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최면을 건 김민혁을 포함한 몇몇 학생들을 지하 도시에 팔아 넘겼다. 고문을 당하기 전에 적당히 정보를
넘기도록 만들어 놓은 상태. 경비를 맡은 사람 중 제일 위협적인 소희는 나랑 점심 시간마다 딴 짓을 한다
는 걸 알고 있겠지.
거기에 다른 녀석들에게도 최면을 걸어, 김민혁을 학생 회장이라고 소개하도록 했다. 스스로가 학생 회
장이라고 말하고, 납치당한 여러 남학생들도 그를 회장이라고 부를 테니 믿을 수밖에 없겠지.
“어서 오세요! 2-3B 카페입니다!”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간이 냉각기 판매 중입니다!”
학생회장에게서 얻어낸 경비 계획. 추가로 학교가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축제. 아마 그 사이에 섞여서 빌
런들이 들어올 것이다. 귀중한 초능력 배터리인 김민혁을 던져줬는데 반응이 없다면 먼저 밀고 들어가는
수 밖에.
-입구를 통과하는 초능력자 확인. 학부모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말씀하셨던 여성 발견했습니다.
귓가에 허스키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마구잡이로 울린다. 굴라 두 명 가지고는 일이 귀찮을 것 같아 김한
나에게 빌려온 사람들이다. 범죄 기록 없이 물건 배달하는데 쓰이는 사람들이라던 검은 양복의 여성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 학교 교문 경비와 내부 가이드가 되어 있었다.
‘미친년… 존나 유능하네.’
교문 가드로 꽃아 넣는 일이야 쉽다. 지하 도시가 히어로 협회와 어느 정도 연결이 되어 있었으니까. 내부
로 오는 것도 아니고 정문에 멀뚱히 서 있을 아르바이트생은 손쉽게 조작할 수 있었겠지. 그런데 내부 가
이드는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내부 가이드는 말 그대로 시설물을 안내하는 사람들. 학부모 말고 미래의 인재를 확인하러 온 히어로 협
회나, 초능력자를 고용하는 민간 기업의 높으신 분들에게 학교 시설을 안내하고 기부금을 뜯어 내는 사
람들이다. 거기에 손을 쓰는 게 가능한가?
‘교사들 중 거래하는 사람이 있나?’
뭐, 아군이 유능하면 나야 좋지. 더군다나 내가 신경 써서 챙겨주지 않을 아군이라면 더욱 좋고. 반에서
겉도는 날라리 남고생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 반 축제에 참여하지 않고 돌아다니니 더더욱 좋다.
역시 처음부터 막 나가니 얼마나 편해. 전학 오자 마자 선배들 턱을 부쉈더니 반에서 하는 전시회 제작을
돕지 않아도, 걔가 그렇지 뭐~ 하고 다들 넘긴다. 선배 턱을 부수고 A급 히어로랑 대련을 하는 걸 아니꼬
워하긴 하지만, 자기들과 급이 다르니 대부분 조금 질투하고 마는 수준.
여학생들이 나를 대상으로 음담패설을 자주 하지만 그걸로 성적 수치심을 느끼기엔 너무 많이 굴러먹었
다. 애초에 여고생들이 내 엉덩이가 잘 빠졌다느니, 팔목이 섹시하다느니 말하는데 내가 그 이야기에 수
치심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
“볶음 우동, 타코야끼 팝니다!”
“빙결능력자가 만든 아이스바 팔아요!”
“오렌지 세 개 주세요, 아… 잔돈 있나요?”
철판 위에서 염동력으로 화려하게 썰리는 야채와 허공에 떠올라 쭉쭉 뿌려지는 소스들. 미지근한 음료수
를 길쭉한 통에 따른 뒤 순식간에 얼어 아이스 바로 변한다. 구 교사에서 파는 먹거리들 대부분이 간단한
초능력으로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 바빴다.
몇 명의 대놓고 수상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아마추어라지만 저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날카로운 눈매의 여성과, 그보다 덩치가 좀 큰 여성이 버터 구이 오징어를 질겅 질겅 씹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흩어본다. 학부모로 보이지도 않고, 초능력자 관계자라고 보기에는 복장이 조금 흐트러지고 불
량한 상황.
“이야… 이쯤이면 되려나. 어떻게 생각해?”
김민혁의 눈을 통해 봤던 근육 여성이 지나가던 어린 중학생 소년을 보고 입맛을 다신다. 초능력자 구경
에 신난 소년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몇몇 감각이 예민한 사람들의 시선이 날아든다. 학교 축제에 숨어든
변태, 아니면 진상 정도로 생각하는 경멸의 눈길.
“실례합니다, 선생님들. 잠시 협조 부-”
몇 명이 수근거리더니 양복을 입은 가드가 다가온다. 인 이어를 만지작 거리는 모양새를 보니 훈련을 매
우 잘 받은 모양. 조금이라도 반항하거나 수상하면 즉시 허리춤의 삼단봉으로 지져버리겠지. 상대가 고
위 초능력자가 아니었다면.
“으하핫, 예의 차리고 자빠졌네!”
우드득, 사람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전부 모인다. 턱과 정수리의 위치가 바뀐 가드가 뜯
겨 나간 목 근육에서 피분수를 흘리며 바닥에 주저 앉는다. 그래도 C등급 육체 강화의 가드지만 손도 쓰
지 못하고 그대로 당한 상태.
“구교사 3층 2관 지워아아악!!”
손 끝에서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만들어내며 통신을 시도하려던 가드 또한, 근육 여성의 일행에게 등 뒤
에서 칼빵을 맞고 쓰러진다. 복도를 흥건하게 적시는 피, 비명과 함께 사방 팔방으로 흩어지는 사람들.
“2인 1조로 넓게 커버하다 보니 경비의 질은 형편없는데?”
“고작해야 학교 축제에 B급 히어로를 잔뜩 동원하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
시체 위에서 씨익 웃는 모습에 몇몇 심지가 약한 사람들은 주저 앉거나 기절해 도망치지도 못했다. 그와
동시에 창 밖에서 들려오는 동시 다발적인 폭음. 화약이 터지는 소리, 건물 외벽이 무너지고 창문이 깨지
는 소리. 통유리가 무너져 내리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익숙하다 못해 포근한 감각.
“이야… 시작부터 좋은 걸 발견하네.”
멍하니 그 소리를 감상하며 서 있자 근육질의 여성이 셔츠 단추를 뜯어내고 내 가슴을 어루만진다. 눈동
자가 붉어지고 송곳니가 길게 자라나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다. 거칠어진 숨결을 오해했는지 그녀가
깔깔 웃으며 나를 제 옆구리에 끼워 희롱한다.
“걱정 말라고, 너처럼 예쁘장한 애들은 안 죽이니까.”
죽일까? 지금이라면 수십가지 방법으로 죽일 수 있다. 당장 목을 뽑아버려도 좋고, 죽을 때까지 피를 빨
아도 맛있겠지. 접촉한 피부로 맹독성 체액을 흘려 넣을 수 있고, 유혹해서 섹스를 해서 뇌를 익혀버릴 수
있다.
‘…조금만, 더 참자.’
하지만 이 녀석은 빌런 조직의 주요 인물 중 한 명. B급 중에서도 상위권으로 보이는 녀석인데 허망하게
죽여버리면 소희가 얻을 공적이 줄어든다. 내가 죽이고 소희의 공적으로 돌리고 싶지만, 소희의 성격상
그럴 수 없겠지.
“네… 살려만 주세요.”
눈꼬리를 낮추고 애원한다. 선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팔아 넘긴 싸이코패스 남학생과 전혀 다른 사람으
로 보일 정도로 인상을 바꿨다. 사실 소희의 공적 보다 소희의 각성을 원하니까.
예전 옆 구역 하수구에서 구울들로 자작극을 벌였을 때, 눈이 돌아가서 달려온 소희의 발차기. 구울 수십
을 일격에 박살낸 그 것. 그 기이하게 강력하고, 강력하면서도 부드러워 피아 식별을 완벽하게 해낸 일격.
신체 강화 능력자는, 말 그대로 신체가 강화되는 것이다. 아파트를 뛰어 넘고 총알을 맨 몸으로 막아 내며
자동차 보다 빠르게 달리는 육체.
하지만 아파트를 뛰어 넘는 각력이라도 하급 구울 수십을 고작 ‘풍압’ 따위로 박살낼 수 있을 리 없다. 그
정도 바람이라면 단순한 근육의 힘이 아니라 초능력의 힘이 깃들어야 하니까. 이하린 정도의 능력은 아
니더라도 꽤 높은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소희는 육체 강화 능력과 풍계 조작 능력을 동시에 지녔는가?
히어로 VS 빌런 모드의 NPC들은 하나의 초능력만 지닐 수 있는데?
내가 괜히 마법을 숨기고 있겠는가. 흡혈귀 ‘화’ 라는 능력으로 어중간하게 능력을 숨기는 것은 힘숨찐 놀
이가 아니다. 괜히 자리 잡기도 전에 협회의 과도한 주목을 받기 싫어서 그러지. 초능력은 셀 수 없이 다
양하지만 한 사람이 하나. 그게 이 동네 국룰이다.
“으하핫, 어린 놈이라 그런지 부드럽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나를 옆구리에 끼고 돌아다니는 거구의 여성은 왼 손으로 내 가슴과 몸
을 주물럭거리며 오른손을 휘저어 학교 건물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거구에 알맞은 크고 탱탱한 가슴 까
지는 마음에 들었지만, 거친 손놀림과 얼굴이 취향에 맞지 않으니… 이대로 기다리다 소희의 첫 희생양
으로 만들면 되겠다.
“야, 얌전히 있으면 살려주실 거죠?”
나보다 머리 하나 반은 높이 있는 못난 얼굴이 나를 내려다본다. 마주치는 눈동자, 그리고 저항 하나 없는
녀석. 육체 강화에만 모든 능력이 몰렸는지 정신 계열 내성은 없나 보다. 가끔 레어 육체 강화 능력자
NPC들은 육체만 강화되는 게 아니라 심기체가 같이 강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녀석은 아니고.
“…그럼, 너 같은 이쁜이는 곱게 데려가야지.”
멍하니, 내 눈동자를 바라보던 녀석이 히죽 웃으며 뺨을 핥는다. 침 냄새가 기분 나빠 정화 마법으로 얼굴
을 씻는데도 눈치를 못 채는 거구의 여성. 정말 주먹질에 모든 스탯이 몰렸나 보다. 옆에 있던 칼잡이도
능력이 높은 건 아닌지 주변을 경계하지만 알아차리지는 못 했다.
슬쩍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니 11시 40분.
학교 축제라 휴가를 사용해 소희가 나랑 만나기로 한 시간은 12시.
주인공 등장까지, 20분.
[작품후기]
핫산... 글 쓴다... 더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