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
과도할 수준의 저자세. 상대가 원하는 걸 읽는다는 건 알겠는데 왜 이렇게까지 굽힐까. 원하는 걸 읽는 게
전부가 아닌가?
“안녕하심까, 도련님!”
“특별히 공수해온 와인입니다. 해산물과 육류 어느 쪽을 준비할까요?”
소파에 앉혀 놨더니 첫 대면에 부탁부터 드리는 건 마음이 편치 않다면서 대접부터 받으시라던 녀석. 밖
에 나가서 필사적으로 휴대 단말기에 소리를 지르기에 병력이라도 끌고 오나 싶었는데, 우르르 몰려온
것은 호스티스를 비롯한 접대부였다.
※
“같이 오신 두 분도 따로 접대해 드리려고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바닥에 정좌 자세로 앉아 있을 때도, 소파에 앉아 마주보고 있을 때도 조직 보스의 위엄을 유지하던 김한
나라는 여성. 하지만 통화를 마치고 방에 들어오니 꼿꼿한 허리는 구부정하게 숙여졌고, 여우 같이 비열
해 보이던 눈매는 아래로 한껏 내려가 비굴하다 못해 불쌍해 보이는 수준.
‘뭐지 이 새끼… 이래서 살아 남았나?’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실컷 놀아보라고 두 굴라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니 헐벗은 복장의 남성들이 우
르르 몰려와 두 명에게 매달려 끌고가는 수준으로 사라진다. 결국 방 안에 남은 것은 나와 김한나 단 둘이
었지만 정중한 노크 소리가 나오자 마자 허리를 90도로 꺾어 보이더니 들어오는 여성들을 뚫고 도망쳤
다.
들어온 여성들은 다양했다. 양복 차림의 여성이 내 소파 뒤에 기립하고, 조금 편하게 보이는 옷을 입은 여
성 셋이 맞은 편 소파에 앉는다. 새하얀 요리복을 입은 여성이 테이블 위에 다시 요리를 올리기 시작하자
맞은편의 세 명이 뭔가 말하기 시작한다.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셔서 그런지 방이 너무 후끈 달아올랐네요.”
그 말과 동시에 화려한 금발 머리의 여성이 얇은 상의를 훌렁 벗어버린다. 가볍게 태닝한 구릿빛 피부는
전소희 보다 매끈하진 않았다. 하지만 연하게 드러난 11자 복근과 오똑 솟은 물방울 모양 가슴은 남성의
성욕을 부추기기엔 충분했다.
‘그나저나… 이거 호스트 애들 아닌가?’
여자를 끼고 놀 때는 엉겨 붙어서 가슴이나 허벅지 등을 만지게 해 주는데, 남자로 접대할 때는 이런 식으
로 보여주면서 노는 건가? 남성으로서 호스트가 뭘 하는지 본 적 없는 내게 이 장면은 꽤나 신선했다.
내가 게이도 아니고, 호스티스(여성)대신 호스트(남성)를 끼고 놀 리 없었으니까.
“그래? 현금 챙겨 온 것도 없는데 열심히 하네?”
“어우, 도련님처럼 아름답고 귀한 분 모시는데 어떤 여자가 돈까지 받으려 들겠습니까?”
윗도리를 벗어 던진 여성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술잔에 술을 따른다. 옆자리에 앉았지만 피부는 닿
지 않게, 그리고 태도는 정중하게. 경박한 외형과 대비되는 정중한 태도가 뭔가 신기하다는 기분이 들었
다.
‘직접적인 터치는 없는 건가.’
하긴, 호스티스가 접대 받는 남자를 만져준다면 당연히 남자는 기쁘겠지만, 호스트가 접대 받는 여자를
제 멋대로 만지면 그것도 그것대로 큰일이겠지.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출렁거리는 가슴을 보
니 기분은 확실히 풀리는 것 같다.
내 시선이 웃통을 벗은 여성의 가슴에 쏠리는 걸 확인한 맞은편의 두 명도 셔츠를 벗는다. 검은 긴 생머리
의 지적인 여성, 동글동글 귀여운 인상의 단발머리, 화려한 금발 태닝녀. 새하얀 피부와 태닝된 피부가 대
비되니 눈이 즐겁다.
“최고급 품질의 한우 특수 부위입니다. 좌측부터 순서대로 드셔주시기 바랍니다.”
내 옆과 앞에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있는 여성들과 달리 새하얀 요리사복을 입은 여성은 자그마한 돌판
위에 한 입 크기로 정리된 소고기를 한점 한점 굽고 있었다. 테이블 옆에서 고기를 굽는 요리사, 정중하게
고기 한 점씩 서빙 하는 검은 양복의 여성. 그리고 그걸 젓가락으로 집어 들어 내 입가로 가져다 대는 가슴
을 덜렁이는 여성.
‘뭔가 개판이긴 한데…’
양복의 여성이 정중하게 자리를 잡던, 요리사복의 여성이 내가 먹는 속도에 맞춰 고기를 한 점 한점 굽던
말던. 신경조차 쓰지 않고 세 여성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한다. 대부분은 내 외모에 대한 아부. 하지만 내
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나저나 들으셨어요? 이번 경매장에는 특이한 물건이 나왔다던데.”
“아, 맞아. 저주를 막아주는 부적이던가, 그런 게 왜 나왔었지?”
내가 연예인급 미모를 가졌다는 주제로 시작해서 자신들이 봤던 연예인 이야기로, 거기서 화장품 이야기
로, 화장품에서 양복과 명품 이야기가 돌고 돌아서 사치품과 경매장 이야기까지 넘어갔다.
“그 이야기, 좀 더 해봐.”
드디어 자신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져준 것이 허락의 의미라고 생각했을까? 슬그머니 몸을 접근하는 금
발의 여성. 팔뚝에 닿는 풍만함은 소희에 비교할 수 없지만, 적어도 피부의 매끄러움은 대단했다.
몸을 붙여서 기대올 줄 알았지만 꼿꼿하게 서 있는 걸 봐선… 내가 기대는 건가. 슬쩍 몸을 옆으로 뉘이니
가슴을 베게 삼아 내가 옆으로 편히 눕게 해 준다. 코 끝으로 느껴지는 여성의 살결 냄새와 옅디 옅은 향수
냄새. 그리고 젖가슴에서 나는 우유 냄새.
“…향수, 엄청 연하게 뿌렸네?”
“네, 신체 강화 능력자 분들은 가끔 후각이 예민하신 경우가 있어서요.”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옆으로 눕자 다른 두 명이 다가온다. 단발머리가 신발을 벗겨 발을 주물러 주기 시작
하고 긴 생머리가 소파 뒤로 돌아가 등받이를 눕혀 간이 침대처럼 바꾼다. 성적인 서비스를 생각했지만
그냥 지금도 마음에 들어 가만히 몸을 맡긴다.
뺨에 와 닿는 부드러움에 입을 벌리자 맞은 편에서 기다란 젓가락이 적당히 식은 소고기를 한 점 가져온
다. 입을 벌려 부드러운 고기를 몇 입 씹으니 내 뺨을 기대고 있는 가슴 위에 술잔이 다가온다.
“한 잔, 드시겠어요?”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가슴골을 타고 호박 빛 양주가 천천히 흘러내려온다. 그대로 입을 살짝 벌리니 뺨
에 살짝 묻으며 입 안을 적시는 양주. 생각보다 도수가 강해 향이 훅 풍겨오며 혀에 남은 기름기를 날려버
린다.
“그러니까… 지하 도시에는 주기적으로 경매가 열려요. 대부분 히어로가 추적하고 있는 도난품이나, 다
른 지하 도시에서 만든 불법적인 무기 같은 종류죠.”
“뭐… 80% 정도는 지하 도시의 경매장 소식을 듣고 몰래 찾아온 바깥 손님을 속이기 위한 가짜 물건이
지만요. 그런데 이번에 무슨 이상한 부적이 나왔는데 그걸 높으신 분이 사 갔어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조직은 가짜 장물의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 진짜라는 소리인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부적을 만드는 초능력 같은 건 생각하기 힘든데… 종이에 뭘 부여하는 초능력
자가 부적이라고 속여 판 걸까요?”
가슴골의 술을 닦아내고 나를 껴안은 여성이 귓가에 속삭이자 다리를 주무르던 단발 여인이 말을 받는
다. 세 여인이 수다를 떨 듯 내게 말을 하다 슬쩍 눈치를 보길래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휘저었다. 따듯한
체온과, 은은하게 퍼지는 향수. 발과 뻗어진 팔을 마사지하는 보드라운 손길.
“정보는 좋은데 향수로 장난질 치다 뒤진다 진짜…”
나른하게 말하니 대화가 잠시 중단되었다, 목이 타는지 독한 양주를 한 입씩 마신 그녀들이 다시 이야기
를 시작한다. 코가 예민할 까봐 살짝 뿌린 게 아니라, 약 성분이 들킬까 연하게 뿌린 건가. 어쩌면 그녀들
에게 해로워서 적게 뿌린 걸지도 모르지.
“그래도 마사지는 기분 좋아서 봐 주는 거야. 부적, 누가 팔았는지는 모르고?”
“네… 뒷골목에서 골동품이나 장물 떼 오는 약소 조직이 상납했다는데 그런 조직이 한 두개도 아니고. 막
말로 이 바닥에서 덩치가 크지 않은 조직 전부라는 뜻이니까요.”
화로의 불이 꺼지고, 방 안을 채우던 고기 냄새가 빠르게 사라진다. 손을 뻗어 밑 가슴을 툭툭 건드리니
눈치 빠르게 술 한모금이 가슴골을 타고 내려온다. 그 때 코 끝을 간질이는 달콤한 냄새.
“능력자가 정화한 용정차입니다. 다른 디저트를 내올까요?”
드러누운 채로 몸을 돌리니 소파 뒤에는 아직까지도 요리사와 양복을 입은 여성이 대기하고 있었다. 뜨
거운 건 취향이 아닌데.
“차가운 거 한 잔 주고… 나가 봐. 너희 말고.”
발을 주무르던 여성이 어벙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길래 발을 뻗어 어깨를 눌렀다. 그 덕에 누워 있다
기 보단 정말 널부러진 것처럼 사지가 이리 저리 뻗어 나갔지만 뭐 어떠랴.
“예, 도원사에서 재배한 천도 복숭아로 만든 아이스티입니다.”
‘…그건 또 뭐야.’
내가 아는 아이스티는 이런 게 아닌데. 긴 생머리의 여성이 컵을 받아 들고 내 앞에 무릎 꿇어 빨대를 입가
에 가져다 댄다. 가슴으로 나를 껴안은 금발녀, 음료가 미지근해질 까 잔에 손도 대지 않고 쟁반 째로 음
료를 대령한 생머리녀.
“그…”
그리고 어벙하게 발을 계속 주무르는 단발의 여성.
“발은 그만하고… 여기부터 어떻게 해 봐.”
슬며시 허리띠를 톡톡 건드리니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상태로 슬금슬금 다가온다. 여기서 입으로 봉사하
라 하면 내가 아니라 그녀가 호강하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