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과 벌
여성의 몸은 신비하다. 같은 단백질에 같은 지방인데 어쩜 이리 남성의 것과 다를까. 남자의 통통한 뱃살
을 만지는 것은 역겹지만 여성의 애교살을 주물럭거리는 건 즐겁다. 남성의 근육을 쓰다듬는 일 따위는
내가 살면서 겪을 리 없겠지만 여성의 근육을 만지는 것은 손바닥에 쾌감까지 느껴진다.
지금도 그렇다.
“히, 히에게…”
여자가 내기에는 조금 칠칠 맞은 소리지만 어쩔 수 없나. 옆에서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김세민이 질린
눈으로 나를, 정확히는 침대에 누워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자신의 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성의 몸을
가지고 노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조금 많이 놀아버렸다.
“그, 그게… 포상 감사합니다!”
고개를 돌려 김세민과 눈을 마주치자 여기서 끝내고 싶다는 듯 구십도로 꾸벅 고개를 숙여온다. 나신의
미녀가 피부 곳곳에 키스 마크를 새기고선 저렇게 인사를 해 오면 또 신선한데. 처음으로 셋이서 즐길 생
각으로 ‘포상’ 운운을 했더니, 내 물건에 봉사 하나 없이 자위만 하다 지쳐 잠든 벌을 주려다 너무 나간 기
분이 든다.
간만에 3P나 해보나 했더니, 얼떨결에 한 명은 방치 플레이, 한 명은 쾌락 고문을 해버렸다. 인생에서 계
획을 세워 본 적은 PVP 대회에서 대진표 보고 짠 계획밖에 없던 나로서는 당연한 일. 즉흥적이고 꼴리는
데로 살다 보니 별 감흥도 들지 않는다. 되려 쩔쩔매는 김세민의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온다.
“정말 충분해? 소정이보다 부족한 것 같은데.”
“아뇨! 과욕은 금물이라 했으니까요.”
그녀의 눈이 다시 침대에 누운 이소정에게 향한다. 다섯 시간 넘게 흡혈귀의 피를 온 몸에 바르고 마사지
를 당해 마치 수십명에게 윤간당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그녀. 양 팔은 제 멋대로 널브러져 있었고, 허벅지
는 아직도 바들바들 떠느라 안짱다리 모양으로 엎드려 허벅지부터 등허리까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여성으로서의 자존심이고 뭐고 인간의 존엄성까지, 아니 굴라니까 그런 건 애초에 없구나. 아무튼 내려
놓을 체면치레는 다 내려놓고 정말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쾌락에 온 몸을 비트는 그녀를 명령으로 잡아 눌
러 마사지를 연습했으니까.
‘뭐, 소희는 흡혈귀가 아니니까 기분 좋은 정도에서 끝나겠지.’
멍한 머릿속으로 사념을 보낸다. 두 명의 굴라에게 홀린 남자들이 각자 돈다발을 하나씩 들고 아지트 밖
으로 빠져나간다. 이제 마법사가 우리를 백날 천날 찾아다녀도 저 독가스 빌런, 혹은 각지에 퍼진 창남들
의 뒷주머니밖에 나오지 않겠지.
※
가끔은 시간이 답일 경우가 있다. 돌아서 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는 말도 있던가. 아무튼 그게 맞는 말
같았다. 마음껏 해도 좋다는 말에 자위로 혼자 만족했다 찐한 체벌을 받은 두 명은 이제 남자에게 봉사하
는 법을 배웠고, 전소희는 요리 중 뒤에서 껴안아 오는 둥 저 권하기 시작했고 아직까지 이름도 모르는 윗
집 여자는 점차 변태의 길을 개척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 빌어먹을 학교는 조기 졸업 시스템이 없지.
“아오, 씨발 저 교사… 남자 고간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그러니까. 뭔 마라톤이야, 마라톤은.”
여학생 둘이 여교사를 뒷담 하는 내용이 들린다. 평소라면 아무 생각 없이 넘기겠지만 짜증으로 가득한
지금은 공감이 가서 미치겠다. 조기 졸업이 없는 시스템도 짜증이 나서 죽겠는데, 무슨 육체 강화 능력자
들한테 기초 체력 단련을 시킨담.
‘그놈의 나이 제한, 그놈의 미성년자.’
영웅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것은 히어로가 된다는 말과 똑같았다. 그럼 조기 졸업을 하
면? 미성년자 히어로가 된다는 소리. 빌런과 싸우는 피 튀기는 실전 현장에 미성년자를 투입시키면 무슨
소리를 듣겠는가? 인권위원회가 개처럼 달려들어서 취소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 수많은 세계 중 이 새끼들이 정상적인 단체 활동을 하는게 단 한번이 없네.’
교문에 있던 체육교사가 죽도로 어깨를 탁탁 치며 뒤처지는 아이들을 닦달한다. 러닝셔츠 위에 대충 걸
친 츄리닝 차림의 체육 교사. 짜증내면서 달리는 아이들. 무슨 DLC구매를 한 것 마냥 분위기가 이토록 다
를 수 있을까.
지금 저 지하도시에서는 눈이 돌아간 상태로 나를 찾는 연금술사가 있는데 여기선 네다씹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펼쳐진다니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다. 아니지,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해 보면 여기 학원물 모드가
깔려 있다고 봐도 되겠군.
그런 내 생각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체육 선생은 호루라기를 귀찮게 삑삑 불어 재낀다. 짜증을 내면서도
일사불란하게 모이는 학생들. 땀에 젖은 학생들의 모습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수
업 종료를 알린다.
“우와, 최악…”
“하늘아, 넌 괜찮아?”
자연스럽게 조희정과 강정태가 옆에 붙어온다. 두 사람 다 여름이 가까워지는 날씨 때문에 땀으로 흠뻑
젖은 상황. 하지만 나는 다르다. 자신들과는 다른 나의 뽀송뽀송한 모습에 부럽다는 듯 쳐다본다.
“이게 등급의 차이인가.”
“그냥 땀이 안 나는 체질 아니야?”
히어로 지망생이라 해도 이 더위에 아무 이유 없이 운동장을 뛰는 걸 좋아하는 녀석은 없었다. 아니면 사
춘기 학생들 특유의 교사를 평가하는 그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능력 실습때는 이보다 더 땀을 흘리
고 흙먼지투성이가 되지만 욕은 오직 체육선생 혼자 먹는 군.
‘딱히 음흉한 눈초리를 보내오는 것도 아니던데.’
스쳐 지나가는 전소희와 눈빛만으로 인사를 하고 샤워실에서 몸을 씻는다. 강정태의 옆에서 옷을 벗자니
꺅꺅 소년들의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누구 가슴 근육이 크다느니, 피부가 곱다는 둥. 말없이 옷
을 벗은 이 쪽으로도 시선이 쏠린다. 그래, 시선.
나와 강정태가 그 수다에 동참하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겠지만 그 빌어먹을 시선은 쏠린다. 학원물
특유의 그 꺅꺅거리는 품평일까, 아니면 진짜 여자들은 남과 자신의 가슴 크기를 비교하는 건가. 아랫도
리에 모여드는 시선들.
크기로 우위를 나누는 수컷들의 경쟁심보단, 심미성을 따지는 듯한 그 기묘한 시선이 내 알몸을 훑어보
자 기분이 불쾌하다. 애초에 남자놈들이 뚫어져라 내 알몸을 보는 게 기분 좋을 리 없지. 은근히 몸매가
좋은 편인 강정태에게도 같은 시선이 쏠리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그저 샤워실로 쓱 들어간다.
“… 너는,”
“뭐가.”
샤워실에서 냉수를 즐기며 짜증을 식히고 있자 옆에서 그가 말을 걸어온다. 그나마 친분은 조금 쌓은 사
이기에 머뭇거리는 강정태에게 뭘 말하고 싶냐고 빤히 쳐다보며 재촉했다.
“그… 전소희라는 분과 사귀는 것, 맞지?”
“맞아.”
어떻게 안 거… 아니, 생각해보면 딱히 비밀로 한 것도 아니고. 만나면 대놓고 애정행각을 벌였구나. 내가
수줍음 가득한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누구랑 비밀 연애를 할 감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뭘 묻고 싶
은거지.
“그… 어떻게 사귀게 된 거야? 너는 꽤 무뚝뚝하고 남을 싫어하는 것 같은데.”
머리를 감으며 강정태는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년인 것 마냥 이것 저것 물어왔다. 여자가 무섭지는 않은지.
나이 차이가 많은 여성과 사귀면 어떤 기분인지. 데이트는 어디로 가고 어떻게 하면 여자들이 좋아하는
지.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그냥 희정이한테 고백하고 싶다는 거 아니냐.”
“아, 아니야!”
어깨가 쫙 벌어진 남정내가 수줍게 몸을 베베 꼬는 모습은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몸에 묻은 거
품을 채 씻어낼 생각도 못한 강정태가 내 어깨를 붙잡고 횡설수설 열변을 토한다.
“희정이는 그,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그냥 소꿉 친구라 오랜 기간 같이 다녀서 익숙할 뿐이고. 그 녀석도
나를 딱히 남자로 보진 않아. 같이 있으면 편하고 내가 싫어하는 건 귀신같이 알아차려서 선을 지켜주는
좋은 녀석이지만 고백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래, 그래. 알겠어.”
“알겠다는 표정이 아닌데?!”
귀찮아서 대충 넘기려는 마음에 알겠다고 말을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춘기의 감성인지 평소의 그 무뚝
뚝한 모습 따위는 내다버리고 얼굴이 빨개진 채로 매달려 오는 모습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러니까 네가 이런 걸 말할 거라고 생각은 안 하는데, 희정이한테는 이런 말 했다고 하지 말고.”
“그래… 그럼 내가 좀 도와 줄게. 방과 후에 같이 가 볼래?”
“뭐, 뭘 도와줘?”
“아무튼 희정이랑 좀 더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여자애가 익숙하지 않다는 것 아니야?”
그 말에 얼굴이 더욱 새빨갛게 변한 녀석은 샤워기 물을 찬물 쪽을 끝까지 돌리고 그대로 냉수 속에 머리
를 처박았다.
“아무튼 방과 후에, 같이 갈 거냐?”
“…응.”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와 왁자지껄 시끄러운 다른 남학생들의 목소리 사이로, 기어들어가는 강정태의 목
소리가 들렸다. 수줍은, 가냘픈, 마치 꺼지기 직전의 촛불 같이 작고 가느다란 목소리.
뭐, 두 명한테 따먹히다 보면 익숙해 지겠지. 나는 강정태의 앞에서 텔레파시가 아닌 문자로 두 명의 굴라
에게 연락을 보냈다.
[작품후기]
예약 아이템을 한 번 사용해 보았습니다
은근 비싼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