC의 명

칭을 변경했다. 복잡하게 말하긴 귀찮으니까, 쉽게 말하면 이런 거다. DC 모드를 만든 놈이랑, MCU모드

를 만든 놈이 말싸움을 한다. 배트맨이랑 아이언맨이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그러면 이 게임은 친절하게 대답을 해 주는 거지. 배트맨이랑 아이언맨? 부자 둘이 주먹질로 싸우겠냐?

둘이서 회사 경영권 가지고 변호사 싸움을 하겠지. 이딴 식으로 모드 간의 정리를 해 주는 역할. 우스갯소

리로 게임이 아니라 모드 변환기라 불리는게 당연할 정도.

그렇다고 해서 정리를 해 준다 해서, 일방적으로 정리를 해 버리는 건 아니다. 게임 태그 중에 괜히 ‘시뮬

레이션’ 태그가 있겠는가? 염소 시뮬레이션이나 티라노사우르스 어깨에 기관총을 붙이는 전투 시뮬레이

션 같은 그런 거.

밸런스에 맞게 스탯을 조절하고, 결과값 없이 싸움을 붙인다. 사무라이랑 화랑이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9클래스 대마법사랑 신선이랑 싸우면? A.I.의 연산으로도 결론 내리기 어려운 것은 그냥 시뮬레이션 화

시켜 유저에게 던져준다. 니들이 알아서 가지고 놀라고.

“자아, 형제 자매님. 오늘도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히어로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싸움을 붙였다. 나도 그런 거 많이 했었다. 기사왕이랑 용병왕이랑 검

선이랑 천마랑 누가 더 강할까? 같은 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지금처럼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도 이루어진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리다.”

주기도문은 우리가 아니라 땅에서 이루어지리다, 로 알고 있는데. 판타지 설정 사이트에 가면 꽤 있는 대

전이다. 현대 사회랑 판타지 세상이랑 오버 밸런스 맞추고 전쟁하면 어디가 이길까? 그 답은 나와 있었

다.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실천합시다.”

히어로 협회 내부 성당. 앞에서 미사를 보는 신부님의 내부에서 새하얀 기운이 꿈틀거린다. 인자하게 웃

는 신부, 앞에서 촛불을 끄는 소년 소녀들, 합창을 하는 사람들. 전부 천사와 계약을 했거나 하급 천사인

상황.

판타지 세상과 현대 사회가 전쟁을 한다고 칩시다. 어느 나라가 이기냐구요?

왜 전면전을 하겠어. 미쳤어?

‘이 개새끼들, 슬쩍 종교 승리 테크를 보려 하네.’

앞에서 나눠주는 성체에도 미사주에도 신성력이 아주 미약하게 담겨 있었다. 당연히 초능력자와 근본적

에너지가 달라 협회 내부에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어도 탐색되진 않는지 매우 당당하고 담대하다.

“처음 보는 형제님 이군요?”

“네, 진로 때문에 견학을 오는 김에 미사도 보고 가려구요.”

“저런… 일요일부터 견학이라니, 꽤 뛰어난 히어로가 되시겠네요.”

생글생글 웃는 인자한 수녀님이… 아니지, 사제님이라 해야 하나? 수녀복을 입은 사제가 말을 걸어온다.

앞에서는 중년 아줌마가 신부복을 입고. 종교적 특색이 강한 복장이라 위화감이 장난 아니다.

남자가 핫팬츠를 입어서 엉밑살을 까고 다니면 불쾌한데, 남자가 수녀복 입고 여자가 신부복 입으니까

불쾌한건 아니고 그냥… 상식이 부정당하는 느낌. 성체를 받는 줄에서 자꾸 말을 걸어오길래 학교에서

임시 발급한 세례증을 보여준다.

군대도 그렇고, 세례명 내려 주는 걸 급속 땡처리를 하다니 참 대단해.

그걸로 사람의 무의식에 종교를 박아 넣는 것도 참 대단하고.

[작품후기]

스토리를 이어나가는건 참 어렵네요.

특히 보더랜드 3를 구입해서 수면 시간이 극단적으로 줄어든 상태라면요.

퍄퍄퍄!

슬슬 다른 모드도 엮일 때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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