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189)

닥쳐오는 공포

남편이 집안일을 해 준다. 주부에게 있어서 꽤나 좋은 이야기 아닐까. 왜, 로봇 가정부가 보급되지 않던

과거에는 이걸로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는 기록이 있던데. 하지만 요즘 들어서 잘 하는 사람이 맡아서 전

부 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 새록 새록 든다.

“이게 몸에 좋다더라! 방송에 나온 레시피인데~”

요즘 소희가 비타민인지 바이타민인지 빌어 처먹을 건강 방송을 몰아서 보기 시작했다. 흰 쌀밥에는 갑

자기 렌틸콩인가 뭔가 하는 것이 들어갔고, 집 식탁 구석에는 그녀가 챙겨온 온갖 건강식품이 자리를 차

지했다. 클로렐라, 오메가, 카카오 닙스, 렌틸 콩….

“저기… 누나? 찌개에서 탄 냄새가 나는데.”

“몸에 좋은 거 넣어서 그래.”

전업 주부도 아니고, 그냥 27살 군필 자취생의 요리 실력에 건강 식품이 섞여버렸다. 이 무슨 끔찍한 혼

종이란 말인가? 당장이라도 내가 요리를 하고 싶지만 문제는 에너지 드레인으로 인한 포화 상태와 전이

상태를 하루에 두, 세번씩 오가는 나의 체력에 있었다.

먹자니 맛이 애매하다. 맛이 없는게 아니다. 애매할 뿐. 먹자니 먹을 만한데 뭔가 미묘하게 이상한, 다시

먹기는 싫은 그런 맛. 집 밥이니까 참았지 식당에서 돈 받고 팔았으면 클레임 걸… 지는 않고 다음부터 그

식당에 가지 않을 맛.

그렇다고 내가 다시 요리를 하자니 몸이 지친다. 필터로 삼은 여자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섹스를 해서 간

접적으로 느긋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그녀가 팔뚝을 내밀면 살점까지 같이 뜯어 버릴 정도로 날

것의 흡혈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청소를 제외한 모든 집안일은 그녀에게 부탁했다. 남자 자존심이 있지 푹 쉬지 않으면 밤에 힘을

못 쓸 것 같으니까. 나날이 발전해가는 A급 초능력자와 대련을 하는 것은 내게 있어서도 부담스러운 일이

었다.

‘빌어먹을 영웅 학교…’

더군다나 지금은 2학기. 햇빛도 쨍쨍한데 건물에 돈을 많이 들였는지 햇빛이 건물 안으로 잘도 들어온다.

수업도 오전부터 오후까지 전부 실습인데 막대한 돈을 내면서까지 학교 교사가 된 최초의 A급 히어로의

실습을 막을 수 있는 사람도 학교에 없었고. 레벨은 급격히 올라가지만 너무나도 귀찮았다.

그냥 느긋하게 소희를 A급, S급 만들어서 내조하면서 편히 쉬려고 했는데, 이러다가 내가 먼저 S급 되겠

네. 이딴 식으로 A급과 엮일 걸 알았더라면 강정태와 김민혁을 먹어버리는 게 아니었다. 그 두명까지 합

쳐서 대련하면 쉴 시간이 늘어났을 텐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두 사람의 잠재력은 내가 쪽쪽 빨아먹어서 여전히 성장이 멈춘 상태인데. 준 A

급의 육체에 꼼수로 사용하는 마법, 그리고 100년이 넘는 전투 감각으로 겨우 비빌 수 있는 게 A급 히어

로 이하린이다. 강정태나 김민혁이었으면 시작한지 1분 안에 바람 칼날에 온 몸이 박살이 날 거다.

“자자, 밥 먹자!”

렌틸콩이 섞인 잡곡밥. 뭔지 모를 해초가 섞인 김치찌개. 클로렐라가 섞인 햄버그 스테이크.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수저를 떴다. 되려 맛 자체가 나쁘진 않으니 같이 식사하는 소희도 평온한 표정.

“내일부터는 다시 내가 요리 해 줄게.”

“음, 괜찮겠어?”

다른 건 몰라도 클로렐라는 괜찮지 않다는 말을 목구멍 아래로 우겨 넣고 식사를 마저 했다. 대충 먹고 다

른 곳에서 군것질이나 해야겠네.

창 밖에는 맑은 밤 하늘이 펼쳐져 있고, 커다란 보름달이 거실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광경

하나만 보고 그녀는 이것이 늘 꾸던 꿈이라는 것을 깨닫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코 끝에 풍겨오는 냄

새.

“이리 와서 앉아요, 요즘은 꽤 얌전하네요?”

“어, 아… 음…. 예.”

등 뒤로부터 쓰다듬으며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음탕하게 들러붙는 것도 아니고, 온 몸을 노곤하게 풀어주

는 포옹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려오고, 식탁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역시 꿈인가.’

집안 냉장고에는 인스턴트 식품밖에 없는데 식탁에는 잘 구운 소고기가 올라와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

하자면 소고기만이 아니다. 등심과 채끝, 삼겹살과 목살, 오븐에서 구운 통닭과 근처 시장가에서 파는 핫

윙 같은 치킨들.

식탁 위는 말 그대로 고기로 가득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닭다리를 집어 들고 오물 오물 식사

를 하고 있는 소년. 그 모습에 나도 식탁에 앉아 젓가락으로 채끝 스테이크를 하나 집어 들었다. 혀 끝에

서 느껴지는 고기의 육즙과 적절한 후추의 맛. 그렇게 아무 말없이 식사를 계속해 나갔다.

‘이렇게 먹으니 신기하긴 하네. 중학생때였나, 이렇게 밥상을 차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

퍽퍽한 닭가슴살 때문에 인상을 찡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아까까지 없던 음료수 캔들이 잔뜩 생겨

났다. 콜라와 사이다 같은 탄산부터 맥주나 와인까지. 고급스러운 입맛은 아닌지라 익숙한 콜라를 들이

켠다.

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가스 때문에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앞을 보니, 어느새 식탁 위에 가득했던 음

식들은 사라진 상태. 손에 쥐어진 콜라는 어느 순간 도수가 높은 흑맥주로 변해 있었다. 빨간 콜라 캔이

아닌 낯선 맥주 상표를 보니 훅 취기가 올라와 머리가 어질어질 해진다.

‘역시… 그냥 넘어갈 리 없지.’

저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을 베낀 무언가는 그런 존재니까. 고작 맥주 한 캔으로 올라올 리 없는 몽롱함에

몸을 뒤로 기대였더니 등을 받쳐줄 딱딱한 의자 등받이 대신 푹신한 이불의 감촉이 느껴진다. 정신을 차

려보니 어느 새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

“뭐야…?”

무릎 아래에서부터 보드라운 손이 간질이며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쾌락보다는 노곤함이 느껴지는 마사

지. 하지만 어떠랴, 어차피 꿈인 것을. 요즘 피곤했나 싶어 온 몸을 맡긴다. 귀 뒤에서 시작해 목덜미를 따

라 등골을 눌러주는 손길이 있고, 가슴 끝자락을 간질이며 출렁거리게 문지르는 손길이 있었다.

두 눈을 감자 몸에서 힘이 쭉 빠지며 기분 좋게 늘어지는데 코 끝에는 계속해서 식탁 위에 차려졌던 고기

만찬의 냄새가 맴돈다. 다이어트를 했던 반동일까, 하긴 치킨을 시켜 먹은 지 2달은 된 것 같은데.

‘내일 일어나면 저녁은 치킨 배달이나 시켜 야지…’

“후으으… 아, 기분 좋다.”

“여기가 좋아요? 음… 본 게임은 하지도 않았는데.”

“네 맘대로 해. 늘 그랬듯이.”

출렁거리는 가슴을 툭툭 건드리는 손길이 느껴진다. 어째서인지 고양이가 꾹꾹이를 하는 광경이 떠올라

눈을 감고 큭큭 웃고 있으니 온 몸을 어루만지던 손길이 조금씩 느릿하게 변한다. 맨날 울부짖으며 섹스

나 했는데,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네. 변태적 취향이 개발되어도 정상적인 부분이 남아 있다는 것에 감사

해야 할까.

“치킨이라… 어디 치킨이 맛있어요?”

“배달지구 2블록에 있는 통닭집에서 간장 전기구이 통닭이 맛있지…”

가슴을 만지작거리던 손길이 그대로 팔뚝으로 옮겨간다. 살짝 부드러운 살이 있는 팔뚝. 근육질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고, 찌고 싶어도 더 이상 찌지 못하는 내 몸. 성욕을 자극한다기 보단 마치 측정이라도 하

듯 몸의 군살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눈을 슬쩍 떠 보았다.

“그럼 그렇지.”

“왜요?”

목소리는 들려오는데 소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더위에 확실히 지치긴 했나보다. 문득 속마음으로

불안감이 파도처럼 닥쳐온다. 음… 아직 젊은 나이인데 성 불구는 아니겠지. 이 나이에 남친도 못 사귀어

보고 석녀가 된다니. 이 무슨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성욕보다 식욕, 식욕보다 휴식을 원하게 된다니.

더군다나 이 꿈은 나의 깊고 깊은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 지는 공간이 아닌가?

오싹함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니 몸을 주물럭거리던 보이지 않는 손이 사라진다. 식탁에 가서 대충 주

저 앉으니 아까 먹다 남긴 음식들이 조금도 식지 않은 상태로 다시 등장한다. 정말 성욕 보다는 식욕이라

고? 내가?

“아 씨, 이 나이에 젖지도 않는 건 진짜 비참한데…”

머리를 싸매고 있자니 맑고 명랑한 웃음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진다. 아하하핫! 하고 크게 울려 퍼지는 남

자 아이의 웃음 소리는 내가 살면서 들어본 적 없을 정도로 크고 우렁차게, 그리고 맑게 울려 퍼지고 있었

다.

“이제는 내 꿈까지 나를 비웃네.”

닭 날개를 하나 붙잡고 뜯어 먹고 있으니 세상이 빙글 빙글 돌아간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마셨던 콜라, 술

로 변했었지…?

눈꺼풀을 건드리는 햇빛에 인상을 찌푸리고 잠에서 깨어난다. 역시 음식이나 술의 흔적 따위는 없었다.

아침 샤워를 하기 전 휴대폰으로 급히 다운 받았던 야한 사진을 띄워본다. 남자 연예인의 사타구니가 불

룩하게 올라온 움짤. 그 모습을 보고 클리를 어루만지니 아침부터 팬티가 축축히 젖어가는게 느껴진다.

“다행이다… 진짜…”

어째서인지 귓가에 소년의 웃음소리가 다시 한 번 들리는 듯 했다.

[작품후기]

진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과제에 예습 과제가 생겼습니다.

교재 1챕터를 예습하고 요약하는 과제...

1점짜리 안 맞는 교양 하나는 F각 잡고 전공에 몰빵하는 요즘입니다.

하... 언제 방학이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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