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과 벌
액자가 열 다섯. 손바닥 만한 조각상이 서른 둘. 서류는 박스로 네 박스 정도 있었고, 두 명이 주머니에 미
처 챙기지 못한 금괴와 보석도 식탁 위에 쌓아 둔 상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물
론 뒤늦게 온 녀석들도 잔뜩 챙겨서 달아났어야 하는데.
‘…열 일곱인가. 생각보다 적네.’
도시에 저걸 풀어 놓은 이유는 여러가지 있다. 하나는 자기 집 창고가 통째로 털린 연금술사, 혹은 마법사
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것. 두 번째는 소문만 무성한 지하 도시의 관리자를 확인하기 위한 것.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넘어가고.
‘자제력이 높은 게 아니야. 피라미들만 홀렸고 조금 능력 있는 녀석들은 겁을 먹었어.’
실제로도 그렇다.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와 조각상을 채간 소년은 C급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 어디
멀리서 이동해 온 줄 알았지만 사실 3m 떨어진 담벼락 쓰레기더미 밑에 숨어 있던 녀석이다. 담벼락을
뛰어 넘어와 망치를 휘두른 녀석은 초능력자조차 아니다.
그 외에도 물건을 챙겨 도시 곳곳으로 도망친 녀석이 잔뜩 있고, 그로 인해 싸움이 일어나지만 C급 능력
자들은 걸리지도 않은 상태. 자제심 따위가 아니다. 녀석들은 저 재화가 가져올 혼란을 명백히 두려워하
고 있었다.
‘빌런 주제에… 오합지졸이 아니네?’
욕망으로 인해 초능력을 범죄에 사용하고 그로 인해 도시에서 도망쳐 유독성 물질이 가득한 범죄 도시에
서 살아가는 녀석들 주제에 규칙을 지키느라 욕망을 억제하다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굶주
린 고양이 앞에 병에 걸린 쥐를 풀어 놓은 것이다. 평범한 고양이라면 그 쥐가 흑사병에 걸려 있던 말던 상
관없이 사냥을 해서 배를 채우겠지. 하지만 저들은 명백히 소란으로 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파악한 바로는 이 도시, 꽤나 막장인데.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처럼 정육점에 대놓고 인육을 걸어 놓
는 공포 영화 같은 도시는 아니지만 뒷골목에서 잘 찾아보면 인육을 전문적으로 파는 정육점이 있기는 하
다. 애당초 도시의 규율 중 가장 중요한 게 소방법이고, 그 외 폭행이나 살인에 대한 제제는 없는 도시다.
그런 곳에서 사는 범죄자들이 흡혈귀의 피를 이겨낸다고?
열 일곱은 이내 열 넷이 되었다가 스물이 되었다. 재물을 차지하기 위해 살인을 하고, 가끔 아는 사이면
절반을 약속하는 대신 같이 다니는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느리지만 늘어나는 감염자들. 하지만 예상했
던 숫자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적어도 오십으로 시작했다면 지금쯤 도시에는 수백의 중독자들이 미쳐 날뛸 텐데. 어째서 벽을 부수고
들어온 그 여성은 피의 저주를 직접 마주했음에도 버틸 수 있었지? 시작이 고작해야 셋이었으니 열 배가
량 늘어나도 고작해야 서른이 중독된 상태.
스물이 다시 열 다섯, 열 다섯이 스물 여덟 에서 다시 서른.
그 순간 오싹하고 등골에 기분 나쁜 감촉이 흘렀다.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자 두 여체가 침대에서 뒹군
다. 급격히 자라난 머리카락 때문에 끝자락만 염색이 되어 있는 머리카락과, 긴 생머리가 엉켜 마치 검은
비단 이불처럼 나의 나신을 덮고 있었다.
‘…아직까지 이러고 있었다고?’
기분 나쁠 정도로 소름 끼치는 감각에 쪼그라든 아랫도리는 둘째 치고, 이 두 명은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해도 차마 눈 감고 잠든 것처럼 보이는 나를 범할 용기가 없었는지 내 살결에 얼굴을 파묻고 자위를 하다
잠든 상황. 아직까지도 사타구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손과, 허벅지에 진 끈적한 얼룩이 인상적이다.
‘아니, 일단 얘들은 놔두고.’
서른이 갑작스레 다섯으로 줄었다. 도시 중심부에서부터 순서대로 사망. 200, 300m는 떨어져 있지만
죽는 순간은 초 단위의 차이 밖에 없었다. 황급히 눈을 감고 그나마 남은 중독자들에게 신경을 집중한다.
-사, 살려줘!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건 위험한 물건이다.
-줄게, 이걸 줄 테니까아아아악!
뒷골목의 낡은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들려온다. 품 속에서 금괴를 꺼내 황급히 바닥에 내려놓는 남성, 무
뚝뚝한 목소리로 제 할말 만 하는 의문의 여성. 골목으로부터 미약한 바람이 불어와 남성의 얼굴을 쓰다
듬고-
-아, 아파, 아파아아!
남성은 제 목을 부여잡고 피눈물을 흘리며 절명했다.
‘가스 계열이면 그나마 다행이네.’
어떻게 봐도 독가스. 목을 부여잡고 꺽꺽 거리는 걸 봐선 흡입 시 질식 능력이 있고, 피눈물을 흘리는 걸
봐선 점막 접촉 시 출혈 유도도 하는 듯하다. 투명한데다 바람이 없어도 제 멋대로 움직이는 생화학 가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목에서 금괴를 회수해가는 검은 양복의 여성은 아무 문제없이 움직이며 금괴를 회
수해 스피커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다.
‘피아 구분이 되는 독가스? 뭐 언데드 상대로는 상관없지만.’
하지만 오히려 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흡혈귀를 비롯해 굴라와 구울은 언데드. 신경독이 작용할
생체 기관 따위는 없다. 중급 흡혈귀는 성수가 아닌 독 따위는 무시할 수 있다. 굴라는 애당초 몸에서 독
을 내뿜는 독 계열 몬스터고, 구울은 썩은 시체니까.
도시를 교란하려는 목적은 실패했지만 언젠가 처치해야 할 녀석을 알아 뒀으니 나쁘진 않다. 더군다나
재물 대부분이 회수된 걸 봐선 연금술사가 나를 찾아올 순 없을 거다. 추적할 수 있을 특징적인 재물들은
다 회수당했고, 현금은 최면에 걸린 남성들을 이용해 사용한 뒤 도시 곳곳에 풀어놓으면 되니까.
독가스를 사용하는 빌런. 화학품을 다루는 능력이라고 보는게 좋을까. 어쩌면 도시의 정화 시스템을 이
용해 가스를 보낸 걸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일이 일단락되자 주변에 눈이 간다.
꿈지럭대며 자신의 음부를 몰래 자극중인 김세민과, 대놓고 손가락으로 쑤시며 이불을 깨물고 있는 이소
정. 강화가 되며 매혹적이게 변한 그 늘씬한 여체 둘이 욕망에 못 이기고 꿈틀대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하아, 뭘 해도 좋다니까?”
하지만 동시에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전에 징벌 느낌으로 면역력을 앗아갔던 그 사건이 조금 충
격이 컸는지 많이 소극적으로 보이는 둘. 내 여자라는 느낌보단, 내 부하 겸 장난감인 녀석들이 멋대로 남
자들을 강간하고 다니느라 일을 하지 않아 조금 과하게 체벌했더니 트라우마로 남았나 보다.
‘…조금 심하긴 했나?’
안구와 입 안. 코 안쪽과 손톱 아래, 그리고 음부. 거기서 나오는 액체들에 대한 면역력을 앗아갔으니 아
마 그 모든 부위가 고통스러웠겠지. 하지만 그것에 죄책감을 느끼기엔 리얼 월드를 너무 많이 즐기긴 했
다.
‘지금 잘 해주면 되는 거지 뭐.’
두 사람의 품에 안겨 있는 팔에 힘을 줘 보드라운 여체 둘을 끌어안는다. 서늘하던 체온이 달아올라 조금
따끈하다고 느낄 정도. 시체의 서늘함은 온데간데없고 조금 체온이 낮은 사람을 껴안은 느낌이 든다.
“자, 잠시만요 주인니, 힘?!”
홀로 달아오른 몸을 식히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했는지 축 늘어져 흐늘거리는 두 명. 고통스러운 기억 때
문에 눈 앞에 두고도 만찬을 즐기지 못한다면, 억지로라도 먹여서 기억을 덮어주면 되지 않겠는가? 연약
한 여인도 아니고. 남성의 정신에 굴라의 육체를 지닌 이들이다. 조금 거칠게 다뤄도 되겠지.
‘죽으면 다시 살리고.’
생각해보니 여성이 복상사하는 건 본 적 없는데. 포로가 윤간을 당하다 체력이 다해 죽은 걸 본 적은 있어
도. 음, 둘이 같은 건가? 호기심은 둘째 치고 손가락을 뻗어 그녀들의 피부를 어루만진다. 매끈하면서도
부드러운 피부. 칼날도 튕길 두꺼운 피부지만 제 주인에게는 그 단단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그극, 제, 제발 쉬었다가…”
“누가 혼자서 그렇게 열중하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을 슬며시 움직여본다. 저 둘의 입장에서 나는 한계 이상으로 쥐어짜는
서큐버스 같은 느낌이려나. 매끈한 허벅지를 쓰다듬자 과도한 쾌락과 방전된 체력으로 인해 경련이 이는
게 느껴진다.
갓 태어난 사슴 다리처럼 바들바들 떨리는 새하얀 허벅지. 매끈하고 새하얀 허벅지는 청초한 미인상으로
변한 김세민과 매우 어울렸다. 가슴이 커지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군살이 전부 사라지고 키가 커지니
정말 모델 같은 슬렌더한 몸매.
성적으로 애무하려는 느낌보단, 몸을 진단한다는 느낌으로 온 몸을 주물럭거렸지만, 끄흐흑 하고 숨 넘
어가는 소리를 낸 김세민이 바르르 떨며 조수를 내뿜자 손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역시 키가 크며 모델 체형이 된 이소정이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었다. 거유도 아니었고 딱히 운동을
하지 않은 두 명이라 키가 커지고 군살이 전부 사라지자 자동적으로 모델의 몸매가 되었다. 이렇게 알몸
만 놓고 보면 쌍둥이라 해도 될 지경.
잘 들어보면 작게 코를 골며 곤히 잠들어 있었기에, 나는 어이가 없어 그대로 손을 뻗었다.
“굴라는, 숨을 안 쉬는데 왜 코를 고냐.”
[작품후기]
대부분의 작가님들이 다들 12시에 올리던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2시 땡 하고 올리면 뭐 가산점이라도 있나