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189)

경매

교내에서 업무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수 많은 시큐리티 가드들이 나를 지나쳐 간다. 원래대로라면 교사

들 몇몇이 보일까 말까 한 쉬는 시간이지만 지금은 3인 1조로 돌아다니는 상황. 히어로 협회의 최신 장비

로 중무장한 여성 가드들이 순찰을 도니 자연스레 학생들의 분위기도 무거워진다.

3인 1조의 가드들이 한 층마다 세 팀씩. 복도를 지나가는 학생들도 가드들도 딱딱히 굳은 얼굴. 간이 큰

건지 생각을 안 하는 건지 하늘이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지만, 나로서는 할머님의 직장 겸 내 직장, 거기에

하늘이가 다니는 학교다 보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왜 또 똥 씹은 표정인데.”

“거, 연예인이 진짜 단어 선정을.”

“전 연예인이지 무슨 연예인이야.”

맞은편에 앉아 술잔을 꺾는 예쁘장한 얼굴. 체육계로 살아온 영향 때문인지 여자끼리 외모에 감탄하는

게 좀 그렇지만… 확실히 연예인을 할 만한 얼굴이었다. 성인 여성의 머리 크기가 남고생 머리 크기랑 비

슷하다니. 애초에 하늘이도 되게 머리가 작고 갸냘픈 체구인데.

“그냥, 요즘 학교 쪽이 너무 어수선해서. 기자도 그렇고, 내부 직원들도 그렇고 말이 좀 많네.”

“그런 거를 왜 언니가 신경 써? 어차피 유산으로 받을 것도 아니면서.”

“유산은, 너 진짜 카메라 없다고 주둥아리 대충 놀릴래?”

맥주잔에 소주를 들이붓는 모습에 자작 하지 말라고 술병을 뺏기도 애매했다. 처음에는 애인 옆에 들러

붙은 연예인이라 조금 긴장도 하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친해지고 나니 병신도 이런 병신이 없었다.

연예계 이야기를 들려주다 깨달았는데, 혹시 눈 앞의 이 병신은 석녀가 아닐까? 아랫도리가 젖질 않아 남

자를 못 안는거지. 알딸딸한 취기와 함께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새록 새록 솟아난다.

아니, 왜…

외모 하나는 연예인 급인 하늘이다. 대련 중에 칼바람을 맞아 옷이 찢어져 뽀얀 가슴이 드러났는데, 그걸

보고 하는 말이 ‘흡혈귀는 피부도 두꺼워서 칼바람이 안 통하나?’ 라니. 남고생 밑가슴을 보고 드는 감상

이 방어력에 대한 생각이라니 원.

음흉한 생각을 했다면 기분이 나빴겠지만, 정말 순수하게 싸움 생각만 하니 뭔가 찝찝하면서도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남의 애인을 무슨 전투 병기, 괴물 비슷한 걸로 생각하고 대하니까 그런가.

“아무튼, 부탁했던 물건이야. 나 이거 사진 찍히면 사이 좋게 골로 가는 거 알지?”

“엉, 고맙다 진짜.”

좌탁 밑에서 끄집어내진 007 서류 가방 안에는 검은 가죽 장갑 한 켤레만이 들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A

급 히어로들에게만 제공될 히어로 전용 장비. 살짝 헐렁한 감이 있었지만 팔목까지 당겨 장착하니 새파

란 빛과 함께 손을 꽉 조여온다.

“하여간, B급 예비 부대 주제에 실전 장비를 준비하고 싶다니… 아는 사이가 아니었으면 망상에 찌든 중

2병 히키모코리의 발작이라 생각하고 신고했을 거야, 알아?”

“아, 아니라니까 진짜. 지난 번에도 하늘이가 2구역 슬럼가랑 엮이기도 했고, 너도 슬쩍 조사해서 알 거

아냐?”

“조사… 해 봤지. 별 다른 거 하나 없던데. 뭐 평범하게 생각해보면 ‘흡혈’ 특성이니까 재능은 있어도 능

력 발휘를 못 하다가 잘 먹고 잘 마셔서 그렇게 된 거 아니야? 혈기 왕성한 청춘 둘이 동거를 하면서 피 한

방울 안 내줬을 린 없고. 언니 하는 거 보면 피가 뭐야, 남자한테 간이랑 쓸개도 다 바치게 생겼더만.”

낄낄거리며 잔을 한 번 더 부딪힌다. 투덜대고 잔소리를 하고 핀잔을 줘도 이하린 그녀가 연예인으로서,

히어로로서 큰 위험 부담을 가지고 장비를 몰래 내게 대여한 것은 변하질 않으니까. 쨍 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자 머리 한 구석에서 문득 어린 애인의 생각이 다시 난다.

하늘이는 지금쯤 자고 있으려나.

“경매장 분위기 좋네요. 물건도 좋으면 참 좋을 텐데.”

“솔직히 장담은 못 하겠네요. 어지간한 과학자나 학자가 오지 않는 이상, 알아보기 힘든 물건들도 잔뜩

등장하거든요.”

어두컴컴한 실내, 은은히 비춰지는 은빛 샹들리에.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는 턱시도의 여성이 정중히 마

이크를 잡고, 그 뒤에는 골반만 가리도록 개조된 바니복을 입은 남성들이 망사 스타킹을 신고 나란히 서

있다. 정말 분위기만 좋지 보기에는 안 좋네.

경매의 진행은 평범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열심히 혀를 놀리면, 뒤에서 바니걸 슈트의 남성들이

과장된 포즈로 물건을 덮은 천막을 치우고 카메라로 물건을 360도 보여준다. 일반석과 VIP석으로 나뉜

객석에서 무릎 위의 홀로그램을 툭툭 건드려 가격을 정하고 원하는 만큼 입찰한다. 이 부분만 보면 지하

도시가 아니라 그냥 미술관이라 생각했을 정도.

“야, 이 개쉐이야! 남의 물건에 누가 입찰하냐!”

“너 3구역 똘갱이 마! 내가 기억해 둔다!”

경매 담당자 중 하나로 이름 올리고 있는 김한나의 빽으로 나는 VIP석에서 아래의 일반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기가 입찰한 금액보다 5만원 올리니까 화가 나서 소총을 꺼내 들다 가드에게 잡혀가는 아줌마,

원하는 사치품이라도 있는지 남자가 홀로그램 패널 밑으로 기어들어가자 허리를 들썩이는 여자. 이웃 사

촌 조직인지 느그 누님 우리 누님 이름 들먹이면서 싸우다 똑같이 끌려가는 조폭들.

칸막이가 없는 일반석과, 개인 룸이 주어진 VIP는 서비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원초적으로 경매를 방해받

나 아닌가의 차이 같았다. 물론 서비스가 훌륭하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남성 VIP도 많은지 교육 잘

받은 여성이 있었으니까.

저 일반석처럼, 내 홀로그램 패널 밑에.

“이번에는 뭐 특이한 물건이나, 주목받는 물건 없어?”

“네 뭐… 그때 말씀하셨던 강화석은 30개 묶음으로 하나 있지만 특별하다는 물건은 없네요. 있다 해 봐

야 골동품상이 어디서 도굴해 온 도자기 정도? 근데 말이 도자기지 거의 항아리라 별로 인기도 없을 것 같

네요.”

뜨뜻 미지근한 입김이 귀두 끝을 간질인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점차 피가 쏠려 늘어나는 내 물건에 기

쁘다는 듯 슬쩍 입꼬리를 올려 보인 여성이 그대로 물건을 입 안으로 집어넣는다. 귀두 끝자락부터 기둥

뿌리까지 뜨거우면서도 축축한 점막에 휘감긴다.

“원래 그렇게 좋은 물건이 없어요? 하긴 어차피 마약이나 총기, 인신매매니까 경매 물품으로는 안 나오

려나.”

“경매장에 올라오는 대부분은 히어로 협회 쪽 장물입니다. 일단 훔치긴 훔쳤는데 처리할 줄 모르니까 경

매에 참여하는 거대 조직에 넘기는 거죠. 대부분의 물건이 그렇습니다. 비싸 보여서 훔쳤는데, 빌런이랑

다툼이 있어서 전리품을 얻었는데, 몰래 어디 연구실을 털었는데 이게 뭔지 모르니까 복권 긁는 기분으

로 파는 거죠.”

쉽게 말하자면, 여기서 열리는 경매장은 희귀한 물건을 구해가는 곳이 아니라, 그냥 지하 도시에서 마약

과 인신매매 등으로 쌓이고 쌓인 재화를 과시하기 위한 복권 가게라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인간의 본성

은 확률성 뽑기(가챠)에 물들어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쭈읍하고 훅 빨아들이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지만 강화된 청력에만 살포시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여서

대화에는 지장이 없었다. 마치 강제로라도 정액을 뽑아내겠다는 것처럼 강렬히 빨아들이면서도 소리 하

나 내지 않는 다니, 역시 이런 쪽으로도 교육을 받는 걸까.

“흐음… 아무튼, 오늘 물품 목록 같은 건 없어?”

“홀로그램에서 이 부분을 누르시면 나옵니다.”

왼쪽 모서리를 툭툭 건드리자 360도 캠 화면에서 글자가 가득한 목록으로 넘어간다. 가격 순으로 정렬된

건지 싼 물건은 고작 100만원 근처. 미군 수류탄 한 박스가 대체 왜 여기서 개당 10만, 12개 1박스 100만

원 떨이로 판매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다른 기능 같은 게 없으면 나가봐도 되요.”

“네, 그럼 원하시는 물건을 구매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꾸벅, 김한나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방 밖으로 나가자 마자 깊은 한숨이 밀려나온다. 척추 끝자락에서

밀려와 반사적으로 허리가 움찔거리는 쾌락. 홀로그램을 일그러트리며 올라오는 날카로운 눈매의 여성.

이름도 모르는 VIP룸의 도우미가 배시시 웃으며 눈을 마주친다.”

“그래서… 또 다른 요구 사항 있으신가요, 고객님?”

요망스러운 말투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왼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꾹 누른다. 말없이 다시 홀로그

램 아래로 내려가는 그녀가 이전보다 깊숙히 내 물건을 삼킨다. 숨이 조금 막혔는지, 아니면 연습용 딜도

가 내 물건보다 작았는지 조금 켁켁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나랑은 상관없지.

오른손으로 홀로그램 목록을 두드리니 가끔 히어로 협회에서 훔쳐 온 보급형 무기들이 보인다. 하지만

소희는 손등에 성검이 있으니 전혀 쓸모 없겠지? 성기 뿌리를 혀 끝으로 꾹꾹 눌러오는 깊은 이마라치오

의 감촉에 그대로 머리를 짓누르며 목 깊숙한 곳에 정액을 내뿜는다.

그래서, 소희는 지금쯤 이하린이랑 한 판 붙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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